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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재앙의 기사가 기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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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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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 이딴 게 상급 기사라고?

DUMMY

함멜이 멍청히 눈을 끔뻑였다.

말도 못하던 등신이 검을 들고 서 있다는 게 적잖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이다.


기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대는 하급 기사인가?”


기사의 계급은 3단계로 나뉜다.


깊게 들어가면 견습 기사도 있긴 했지만···, 그놈들까지 기사의 범주에 넣기에는 뭣하니 넘어가고.


하급 기사는 성인 남자 5명을 상대할 수 있다.

이것도 맨손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고, 검만 쥐여주면 수십 명도 벨 수 있는 게 기사였다.


이미 기사가 되었다는 것부터 비범한 신체를 가졌다는 뜻이니까.


중급 기사부터는 급이 달라진다.

평생을 노력해도 중급 기사가 되지 못하는 놈들이 천지에 널려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마음만 먹으면 하급 기사 수십 명도 우습게 상대할 수 있는,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마지막 경지가 중급 기사였다.


마지막으로 상급 기사.


여기부터는 이미 인간의 범주가 아니었으며,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 또한 아니었다.


내 손으로 벤 상급 기사만 수백 명이다.

저마다 실력이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적어도 약하다고 할 만한 놈은 없었다.


기사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하급 기사인 모양이군.”

“이 새끼가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기사가 울컥하며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서걱-!


기사의 팔이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았다.


“으···, 으아악!”


비명과 함께 기사의 어깨에서 피가 뿜어졌다.

옆에 서 있던 다른 기사와 청부업자 넷이 경악하며 칼을 빼 들었다.


"죽여!"


파바박-!


“끄악!”

“이···, 이 새끼 뭐야?!”


다섯을 모두 베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초였다.

검이 가는 길목마다 피가 뿜어졌으며 머리통들이 허공을 날았다.


“어···, 어어?”


함멜이 꿈이라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피로 끈적해진 검을 함멜의 목에 갖다 댔다.


“잠깐 기다려.”


로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에반,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나를 속인 죄는 차후에 물으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로즈를 바라봤다.

상황 파악을 어지간히도 못 하는 여자다.


"우선 뒤처리할 방법부터 찾자꾸나."


뒤처리 방법···.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긴 그레이스 백작의 영지였으니까.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인 함멜이 죽는다면, 그레이스 백작은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범인을 찾아낼 터였다.


근데 그걸 내가 왜 찾아?


로즈의 팔을 휙 털어냈다.

가녀린 몸이 휘청이며 땅에 넘어졌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뒤처리할 방법은 네년이 찾아야지.”


로즈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뻐끔댔다.


나를 아직도 등신 취급하는 건가?

아니면 내 칼이 자신 만큼은 빗겨나갈 거라고 굳게 믿고 있거나···.


눈치가 빠른 쪽은 오히려 함멜이었다.

함멜이 후다닥 양손을 들어 올렸다.


“워···, 원하는 게 뭐야?”

“몰라도 돼. 어차피 네가 줄 수 없는 거니까.”


단호한 대답에 함멜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주, 줄 수 있어! 나는 그레이스 가문의 후계자다! 원하는 건 뭐든···.”

“그래?”

“그렇다니까! 어서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


씩 웃으며 놈의 귀에 속삭였다.


“크림프트 기사단.”

“뭐···, 뭐라고?”

“에반 크림프트의 기사단을 내놓으라고.”

“있지도 않은 걸 어떻게···.”


서걱-!


의문스러운 표정 그대로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로즈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얼굴에 묻은 피를 훔쳐냈다.


“거 봐, 너는 못 준다니까.”



< 3 >



“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로즈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제 오빠를 죽이겠다고 꼬박꼬박 돈을 바치던 여자가 보일만 한 반응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입 닥쳐. 함멜 옆에 눕혀버리기 전에."


검을 겨누자 로즈가 반사적으로 입을 닫았다.

품에 있던 장부를 꺼내 펼쳐 보였다.


“제플린이 쓰던 장부다. 네가 보름마다 갖다 바친 돈과 의뢰 내용이 적혀있지.”


로즈의 눈이 다시금 흔들렸다.

설마 장부에 의뢰 내용까지 적어두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내가 보관하도록 하지. 어떻게 처리할지는 네가 하기에 달려있어.”

“네가 감히···, 감히 나를 협박해?”

“알아들었으면 옷이나 한 벌 사 와.”


로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싫으면 말 해. 함멜의 머리통을 백작에게 던져주고 올 테니까. 물론 장부도 같이.”

“쓰레기 같은 놈이···!”


로즈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함멜도 아니고, 바보 에반에게 이런 수모를 겪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한참이나 노려보던 로즈가 몸을 일으켰다.


로즈가 다시 돌아온 건 해가 떨어질 즈음이었다.

경비대라도 불러왔으면 모조리 목을 날려버리고 떠나려 했는데, 다행히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로즈가 경멸하는 표정으로 옷을 건넸다.


“기다리고 있어.”


몸을 돌려 향한 곳은 근처 개울이었다.

먼 옛날 마차 앞에서 대기하라는 로즈의 말을 까맣게 잊고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장소였다.


물론, 로즈의 말을 무시한 대가는 혹독했다.


“며칠을 앓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지···.”


새삼스러운 기억을 접어두며 옷을 벗었다.

개울물에 몸을 담그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내려 개울에 비춘 몸을 바라봤다.

수백, 수천 개의 칼자국이 있는, 대장간의 낡은 모루 같은 몸이다.


“···흉하군.”


모든 흉터에는 목숨을 건 서사가 있었지만, 보기에 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괜스러운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간단하게 피를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마차로 돌아왔다.


마차에 기대 있던 로즈가 날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심술 맞은 웃음을 지었다.


“바닥에 엎드려 줘?”

“입 닥쳐.”


로즈가 차갑게 답하며 마차에 올랐다.

표정을 보니 생각을 얼추 정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도 알 법 했다.


마부석에 올라 가볍게 고삐를 쥐었다.


* * *


함멜의 죽음이 알려진 건 며칠이 지난 후였다.


일개 하인에게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충 들은 것들을 조합하자면 ‘청부업자와 싸우다 죽었다더라’ 정도였다.


내심 걱정했는데 로즈가 잘 정리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제가 꼭 찾아내겠습니다, 아가씨!”

"···고마워요."

“저도 돕겠습니다! 반드시 그놈들을 찾아 아가씨 앞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함멜을 추모하러 온 사람의 수는 실로 대단했다.

성격이 지랄 맞아도 친구는 꽤 많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이때다 싶어 그레이스 가문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수작이거나.


“로버트.”

“예···, 예! 아니, 응!”


바닥을 쓸던 로버트가 놀라서 차렷 자세를 했다.

기사단은 근처도 안 가본 놈이 왜 자꾸 차렷 자세를 하는지 의문이다.


“그레이스 백작은 기사들과 가깝게 지내나?”

“뭐···, 같은 귀족이니까.”


원하는 대답은 아니다.

슬쩍 노려보자 로버트가 황급히 덧붙였다.


“백작님께서 유독 가까이 두는 기사가 몇 있기는 하지!”

“읊어봐.”

“전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가장 강한 놈만.”

“그거면 당연히···, 올리버 바체르트 아닐까?”

“처음 듣는 이름이군.”

“괜히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고.”


로버트가 추모 행렬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강해?"

“당연하지! 마지막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인데 어디 보통 실력이겠어?”

“···어디?”

“마지막 전쟁! 그 악명 높은 크림프트 기사단을 실제로 겪은신 분이라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로버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크림프트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다더라.”

“올리브가?”

“올리브가 아니라 올리버.”

“아무튼.”


로버트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내 가슴에 칼을 박아넣은 기사라···.

당사자인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오딘의 검조차도 끝내 내게 닿지 못했으니까.


소문에 과장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래도 상급 기사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재활훈련으로 나쁘지 않겠어.”


* * *


고요히 야밤의 정원을 걸었다.


가계부가 내 손에 있는 이상 로즈는 협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딘을 죽이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기사단을···, 아니, 왕국을 재건해야···.”


말이 끝맺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찬란하던 기사단도, 대륙을 호령하던 왕국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사라진 것들을 되찾을 수는 없는 법이다.


순간 머리로 무언가 번쩍 스쳤다.


왕국을 처음부터 쌓아 올릴 필요가 있나?


지금 내가 서 있는 루테아 왕국···.

바야크를 멸망시킨 이 왕국을 통째로 가진다면, 그게 곧 복수이자 재건이지 않은가?


왕국을 손아귀에 넣는다.


얼핏 미친 생각 같았지만, 정보와 힘만 있으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바야크 왕국도 정보와 힘에 무너졌으니까.


나는 다시 기사가 된다.

오르고 올라 루테아의 기사단장이 되고, 그 힘으로···.


걸음을 멈추고 청량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방향이 정해지니 가슴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서 있기를 몇 분.


“언제까지 뒤를 밟을 거지?”


바스락-


수풀이 흩어지며 웬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부터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쯤은, 그리고 로즈가 보낸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귀가 꽤 밝은 모양이구나.”

“발소리가 시끄러운 거겠지.”


묵묵히 사내를 바라봤다.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서 있는 자세만 봐도 기사 쪽이었다.


“아가씨, 정말 이놈이 맞습니까?”

“조심해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수풀에서 로즈가 걸어 나왔다.


“장부를 뺏으러 왔나?”

“얌전히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마.”

“예상을 벗어나는 법이 없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올리브냐?”

“올리버다.”

“···그래, 아무튼.”

“내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여유를 부리다니. 용기는 가상하구나.”


픽 웃자 올리버의 눈썹이 꿈틀댔다.


“뭐가 우습지?”

“크림프트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던데.”

“···그래서?”

“그대는 상급 기사인가?”

“곧 죽을 놈이 질문이 많구나.”


올리버가 내게 검을 한 자루 던져줬다.

놈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네놈도 검은 쥐어 봐야 덜 억울할 것 아니냐.”


바닥의 검을 주워들다가 멈칫했다.

겉으로는 공평하게 싸우는 척했지만, 올리버가 던진 검은 날도 죽어있고 균형도 맞지 않는 검이었다.


물론, 딱히 상관은 없다.


“혼인의 증표로 저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로즈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와 혼인을 바꾼 모양인데, 올리버가 마음에 있는 건 아닌 듯했다.


하긴, 가문의 명예가 곤두박질치게 생겼는데 그깟 혼인쯤이야 내어줄 수도 있겠지.


검을 들고 가볍게 휘둘렀다.

역시나 형편없는, 몇 번 부딪치기만 해도 깨져버릴 검이었다.


“하앗!”


올리버가 예고 없이 내 쪽으로 돌진했다.


챙! 채앵-!


몇 번의 공방이 오간 뒤,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되어야 했다.


“이게 무슨···.”

“막기에 급급하구나!”


올리버가 힘껏 검을 내리쳤다.

피할 가치도 못 느끼며 놈의 손목을 내리쳤다.


빠악!


“으윽!”


올리버가 검을 놓치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나였다.


“이딴 게 상급 기사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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