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박사와 공산주의 - 2008
양박사와 공산주의
양박사는 새로운 얼리어답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돈을 내고 마루타가 되길 자청하는 작자들이지.’
얼리어답터들은 어찌 보면 한심하고 어찌 보면 모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 때문에 사회가 돌아가는 부분이 있고, 덕택에 자신이 좀 더 안전하게 돈을 번다고 양박사는 생각했다. 양박사는 수많은 인격공학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하드웨어적 부분과 소프트웨어적 부분 모두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과거엔 무수히 세분된 한 분야만 파기에도 힘이 부쳤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뇌의 모든 신경세포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연구가 2012년에 끝난 이후 사이버네틱스 공학은 쾌속으로 발전했다. 양자컴퓨터와 결합된 뇌는 인간으로 인정되었고, 인공지능을 파생시켜 주렁주렁 달았다. 사고와 인식과 감각과 감성 등등 인간의 모든 정신 분야는 재구성되고 재설계되었다.
인격공학이 이처럼 발전한 데에는 국제금융자본이 아낌없이 투자한 덕이 컸다.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이었다. 국제금융자본의 핵심층은 유태인들이었기에, 국제금융자본을 국제유태자본이라 부르기도 했다. 북미연합(미국, 캐나다, 멕시코)이 채권을 발행해서 세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면 북미연합FRB는 화폐인 아메로(Amero)를 발행했다. 북미연합FRB는 국제금융자본의 사기업이었기에 국제금융자본은 마음대로 기축통화인 아메로를 찍어낼 수 있었다. 즉 국제금융자본에게 돈은 휴지였다. 신용평가사들도 언론도 각 국가의 중앙은행들도 BIS도 IMF도 국제금융자본의 수중에 있었다. 자본주의는 그냥 자유롭게 내두면, 노동자와 산업자본에게 돈을 빌려주는 금융자본이 가장 강대한 힘을 갖게 된다. 텍스헤븐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고, 인맥을 통해 국가의 재산을 굴리며, 공공기관을 사유화하는데다, 금융을 통해 실물경제로부터 돈을 수탈하는 국제금융자본이라 지구 자본주의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는 것은 차라리 자명한 논리의 귀결이었다. 21세기 중엽에 국제금융자본은 온 인류에게 칩을 박아서 화폐로 쓰도록 만들고, 자신들의 체제에 반항하면 칩을 끔으로서 모든 재산을 단숨에 잃도록 만들었다. 그런 국제금융자본의 지배자들도 불로불사하고 싶었기에 인격공학 연구를 지원했다. 양박사는 인격공학을 연구하고 경쟁하는 수많은 사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지금 만나러 가는 얼리어답터도 수많은 얼리어답터 가운데 하나였다.
‘이 지구의 모든 것은 무한경쟁하고 있지. 아메바든 인류애든 무한경쟁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아.’
얼리어답터의 뇌에 새로운 기계를 붙였다. 더욱 높은 지능과 더욱 풍부한 기억력을 제공해주는 기계였지만 어떤 부작용이 날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기계 때문에 죽어 간 사람들은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안정성이 보장된 기계, 즉 오래 묵은 기계를 국제금융자본의 지배자들은 선호했다. 국제금융자본의 지배자를 시술할 때면 양박사는 극도로 긴장하곤 했다. 수술하다가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CIA나 모사드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되기 때문이었다. 양박사를 대체할 수 있는 인격공학 기술자는 수도 없이 많다고, 살인 기술자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수술을 끝낸 뒤 양박사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수많은 정보와 기억들이 극히 싼 가격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국제금융자본은, 젊은 어머니가 갓난아기에게 해주는 모유 수유도 가격을 지불하는, 즉 갓난아기에게 그 대금으로 빚을 꿔주는 체제를 확립해 놓았다. 국제금융자본은 어떤 행위든 모두 현금으로 가치가 매겨지도록 법으로 규정했고 시장원리에 따르도록 해놓았다. 인터넷엔 붉은 빛 글씨가 선명했다.
“다시 한 번 더 공산주의를!”
양박사는 웃었다.
인격공학으로 인간 개개인의 정신은 크게 확장되어, 모든 물자를 물물교환 하는 것이 가능할 지경이 되었다. 온 인류가 모두의 처지와 인간관계를 외우고 맺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지구의 가용 자원을 파악하고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른 생산과 필요에 따른 소비를 말했지만, 온 인류가 가족으로서 연대 책임을 느끼고 실천할만한 상황이 온 것이다. 로봇의 대리 노동이 정착했다. 인공지능과 결합되고 윤리로 똘똘 뭉친 사고 체제가 카피 레프트의 형태로 시장에서 사고 팔렸고, 이런 사고 체제를 사들인 집단이 단결력이 높았기에 힘을 얻고 확산되어 갔다. 동정심, 양심, 박애주의 등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들이 대우받기 시작했다. 국제금융자본은 각각의 인간들이 서로에게 상관없는 존재가 되도록 하는 모든 체제와 이론들을 고안해왔지만 슬슬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어느 쪽에 충성해야할까.’
양박사는 국제금융자본의 황제인 데이비드와 만난 적이 있었다. 데이비드는 국제금융자본 가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었다. 데이비드는 모든 성공할 수 있는 요인들을 주의 깊게 전대로부터 상속받았고 당연하게도 성공해서 국제금융자본의 황제 즉 지구의 황제가 되었다. 데이비드는 국제금융자본을 제외한 온 인류를 농노라고 불렀다. 데이비드는 그때 양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 농노들이 공산체제를 만들려고 하고 있네. 지구의 식량, 에너지, 언론, 군대가 내 손아귀에 있는데도 그러고 있지! 정신 바이러스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서 농노들을 자유롭게 학살해주기 바라네. 모든 농노들을 없애버려야겠어.”
“농노들이 죽으면 데리고 놀 녀석들이 죽지 않겠습니까.”
“인공지능이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시대이니 농노는 더 이상 필요 없네. 우주로 나가 우주에너지자본으로 업그레이드할 거라네. 모든 걸 통제하는 것 보다 더 한 오락은 없지! 협력한다면 자네를 말석에 껴주겠네.”
“감사합니다.”
국제금융자본은 ‘시온의 칙훈서’를 발간할 때부터 인류를 10억만 남기고 온갖 방법으로 학살하여 죽여 없앨 계획을 세워왔다. 그때가 왔다고 데이비드는 믿고 있었다. 다만 ‘시온의 칙훈서’를 발간할 때 보다 과학이 더 발전한 것이다.
양박사는 이 영상녹취록을 인터넷에 뿌렸다. 국제금융자본은 조작된 정보를 통한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흘렀다.
지구는 공산주의에 점령되어 인류 모두가 한 가족으로서 오래 지냈다. 사랑과 번영이 지구를 한동안 지배했다. 하지만 파국은 닥쳐왔다. 점점 더 많은 기억이 공유되면서 인류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특히 새로 태어나는 이들이 그랬다. 양박사는 거대한 집단이 하나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가져가는 것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국제금융자본에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마침내 인류의 한 무더기가 개인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서로 융합되어 우주로 날아올랐다. 가히 아서 찰스 클라크의 ‘유년기의 종말’이었다.
마치 진핵세포들이 연합해서 다세포생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같았다.
“저들이 육식동물이 되어 지구를 침공하러 돌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을 지구에 남은 이들이 극복해낼 수 있을까?”
[Fin]
*********
2008.11.27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