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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로 간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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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차르다시
작품등록일 :
2021.07.26 01:46
최근연재일 :
2022.05.16 16:05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9,918
추천수 :
58
글자수 :
236,499

작성
21.10.05 22:25
조회
249
추천
3
글자
13쪽

15. 하울드의 수호자.

DUMMY

“방법이 있으니 그만들 하시오.”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김신을 바라봤다. 김신이 무리 가운데로 들어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산맥을 그린 지도였다. 지도 위에는 약초를 캐는 동선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길 보시오.”


김신이 약초를 캐는 구역을 크게 셋으로 나눠 표시했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과 다음으로 먼 곳 그리고 가장 거리가 있어 자주 가지 않은 곳이었다.


“구획과 무리를 나누겠소.”


마을에서 가까운 곳으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동선이 곁 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마을 인근에는 약초가 부족한 일도 벌어졌다. 김신은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기운을 보충하면서 보았던 것을 세세히 기록해둔 결과였다.


어느새 모두 김신을 에워싸고 귀를 기울였다.


“모두 가깝고 약초가 많은 곳 만 갈 수는 없소.”


김신의 지적에 몇몇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개 중 하나가 불만을 토해냈다.


“뭘 하나 했더니, 또 종이에 산을 그려 넣고 있었군. 우리가 지금 이렇게 된 게 따지고 보면 모두 그것 때문 아닌가? 위험한 짓은 그만두라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동요하자, 보다 못한 개똥이 나섰다.


“생각해서 말했더니, 어쩌고 어째? 그럼 좋은 수라도 있어?”

“그래, 다른 방법도 없잖아. 김씨 말대로 하자고, 솔직히 병사들이 오기 전까지 김씨 덕에 약초 캐는 게 순조롭지 않았나.”


베른까지 편을 들고 나섰고, 그의 말에 수긍하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이 오기 전까지 김신의 집을 들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당시에는 동선이 겹치거나 몬스터의 위협도 없었다. 불만을 토하던 이도 당시에는 김신의 집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던 자였다.


불만을 이야기하던 자가 꼬리를 내리자, 김신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봐 두었던 곳이오.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가 없으니 약초를 캘 수 있을 거요.”


김신이 지도에 새로운 장소를 몇 군대 표시했다. 다음으로 간단한 뽑기로 무리를 셋으로 나눴고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지도를 보며 모두의 위치를 하나하나 다르게 표시했다. 이 부분에서는 불만을 갖는 이가 많았고, 이들을 설득하고 동선 수정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먹고사는 것이 걸려 있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서 야 대 다수가 납득할 만한 그림이 나왔다. 지켜보던 개똥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쥐날 지경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정해진 것으로 하겠소. 지도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두겠소. 추후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이야기하시오.”


김신이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개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루크는 진작에 동선이 정하고 크리스와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독한 놈들 조금씩만 양보하면 될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는.”


개똥이 투덜거리며 이들을 욕했지만 김신은 생각이 달랐다.


“창름실이 지예절, 의족족이 지영욕. 창고가 가득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를 안다 하였다. 저들이 유별난 것이 아니다.”


김신의 말에 개똥이 심술이 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 똑똑한 양반이 어째 과거길만 올랐다 하면 떨어지셨데.”

“들린다 이놈아!”


김신이 버럭 성을 내자, 개똥이 혹여 한 대 맞을까 잽싸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먼저 가서 저녁 차려 놓겠습니다.”


개똥이 자리를 피하자 김신이 혼자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개똥이 심술을 부리며 던진 말이지만 자신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읽고 외웠지만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남들보다 머리가 둔하여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식을 책 속에 글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안에 틀어박혀 글을 읽고 쓰며 내 생각은 책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단순히 글을 외운 것일 뿐 그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니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 달라졌다. 글로만 남아있던 지식이 삶과 만나니 어렵게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의미가 헤아려져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자책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깨닫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다음날, 김신은 잘 보이는 곳에 지도를 붙였고 약초꾼들은 약속한 동선으로 약초를 하러 갔다. 다행히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고 크게 불만을 갖는 이가 없었다.


의구심을 갖던 이들도 막상 약속 데로 움직이니 체계가 생기고 맘이 편했다. 우선 수익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가지고 얼굴 붉힐 일 없으니 좋았고 매번 하던 장소 고민이 덜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 여유도 더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체계에 익숙해지고 마을의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다. 몇몇은 김신에게 고마웠는지 고개를 꾸뻑 숙이고 지나갔다. 주로 새로 약초꾼으로 들어선 이들이었다.


“선생님, 대단하세요. 모두 선생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크리스가 기뻐하며 추켜세웠지만 김신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았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다 잘 됐는데.”

“임시방편일 뿐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능률이 좋아지고 수익이 고루 나눠졌을 뿐 총합이 변한 것은 아니다. 김신은 창고를 채울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알렌과 셸리의 장난치는 소리가 뜰에 울렸다. 한 쪽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프레이드는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마력의 버섯 덕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회복됐다. 아직 무리할 정도는 아니지만 곧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고 필리아도 크게 걱정하지 않은 눈치였다. 물론 전 적으로 프레이드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빠르게 회복될수록 프레이드의 고민은 더해갔다. 앞으로 거취가 걱정되어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마울드의 말이 맞는다면 마을은 이미 베르크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의 권모술수에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프레이드는 정치와 모사에는 치가 떨렸다.


프레이드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아들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필리아에게 달렸다.


“무슨 일이야?”

“엄마, 저기 사람들이 와요.”


프레이드가 황급히 담장 넘어 내다보니 가파른 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병사들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 수가 적지 않았다.


“필리아, 아이들과 숨어있어. 혹시 싸움이 벌어지면 곧바로 도망쳐 김신을 찾아가.”


급해지니 김신을 찾게 됐다. 지금은 의지할 수 있는 자가 그 밖에 없었다. 프레이드가 검을 들고 비탈길을 내려갔다.


얼마쯤 가던 프레이드가 좁은 길에서 자리를 잡고 검을 뽑아냈다. 싸움이 벌어진 다면 좁을 길을 막고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자들의 중에는 아이들로 보이는 자도 있었다.


짐도 한 보따리씩 지고 오는 것이 마치 피난민 같았다. 무리가 가까워지자 프레이드가 검을 집어넣었고 선두에 서있던 이가 프레이드를 발견하고 잠시 움찔했다.


“산맥 사람입니까?”


무리 중에 가장 젊고 건장해 보이는 사내였다.


“아니, 산 사람들은 여기 없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허락도 없이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내의 시선이 프레이드가 차고 있는 검에 틀어박혔다. 뒤에 서있던 무리도 겁이 나는지 불안한 눈으로 프레이드를 바라봤다.


말문이 막힌 프레이드가 입을 때지 못하는데, 무리 중에 나이가 지긋한 노파가 걸어 나왔다.


“프레이드님···아니 십니까?”


노파에 말에 무리가 술렁이었고 가까이 다가온 노파는 플레이드의 얼굴을 확인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프레이드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건 곳에서 만나 다니요. 신이 계셨군요.”


노파는 피난길이 힘들었던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다른 일행들도 뒤늦게 프레이드를 알아보고 모두 엎드렸다.


“됐다. 일어나거라.”


프레이드가 난감한 표정으로 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들의 믿음이 커 보였지만 지금 프레이드는 제 코가 석자였다.


“마을 사람들 같은데 왜 산으로 온 것이냐.”


프레이드의 말에 사내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살길이 막막해 산으로 올라온 겁니다. 반란이 일어나고 연일 파벌싸움에, 재정을 충당하려 사람들을 쥐어짜고, 무슨 일 인지 나무를 하는 이들까지 내려오질 않으니 장작 값이 올라 빵 하나도 굽기 어렵습니다.”


사내의 말에 무리 안에 누군가 흐느꼈다. 프레이드 만큼이나 이들의 생활도 망가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산에 생활이 마을보다 낫다고 할 수 없었다.


이들이 처음부터 사냥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 지리를 잘 알지 못한다면 위험한 몬스터를 만나기 십상이었다. 자신만 해도 베어울프에게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산맥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깊숙이 숨어든 산맥 사람들이 낯선 이들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산은 위험한 곳이다. 살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산맥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플레이드가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볼일이 끝났다는 듯 돌아섰다. 그의 등장에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던 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낙담할 것 없어요. 하울드의 영웅이 있잖아요.”


한 소년이 무리에서 뛰어나와 프레이드의 등뒤로 외쳤다.


“프레이드님. 저희들을 구해줄 거잖아요. 우리도 함께 싸울게요. 하울드를 구해주세요! 귀족들을 몰아내고 대장님이 영주가 되어 주세요!”


하울드의 영웅, 마을의 소호자, 권력과 부를 마다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마을에 남아있다는 위인 같은 이야기. 하울드의 자라는 어린아이들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년은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권력과 부를 마다한 것이 아니라 골치 아픈 상황을 피한 최선의 결정이었다. 권력이며 부며 이곳에 있는 것으로 만족했고 마을에 대한 애정은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소년의 간절한 외침이 프레이드를 멈춰 세웠지만 그는 뭐 라 해줄 말이 없었다.


“프레이드님.”


소년이 프레이드에게 다가가자 어른들이 소년을 붙잡았다.


“아직··· 아직은 때가 아니다.”


프레이드가 어렵게 입을 떼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법 멍청한 말이었다. 껍데기뿐인 자신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날 더러 어쩌 란 말이야. 애초에 그런 위인은 동화 속에 나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으슥한 곳에서 나오는 개똥과 윈나를 봤다. 둘은 손을 잡고 걸어 나왔고 분위가 심상치 않았다. 찰싹 붙어있던 이들이 프레이드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니까··· 잠시 산책을···”


윈나는 놀라 재빨리 개똥의 손을 놓고 얼버무렸다. 개똥은 사람 좋게 웃으면 벌 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려 했다.


“허허 바람 좀 쐬었소, 당신도 바람 쐬러 나왔나?”


개똥의 너스레에도 프레이드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윈나, 들어가 있어 필이아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해줘”

“예?... 예”


프레이드에 진지한 얼굴에 윈나가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개똥은 윈나를 붙잡으려 했으나 프레이드가 개똥을 막아섰다. 순간 개똥의 표정이 어그러졌다.


“이봐! 왜 분탕질이야.”


프레이드는 개똥이 신기했다. 분명 김신의 시종인데 왜 이리 당당한지, 어떻게 귀족인 자신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네는 귀족도 아닌데 왜 내게 존대하지 않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이곳의 계층을 내가 알게 뭐야. 난 지금 주인 하나 있는 것도 힘들다고!”


프레이드는 짜증이 피어났지만 차마 개똥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이런 자가 다루는 김신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할 말이 있다.”

“뭐? 설마 윈나를 만나지 마라, 그런 말은 아니겠지.”

“김신에게 할 말이 있다. 그를 만나야겠다.”


다행히 개똥이 상상하는 그런 말을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김신을 만나서 하겠다.”


사실은 개똥은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괜히 심술을 부려본 것이다.


“그건 두고 오지.”


지적할 것을 찾던 개똥이 프레이드가 차고 있는 검을 보며 턱을 들었다. 개똥의 말에 프레이드가 큼직한 돌 앞으로 다가가더니 검을 뽑아냈다. 개똥은 프레이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하는···”


개똥이 말 다 잇지 못했다. 프레이드의 검이 빛을 내더니 단숨에 바위로 푹 들어갔다. 마치 부두 썰 듯 부드럽게 들어갔다.


개똥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돌이켜 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됐나? 그럼 가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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