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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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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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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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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영물(2)

DUMMY

※※※



삐이이이-


귀를 울리는 새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바람을 타고 퍼져오는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는데, 소홍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사제.”


소홍이 이를 깨물었다. 손끝이 시리도록 아파왔지만 애써 감각을 무시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까마득하게 솟아있는 봉우리의 끄트머리가 보일락 말락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올라야 할 목표를 쳐다본 소홍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죽일거야. 올라가면.”


중얼거리는 말투에 감정이 다분히 실려 있었다. 그때였다.


휘이이-!


갑작스레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한순간 사색이 된 소홍이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벽에 달라붙었다. 살을 에일 것 같은 바람이 무복을 뚫고 허리께를 스쳤는데, 추위를 느낄 틈도 없었다. 동시에 발치를 따라 투둑 하고 떨어져 내리는 돌 부스러기들이 느껴졌다.


천천히.


소홍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소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까마득히 펼쳐진 낭떠러지였다. 아득히 먼 밑바닥은 구름과 빛도 들어오지 않는 검은 협곡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저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할 일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떨어지면 죽는다.


정말로.


지금 이 순간 절벽에 매달려 숨을 고르고 있는 소홍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 아래 물이 흐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대로 죽는다. 턱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 아래 자리한 것이 땅이냐 물이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내공을 금제당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망할.”


소홍이 입술을 베어물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으나 그것도 순식간에 불어닥친 찬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백연은 정말 자신의 말대로 했다. 간단한 점혈로 내공을 금제시켰는데, 어떻게 한건지 궁금할 정도의 신묘한 효능이었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을거고 곧 풀릴거라곤 했지만. 지금 당장 소홍이 내공을 끌어올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제나 혈맥을 타고 흐르던 진기. 근 일년여간 충만하던 내공을 뽑아낼 수 없게 되자 상당한 무력감이 몸을 지배했다. 동시에 그간 얼마나 내가기공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백연의 수련은 극도의 효능을 뽑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내공 금제를 통한 외공 수련.


실제로도 소홍은 수련의 효과를 몸으로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절벽에 딱 붙어 버티고 있는 등허리의 근육. 평시라면 내공을 일으켜 몸을 가벼이 만들었을 상황에도 그것이 불가하니 몸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온몸을 신경써서 움직여야 했다. 돌 틈새를 붙잡은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조차.


모든 근육을 전부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백연이 항상 검을 휘두를때마다 강조하던 소리가 무엇인지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것만도 같았다.


그럼에도.


“너무하잖아.”


소홍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죽을만큼 힘들거라고 말했지만, 정말 떨어지면 죽는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는데.


“후우.”


숨을 들이쉰 소홍이 다시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써 아래를 쳐다보지 않으려 하며 한 손을 돌 틈새에 짚고 몸을 끌어올린다.


견갑골 사이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극도로 긴장한 소홍은 이미 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삭.


“으앗!”


한순간 벽에 짚은 오른발 아래의 돌더미가 후두둑 부서져 나갔다. 잠깐 허공을 디딘 발에 온몸이 휘청 하고 움직였다. 식겁한 소홍이 재빠르게 벽에 달라붙어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이제 반쯤 올라왔건만. 아직도 절벽의 꼭대기는 턱없이 멀게만 보였다. 위쪽을 한번 더 슬쩍 올려다본 소홍이 한숨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한편.


“잘하고 있네.”


절벽의 아래였다. 절벽에 달라붙은 백연이 위쪽을 열심히 오르고 있는 사형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역시 예상대로 소홍이었다.


작은 체구와 몸. 여리게 보이는 사형이지만 살수 훈련도 받았던 몸이다. 그만큼 스스로의 몸을 다루는 것에 있어 남들보다 한발 앞서나가 있다. 자연히 훈련에도 가장 잘 적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오르고 있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미 절벽을 오르는 자세부터 안정적인 것이 보인다. 한팔로도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균형잡힌 몸. 서두르지 않고 잡아야 할 지점을 잘 찾으며 올라가는 침착성. 동시에 몸의 근육을 어디를 써야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 머리까지.


소홍은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 감각이 탁월하다는 것이 보였다.


“역시.”


백연이 웃었다.


그간 운연동공을 익힌 탓에 내공의 운용과 무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반대급부로 외공의 성장은 거의 정체되어 있었던 사형들이다. 그렇게만 수련해도 운연동공의 특성 덕에 몸이 자연히 단단해지긴 하겠으나, 당연히 외공을 직접 수련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닐 터.


당장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 효과가 눈에 보인다.


무진과 단휘도 마찬가지였다. 소홍보다 조금 아래편에서 절벽을 오르고 있는 두 사형의 목소리가 연신 크게 울려왔는데, 소홍만큼은 아니어도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소란스럽다는 점은 소홍과의 차이점이었지만.


“흐아악! 나 죽는다. 죽어!”

“사형, 조용히 좀......으악!”


고함치는 소리들을 한귀로 듣고 흘린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떨어질까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계속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손을 뻗어 스스로의 혈맥을 툭 짚은 백연이 절벽을 짚고는 심호흡을 했다.


내공을 금제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은 극한에 몰리면 저도 모르게 편한 힘을 끌어쓰게 되는 바. 절벽을 오르다 위험하다 싶으면 반사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내공을 금제한 것이었다. 물론 떨어지면 위험하긴 하겠지만, 백연은 그에 충분히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사형들을 뒤따라가기 위해 절벽을 짚은 백연이 몸을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그때보다 훨씬 낫네.”


휘익.


백연이 한팔로 몸을 끌어당겼다. 한순간 오른팔의 근맥이 강철로 만든 철사마냥 단단하게 굳어들었다. 동시에 백연의 몸이 쑤욱 위로 당겨져 올라갔다.


절벽을 오르는 속도가 가히 평지에서 움직이는 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온몸에 전해져 오는 기분좋은 자극을 느끼며 백연이 씩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이렇게 올라왔던가. 아무래도 그쪽 절벽이 더 험한 것 같기도 하고.”


맨 처음 곤륜산에 오를때, 아무런 내공도 없던 어린아이의 몸으로 절벽을 탄적이 있었다. 옥수 방면에 편안히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몰랐기에 저질렀던 무식한 짓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없었다. 이번 삶에 들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 그가 오르고 있는 이곳보다 훨씬 위험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다음번에는 사형들도 그쪽 절벽을 오르게 해야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절벽을 오르길 한참.


백연 자신도 어깨가 슬슬 뻐근하다는 감각을 느낄때쯤, 그의 손이 마침내 평평한 지면에 닿은 것이 느껴졌다.


힘을 주어 몸을 끌어올리자 시야에 끝없이 위로 펼쳐져 있던 절벽 대신, 넓게 펼쳐진 봉우리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읏차.”


가벼이 올라가자 봉우리 위에 널브러진 사형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시체같은 몰골이었는데, 무복 끄트머리가 조금씩 찢어진 것은 물론이요, 손끝이 갈라져 피가 배어있기도 했다.


“......왔냐.”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무진이 백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한껏 지친 목소리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네 눈엔 이게 괜찮은걸로......으윽.”


엎드려 있던 자세에서 한바퀴 굴러 바닥에 드러누운 무진이 신음 소리를 냈다. 단휘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이미 돌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체꼴이었다.


반면 소홍은 조금 나았다. 절벽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백연이 다가가자 돌아보는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사형은 좀 괜찮아 보이네. 할만해?”

“......백연.”


입술을 비죽이던 소홍이 백연을 올려다보았다.


“밀어도 돼?”

“......여기서?”

“사제는, 떨어져도 살아남겠지.”

“아하하.”


백연이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머리 위 높이 뜬 태양을 가늠하며 백연이 손을 매만졌다.


“그나저나 영약은 커녕 풀쪼가리 구경도 못했네.”

“없어. 이쪽엔.”

“그런 것 같네. 산맥을 뒤지고 다니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곤륜산의 절벽이 한두개가 아니다. 봉우리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뭐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은 백연이 기감을 넓게 펼쳤다. 산을 따라 흐르는 자연지기. 소년의 예민한 기감이 기운의 흐름을 날카롭게 잡아챈다. 자연지기가 몰려 있는 장소를 찾으면 좀 더 영약을 얻을 가능성이 늘어난다.


잠시동안 그렇게 바람을 가늠하던 백연이 눈을 뜨곤 사형들을 바라보았다.


“자, 다들 푹 쉬었지?”

“......난 죽었다.”

“두세군데만 더 가보게. 다들 일어날 시간이야.”


무진의 입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은 듯 누워있던 단휘가 슬며시 눈을 뜨더니 다시 감았다.


그렇게 있기를 잠깐.


“에휴. 가자. 이번엔 어디냐?”

“남서쪽으로 산을 타볼까 싶어서.”


벌떡 일어난 무진이 옷을 툭툭 털고는 어깨를 매만졌다. 뒤이어 단휘와 소홍이 비척비척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가벼운 백연의 걸음 뒤로 소년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난 산행이 싫다.”

“전번에 곤륜산이 좋다 한게 얼마 안된 것 같은데요.”

“......산은 좋은데, 오르는건 싫다.”

“영약, 캘거야.”


마지막은 소홍의 목소리였다. 다분히 억울함이 묻어있는 목소리에 백연이 피식 웃었다.


다행히 소홍의 억울함을 해소할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폭포가 흐르는 절벽을 오른 뒤였다. 온몸에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 허탕을 한번 더 치자 해의 높이도 슬며시 낮아지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 아래 다시 산행을 하기를 한참.


소년들은 어느새 세번째 절벽 앞에 다다라 있었다. 남서쪽으로 한참 내려온 참이었는데, 공기가 조금 달랐다. 백연은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 지기(地氣)가 좋아.”


백연이 중얼거리는 말에 사형들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들의 기감이 백연만큼 예리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나무들의 잎이 지나치게 푸르렀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숨쉬는 공기도 그랬다. 미미하게 온기가 감도는 것이 이곳만 계절이 한끗 다른 듯 했다. 영험한 기운이 고여 있었다. 산맥의 기운이 모인 곳이었다.


위치를 머릿속에 새겨둔 백연이 사형들을 돌아보았다. 절벽을 두 차례나 올라 다분히 피곤해보이는 모습들.


“오를 수 있지?”


그러나 백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년의 물음에 사형들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백연이 슬며시 웃었다.


사형들은 수련을 시켜달라 했고, 백연은 그 일을 설렁설렁 할 생각이 없었다. 하루에 절벽 세차례 오르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그럼 가자. 오르는 길에 영약이라도 있는지 잘 살피고.”


그것이 신호였다. 사형들은 더 이상 한숨도 뱉지 않고 자연스레 절벽에 달라붙었다. 하나같이 피곤하고 지쳤을 것임에도 불만이 없었다.


재빠르게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사형들의 뒷모습을 보며 백연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걸고 절벽을 두차례 오른 결과 이미 그들은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빠르게 깨닫고 있었다. 지쳐있는 몸임에도 처음 오를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가 그 증거였다.


저렇게 몸을 단련하고 나서, 다시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외공은 단순히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에만 그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공을 사용해 몸을 움직일때는 알지 못하는 안좋은 습관들조차 몸을 극한으로 단련하는 과정에서 수정된다. 동시에 신체가 단단해지니 무공의 반동 또한 견뎌내기 좋아진다. 태청신공을 연마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잠시. 백연 또한 사형들의 뒤를 따라 오를때였다.


“어?”


놀란 소홍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위편에 매달린 소홍의 음성에서 놀람과 기쁨이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을 눈치챈 백연이 위를 쳐다보았다.


“사형?”

“찾았어!”


벽에 매달린 자세 그대로 소홍이 손을 뻗었다. 벽을 타고 자란 푸른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 위편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절벽에 난 틈새를 따라 자라난 작은 풀이 있었다.


코끝에 닿아오는 맑은 향취.


아홉 갈래로 갈라진 잎이 눈에 띈다. 구엽초(九葉草)였다. 본디 약초로 쓰이는 귀한 풀인데, 그 향이 매우 진하고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나 있을 풀이 아니었다. 동시에 향조차도 턱없이 진했다. 잎 한장의 크기가 소홍의 손바닥과 비슷할 정도였는데, 한눈에 보아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영약이라 부를만했다. 영험한 기운을 먹고 크게 자란 풀은 그 자체로 귀한 영단의 재료가 된다. 수십년간 자란 도라지나 쑥도 그러할진데, 구엽초는 두말할 것이 없었다.


절벽에 달라붙은 채로 소홍이 천천히 몸을 끌어올렸다. 절벽에 살풋 튀어나온 틈새가 커다랬는데, 안쪽으로 구엽초의 줄기가 좀 더 길게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사형, 조심해!”


뒤에서 백연이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소홍이 재차 외쳤다.


“괜찮아!”


충분히 조심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래로 떨어져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조심스레 자세를 바꾼 소홍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붙었다. 절벽 틈새에 몸을 걸치자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기대듯 절벽에 붙어 앉은 소홍이 바위 틈새로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풀잎이 손에 닿았다. 한순간 풍겨오는 맑은 향에 담긴 기운이 진했다.


그때였다.


쩌저적.


불길한 소리가 귀를 저몄다. 찰나 소홍의 눈에 보인 것은 바위 틈새로 새겨지고 있는 커다란 금이었다. 소홍이 눈을 크게 뜨는것도 잠시.


쩌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위 틈새가 아가리를 벌리듯 쩍 벌어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위 조각이 아래로 낙하했다. 바위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커다란 공간이 드러나고, 동시에 절벽에 기대고 있던 소홍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넘어갔다.


“으앗!”


한순간 소홍의 시야가 깜깜해졌다. 훅 앞으로 넘어가는 몸을 멈추려 했지만 통제를 잃은 몸은 그대로 안을 향해 굴러떨어졌다.


쿠구구궁.


부서지고 구르는 바위소리가 뒤따랐다. 저편 멀리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도 울렸는데, 백연의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먹먹한 소음이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굴러 떨어지기를 잠깐.


“아으으으......”


바닥에 털썩 부딪혀 멈춰선 소홍이 머리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둑한 시야 너머, 부서진 바위 조각과 돌덩이들이 눈에 띄었다.


“여긴......?”


소홍이 중얼거렸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야 위로 쭉 뻗은 천장. 돌로 이루어진 자연적인 공간이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본디 햇빛 한점 들지 않아 어두워야 할 장소임에도 어스름한 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동굴?”


온통 깜깜해야할 것인데, 어째서인지 은은한 빛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것이 벽면과 바닥을 따라 난 식물들이 내는 빛이라는 것을 깨달은 소홍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대체.”

“사형! 괜찮아? 그 안에 있어?”


중얼거리던 소홍의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가 틀어박혔다. 위편을 쳐다보자 그가 굴러떨어진 구멍이 보였다. 절벽으로 이어지는 구멍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것은 백연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그런데 여기, 넓어.”

“......다행이네. 잠깐만 기다려.”


이윽고 무언가 부산스러운 소음이 뒤따랐다. 바위를 퍽퍽 치는 듯한 소리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에서 돌 부스러기들과 함께 한 신형이 낙하했다.


타닥.


바닥에 가벼이 착지한 백연이 재빠르게 소홍을 향해 달려왔다.


“다친덴 없어?”

“응.”


소홍의 몸을 살핀 백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푹 꺼지듯 절벽 안으로 사라진 탓에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즉시 내공 금제를 풀고 용형보로 절벽을 질주해 따라온 백연이었다.


소홍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긴 동굴인가. 엄청 큰데.”


백연의 눈길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절벽 틈새 안에 자리잡은 동굴의 크기가 상당했다. 위로 뻗은 높이도 높이건만, 깊숙하게 안쪽으로 이어진 길이가 어디까지 뻗어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동시에 안의 풍경도 독특했다. 사방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는데, 어떤 종류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신기한 곳을 찾았네.”


중얼거리던 백연의 눈에 문득 무언가가 들어왔다. 동굴 한 바닥에 널부러진 반투명한 물건. 다가가 그것을 주워든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것은 단단한 물질이었다. 바위나 금속은 아니었는데, 반투명한 고체가 길쭉하게 뻗어 있는 것이 독특했다. 상당히 단단한 감각이 마치 보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큰데.”


그때 곁에 있던 소홍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백연이 손에 든 것을 유심히 쳐다보던 소홍이 중얼거렸다.


“그거. 비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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