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982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0.08.14 06:30
조회
299
추천
6
글자
19쪽

외전 2장 27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3)

DUMMY

동씨의 저택으로 들어선 이후, 반은은 수백에 달하는 가복들이 제각기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쌀 포대, 소금자루, 목함, 자개, 도자기, 상아, 얼음 등을 보며 고작 단 한 번의 연회 이후 이 정도의 재물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사실에 그 눈동자가 제법 커져 있었다.


하씨 또한 외척으로 들어선 이래 권세와 부를 쥐었다곤 하지만 이 정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역시 보다 오래되고 확고히 자리를 잡았던 이들의 경우는 그 규모부터가 차원이 달랐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가는 가노들을 지나쳐 저와 같이 문객으로 찾아온 이들의 무리에 끼어 든 반은은 그들을 따라 객당으로 들어설 수가 있었는데,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것이 과연 그 세를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듯 했다.


저와 같이 처음 이 저택에 들어선 이들은 거대한 전각과 주변을 둘려보며 구경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자주 이곳을 찾은 듯 보이는 이들은 은근한 잘난 체와 함께 당연하다는 듯 제 콧수염을 쓸어내리며 은연중에 동씨들과의 친분을 강조했다.


주변에 동조와 반응도 있고 하니 어느새 분위기는 시끌벅적해졌고 반은 또한 그런 그들의 무리에 뒤섞여 이곳을 찾은 이들의 면면과 그들의 이야기를 귀에 담아두고 있었다.


짝짝-


시간이 제법 흘렀을까?


가벼운 박수소리가 밖에서 들려옴에 시비들이 작은 주안상을 들고 접객당의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전부터 이곳에서 자주 술자리가 벌어졌던 모양인지 다른 이들이 자연스레 준비된 자리로 올라 하나둘 착석하기 시작했다.


반은 또한 눈치를 보며 한 자리를 차지했고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빈 자리를 메꾸어 나갔다.


언뜻 보아 오늘 이곳을 찾은 이들의 수만 해도 족히 일흔은 되어 보였는데 정작 이 술자리에 착석한 이들의 면면은 채 서른이 되질 않았으니, 아무래도 그 뇌물이 적은 이들은 은연중에 배제가 된 듯 보였다.


자신 또한 적잖은 뇌물을 건넸으니 그래도 이곳에서 접대를 받을 수 있는 인정을 받은 것이라.


그리고 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이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비단을 걸친 중년의 사내가 접객당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니, 이에 놀란 객당 안의 이들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고개를 수그려가며 온갖 갖은 예를 표하기 시작했다.


그 중년의 사내를 마주한 반은 또한 그런 그의 앞에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수그렸고 말이다.


“현 동가의 수장이나 다름없으신 동중 어르신을 뵈오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옵니다.”


“아아, 이것 참. 이 사람에게 너무 금칠은 마시게. 거 젊은 친구가 너무 예의가 극진하구만, 음? 자자, 다른 분들도 어서 앉으시오. 이 사람이 뭐라고 이리 과례를 하십니까, 하하하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객당에 자리한 반은을 포함한 이들을 다독인 동중은 어느새 준비된 상석으로 가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이에 다른 이들 또한 그제야 하나둘 착석을 하며 다시금 동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헛기침과 상찬(賞讚)을 보이니 이러한 이들의 시선을 즐기듯 동중은 호선의 눈꼬리와 함께 겸양의 입꼬리를 함께 드러내고 있었다.


“후우, 그간 너무 바빴어요. 시간을 내려고 해도 이것이 쉬이 나지 않으니 내 오늘에서야 이리 그대들의 얼굴을 보고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그려. 지난 며칠간은 너무나도 바빴기에 두어 번도 얼굴을 비추지 못했고, 해서 내 이번만큼은 이리 시간을 낸 것이에요. 우리 동가를 생각해주는 그대들의 그 갸륵한 정성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도 될까 하고 말입니다. 다만 요 열흘 내에 자주 이곳을 찾았으나 이 사람을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으신 분들께는 내 양해를 부탁드리겠소이다. 이거 뭐 워낙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그런 것이니 그 몸뚱이가 하나인 이 사람이 뭘 어찌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하하하, 다른 일도 아니고 동씨 가문의 성세가 드디어 복권이 된 것 같으니 도리어 저희들이 축하를 드릴 일이지요. 괘념치 마시옵소서. 아니, 차라리 저희 같은 이들이 더 늦게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동씨의 성세가 더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한가? 다행이도 자네 같은 이들이 그리 생각해준다면 이 사람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게지. 암, 그런 것이지. 흐하하하하!”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술잔의 순배가 돌며 다들 오르는 취기에 즐거워함이 여념이 없었다.


악공도 무희도 없는 조촐한 술자리에 불과하였으나 다른 이도 아닌 동씨를 이끄는 실질적인 수장이자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동중이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제 어깨를 다독여주고 제 얼굴을 기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오늘의 일은 행운이라 할 수 있을 일.


허나 그 행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보다 놀라운 행운,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영접할까 말까 할 인물의 등장은 이들을 열광케 하기에 충분했다.


드르륵-


“무슨 일이야?”


접객당의 문이 열이며 동가의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들어와 급히 무릎을 꿇고는 동중의 귓전에다 무어라 속삭였다.


이에 그 고개를 끄덕이며 제 앞에 자리한 이들을 슬그머니 훑어보던 동중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내보냈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자신만만했던 것인지 그의 표정으로 인하여 문객들이 도리어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옵니다?”


“아아, 아닐세. 그저 지금 중한 분이 오시는 중이시라는데 그것 때문에 행여나 그대들과의 자리가 빨리 끝나게 될까 내 잠시 안타까울 뿐이지.”


“허어, 다른 분도 아니고 동중께서 중하다고 하실 정도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시기에......”


“그러게 말이옵니다. 어떠한 분이신지 미욱한 저희들마저도 다 궁금해지는 차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들?”


- 예에.


자신을 향해 모두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흥미를 보이자 동중은 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신 헛기침만을 남발하고 있었다.


“크흠, 흠! 거, 사람들 하고는. 알았네, 알았어. 다들 어린 아해들도 아니면서 이리도 호기심들이 그리 많아서 어찌 큰일들을 하시겠는가?”


“하하하, 사람끼리 부대끼고 사는 시대에 사람끼리 가까워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저희 같은 소인들이야 작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큰일은 이곳 동씨가문의 이들이 하셔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암요, 참으로 온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에요.”


“사람의 그릇은 정해져 있다 하지 않습니까? 다들 그 그릇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이니 어찌 그것을 순리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암! 사내라면 제 그릇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지, 능히 그래야 함이야. 흐하하하하!”


동중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이가 좌중을 훑으며 반응을 이끌어 내자 다들 속 보이는 미소와 함께 그를 향한 온갖 아부를 올리며 손뼉을 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흥취를 끌어올리는 데 바빴다.


동중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 취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킬킬대고 있었고 말이다.


반은 또한 그런 그들에 섞여 연기를 보이고 있었으나 다행히 말석에 가까운 곳에 자리한 턱에 딱히 크게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앞서 보았듯 동중과 가까이에 자리한 저 몇몇의 이들이 그 분위기를 상승 시키는데 여념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저들은 동중과의 안면도 꽤나 있는 듯 했는데 연회에 이후 자주 동가의 저택을 들락날락 한 듯 보였다.


“아무튼 딱히 밝히지는 않을 생각이었으나 그대들의 그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그러는 것이니 행여 일찍 자리가 파토난다 하여도 이 사람에게 뭐라 하시면 아니 될 것이야. 음? 하하하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도리어 그리 무도한 이가 있다면 도리어 소인들이 직접 나서서 경을 칠 것이니 염려 놓으시옵소서.”


다시 한번 분위기를 정리하며 앞선 자리에 앉은 이들이 나서자 동중 또한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잠시 숨겨두었던 사실을 밝혔다.


“하 상시께서 오시기로 하셨네. 그것도 이 사람을 보고자 말이야.”


- 오오오오!


경탄을 넘어선 이들의 호응에 동중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린 듯 했다.


그만큼 그 이름값이 잘 먹혀 들어 간 것이다.


아무리 외척이라지만 그것도 중상시들 중에 드높은 자리에 있는 이의 방문은 특별했다.


특히나 작금의 시대에 있어 환관의 권위는 가히 대단하다 못해 조당의 드높은 벼슬아치보다도 더 고관대작에 가까운 묘한 기세를 풍기는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알만한 이들은 외척과 같은 세력 관계를 보며 이들이 한 편이나 다름없음을 유추할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그건 시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이들의 안목에서나 그런 것이고, 대다수의 이들은 그러한 안목이 없으니 그저 높으신 분들의 회동에 가까운 사고를 떨쳐내지 못한 채 제 욕망을 투영한 저만의 그림을 그려댈 뿐이었다.


드르륵-


그렇게 반각 정도의 시각이 얼추 흘렀을까?


다시금 문을 열고 들어와 동중의 귀에 속닥대는 이로 인하여 객들이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은연중에 알게 된 이들은 알아서 제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은연중에 동중을 따른다면 또 동가의 저택을 나서는 길에 혹시 모를 하운과의 안면을 트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말이다.


느긋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이들의 움직임은 꽤나 노골적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동중 또한 낌새를 챈 모양인지 헛기침과 함께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자, 허면 이 사람은 이만 일어나야겠소이다. 다들 기회가 된다면은 다음에 또 보도록 합시다.”


이에 자연스럽게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 문객들도 그를 배웅한답시고 또 돌아갈 준비를 한답시고 그를 따라 객당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정작 반은은 그런 그들과 달리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하운이라? 좋지 않을 때에 찾아왔군. 허기야, 뭐 둘러대면 그만이니.”


천천히 무릎에 손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하운은 그렇게 그곳에 자리했던 이들이 얼추 다 빠져나간 뒤에야 객당을 나섰다.


허나 도리어 그것이 때 아닌 화를 불렀으니 저 멀리서 동중을 비롯해 하운 그리고 어인 칼잡이 하나와 큼지막한 체구의 사내까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 허!”


동중은 아직도 객당에 손님이 나서지 않았음을 보며 그냥 그러려니 하는 모양새였는데 문제는 바로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음? 이놈은 아까 낮에! 가주, 이놈입니다! 이놈이......!”


예서 뭣하고 있느냐는 눈길을 보내는 하운이야 제가 얼추 넘길 수 있었다지만 정작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칼잡이가 이곳으로 오기 전 소란을 벌였던 그 무인이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칼잡이의 아는 체에 절로 옆에 자리한 큼지막한 체구의 사내에게도 시선이 갔으니 그 또한 제 뜻을 알아주었던 순후한 인상에 그 사내였다.


알고 보니 칼잡이는 동가에 속한 사내인 듯 했고 이미 자초지종은 함께 오는 길에 이야기했던 것인지 동중의 안색은 찌푸려져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반은의 안색도 찌푸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이것도 인연은 인연인가보군. 길이 바쁘다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목적지가 이곳이었나?”


하나도, 둘도 모자라 이젠 순후한 얼굴의 젊은 사내까지.


반은은 돌아가는 상황이 귀찮다 못해 꼬여버린 지금에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작금의 상황을 정리해줄 이의 입이 열리고 있었다.


“자네도 그만하게. 또한 동중 자네도 그쯤하고. 중한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내당으로 들었으면 하네만.”


잠자코 있던 하운이 한마디를 하자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절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허나 이를 마주한 반은은 예서 뭣하고 있냐는 하운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껴야만 했고, 그는 변명을 하기에 앞서 그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작금의 자리에 대한 사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대저 어찌된 일인가?”


쪼르르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비들이 차와 요깃거리를 내왔다.


이에 하운과 동중만이 그 다탁에 앉아있었고 무인은 다시금 그런 그들의 앞에 서서 제 입장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허나 정작 순후한 얼굴의 사내는 힐끔힐끔 제 옆에 서 있는 반은만을 간간히 살필 뿐 별다른 기색이 없었고, 반은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하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건석 자네는 어찌 말이 없는가?”


‘건석? 이 자가......, 그리된 거였군.’


처음으로 반은의 고개가 순후한 인상의 사내를 향해 돌아갔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다는 것이 지난 쟁송 당시에 제법 그 이름을 날렸다던 어린 환관의 이름이었다.


뭐, 지금에서야 황문감의 일 외에 별다른 유명세를 치른 적은 없으니 딱히 궁 내부의 인물들에 대해 큰 안면이 없었던 반은으로서는 그의 이름은 알아도 그의 안면을 몰랐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하진의 수하로써 하운의 위장된 하수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이 늘 해왔던 일은 하진을 비롯한 그 주변인들의 감시였음으로, 언제고 궁 안이 아닌 궁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우선시 되었기에 심하게 말하자면 궁궐 구경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바로 본인이었다.


하진 또한 하운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대놓고 감시하기 보담도 은근한 거리를 두며 저를 도성 밖 일에 우선적으로 활용했던 적이 많았고 말이다.


“내당으로 들기 전 상시 어른의 눈빛을 읽었나이다. 예서 뭣하고 있느냐는 듯 책망하는 그 눈빛에 아무래도 곡절이 있는 듯 보여 잠자코 있었을 뿐이옵니다.”


“처음엔 그저 칼 좀 쓰는 환관인 것으로 알았지. 그 뒤로 황문감의 자리에서 안목도 제법 길른 듯 보이고. 의외로 자네 그 눈썰미가 나쁘지 않구만? 과연, 과연 그간 장양이나 조충을 비롯한 늙은이들을 보좌해온 이다워.”


건석의 발언에 하운은 만족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고 동중과 무인은 대관절 이것이 어찌 된 것인지 몰라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하진이 보낸 것인가?”


“예, 최근 들어 하남윤에서 벌인 일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본가가 자리한 남양까지 동씨들에 손에 넘어갈까 걱정하던 그가 그 분위기를 살피라 명을 내렸지요. 하여 그 명을 수행하던 중입니다.”


“흐하하하하하! 누구 사람인지도 모르고 수하를 써, 쓰기는. 주제도 모르는 천한 것이 정도가 지나치다 못해 화를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지. 아니 그러한가?”


“그러게 말이옵니다. 다만 바짝 독이 올라있으니 천천히 조이십시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하지 않습니까?”


“암, 암. 그리해야지. 그래도 천한 것이 칼을 쥐고 고기를 썰며 예까지 왔는데 엄한 사람고기라도 썰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그래도 외척의 일원이니 나름의 대우는 해주어야지. 그래야 더는 궁의 격이 떨어지진 않을 테니까.”


하운과 반은의 맞장구에 도리어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이를 진즉에 눈치챈 건석은 묘한 눈길로 반은을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보시오, 동중.”


“예, 상시 어른.”


“이미 보았다시피 이 자는 내가 하진에게 심어둔 간세요. 그것도 철저히 하진의 심복 노릇을 하라며 붙여둔 이이지. 내가 꽤나 아끼는 패라고나 할까? 한데 문제는 오늘부로 이 자의 정체를 아는 이가 너무 많아졌다는 게요. 내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하운이 언짢다는 얼굴로 동중을 쳐다보자 동중 또한 그 불만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미 오해도 다 풀린 마당에 중한 것은 다름이 아닌 뒤처리였으니까.


“그야......, 뒤탈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신분과 위치가 낮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하운도, 동중도, 또 애매하긴 하지만 건석도 말이다. 다만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은 그 예외로 확실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가, 가주님? 그, 그러니까 이게 지금......!”


그래도 그 또한 돌아가는 머리는 있는 모양이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양새가 가히 겁을 집어먹은 짐승의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반은.”


“예.”


“처리하시게.”


“다, 다가오지마라! 다가오면 죽여버릴......, 커허헉!”


쩔그렁-


채 칼끝이 다 뽑히기도 전에 달려든 반은에 의해 무사는 그 목이 졸려가고 있었다.


사람 하나 베어내지 못한 채 흉한 꼴로 널브러진 검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그 위로 자리한 한 손은 이미 검을 뽑으려다 제압을 당했는지 뒤틀려 있었으며, 남아있는 그의 다른 손은 제 목을 휘감은 반은의 손을 쳐대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우드드득-


“살, 살려......, 크흐으윽......., 크흐흑.”


찰싹찰싹 제 목은 휘감은 반은의 팔뚝을 때려대며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생명이 꺼져가는 그 흉한 모습은 가히 불쌍하다 못해 애처로운 감정마저 절로 느껴지게 만드는 듯 보였다.


허나 그 광경 속에서도 무인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였음이니, 그저 무심하면서도 짜증을 내며 일그러진 기색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죽어가는 무인을 위해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살고, 살고 싶었....., 살려주세ㅇ.......”


“쯧, 죽을 때가 여전히 지난 것 같음에도 저리 발버둥을 치다니 여간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로구나.”


꽤나 오랜 시간을 제게 충성하며 자신의 가문을 위해 살아온 무사였다.


허나 지금에 이르러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던 동중은 도리어 짜증을 내며 그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내린 칼을 주워들었다.


푸욱-


“커허헉!”


“그만 편히 죽으란 말이라. 더는 이승에 미련 따윈 두지 말고.”


인상을 찌푸린 동중의 눈가엔 붉은 핏기가 튀어있었고 그의 손은 무인의 뱃가죽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목을 조르던 반은 또한 무심한 얼굴로 그의 목을 조르던 손을 풀어주었고 말이다.


그렇게 시뻘건 핏물과 함께 꿰뚫린 제 복부를 마주한 무인은 허망하면서도 슬픈 얼굴로 제 복부를 찌른 동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 주공......., 어, 어찌 그간에 충정을 다 바쳐온 소인을......”


“아랫것들이란 대저 그 효용이 다하면 적정한 때에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옳은 법. 헌데 후환마저 안고 있으니 어찌 내 손으로 이를 치워버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촤아악-


억울함 속에 피눈물을 흘리는 무인의 복부를 찔러 들어갔던 칼이 엄청난 피분수와 함께 다시금 밖으로 빠져나왔다.


힘을 주었던 동중이 그의 복부에 박힌 칼을 비틀어 빼버린 것이다.


“동씨가 그려갈 미래에 그 어떤 근심도, 후환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무심하면서도 잔혹한 동중의 얼굴이 담겨 있던 무인의 시선이 힘없이 느릿하게 기울어지며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천장이 보이고, 비틀린 다탁이 보이며, 그러다 바닥이 보이고는 더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3 3장 2화 – 기오현(2) 20.08.28 368 8 15쪽
192 3장 1화 – 기오현(1) 20.08.27 413 9 18쪽
191 3장의 서 – 황충과 하후연 그리고 +2 20.08.26 451 9 20쪽
190 외전 2장 34화 – 상황에 의해 변화된 이들, 그리고. 20.08.25 286 11 18쪽
189 외전 2장 33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4) 20.08.24 272 6 16쪽
188 외전 2장 32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3) 20.08.21 275 9 15쪽
187 외전 2장 31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2) +2 20.08.20 283 6 25쪽
186 외전 2장 30화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이다(1) 20.08.19 284 7 17쪽
185 외전 2장 29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5) 20.08.18 287 5 18쪽
184 외전 2장 28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4) 20.08.17 282 6 20쪽
» 외전 2장 27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3) 20.08.14 300 6 19쪽
182 외전 2장 26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2) 20.08.13 291 7 17쪽
181 외전 2장 25화 – 태후가 쏘아 올린 동씨라는 새(1) 20.08.12 298 7 17쪽
180 외전 2장 24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4) 20.08.11 292 7 29쪽
179 외전 2장 23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3) 20.08.10 295 8 24쪽
178 외전 2장 22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2) 20.08.07 297 8 21쪽
177 외전 2장 21화 – 다들 앞만 보는데, 서로가 다른 것을 보니까 무섭지(1) 20.08.06 296 8 17쪽
176 외전 2장 20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5) 20.08.05 311 9 20쪽
175 외전 2장 19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4) +2 20.08.04 310 8 23쪽
174 외전 2장 18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3) 20.08.03 306 8 17쪽
173 외전 2장 17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2) 20.07.31 308 8 18쪽
172 외전 2장 16화 – 치사량에 이른 독,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1) +2 20.07.30 314 10 17쪽
171 외전 2장 15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3) +2 20.07.29 315 11 19쪽
170 외전 2장 14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2) 20.07.28 303 8 17쪽
169 외전 2장 13화 – 황건은 의기를 위해 세워졌다(1) 20.07.27 320 10 18쪽
168 외전 2장 12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6) 20.07.24 311 10 20쪽
167 외전 2장 11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5) 20.07.23 309 8 17쪽
166 외전 2장 10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4) 20.07.22 312 10 17쪽
165 외전 2장 9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3) 20.07.21 313 9 20쪽
164 외전 2장 8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2) 20.07.20 320 9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