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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재앙급 기사가 기억을 되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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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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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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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5 - 붉은 기사

DUMMY

다음 날, 마차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마부는 따로 구하지 않고 내가 직접 마차를 몰았다.


백작령을 떠난 지 3일째.


마차가 이름 모를 산의 초입에 멈춰 섰다.

마부석에서 내려 마차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로 못 들어가.”

“준비하겠습니다.”


올리버가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산의 초입에서 뻗어난 오솔길을 바라봤다.

10년 전이라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노부부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괜스러운 감정을 접어두며 걸음을 옮겼다.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오르자 널찍한 공터와 폐가가 하나 나타났다.


“저곳입니까?”

“잠깐 기다리고 있어.”


올리버와 로즈를 세워둔 뒤 폐가로 향했다.

폐가에는 눈 부신 햇살과 처참한 그 날의 흔적들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부서진 문, 피가 튄 벽, 넘어진 담장, 그리고 마당에 버려진 2개의 유골···.


유골 앞에 서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 5 >



올리버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쏟아질 듯 청량한 하늘이었다.


“주군께선 어딜 가신 걸까요?”

“갑옷을 찾으러 갔겠죠.”


로즈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혼인을 말하던 목소리였는데, 하루 아침에 냉랭하게 바뀌어 있었다.


올리버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핑계 같으시겠지만···, 그분은 정말 강합니다.”

“알고 있어요.”


로즈가 흘끗 올리버를 바라봤다.


“크림프트의 가슴을 찔렀다는 기사까지 패배할 줄은 몰랐지만.”

“그, 그게···.”


소문을 해명하라는 듯한 눈빛이다.

올리버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크림프트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은 기사···.

저런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건 올리버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소문의 뒷면에는 추악한 진실이 있었으니까.


“···발칸 평야를 아십니까?”

“당연하죠. 전쟁이 끝난 곳이잖아요.”

“한 명의 기사를 수백 명의 기사가 포위했습니다.”


올리버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크림프트를···, 루테아의 기사 수백 명이 포위했죠. 저도 그 수백 명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건 사실이네요.”

“예, 저는 동료의 시체 아래에···.”


올리버가 이를 꽉 물었다.

언젠가 내 입으로 밝히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올리버가 힘겹게 입을 뗐다.


“동료의 시체 아래에 숨어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크림프트는 혼자서 수백 명을 압도했습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기사들이 우수수 쓸려나갔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올리버의 눈에는 여태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한 명의 기사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크림프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고, 그건 명백한 오답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크림프트처럼 싸울 수 없었으니까.


“크림프트는 홀로 수백 명을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루테아에서도 계속해서 지원군을 보냈죠. 그래서···.”


돌연 올리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 그래서···.”

“그래서 뭐요?”


집중해서 듣던 로즈가 눈을 찌푸렸다.

올리버는 무언가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로즈 역시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이 되어야 했다.


찰그락-!


갑옷 이음매 소리가 폐가에 내려앉았다.

압도적인 공포와 위압감에 올리버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붉은 기사가 태연히 입구를 걸어 들어왔다.


“올리버.”


붉은 투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던 올리버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내 가슴에는 찔린 자국이 없는데.”

“크···, 크, 크림프트···.”


로즈가 떨리는 양손을 꽉 잡았다.

크림프트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들어보았을 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 게 당연했다.


정말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두 눈으로 보면서도 같은 인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홀로 루테아 왕국을 멸망시킬 뻔했던 재앙인 동시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 되는 최강의 기사.


붉은 기사가 조용히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내가 에반 크림프트다.”


올리버가 허겁지겁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턱뼈가 고장 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림프트가 휙 몸을 돌렸다.


“갈 곳이 있어.”

“어···, 어디로 가십니까?”

“산적들이 근처에 산다더군. 노부부를 죽이고 나를 팔아넘긴 놈들 말이야.”


크림프트가 멀찍이 떨어진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크림프트로 싸우는 건 마지막이겠어.”


크림프트의 걸음이 빠르게 산을 누볐다.

강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가죽을 걸친 올리버조차 따라가기 벅찬 속도였다.


운동과 담을 쌓은 로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안 했지만, 곧 죽을 사람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앞서 걷던 크림프트가 가볍게 혀를 찼다.


“저쪽으로 올라가면 바위가 있다. 거기서 기다려.”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는 건 이젠 놀랍지도 않을 정도였다.


크림프트가 금세 수풀로 사라졌다.


“부축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올리버와 로즈가 오르막길을 마저 올랐다.

오르막길의 끝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올리버가 바위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침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크림프트의 붉은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거대한 산채가 있었다.

산적이라고 하길래 몇 놈이 모여 노략질이나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규모가 아니다.


높게 올라선 목재 방벽과 망루가 있었고 안쪽에는 수백 명의 산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군대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로즈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가능할까요? 저라도 가서 도와야···.”

“크림프트가 죽으면 그것대로 좋은 거 아닌가요?”


로즈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올리버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침없이 걸어간 크림프트가 산채 앞에 섰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놈들이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거 뭐야?”

“뭔데 시뻘건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크림프트가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투박한 자루에 천이 감긴, 대장간에서도 재료값만 받고 팔법한 모양의 검이었다.


산적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크림프트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뿐이었다.


콰과광-!


단순한 휘두름 뒤에 산적 2명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방벽이 무너졌다.


무너진 방벽 너머로 산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나같이 자연재해라도 맞닥뜨린 표정이었다.


“뭐···, 뭐, 뭐야?!”

“습격이다!”

“모두 대비해! 빨리 대장 불러와!”


산적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크림프트가 고고히 걸어 산채 안으로 들어갔다.


“······.”


붉은 투구 속의 눈이 사위를 훑었다.

혼돈의 도가니가 된 와중에 크림프트의 검이 다시금 휘둘러졌고, 수십 명의 산적이 두 동강 나며 허공을 날았다.


“끄아악!”

“사···, 살려줘!”

“도망가! 산채를 버려!”


기사들도 별거 아니라며, 언젠간 국왕까지 죽여버리겠다던 산적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기사 한 명에 대적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후웅-!


크림프트의 검이 또다시 휘둘러졌다.

마치 태풍이 덮친 것처럼 오밀조밀 모여있던 집들이 휩쓸려 날아갔다.


“쯧, 귀찮게···.”


크림프트가 가볍게 혀를 차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산적들을 바라봤다.


살려 보냈다가는 ‘붉은 기사’의 존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개미 새끼 하나 살려둬서는 안 된다.

크림프트의 몸이 섬광처럼 움직이며 산적들을 하나하나 베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위에서 지켜보던 올리버는 그 날의 악몽 같은 기억에 덜덜 떨고 있었다.


3번의 검격으로 산채를 초토화시켰다.

저건 분명 전쟁터를 휩쓸던 크림프트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는 상급 기사들조차 맨손으로 찢어발기던, 어중간한 기사들은 근처에 가기도 전에 목이 잘리던 괴물···.


“허억···, 허억!”

“기, 기사님!”


로즈가 놀라며 올리버를 부축했다.


“괘···, 괜찮습니다.”


올리버가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섰다.

힘겹더라도 두 눈으로 봐야 했다.

혼자서 산채를 때려 부수는 저 기사는, 이제 적이 아니라 모셔야 할 주군이었으니까.


* * *


콰직-!


마지막 남은 산적의 가슴팍이 꿰뚫렸다.

검을 빼낸 뒤 엉겨 붙은 피를 털어냈다.


“···끝인가?”


이걸로 노부부의 빚을 갚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한 셈이다.


투구를 벗어 허리에 꼈다.

검을 쥔 손은 아까부터 파르르 떨리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휘둘렀다고···.

10년의 공백이 확실히 길기는 했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놈이 있나 확인한 뒤, 산채를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올리버와 로즈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리버는 잠깐 기다리고, 로즈 너만 따라와.”


휙 지나쳐 걸어가자 로즈가 내 뒤를 따랐다.


얼마간 걸어 도착한 곳은 산 중턱의 호수였다.

갑옷을 모두 벗어 미련 없이 계곡에 던져버렸다.


풍덩-!


무쇠로 만든 갑옷이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로즈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저걸 입고 돌아다닐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따로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땀으로 젖은 옷을 내던지고 호수로 들어갔다.

로즈를 여자로 보지 않으니 딱히 부끄러울 이유도 없었다.


“나는 기사가 될 거다.”

“평민은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바야크에 계실 땐 대공이었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알아, 지금은 평민이지.”


가슴께로 시원한 물이 일렁거렸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개운한 숨을 토해냈다.


“귀족이 될 방법이 있어.”

“그게 뭡니까?”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싶어 로즈를 바라봤다.

어딘가 공허한 듯한 로즈의 눈은 차라리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너와 결혼하면 돼.”

“···네?”

“귀족과 평민의 혼인을 귀천상혼이라고 한다지.”


물론, 기사가 되기 위해 용병이 될 수도 있다.

용병 길드에 들어가 착실히 공을 쌓고 이름을 알려 입단 제의를 받으면 된다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싫다고 화를 낼 줄 알았던 로즈가 픽 웃었다.


“바보 에반과 결혼을 하라니···. 그레이스의 명성이 땅에 처박히겠군요.”

“다가올 여름에 대규모 토벌이 예정되어 있다. 명성 같은 건 그때 다시 쌓으면 돼.”

“어차피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닙니까?”


흘끗 로즈를 바라본 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사의 자긍심 따위를 지키며 어떻게 오딘을 죽이고 루테아 왕국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그런 건 바보 등신으로 살 때 이미 다 내려놨다.


“기어코 저까지 가지셔야겠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몸을 일으켜 천천히 호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로즈는 내게 도전이라도 하듯이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디에 올려둔 옷을 집고 입었다.


“루테아가 떠들썩하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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