빻은 꼰대 2020
빻은 꼰대
인간은 귀족이 되어 있는 시대였다.
난 자본 투입을 어떻게 해야 할지만을 고민하는 게으름뱅이였다. 소득은 자본, 노동, 사회로부터 온다. 오늘날 노동의 많은 부분은 기계가 담당했다. 그렇지만 기계의 수정은 인간만이 짊어지는 노동이었다. 내겐 직업을 가질 정도의 사명감, 소명의식, 능력이 없었다. 정당한 직업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체제는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문명을 뜻했다. 노동은 신성하다.
그랬더라도 내 삶엔 별 지장이 없었다. 1948년 UN 인권 선언은 내가 보기에 반박이 없어야 마땅한 탁월한 문장들이었다. 인류 연합(UP, United People)은 구축되는 중이었다. 기본 소득이 나왔고, 난 가끔 인공지능 수정 작업에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걸 부 수입원 중 하나로 삼았다. 온라인에 접속하는 순간 마인드 컨트롤이 작동해 내 의식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난 나를 개선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인류적 인공지능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진 재산은 좁은 집과 바이오로이드 한 마리였다. 내 바이오로이드는 미녀의 형상이었고 개구리 출신 수정 세포와 기계 복합체와 특정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제조되었으며 내게 성욕 처리와 개인 노동을 제공했다. 내가 PC들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바이오로이드를 지배할 권력이었다.
난 소고기 배양육 스테이크를 즐기곤 했다. 어떤 인간도 비상 상황이 아닌 이상 직접적으로 생물 개체를 죽일 수 없었다. PC들은 세포의 권리를 내세워 내게서 배양육과 바이오로이드를 즐길 자유를 빼앗으려고 했다. 내 몸 속에서도 수많은 내 세포들이 내 생리 작용에 의해 죽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세포의 권리는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중지와 엄지 끝을 맞춰 튕겼다. 이것이 내가 가상현실을 불러내는 방식이었다. 가상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이버 성매매자의 음란 영상물에 접속했다. 내 바이오로이드는 흔히 그렇듯이 수많은 사이버 성매매자 중에 한 사람을 본 따서 디자인 된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바이오로이드를 구입했을 때 저작권료를 받았다.
PC들은 여자를 개인이 아닌 동일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보았다. 그랬기에 사이버 성매매자 남자는 허용하면서도 여자는 불허하려고 들었다. 내가 태어났던 시기엔 어릴 적부터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아니면 금전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서 억압이나 협박을 받는 등 다른 개인에 의해 성적으로 뒤틀린 성매매자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부류의 성매매자는 피해자로 봐야 했다. 그렇지만 세상엔 스스로를 노출하고 싶어서 성매매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인권을 보호받는다는 선에서는 그들의 자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난 생각했다. 존중받기 어려운 부류의 인간들일 수는 있으나 원래 인권이란 존중받기 어려운 것이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
바이오로이드가 있고 1:1 관계에 있어서의 곤란함도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성을 직접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가상현실을 비롯한 가상 매체나 바이오로이드와 같은 인공 물체로만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이에도 불만 가진 부류인 권력 성애자는 자유주의로 논파될 수 있었다. 난 이에는 불만이 없었지만 PC들은 더한 상황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세포의 권리나 가상 매체나 인공 물체를 이용한 성매매 금지가 이야기되고 있는 시대에 난 빻은 꼰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온라인 위에서만 존재하는 형태의 인간이 서서히 태어나고 그들은 권리를 확장하려는 중이었다. 우주 개발에 그들이 더 유용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다 보니 빚어진 현실이었다. PC 또한 확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가상현실이든 우주 개발이든 인간 정신체들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이들은 마인드 업로딩으로 태어났고 그랬기에 인공지능을 매우 가깝게 생각할 터였다. 올해로 만 95세가 된 내 육체는 21세기 초반 기준으로 따지면 17세 정도의 젊음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인간이 육체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늙음을 넘어 낡음을 뜻하게 된 것이다. 내게도 투표권이 있다는 것만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정도로 시대에 뒤쳐진 것만 같았다.
새로운 그들이 내게도 자리를 허용하고 내 입장을 이해해준다면 좋겠다. 인간이 특정 순간엔 언제나 개인일 밖에 없다는 논리가 영원히 관철되기를 바란다. 내가 아직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암시하듯이 그들 중에도 내 편이 있다는 건 게시판들에서 확인한 바이긴 했다.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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