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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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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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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7,164

작성
20.08.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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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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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7쪽

외전 2장 30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1)

DUMMY

“남양태수가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곳 도성마저도 큰 변화를 맞이했지. 그간 네가 알아본 일들. 그간 네가 느껴온 변화들. 어느 정도는 너도 짐작을 할 것이 아니더냐?”


군기시에서 사무를 보던 부친을 따라 하남윤과 도성을 오갔던 그다.


그런 아비를 닮아 오성도 제법 뛰어났고 그 집안이 아예 빈천한 것도 아니니 배움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또한 다른 이도 아닌 중상시 곽승을 지금껏 보좌해왔으니, 그 부족한 정치적 경험과 안목 또한 최근 들어 성장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고 말이다.


물론, 곽승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왕위를 콕 집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무력을 넘어선 왕위의 또 다른 재능은 이렇게 왕위도 모르는 사이에 꽃망울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어찌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만은......”


“그래, 그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소리다. 남들은 알아야 이해를 하는 것이라곤 하나 정작 그것이 이해가되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니 네 식견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음이야. 야견이 그 지모로 나를 보좌하였듯 말이다.”


겸양과 함께 스스로를 낮추려던 것이 도리어 곽승의 미소와 기대를 부추긴 것 같았다.


“저들이 태수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야. 장씨가 부족한 가문도 아님에도 태후의 밑으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작금을 기회 삼아 더한 기회를 쥐려 했을 수도 있음이야. 차라리 왕 미인이 죽고 없는 왕씨는 복수라던가 하는 명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니 그보다도 덜 신경이 쓰이지만 남양 태수가 내 사람인 것을 알고도 저리 나온다면 꽤나 대담한 것이지. 그렇다고 내가 딱히 태후마마께 밉보인 것은 아니나 하씨를 들였다는 명분은 걷어내려 해도 걷어낼 수 없으니 마마를 비롯한 동씨가 나를 증오할 수도 있고.”


“상시 어른께선 그 배후를 명확히 하고자 하심입니까? 그 와중에 왕씨는 제하신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 게지. 이것이 태후의 의중이냐, 그도 아님 누이를 포함한 동씨의 의중이냐. 아니면 남편을 비롯한 장씨의 이들이 부추겼느냐. 이에 대한 저들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 같아 그러느니라. 뭐, 왕씨가 그 배후라 말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솔직히 작금의 왕씨는 구심점이 없어 딱히 이쪽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인 게지. 왜? 조건이라도 나누어 따져보려는 게냐?”


왕위가 내놓을 답이 궁금한 것인지 곽승은 넌지시 떠보는 모양새를 취했고, 이를 마주한 왕위는 애써 모르는 체를 하며 다른 질문을 내어놓았다.


“배후가 달라진다 한들, 정녕 저들의 태도와 움직임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 너는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로구나?”


“밑에 사람을 두고 있는 자들의 의중이란 것도 딱히 다를 바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의 본인의 의중이건 수하된 이들이 주청하듯 올린 의중이건 옳다 생각하는 것은 사람 부리는 이들의 이름하에 쓰이지 않겠습니까?”


“누구의 의중이 중한 것이 아니다?”


“상시 어른께서 부족한 소인의 생각을 궁금해하시기에 부족하나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들은 이제 막 불덩이 안에 던져진 쇳덩이와도 같습니다. 어디에 열이 가해지건 함께 뜨거워지고 같이 붉은 빛을 띠지요. 이를 두들겨 모양을 내고 덥혔다 식혔다 두들기고 가루를 섞어 불순물을 거르는 등의 행위는 보다 나중에 일이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와 다를 바 없던 무쇠가 깨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것은 그보다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차분한 왕위의 설명에 곽승은 저도 모르게 이를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꽤나 괜찮은 분석이자 쉬이 이해가 가는 비유였으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이다.


“의미가 없는 일이 된다는 것이겠지? 시간낭비일수도 있고 말이야.”


“예, 그보다는 남양태수가 이쪽의 끼칠 여파를 마저 생각하시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 되실 것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차라리 후련하게 털어버리라 할 줄 알았는데, 내 그래서 장양의 품으로 다시 들어선 것이 아닌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십시오, 상시어른. 주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인이 외면한 짐승은 제가 버림받은 와중에도 제 주인을 생각한다지만 사람은 그와 반대이니 새로운 주인을 찾거나 저를 버린 이를 더는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남양 태수가 나를......!”


제 가병장이 아니라 벼슬자리 하나라도 꿰차고 있는 이가 했던 말이었다면 애초부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허나 타인을 밟고 설 입지도 필요가 없는 이가 그것도 야견이 추천한 이가 이러한 주장을 하고 나니 곽승 또한 이를 가벼이 여기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주장 쪽으로 자꾸만 자신의 판단이 기울어지는 것은 몇 가지 제 마음에도 걸리는 여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리가 있구나, 일리가.”


우선 남양태수는 제가 임명한 이가 아니라 조절의 죽음과 더불어 제게 충성을 맹세한 이였다는 점이 걸렸다.


물론, 애초부터 저를 따른 이는 아니나 열성적인 충정은 고맙다 못해 과할 정도라 한때 제가 이를 달래준 적도 있지만 거기서 한 가지가 더 마음에 걸렸다.


“남양태수는 야견에 대해선 늘 부정적인 시각을 취했다. 그러나 나는 야견을 우대했지. 그것이 편애로 여겨졌다면 능히, 능히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있어. 어찌되었건 내가 그를 도성으로 불러들였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남양태수가 쉬이 변절하리란 생각도 들지는 않았으나 그 못지않게 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 한 가지는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자신이 야견을 보살피고 도위의 자리를 내렸던 것이 그에게는 편애와 총애로 비춰질 수 있는 지난날의 제가 내보인 행동이 바로 그 여지라는 점이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지만 사람에게 계기만큼 중한 기억은 또 없는 법이며, 거기다 정작 야견에겐 ‘군위’라는 없는 벼슬자리까지 만들어 내려줬으나 남양태수는 지금 있는 제 자리마저도 빼앗긴 형국이었다.


그러한 야견에 비해 그 어떤 배려와 총애도 받지 못한 남양 태수는 스스로의 입장을 과연 어찌 생각할까?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고는 하나, 제가 모시는 주인인 중상시 곽승은 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를 보전하려는 그 어떤 노력조차 보이질 않았다.


도리어 도성에서 연회를 여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양과 조충의 밑으로 들어선 모양새를 취하였으니, 자신이라는 꼬리를 알아서 잘라내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


“야견은 언제고 넌지시 던져주는 그 언사가 일품이었다. 가벼우면서도 한 번씩은 생각해봄직한 묵직한 이치가 종종 담겨 있곤 했지. 혹, 그가 네게 해주었던 말 중에 이러한 형국에 빗댄 말이 있더냐?”


만일의 가정이긴 하나 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곽승은 제 앞에 자리한 왕위의 위로 이 자리에 존재치 않는 야견의 허상을 다시금 덧씌우려하고 있었다.


“사람이 변했다 욕하기 이전에 그가 변해야만 했던 상황을 짚으라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이 아닌 상황을 두고 모든 것을 판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작금의 상황도 그가 묘사한 바와 같을 것이다. 허면 내가 어찌하여야 하겠느냐?”


“외람된 말씀이오나 남양태수가 도주를 하거나 경질을 빌미로 도성에서 그를 압송하기라도 한다면, 이는 능히 상시어른의 허리에 매여 있다 땅에 떨어진 보검이 도리어 정적의 손에 의해 상시어른을 향해 위협을 가하는 상황으로 변질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품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것이 남양태수의 자의가 되었건 아니면 타의가 되었건 간에 말이옵니다.”


“해서?”


“다시 한번 주공의 말씀을 빌려 말씀드리자면, 전장에서의 전리품은 주워 쓰는 자가 임자라 하였으니 패용이 끊어진 검의 주인은 누가 될지 모르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허나 그것이 누구의 검이었는지는 세상 모두가 다 알지요. 그래서 전리품에는 명성이 더해지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검은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래봤자 누군가에 손에 의해 휘둘러지는 도구에 불과하니 그 검이 또다시 누군가에 손에 들어가 다른 누군가를 해칠까가 가장 두려운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소인이 말씀드린 최악이란.......”


“......, 중상시 곽승이 휘둘러 명성을 얻은 검이 다른 이도 아닌 태후의 손에 들어가 내게 드리워지는 것. 내가 휘둘렀음을 알기에 나를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살인자로 고하며 그러한 내 죄를 단죄하니 어쩌니 하며 운이 좋다면 내 목숨마저 거둬갈 수도 있겠지. 고작 사람이나 베는 도구 주제에 지금의 저를 만든 제 주인을 배신하고 제 능력보다 더한 명성을 얻으며 또 다시 누군가의 손아귀로 들어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겠지. 명검이니, 보검이니 하는 것들이 본시 그런 게다. 저는 아닌 척 하지만 끊이지 않고 피를 부르는 마검(魔劍)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검은 필시 흉사를 부르기 마련이니 부러트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상시 어른!”


술기운에 그 정신이 흐릿해진 것도 아니고 피로 속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무심하면서도 차가운 안색으로 왕위를 쳐다보는 곽승의 눈빛은 꽤나 위험해보였다.


“스스로 최악이라 상정하지 않았는가, 뭘 그리 놀라는 게야? 본디 도구란 사람이 스스로를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 허나 영원할 수 없기에 그 수명이 다하거나 곡절이 있다면 쓰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한데 도리어 그것이 사람을 해친다면 당연히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오나 소인의 이야기는 아직 다 끝이 난 것이......!”


물론, 제가 가정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나 이는 언제까지나 가정이었을 뿐, 그에 대한 위험도는 그렇게까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차라리 남양 태수를 비밀리에 탈출시킨다던가 그도 아님 몰래 변복을 시켜 도성으로 불러들인다던가 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주장을 이어서 덧붙이려고 했다.


“최악을 상정하고 그 뒤에 차악을 덧붙이려나본대, 그 이상은 이미 필요가 없다. 네가 말한 대로 최악의 상황이라 가정해보자. 좋게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운이 나쁘다면 나를 노리는 패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뿐이더냐? 상대에게 나를 공격할 빌미를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진실로 그것이 성공한다면? 내 목을 치기 위한 검으로 남양태수를 뽑아들어 내 목을 내려친다면!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 잘려진 내 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절망해야 되는 것이 바로 나라면?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말은 최악을 상정하라 하였으나 둘의 가정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경계는 그 깊이가 달랐다.


살아온 생이 다르니 그 사고의 차이가 더한 위험을 부르게 된 것일까?


지금 왕위는 자신의 앞에 자리한 곽승이 정녕 기존에 제가 모시던 곽승이 맞는가 싶었다.


처음으로 그가 두려워졌다.


“야견이 네게 가르침을 준 것 같으니 나도 네게 한 가지 가르침을 내리겠다. 세상은 뭐가 되었든 내가 먼저니라. 내가 아니고서는 세상도 없다. 내가 없는 세상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니 언제 어디에서든 내가 없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라. 오직 나만이 최후의 순간에서도 나를 지킬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최악을 막고자 나는 발버둥을 치는 게야. 그리고 너는 나를 지키는 호위들을 통솔하는 가병장이자 내 심복이며 나를 따르는 수하이지. 허니 최선을 다해라, 네가 언급한 최악이 내게 찾아들지 않도록 말이다.”


“소인이 어찌하길 바라십니까?”


“최악의 가정이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정해졌다. 반대로 그 한 사람만 없어지면 그 가정 따위 논할 수조차 없는 것이 되지. 네가 덧붙이려던 차악이고 자시고도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단 말이다.”


“뒤탈이 없도록 남양태수를 죽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래야 야견의 수하다운 발언이지. 일처리는 뒤탈이 없이 멀끔하고 깔끔해야 하는 법이야. 지금 당장 형주에 자리한 야견을 따르는 이들에게 전갈을 보내라. 태후를 비롯한 이들이 경질을 빌미로 손을 쓸지 모르니 그를 죽여버리라고 말이야. 단 그 어떤 말썽이 없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게. 명색이 사람 죽이는 살수들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대신 죽은 태수의 가산을 비롯해 그가 모아두던 것들은 알아서 가지도록 해라. 매관으로 산 자릿값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은연중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니 다 털어내면 못해도 일천오백만 전 이상은 쉬이 건질 수 있을 게야.”


굳어진 안색을 숨기기 위해 명을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인 왕위는 그 길로 자연스러운 척 인사를 올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드르륵-


허나 침착한 듯 하면서도 조금은 급해 보이는 그 모습은 기존의 그답지 않은 당혹이 드러났음을 보여주는 반증이었으며 이는 그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본 곽승의 눈에 고스란히 관찰되고 있었다.


“내 조금 흥분한 것이 없지 않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놀란 모양이로고. 이립도 되지 못해 보이는 것이 아직은 감성이 남아있는 것이 보여 아쉽구나. 그래도 조금 더 완숙되면 편히 쓸 수 있을 게야. 다른 이도 아닌 야견이 천거한 어린 싹이니까.”


생각해보면 야견이 수하가 된 이후로 제게 붙은 이들의 나이는 대다수가 어린 편에 속했다.


쉰이 아니라 마흔을 넘긴 이들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제아무리 전리품이라고는 하나 다른 이의 때가 묻은 것을 주워 쓴다는 것은 조금 그러니 말이다.


그래 봤자 도구에 불과하기도 하고.


“그에 비해 조금 돈이 들고 고생하더라도 오직 자신을 위해 자신만을 위해 꼬리를 흔들 충견을 기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일이지. 오직 이 곽승 하나만을 위해 그 목숨을 바칠 훌륭한 충견 말이야.”


호록-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제 앞에 자리한 차를 한 모금 마신 곽승은 왕위가 떠난 자리에 흐릿하게 느껴지는 야견의 형상을 보며 자신이 덧씌우려던 노력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일천오백만전이면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한 게지. 야견아, 이 정도면 동씨들에 의해 네 수하들이 밀려난다한들, 한동안 새로이 둥지를 짓고 기존의 세를 유지하는데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리 너를 어여삐 여기는 것을 너는 과연 알고 있더냐? 하물며 그것이 불충임에도, 나는 이를 허했느니라.”


이미 자리를 떠난 왕위가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자신과의 독대에서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마 속이 좁은 이었다면, 제 욕심과 우둔함 앞에 능력 있는 이를 믿지 못하는 이였다면 그때의 상황을 빌미로 그 목을 날려버렸어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주공이라 했던가? 그것도 내 앞에서, 모시는 이를 두고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아닌 야견을 주공이라 불렀다. 너는 이를 어찌 생각하느냐?”


이제는 온기마저 식어버린 아무도 없는 빈 자리였으나 곽승의 눈에는 조신하게 무릎을 꿇은 야견이 저와 마주하고 있었다.


“조금 샘이 나긴 하지만 그래서 너를 믿은 것이다. 너와 너를 따르는 이들의 충성은 네 수하인 왕위가 묘사한 대로 마치 하나의 쇳덩이와 같으니 말이다. 나는 인덕이 없으니, 내가 사람을 두고 부리려면 인덕이 있는 이를 수하로 두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나는 비로소 근래에 들어서야 사람의 위에 서는 것과 사람을 이끄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게는 사람을 이끌 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허니 그 잘난 사람이야 모조리 네게 건네주마. 대신 너는 나를 받들어 모시고 나를 위에 세워라. 저 하늘 높이, 아주 드높은 곳에 말이다. 나는 너로 말미암아 만인의 위에 서겠다. 그리고 너를 부려 만인을 발아래 두고 다스릴 것이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공손한 자세로 제게 절을 올릴 야견은 아침 날의 흐릿한 안개가 되어 공기 중에 녹아들 듯 흩어지며 사라져갔다.


“좋구나, 좋아.”


만일을 위해 남양태수를 죽여야 하고, 공적인 권력을 보장받지 못한 야견이 이끄는 패거리들은 그 근거지를 잃고 더는 남양에 자리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태후의 득세는 쉬이 꺼지지 않을 기세였고 자신은 이를 막아줄 힘이 없었으니 남양의 일을 알면서도 방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힘이 없어서였을까?


“너도 잃는 것이 생기면 더더욱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겠지. 이런 이기적인 주인이라 미안하다만, 너는 내 것이기에 내가 부리는 욕심이라 생각해라.”


좋지 않은 쪽으로의 앞일이 제게 예견되고 있으나 어찌 된 것인지 이를 마주한 곽승의 그 마음은 점점 더 평안해져만 가는 듯했다.


가벼이 미소를 지으며 빈 허공을 향해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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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3장 2화 – 기오현(2) 20.08.28 368 8 15쪽
192 3장 1화 – 기오현(1) 20.08.27 413 9 18쪽
191 3장의 서 – 황충과 하후연 그리고 +2 20.08.26 451 9 20쪽
190 외전 2장 34화 – 상황에 의해 변화된 이들, 그리고. 20.08.25 286 11 18쪽
189 외전 2장 33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4) 20.08.24 272 6 16쪽
188 외전 2장 32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3) 20.08.21 275 9 15쪽
187 외전 2장 31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2) +2 20.08.20 283 6 25쪽
» 외전 2장 30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1) 20.08.19 284 7 17쪽
185 외전 2장 29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5) 20.08.18 287 5 18쪽
184 외전 2장 28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4) 20.08.17 282 6 20쪽
183 외전 2장 27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3) 20.08.14 299 6 19쪽
182 외전 2장 26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2) 20.08.13 291 7 17쪽
181 외전 2장 25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1) 20.08.12 298 7 17쪽
180 외전 2장 24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4) 20.08.11 292 7 29쪽
179 외전 2장 23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3) 20.08.10 295 8 24쪽
178 외전 2장 22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2) 20.08.07 297 8 21쪽
177 외전 2장 21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1) 20.08.06 296 8 17쪽
176 외전 2장 20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5) 20.08.05 311 9 20쪽
175 외전 2장 19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4) +2 20.08.04 310 8 23쪽
174 외전 2장 18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3) 20.08.03 306 8 17쪽
173 외전 2장 17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2) 20.07.31 308 8 18쪽
172 외전 2장 16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1) +2 20.07.30 314 10 17쪽
171 외전 2장 15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3) +2 20.07.29 315 11 19쪽
170 외전 2장 14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2) 20.07.28 303 8 17쪽
169 외전 2장 13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1) 20.07.27 320 10 18쪽
168 외전 2장 12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6) 20.07.24 311 10 20쪽
167 외전 2장 11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5) 20.07.23 309 8 17쪽
166 외전 2장 10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4) 20.07.22 312 10 17쪽
165 외전 2장 9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3) 20.07.21 313 9 20쪽
164 외전 2장 8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2) 20.07.20 320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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