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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로 간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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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차르다시
작품등록일 :
2021.07.26 01:46
최근연재일 :
2022.05.16 16:0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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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4
추천수 :
58
글자수 :
236,499

작성
21.08.04 23:47
조회
514
추천
7
글자
13쪽

2.종이에 담아라!

DUMMY

늑대가 바닥에 깔린 루크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그 와중에도 루크는 도끼를 손에 놓지 않았다. 늑대가 머리를 흔들자 고통스러운 듯 루크가 도끼를 손에서 떨어트렸다.


크아아앙-


시위를 떠난 화살이 늑대에 등에 틀어박혔다. 괴성을 지른 늑대가 루크의 팔을 뱉고 이번에는 김신에서 달려들었다. 고작해야 열 걸음 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가 두려울 만도 한데, 시위를 당긴 김신은 망부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배운 궁도의 기본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세 걸음 앞까지 도달해서야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놨다. 뛰어오른 늑대가 김신을 덮쳤으나 거기까지였다. 곧 축 늘어진 늑대를 밀치고 몸을 일으켰다. 미간으로 들어간 화살대가 잘록했다. 이제서야 두려움이 들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황급히 루크에게 다가갔다.


“루크 괜찮은가!”


루크가 팔을 감싸 쥐고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팔에 난 상처가 깊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급한 대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루크의 팔을 둘렀다. 겁을 먹은 크리스가 루크를 붙들고 울먹거렸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다행히 루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크리스를 다독여 산을 내려갔다. 김신은 늑대를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집 밖에서 빨래를 널던 사라가 뛰어왔다. 격양된 말투로 루크와 대화를 주고받았고 루크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리사가 상처 부위를 살피고 약초 가루를 뿌렸다. 붕대를 감아 주는 리사의 표정이 어두웠고 긴장이 풀린 루크는 잠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금방 괜찮아질 테니.”


루크에게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리사의 걱정도 이해가 되었다. 크리스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된 사라는 몇 번이고 김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지고 온 늑대가 리사의 손에 해체됐다. 뿔을 떼어내고 가죽은 분리해 널었다. 그것들은 꽤나 가치가 있는 듯 보였다. 리사는 그것을 몬스터라고 불렀다. 고기는 부위별로 나눠 보관했고 먹음직스럽게 조리되어 저녁상에 올라왔다. 보기와는 다르게 맛이 좋았다. 리사는 모셔 눴던 술까지 가지고 나왔다.


달콤한 향이 나는 과실주였다. 루크가 김신의 잔에 술을 채워줬다. 주백약지장, 술은 모든 약의 으뜸이라 했던가, 술이 오가니 우중충했던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날이 밝자 김신이 홀로 집을 나섰다. 루크는 팔이 나을 때까지 당분간 쉬기로 했다. 혼자였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나가 나무를 했다. 큰 나무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몬스터의 위협은 피할 수 있었다. 또다시 늑대를 만나게 된다면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어제는 운이 따라준 것이다. 설령 당해 낼 수 있다 해도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쓸 만한 나무가 많지 않아 마른 가지들을 주웠다. 크리스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항상 낯을 가리며 거리를 두던 크리스가 얼굴을 마주했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크리스가 활을 내밀었다. 개구쟁이 소년 치곤 그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활이 배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누구를 가르칠 만한 실력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잠시 망설였다. 혹여 어설프게 배우고 위험에 빠질까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크리스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눈을 반짝이며 김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래, 배움을 청하는데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지. 결국 활쏘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기본적인 자세와 호흡을 알려주고 당분간은 화살을 쏘지 못하게 했다. 연습도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게 했다. 흥미를 잃고 그만둘 만도 한데 생각보다 성실하게 따라왔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도 늘었다.


나무를 실은 수레가 마을로 향했다. 숲을 벗어나 보게 되는 새로운 풍경은 주위를 돌아보게 했다. 높은 하늘과 넓게 평야, 간간이 솟아오른 나무와 그늘, 푸르게 물든 초원은 나귀의 걸음을 자꾸 멈춰 세웠다.


아침부터 출발한 수레는 정오가 되어서야 마을 안에 들어섰다. 길 주위로 늘어선 건물과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옷차림, 좌판 위에 올라온 물건들의 생소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김신을 한 번씩 쳐다봤다. 루크가 준 옷을 입었지만 생김새와 상투가 시선을 끈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 모두 갈 길이 바쁜지 곧 시선을 돌렸다.


좌판이 깔린 가게 앞으로 수레가 멈춰 섰다.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나와 루크와 이야기를 나누며 수레에 실린 물건들을 확인했다. 그 중에는 늑대의 가죽과 뿔도 있었고 주인은 그것을 세심하게 살폈다. 거래가 성립되자 물건을 내려주고 돈을 받았다. 루크는 주머니를 열어 동전 몇 개를 꺼내 김신에게 건넸다. 돈을 받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가진 것이 전혀 없으니 고맙게 받았다.


루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물건을 구입했다. 주로 먹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며 둘러보던 중 두툼한 책들이 쌓여 있는 가게가 눈을 끌었다. 항상 서책을 가까이했기에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서책이 들어있던 봇짐을 잃어버렸기에 이곳에 와서 통 글을 읽지 못했다. 그나마도 익히고 있던 학문들까지 잃어버릴까 불안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사서삼경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몇 권의 책을 펼쳐 훑어보았지만 난해한 문자 덕에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백발의 주인은 의심이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종이와 붓을 사기 위해 글을 쓰는 시늉을 했고 눈치를 차린 루크가 주인에게 필요한 것을 설명했다.


백발의 주인은 네놈이 그걸 어따 쓰게?라는 눈으로 김신을 바라보다 언짢은 표정으로 종이와 펜을 가지고 나왔다. 붓과는 달리 얇고 뾰족한 촉에 먹을 묻혀 사용하는 도구가 신선했다. 역시 루크의 도움으로 계산을 했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지불했다.


이날 이후부터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과 새로 알게 된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기록했다. 적을 것이 없을 때는 일상에 사소한 것들까지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종이가 동이 났고 대부분의 돈이 종이와 먹을 구입하는데 들어갔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들의 말이 조금씩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어색하게 말을 내뱉기도 했다.


크리스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 수풀을 헤집고 들어갔다. 짐승의 외마디 괴성이 들려고 수풀 사이로 들어간 크리스가 큼직한 사슴을 들쳐 엎고 걸어 나왔다.


“선생님 또 적으십니까?”


붓과 종이를 꺼내든 김신을 보고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활쏘기 실력이 일취월장해 이미 김신을 뛰어넘었음에도 크리스는 김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머리에 다 담지 못하니 어찌하겠느냐, 종이에 담아 야지.”


크리스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배운 말도 자꾸 잃어버리고 그때마다 종이를 몇 번이고 펼쳐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금 둔해 보였지만 이렇게 적은 종이의 양이 책을 만들어도 몇 권을 만들었기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생각했다.


“발견되는 위치가 전보다 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구나. 이동을 하는 것 같으니 다음번에는 좀 더 서쪽으로 가보면 좋겠구나.”


그간의 기록을 살피는 김신이 입을 열었다. 사소한 것도 쌓이니 때로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사냥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종이를 덮은 김신이 땅을 살피며 약초를 캤다. 나무를 하는 것만으로 종이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약초를 캐는 일까지 하게 됐다. 산을 이동하며 약초를 찾다 보니 새로운 것들을 배운 것이 많았고 크리스가 있어 몬스터의 위험도 덜했다. 익숙한 그림자가 멀리서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또 좋은 걸 잡았구나 크리스.”


약초꾼 베른이었다. 쓰러져 있는 큼직한 사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루크의 가족처럼 산에 살며 생활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안녕하시오.”


“흠. 김씨도 계셨구만.”


금방까지 반가운 표정이던 베른이 김신의 인사에는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갑자기 나타난 김신이 어느 날부터 자신처럼 약초를 캐러 다니니 탐탁지 않았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동쪽 계곡 쪽으로 가보려고 살루르바를 찾아보려고 가격이 많이 올랐더구나.”


살루르바는 회복 포션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약초의 일종으로 습지에서 자주 발견되고는 했다.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사용했기에 전쟁이나 분쟁이 생기면 가격이 오르곤 했다.


“어디서 또 전쟁 준비를 하나 봐.”


베른의 이야기에 종이를 펼쳐든 김신이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오늘은 늦었으니 계곡은 내일 가시오. 지금 계곡을 가면 코르니울프와 마주칠지도 모르오.”


김신이 기울어진 해를 한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코르니 울프는 루크의 팔을 물었던 늑대형 몬스터의 이름이었다.


“이 시간이면 코르니 울프가 계곡에 나와 물을 마실 시간이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서쪽계곡은 자주 가본 곳은 아니지만 체우스산맥에서 20년이 넘게 약초를 캔 그였다. 고작 이제 풀과 약초를 구분할 정도의 김신이 자신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 생각했다. 자신을 속이고 먼저 약초를 캐러 갈 것이라 생각까지 들었다.


“됐소. 크리스 담에 또 보자.”


베른은 쌀쌀맞게 돌아서며 김신의 말을 무시하고 계곡으로 향했다.


“선생님 어떻게 하죠?”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산을 다닌 지 오래됐으니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약초와 사냥감을 챙긴 일행이 산을 내려와 작은 오두막 앞에 도착했다. 김신의 집이었다. 얼마 전 루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두막을 지어 따로 지냈다. 아무래도 함께 사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루크도 집을 짓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들어가거라. 오늘도 고생이 많았구나.”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어머니가 오늘 잡은 것은 선생님 드리라고 하셨어요.”


“아니다. 저번에 준 고기도 다 먹지 못했다. 마음만 받으마.”


크리스의 사냥으로 루크 가족의 식량 걱정이 줄었다. 부산물로 인해 생활 또한 한결 넉넉해 김신에게 매번 고기를 나눠줬다. 여러모로 김신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루크의 가족은 잘 알고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고 어김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던 찰나 밖이 소란스러웠다.


“선생님. 큰일이에요. 나와보세요.”


해가 떨어진 저녁, 크리스가 횃불을 들고 오두막 앞에서 김신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베른 아저씨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밖은 베른의 아내와 그의 딸까지 나와 울먹이고 있었다. 김신은 베른을 좀 더 붙잡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사람들을 모아라.”


주변에 사는 사람을 불렀지만 모인 사람은 고작해야 열명 정도였다. 그중에는 루크와 리사도 있었다. 모두 횃불을 들고 계곡으로 향했다. 횃불이 있어 길이 어둡지 않았지만 몬스터의 위험이 있었기에 모두를 바짝 붙어 움직이게 했다.


으르르릉-


계곡에 들어서니 코르니울프의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사람들이 우왕좌왕 주위를 둘러보며 겁에 질렸다.


“모두 떨어지지 마시오. 흩어지지 않으면 먼저 공격해 오지 못할 것이요.”


코르니울프가 사납고 강한 몬스터는 맞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았고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것은 공격하지 않으니 흩어지지 않는다면 먼저 공격해 올 일은 없었다.


“여기요! 살려주시오!”


베른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나무 위에 올라간 베른이 횃불을 보고 반가움 마음에 소리친 것이다. 나무 밑으로 코르니울프가 어슬렁거리며 신경질적은 울음소리를 냈다.


크리스가 불을 먹여 화살을 날렸고 사람들이 무리 지어 나무 밑으로 다가가니 어딘가로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베른이 울먹이며 내려와 가족과 상봉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음날 베른의 딸 헤나가 오두막으로 귀한 버섯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소문이 어떻게 돌았는지 김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냥꾼이 찾아와 몬스터의 동향을 묻는가 하면 약초꾼이 찾아와 가려는 곳에 위험이 없는지를 물었다.


김신 역시 모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들을 들려주고 되레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새로 알게 된 것 역시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렇게 오두막은 체우스산맥의 다양한 정보들이 모여들었다. 그럴수록 산맥 사람들이 자주 들러 자신이 격을 일을 털어놓거나 의논했고 또 의견이 다른 이들이 모이면 토론장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갔다.


약초를 캐고 돌아온 오두막 앞에 갑옷을 입은 이들이 김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칼과 창으로 무장한 했고 그 모습이 위압감을 줬다. 산맥 사람 몇은 불안한 표정으로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당신이 김신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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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내귀에 캔디 21.08.08 432 6 12쪽
» 2.종이에 담아라! 21.08.04 515 7 13쪽
1 1.이번 과거도 글렀나? 21.08.01 74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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