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병원 - 2007
사랑의 병원
고광덕은 ‘이 아이는 악마의 아이입니다’라고 말하려던 것을 억눌러 참았다.
그의 눈앞에서 알짱알짱 거리는 남자 아이는 7살인 김은조였다. 이 꼬맹이는 자신 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을 상습적으로 폭행해왔고, 유치원에서도 여러 아이들을 때려 왔다. 어릴 적에 누군가에게 맞는 경험은 폭력적이거나 내성적으로 인간을 이끌기 쉽다는 연구 결과가 엄연히 있었다. 그 누군가가 어른이 아니라 어린 아이라도 똑 같은 영향을 인간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이는 위험했다. 김은조는 이미 폭력의 전도사인 셈이었다. 폭력은 나쁜 사람이나 나쁜 상황을 만든다. 나쁜 사람은 어떤 사상을 가지든 나쁜 짓을 한다.
고광덕은 아래에 3살 어린 남동생을 두었다. 단 한 번도 남동생을 때린 적이 없었다고 어머니에게 들은 바 있고 그 자신 그런 기억이 없는 고광덕에게 김은조의 현 상태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김은조의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산만하게 구는 아이를 다그쳤다. 김은조가 다소 안정되자, 김은조의 어머니인 안명숙은 의사 고광덕에게 말했다.
“정말 그런 수술을 받아야 하나요?”
의례 그러하듯 고광덕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라의 법이 그리 되어 있습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시술을 받아야만 하지요. 그게 어린 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영향을 평생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수술은 뇌의 기억을 좌우하는 부분을, 사랑을 어릴 적에 제대로 듬뿍 받은 이의 머리처럼 재편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다 좋게 바꾸는 일이지요. 위험하지 않고, 몇 차례의 스캔과 한 차례의 3시간짜리 수술만 거치면 됩니다. 아이에게 공격당한 아이도 마찬가지 시술을 보다 약하게 받아야만 합니다. 폭력성은 본능이 아니라 정신 질환입니다. 약물과 뇌수술을 병행하여 고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뇌수술은 직접 뇌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 시술로 이루어져 흉터가 없습니다.”
안명숙은 잠시 눈을 내리 깔았다가 말했다.
“시어머니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무척 항의를 하시더군요. 남에게 맞느니 먼저 때려서 이기라고 가르치는 분이거든요.”
“사랑을 퍼뜨릴 수 있는 수술이 없었을 때엔, 그건 적극적인 사람을 만드는 한 방편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이 기술이 나왔고, 사랑을 충실히 받은 사람은 긍정적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더 이상 그런 비도덕적인 행위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위험한 건 아니겠죠?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이 어떤 명령에 강하게 반응한다던지 하는... 세뇌 당하는 건 아니죠?”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뇌수술이 최면의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충실하게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다각도로 검증되었다는 것이죠. 인터넷을 뒤져 보면 쉽게 나오는 것들입니다.”
“아이가 변하지는 않나요? 그러니까 인격적인 부분이나 나와의 소중한 기억 같은 것이 손상을 받는다거나 하는...”
“그대로의 기억을 갖습니다. 갑자기 인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도구적 이성이 마비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수술을 해도 사람은 여전히 합리적입니다. 전 이 수술이 더욱 널리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이 수술을 받도록 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 누구나 이 시술을 받음으로서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이전의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광덕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아이가 이 수술을 받으면, 더 이상 어린 여동생을 때리지도 않을 거고 짜증을 덜 부리게 될 겁니다. 어릴 적에 사랑을 충실히 받음으로서 성격이 좋아진 아이처럼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전 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가 될 겁니다. 앞으로 이 아이를 놔두면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을 막는 것이지요.”
안명숙은 사인을 했다. 이 사인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국가는 이미 김은조를 시술하도록 행정 명령을 내렸다. 과거 이를 거부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패소로 끝났다. 폭력을 사회에서 제거하는데 이 수술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무인도 같은 곳에 고립되어 식량 없이 지내다가 서로를 고기로 인식하고 싸우는 현상까지 뿌리 뽑을 수는 없었지만,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이 수술은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었다. 모든 자유의지에 근거를 둔 반론은 이 효과 앞에서 무효였다.
예컨데, 한국 자본주의 고질병인 험악한 노사 관계도 더욱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었고, 한국 인종주의의 병폐도 누그러져 외국인을 덜 차별하게 되었다. 기부금은 늘어났고, 복지 재단들은 더욱 투명하게 관리되었다.
본디 자유의지란 없는 것이다. 날 때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인간은 무생물이 조합되어 태어나는 것이고, 몸의 먹이와 마음의 먹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물질의 인과관계를 따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기억을 조작하여 사랑을 배양할 수 있겠는가. 나쁜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시술이었고, 어떤 사상을 가지든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한다.
김은조에게 마취약을 먹였다. 부작용 없이 7살짜리 아이를 잠재우고 신경을 약화시킬 수 있는 약이었다. 간이 침상 위에 잠든 모습은 천사 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고광덕은 생각했다. 오늘 행할 일은 김은조가 어떤 뇌를 가졌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스캔이었다. 과거의 MRI를 닮은 장치를 김은조의 몸이 지나가게 함으로서 이 스캔은 끝난다. 고광덕은 자신의 190cm, 100kg이나 되는 근육질 몸이 아이에게 자신을 잘 따르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고 생각했고 기분이 좋아졌다. 고광덕은 이 사랑의 시술을 받지 않았고, 이를 받는 상황을 만들어낼 생각도 없었다. 아이를 스캐너에 누였다. 안명숙은 대기실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안명숙이 묵주를 돌리는 걸 보고 고광덕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수기도랍시고 어린 아이의 때릴 데도 없는 연약한 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가끔씩 있었다. 기독교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사랑은 올바르게 적용되어야 했고, 그 가운데엔 비폭력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안수기도를 아이에게 하는 사랑은 무지였고 죄악이었다. 폭력적인 남성이 가족을 때리면서 말하는 사랑이, 집착에 불과하듯 말이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 까르마조프의 입을 통해, 유물론이 지배하는 세상은 모든 죄가 허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물리법칙이 허용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아닌가. 내면엔 사랑, 외부엔 공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국가는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죄악을 단죄할 수 있겠는가. 이전 세기에 자유는 방종을, 평등은 억압을 불렀을 뿐이었다. 21세기 중엽인 지금 세계는 박애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고광덕은 김은조의 작고 여린 몸이 스캐너에서 서서히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를 보고 고광덕은 행복감이 자신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어릴수록 이 시술은 쉬웠으므로 더욱 쉽게 박애의 시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좋았다. 권력을 쥔 자들도, 통일되어가는 지구의 법에 복종하여 수술대 위에 누울 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자신도 스스로 수술대 위에 누우리라. 고광덕은 뿌듯함을 느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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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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