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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급 기사가 기억을 되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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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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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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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6 - 입단식

DUMMY

“이로써···.”


대주교가 느릿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결혼식의 주례를 맡은 그조차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주교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사방에서 환호성 대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억지로 응원하던 사람들도 지금 순간만큼은 축하의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로즈가 웃으며 날 바라봤다.


“설마 축하를 바란 건 아니죠?”

“전혀.”


사람들을 보며 태연히 손을 들어 올렸다.

기사로 보이는 사내들이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다.


달걀이라도 던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정도로 정신 나간 놈들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 6 >



늦은 밤, 로즈의 방.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분명 앞만 보고 걸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원수 같은 여자의 침대에 누워있게 된 걸까.


끼익-


한창 상념에 빠져있는데 로즈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김없이 차가운 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경멸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로즈가 문득 머리맡의 검을 바라봤다.


“그건 항상 옆에 두시나요?”

“기사에게 검은 생명이니까.”

“전쟁터에서 쓰던 물건이라기에 대단한 보검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흘끗 검을 바라봤다.

아무 대장간에나 들어가도 무더기로 쌓여있을 법한 자루와 시원하게 뻗은 날을 가진 검이었다.


내가 봐도 특징으로 꼽을만한 건 전혀 없었다.

자세히 보면 다른 걸 알겠지만, 어지간한 기사도 못 알아보는 걸 로즈에게 바랄 수는 없었다.


“바야크 제일의 대장장이 작품이야.”

“저게요?”

“가볍고 튼튼하지.”

“그레이스 가문에도 좋은 검이 많아요. 원하는 게 있으시면 갖다 쓰세요.”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말이었다.

얼굴에 이것저것 바른 로즈가 침대에 앉았다.


“허튼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죠.”

“···그레이스 백작은?”


로즈가 잠깐 침묵했다.

그레이스 백작은 함멜이 죽은 날 충격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똑같아요. 아버지가 깨어나셨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셨겠죠.”

“그랬겠지.”

“저는 그럼 먼저···, 윽!”


침대 끝에 눕던 로즈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도 붉게 열이 올라 있었다.

직접 봐줄까 하다가 그냥 돌아누웠다.


“아프면 치료해.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크림프트가 살아있다고 소문이라도 낼까요?”


무슨 소린가 싶어 도로 몸을 일으켰다.

로즈의 흰색 잠옷에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펜으로 글씨를 새긴 부분이었다.


잠깐 의아한 기분이었다.

이름을 새긴 게 언제인데 여태 핏자국이···.


내가 안일했구나.

기사들은 몸이 워낙 튼튼해서 저런 일이 없었지만, 로즈는 평범한 여인이다.


덧날 수도 있다는 것쯤은 예상해야 했다.


“기다리고 있어.”


로즈를 침대에 앉혀두고 밖으로 나왔다.

붕대와 약을 챙겨 돌아오니 로즈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침대맡에 앉아있었다.


“돌아봐.”


로즈가 별말 없이 돌아앉았다.

어깨에 걸친 옷을 내리니 새하얀 등과 붉게 덧나고 있는 상처가 드러났다.


상처에 약을 대자 로즈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흉이 지지는 않을 거야.”

“이름도 새긴 마당에 흉 좀 지면 어떻다고···.”

“내가 원망스럽나?”


쉽게 대답할 줄 알았는데 침묵이 길어졌다.


붕대를 들어 능숙하게 가슴과 어깨에 감았다.

전쟁터에서 동료들에게 감아준 붕대만 해도 왕국을 몇 바퀴는 두를 정도였다.


“나는 너를 끝까지 이용할 거다.”

“···그러시겠죠.”

“그러니 너도 나를 이용해. 그레이스 백작이 아니라, 공작이 될 수 있도록.”


로즈가 고개를 반쯤 돌렸다.


“그러죠.”


* * *


몇 주가 흘렀다.


루테아 전역에서는 여전히 ‘에반 그레이스 백작’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으며, 종국에는 나를 왕국 최고의 미남이라며 말하는 놈들까지 생겨났다.


덕분에 만나는 놈들마다 내게 실망한 눈빛을 보낸 탓에 팔자에도 없는 고민에 휩싸여야 했다.


성을 걷다가 문득 황당해졌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살면서 얼굴을 평가해본 적이 없다.

거울은 상처를 치료할 때만 봤으며, 기사단장이었을 때는 감히 누구도 내 얼굴을 평가하지 못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로버트가 기겁하며 손을 휘저었다.

놈은 내가 백작이 된 이후로 꽁무니를 졸졸 쫓으며 귀찮게 굴었다.


제 딴에는 줄을 잘 섰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백작님은 남자답게 잘생기셨습니다! 등신처럼 굴었을 때도 얼굴은···, 헙!”


로버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계속하라는 듯 손짓하자 로버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때도 얼굴 자체는 훌륭하셨습니다. 다른 놈들이 씻지도 못하게 괴롭혀대서 묻히긴 했지만요.”

“너도 괴롭히지 않았나?”

“아···, 아, 아닙니다! 저는 말렸습니다!”


로버트가 펄쩍 뛰었다.

더 말했다가는 공중제비도 돌겠네.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기사단 입단식이 내일이지?”

“예, 백작님!”

“준비할 게 많겠군.”

“저···, 백작님?”

“말 해.”

“혹시 저도 데리고 가실 겁니까?”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로버트를 바라봤다.


“너를 기사단에 왜 데리고 가?”

“거, 거기서도 시종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다른 귀족들도 전부 시종 하나씩은 달고 옵니다!”

“···그래?”


처음 듣는 말이다.

바야크에서는 기사단에 들어오자마자 귀족 딱지를 전부 떼어버리지만, 루테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명을 데려가야 한다면, 입단속이 철저한 놈을 데려가는 게 낫다.


“너도 준비해.”

“예! 감사합니다!”


로버트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인사하더니 신나게 뛰어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이른 아침, 떨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성을 나섰다.


“당분간은 못 보겠군요.”


로즈가 아쉬운 척 목소리를 냈다.

몇 주 지났다고 연기가 많이 늘었다.

로즈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단을 맞췄다.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로즈가 짜증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주군을 모시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죽상으로 있는 것보다야 나았다.


가벼운 미소를 끝으로 마차에 올랐다.


“가자.”


* * *


루테아 왕성, 훈련장.


수백 명의 사람이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가죽 갑옷을 입고 온 놈부터, 가문에서 만든 요란한 갑옷을 입고 온 놈, 하인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입은 놈까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번에 에반 그레이스도 온다며?”

“얼굴에서 빛이 난다던데···. 그런 놈은 안 보이네.”

“소문이잖아. 실은 엄청난 추남일 수도 있지.”

“설마! 그럼 로즈가 왜 결혼했겠어? 들어온 혼사만 해도 수십 개가 넘을 텐데!”


바로 앞에 서 있던 놈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그 에반이라는 놈이 바로 뒤에서 듣고 있다는 것도, 엄청난 추남은 아니라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쏟아지는 관심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하다.

차라리 그때 함멜을 살리고 양자로 들어갔어야···.


괴상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훈련장으로 들어오는 발길이 끊길 즈음, 단상으로 한 사내가 올라섰다.


“반갑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살기를 내뿜었다.


“루테아 기사단의 단장을 맡은 오딘입니다.”


저 노인네는 늙지도 않는 건가?

전쟁터에서 보고 10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대로다.

바야크를 짓밟던 말발굽과 참혹하게 내걸린 국왕의 머리를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한 걸음 가까워졌다.


그 뒤로는 길지 않은 연설이 이어졌다.

한때 기사단장이었던 입장으로 생각하자면, 오딘은 말재주가 꽤 좋은 편이었다.


“들뜬 마음에 말이 길어졌군요. 나머지는 여기 중급 기사들이 설명해줄 겁니다.”


오딘이 가볍게 눈짓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급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중급 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분류하더니 저마다 몇 명씩 맡아서 끌고 갔다.


내가 서 있던 줄을 인도한 건 ‘그리핀’이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저놈은 아마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저놈을 잘 알고 있었다.


바보로 살던 시절 흘러들어온 소문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좋지 않은 쪽이었지만.


그리핀이 우리를 끌고 온 곳은 훈련장 뒤에 세워진 임시 막사였다.


“너희들은 앞으로 7조다. 너희들은 앞으로 한 달간 여기서 머물며 하급 기사가 될 준비를 할 거다.”

“예, 알겠습니다!”


조원이라는 놈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까 내 얘기를 하던 놈이 둘, 허약해 보이는 놈이 하나, 몸을 꽤 가꾼 것 같은 놈이 하나 있었다.


나까지 5명이 한 조인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숫자다.

그리핀이 위압적인 눈으로 조원들을 노려봤다.


“보통 한 조에서 훈련을 버티지 못해 떨어지는 놈이 3명이다.”


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벌써부터 기강을 잡으려는 듯했지만, 내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게 당연했다.


그리핀의 눈이 문득 나를 향했다.


“네가 에반 그레이스군.”

“···예.”

“기대하지.”


그리핀이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날 보더니 휙 돌아섰다.


그리핀이 완전히 사라지자 조원들이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에반이었어?!”

“듣기로는 말도 못 하는 등신이었다던데···, 로즈는 어떻게 꼬신 거야?”

“왕국 제일의 미남도 아니군.”


숨 쉬듯이 쏟아지는 무례에 눈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서는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기사단 문턱에서 사고를 쳤다가는 앞으로의 행보가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다.


“비켜.”


길을 막아선 놈을 옆으로 밀며 막사로 들어왔다.


“어쭈!”

“지금 우리 무시하는 건가?”

“평민이었던 놈이 감히···!”

“그만해, 지금은 같은 조잖아.”


막사의 얇은 천으로 대화가 넘어왔다.


인간이 덜된 건 둘째 치고, 기사로서의 재능조차도 의문스러운 놈들이다.


쓸만한 인재가 있으면 키워서 써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래서는 내가 직접 오딘의 목을 치는 쪽이 빠르겠다.


“···올리버도 진짜 상급 기사였던 건가?”


이것도 나름대로 충격이다.


막사에 불청객이 찾아온 건 늦은 저녁이었다.

멀찍한 곳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눈을 떴고, 이내 하급 기사로 보이는 놈들이 막사로 들어왔다.


하급 기사가 막사를 쭉 둘러봤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잠에 빠져있었다.


“다들 안 일어나?!”

“흐익!”

“이···, 일어났습니다!”


조원들이 놀라서 침대에 앉았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듯한 하급 기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누구 멋대로 침대에 대가리를 붙여?!”

“죄송합니다!”


꼴값들을 떠는구나.

신고식이라도 하러 온 건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막사 너머에 한 놈이 더 있었고, 기척으로 봐서는 그리핀인 듯했다.


알면서도 끼어들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기사단의 유구한 전통이라는 거겠지.


“신고식입니까?”


대놓고 묻자 조원들이 기겁하며 나를 바라봤다.

하급 기사 역시 나를 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당돌한 놈이 들어왔군. 이름이?”

“에반 그레이스입니다.”

“에반! 네가 에반이구나!”


하급 기사들이 짧게 술렁거렸다.


“그래, 신고식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네놈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야만적이지는 않으니까.”


하급 기사가 조원들을 죽 훑었다.

그의 눈이 묘하게 내게서 오래 머물렀다.


"너희들은 그저 작은 성의만 보이면 된다. 먼저 들어온 선배들을 예우한다고 생각해."

"성의라면···."

“그리핀 님께 드릴 선물을 가져와라.”


하급 기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사에 붙어있던 인기척이 멀어졌다.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올 지경이다.


루테아 기사단은 대체 얼마나···, 아니, 어디서부터 썩은 걸까.


하급 기사가 문득 나를 바라봤다.

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렸다.


“로즈가 그렇게 아름답다지?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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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04 - 군주의 맹세 24.06.29 142 5 12쪽
3 003 - 이딴 게 상급 기사라고? 24.06.28 150 5 12쪽
2 002 - 남매 24.06.27 188 5 11쪽
1 001 -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24.06.26 25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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