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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재앙의 기사가 기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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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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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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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2 - 남매

DUMMY

누굴 죽일지는 이미 정해놨다.


심심하다고 손가락도 부러뜨린 놈.

밥에 소똥을 섞고 먹을 때까지 패던 놈.

아침에는 피곤하다고, 점심에는 밥이 맛 없다고, 저녁에는 자기 전이라고 패던, 그런 쓰레기 같은 놈.


겔만 에포트.


말을 잃은 것도 따지고 보면 저놈 때문이다.


“바보가 아니라 미친놈이었네.”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근데 쟤 원래 말 할 줄 알았어?"

"공부 열심히 했나봐."


놈들이 기가 찬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저놈들은 모르겠지만 진짜 기가 찬 쪽은 나였다.

어쩌다 초식동물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게 됐을까.


내다 버린 10년이 아까운 건 둘째 치고, 이런 놈들에게 얻어터지며 살았다는 사실에 복장이 터졌다.


겔만이 날 보더니 씩 웃었다.


“시작해!”


나를 둘러싼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날아드는 몽둥이를 피하며 겔만에게로 달려갔다.


“이 새끼가!”


부웅-


겔만의 몽둥이가 머리 위를 스쳤다.

재빠르게 숙이며 놈의 복부를 힘껏 후려쳤다.


뻐억!


“끄악!”


겔만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방금 일격으로 갈비뼈 몇 개는 나갔을 터였다.

곧장 뒤돌아 달려드는 놈의 가슴을 발로 찼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뒤처리가 힘들어진다.


최소한의 본보기가 필요했고, 여기에 어울리는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겔만이었다.


“이···, 이 개새끼가···, 커헉!”


겔만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망설임 없이 놈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끄윽!"

"게, 겔만!"


약속이라도 한 듯 몽둥이들이 날아왔지만,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머리로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하며 한 대,


“으아악!”


허리를 비틀어 피하며 또 한 대,


“끄윽!”


손에 쥔 각목이 집요하게 겔만을 노렸다.

아까와는 달리 모두 급소에 적중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달려들던 놈들이 뭔가 잘못된 걸 느끼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도망치려는 놈들 쪽으로 각목을 겨눴다.


“창고에서 나가는 놈은 이렇게 만들 거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선 겔만을 바라봤다.

놈은 이미 반쯤 송장이 된 상태였다.


"우···, 우리가 잘못했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에반!"


죽일 듯이 달려들 때는 언제고?


애매한 마무리는 없느니만 못한 법이다.

지금이야 살고 싶어서 굽히지만, 하루만 지나도 온갖 수작질을 해댈 게 뻔했다.


저놈들 머리에 두려움을 각인시켜야 한다.


“키···, 키킥···!”


겔만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나를··· 죽이기라도 하게···?”


피가 터져 벌게진 눈이 번뜩거렸다.


“어디 죽여 봐! 그레이스 백작님이 너를 가만히 둘 것···!”


서걱-!


떠들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지켜보던 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목으로 목을 벴다는 것에, 혹은 진짜로 베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듯했다.


“로버트.”

"예···, 예!"


로버트가 놀라며 차렷 자세를 했다.


“겔만은 일이 힘들어서 도망친 거야.”



< 2 >



“겔만이 도망갔다면서요?”

“백작님이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하여튼 이것들은 정을 주면 안 된다니까!”


하인들의 야반도주는 꽤 흔한 일이다.

거기에 로버트까지 소문을 잘 내놓은 덕에 겔만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창고에 있던 놈들 역시 입을 열지 않았다.


겔만 꼴이 날까 봐 두려운 거겠지.

만약 새어나갔다 해도 딱히 상관은 없다.


바보 에반이 기사처럼 각목을 휘두르더라, 심지어는 각목으로 겔만의 목을 날려버렸다더라···.


대체 누가 이런 말을 믿을까.

이곳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바보 등신일 뿐이다.


물론, 바보짓은 여전이 고역이긴 했다.


“어이, 등신!”

“에···.”


고개를 숙이고 부른 사람 쪽으로 달려갔다.

정원 뒤뜰에는 정원사 펠과 로버트가 있었다.


펠이 대뜸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빨리빨리 안 와?”

“페···, 페, 펠! 미쳤어?!”


로버트가 귀신이라도 본 듯 파랗게 질렸다.

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너···, 너 방금···!"


어제 있던 일까지 불어버릴 기세다.

입 닥치라는 눈빛을 보내자 로버트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펠이 다시 날 바라봤다.


“오늘 아가씨 모시는 날이잖아! 빨리 가서 준비해!”

“에···, 에에···.”


어눌하게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가 어색한 차렷 자세로 말을 거들었다.


“그래, 얼른 가서 얼른 준비해야지!”

“웬일로 친절해? 누가 먼저 에반 울리나 내기까지 하자던 놈이···.”

“내가 언제 내기를 해?!”


어쭈, 내기까지 했어?

씩 웃으며 로버트를 바라보자 놈이 졸도라도 할 것 같은 얼굴로 펠의 옷을 끌었다.


“우···, 우, 우리도 할 일 있잖아! 빨리 가자!”

“무슨 할 일?”

“있어! 빨리 와!”


두 놈이 금세 뒤뜰에서 사라졌다.

나 역시 본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명심하거라. 보고 들은 것은 전부 잊어야 한다.”


집사 패트릭이 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애써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씨를 잘 모시거라.”

“으어···.”


패트릭은 나를 인간처럼 대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만나러 가는 로즈는 패트릭과 정반대로 나를 벌레처럼 보는 여자였다.


똑똑-


“아가씨, 패트릭입니다.”

“들어와요.”


패트릭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바보로 살 때도 로즈를 보고 사람답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기억을 되찾고 봐도 그건 똑같았다.


허리까지 기른 금발과 백옥 같은 피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눈동자···.


로즈는 지나치게 고고하고 차가웠지만, 그게 매력으로 보일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마차는?”

“1층에 준비시켜 뒀습니다.”


로즈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1층으로 내려간 로즈가 마차 앞에 우두커니 섰다.


“뭐 해?”


로즈가 가느다랗게 눈을 찌푸렸다.

마차 입구에 엎드리자 높은 굽의 신발이 등을 밟는 게 느껴졌다.


지난 5년간 수도 없이 한 일이다.

새삼스럽게 열 받을 필요도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마차 문이 닫혔다.

패트릭이 나를 일으키더니 먼지를 털어줬다.


“성실히 모시거라.”


* * *


조용히 마차를 몰았다.


로즈가 나를 데리고 온 이유는 '말이 새나가지 않는 마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로 돈을 주고 마부를 고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수상해 보일 터였다.


고삐를 쥐고 흔들다가 문득 의아해졌다.


“···마차 모는 방법은 왜 기억하는 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영지 외곽의 폐가였다.


마차를 세우고 아까처럼 문앞에 납작 엎드렸다.

로즈가 당연하다는 듯 내 등을 밟고 내려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멋대로 돌아다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으어···.”


어미 잃은 오크 같은 소리를 내자 로즈가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로즈가 발을 옮기려는데 폐가에서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일찍 오셨군요, 아가씨.”


이름이 제플린이었나?


뒷골목에서는 나름 유명한 살인 청부업자라는데, 내 눈엔 어딜 가나 있는 쓰레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백작 가문의 영애가 살인 청부업자를 찾는 이유는 다름아닌 친오빠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남매 사이가 왜 개판이 됐는진 나도 모른다.

딱히 관심도 없고.


“들어가서 얘기해요.”

“그럼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로즈와 제플린이 문을 닫고 들어갔다.

한동안 마차 앞에 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1층에 있는 놈이 셋···, 2층이 둘인가?


그림자에 숨어 움직이는 청부업자라지만 내 귀를 피할 수는 없다.


인기척에 집중하며 걸음을 옮겼다.

폐가를 빙 돌아 도착한 곳은 낮은 담장 앞이었다.


“흡!”


망설임 없이 담장을 밟고 뛰어올라 2층 난간을 덥석 잡았다.


끼익-!


낡은 나무가 삐걱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통에 약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들리지는 않은 듯했다.


숨을 고르며 민첩하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난간 너머에 있는 곳은 제플린의 방이었다.


“더러운 놈 같으니···.”


온갖 쿰쿰한 냄새에 폐가 짓눌리는 기분이다.

찌푸린 표정으로 곧장 책상 서랍을 열었다.

예상대로 책상 서랍에는 장부가 들어있었다.


세상에 떳떳한 청부업자 같은 건 없다.

하나같이 똥 밭을 구르는 놈들이었으며, 이는 언제 어디서 배신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장부는 놈들에게 최소한의 보험인 셈이다.


“어디 보자···.”


태평하게 장부를 펼쳤다.

팔랑대며 넘어가는 종이에는 수십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당연히 ‘로즈 그레이스’의 이름도 있었다.


받은 금액뿐 아니라 '친오빠인 함멜 그레이스를 죽이려 한다'는 의뢰 내용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다.


귀족 사회에서 패륜이란 씻을 수 없는 흠이었다.

장부의 내용이 세상에 퍼지게 된다면 그레이스 백작가의 위상은 땅에 처박히게 될 터였다.


가계부를 챙기려다가 우뚝 멈췄다.

익숙한 이름이 하나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함멜 그레이스’


익숙하다 못해 친근하기까지 한 이름이다.

로즈가 죽여달라고 청부하는 놈이었으니까.


이놈은 또 왜 청부업자를 찾은 거지?


“쯧,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군.”


저들끼리 무슨 사연이 있나 본데, 마찬가지로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저벅저벅-!


가계부를 챙겨 나가려는 순간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귀찮게 검은 왜 챙겨오라는 거야?”


투덜거리는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저벅저벅-!


“어디 보자···.”


끼익-


문이 열리자마자 놈의 턱을 잡고 돌려버렸다.

우드득 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들어오던 놈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검을 가져오라고?”


아무래도 아래층에 무슨 일이 난 모양이다.

장부와 검을 챙겨 급히 난간을 뛰어내렸다.

건물을 돌아 마차 쪽으로 가는데 벽 너머의 대화 소리가 발을 잡았다.


“이유가 뭐지?”

“이유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저희야 원래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움직일 뿐이죠.”


로즈와 청부업자의 대화···.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함멜 그레이스 목소리다.


함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깨달았다.


청부업자가 로즈를 배신했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청부업자는 돈만 주면 국왕의 심장에도 비수를 꽂아 넣는 놈들이었으니까.


“흐음.”


검을 안은 채 벽에 기댔다.

선택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레이스 가문의 남매 중, 도움이 되는 쪽을 꼽자면 당연히 오빠인 함멜이었다.


얌전히 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어도 아버지의 모든 걸 물려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함멜을 쥐고 흔들 수 있는가?


문제는 이 질문에 답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역시 고민할 필요도 없다.


검을 챙겨 1층 입구로 향했다.

수많은 눈동자가 우르르 내 쪽으로 향했다.

함멜의 옆에는 아머를 입은 기사도 있었다.

백작가의 도련님 옆에 붙어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놈들인 듯했다.


투구도 안 쓴 기사가 함멜을 바라봤다.


“아는 사람입니까?”

“에반이라고 머리가 좀 고장난 놈이야. 어릴 때 나무에서 떨어졌다나···.”

“나무가 아니라 절벽.”


말을 툭 뱉자 함멜의 눈이 커다래졌다.

로즈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을 들고 태연하게 기사 앞에 섰다.

기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함멜을 바라봤다.


“바보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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