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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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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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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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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난세

DUMMY

※※※



검푸른 바람이 불었다.


고절한 궁술 기예였다. 한순간에 하늘로 다섯개의 선이 치솟는데, 흡사 개전(開戰)을 알리는 효시(嚆矢) 같기도 하였다. 그 화살에 깃든것이 새매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높다란 바람 소리인 까닭에.


‘막아야......’


풍백은 생각했다.


의념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허공을 따라 흐릿한 검의 형상이 둥실 떠올랐다. 그러나.


쩌저정!


그의 코앞까지 짓쳐든 인영이 먼저였다. 솟구치는 보신경 경파에 무형검이 단번에 전부 박살. 가면의 사내가 흑포를 줄기줄기 흩날리며 무감한 시선으로 풍백을 응시했다.


“아직도 그걸 엮어낼 힘이 남았나.”

“쿨럭......조금 질긴 몸인지라.”


풍백이 피를 뱉었다.


호북 이릉.


밤이었다. 어느새 노을마저 사라진 하늘 아래 흐린 별빛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풍백은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이미 신공 풍신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바람처럼 자유로이 움직이던 육신은 바닥에 처박혀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사방을 울리던 육합전성은 어디가고 지친 육성만이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풍백은 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눈앞의 사내를 붙들어 놓기 위해서.


궁귀(弓鬼).


신개가 그리 불렀었다. 그것이 진짜로 눈앞 사내의 별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풍백은 신개의 말이 정확하다고 여겼다. 가면을 쓴 이자는 활의 괴물이었으니까.


“아쉽군요. 좀 더 시간을 끌었어야 했는데.”

“......”

“그렇다곤 해도 충분할겁니다. 방주 어르신의 걸음에 반시진(半時辰:한시간) 정도라면 따라잡히지 않을만큼 거리를 벌리고도 남는 시간이니.”


퉷.


풍백이 핏물을 뱉고는 미소를 지었다. 연푸른 눈동자에는 고통이 단단히 서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당신들은 어르신을 잡지 못합니다.”


그 말에 가면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잠시동안 풍백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겁게 내리깔렸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지?”

“무엇을......쿨럭.”

“처음부터 혈선까지 붙들어 놓는 것을 포기하고 내게 전력을 쏟았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았을텐데.”


나직하게 깔리는 음성.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온다. 그에 풍백은 옅은 헛웃음을 흘렸다.


“제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군요. 작은것을 잃어도 대마(大馬)를 잡으면 승리하는 것이 병법의 이치인데.”


지금의 경우에는 신개가 들고 있는 정보가 그러할 터. 그렇지 않았다면 이 궁귀라는 작자와 혈선이 신개를 집요하게 추적할 이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풍백은 그것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졌고, 성공했다.


“아침이면 무당산에 이르기에는 충분한 시간일 터. 밝아올 하늘에는 태극이 떠오르겠군요.”


궁귀는 풍백을 응시했다.


온몸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저리 말한다. 괴물같은 정신력의 소유자. 지금쯤 몸에 쌓인 내가중수법의 여파로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것인데.


“......위험하군, 확실히.”


궁귀가 중얼거렸다.


그의 무공을 똑똑히 눈으로 본 탓이었다. 수백자루의 무형검을 일제히 다루며 혈선과 그의 움직임을 동시에 묶어 저지시키는 괴물.


검성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어찌하여 군문의 장수가 강호 무림에서 그런 드높은 별호를 얻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될 정도로.


“허나 그 노력이 크게 무언가를 뒤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무당산의 고루한 문파들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게 될 뿐이다. 겨우 사나흘의 시간을 번 것이 검성의 목숨값을 충당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나.”

“예.”


망설임 없이 답변이 튀어나왔다. 흐린 검을 쥔 풍백이 고통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하잘것 없는 낭인 하나의 목숨으로 정파 무림 전체에 사흘을 벌었다면 분에 넘치지요.”

“......”

“허나 그 위에 궁귀라는 작자의 목숨까지 얹을 수 있다면-”


말과 동시였다.


피를 흘리며 위태한 자세로 서 있던 풍백의 신형이 돌연 흩어졌다.


한순간 피 냄새가 섞인 바람이 궁귀의 사선을 스치고.


쩌저저저저정!


“......!”


수십갈래의 칼날같은 바람이 부지불식간에 현현. 화살을 쥔 궁귀의 손과 빠르게 충돌했다.


“더할 나위가 없겠군요.”


흐린 이검(二劍)을 쥔 풍백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에 궁귀가 가면 아래로 짧게 혀를 차며 진각을 내리찍었다.


“만용(蠻勇)이군.”

“필사의 발악이라고 해두지요.”


풍백의 웃음 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교차하는 시선. 그 순간부터 두 무인의 신형은 형문산 아래를 따라 길쭉한 궤적을 그려내었다.


쩌정! 쩌저저정!


두개의 선율이 별밤 아래 희끄무레한 잔상을 남기며 삽시간에 달라붙었다가 다시 흩어진다. 거리가 멀어질때마다 사이를 가르는 것은 검푸른 화살의 잔영이었으며, 달라붙는 순간마다 수십개의 반투명한 칼날이 별안간 허공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길쭉한 기파의 빛살을 꼬리마냥 이끌며 수시로 교차하는 모습. 보신경 경파마저 일격의 추진력으로 삼아 내친다.


그렇게 합을 나누며 이어지던 두 절세 무인의 질주는 오래지 않아 한 대지 위에서 별안간 우뚝 멈춰섰고.


콰드득!


달빛 아래 섬뜩한 피륙음과 함께 핏물이 분분히 흩어져 내렸다.


“......이런.”


풍백이 중얼거렸다.


궁귀의 허리춤을 따라 흐린 검신이 깊게 틀어박혀 있었다. 풍백이 내친 무형검의 잔영이었는데, 호신강기를 부수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검상을 남겼다.


중상이었다.


하지만 궁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 홀로 일격을 먹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제 그 까다로운 이검은 못쓰겠군.”


철퍽.


두 무인의 발치로 팔 한짝이 떨어져 내렸다. 직전까지 바람을 쥐고 있던 손이었다.



※※※



이튿날 이른 아침.


무연봉 위였다.


“......와아.”


이결이 곁에서 옅은 감탄을 뱉는다. 다른 사형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엄청나네.”

“그러게.”

“개회식때도 그랬는데, 한층 더 위세가 드높아진 느낌이야.”


단휘가 말했다. 백연 또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축제가 열리던 어제 밤에도 무연봉 위에 사람은 많았다.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하면 지금이 더 적겠지.


허나 지금 무연봉 위로 늘어선 무인들의 기세는 완전히 달랐다. 희고 푸르며 검고 붉은 옷자락이 사방에서 펄럭인다. 제각기 병장기를 패용하고 서서 천천히 경기장을 향해 걸어들어가고 있는데, 그 기세가 가히 하늘을 찌른다.


각기 집으로의 귀환을 앞둔 탓일까, 아니면 비무제전의 폐회식을 빛내기 위함일까.


‘무슨 이유라도......?’


부러 기운을 흘리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칼날같이 벼려진 기파가 무연봉 위를 타고 흐르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돌아다니는 무당파 무인들조차 평소보다 한층 집중한 얼굴이다.


“이쪽입니다!”

“가자꾸나.”


무당파의 무인과 운결의 안내에 따라 곤륜파 또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이곳 저곳에서 곤륜파를 알아보고 던지는 시선이 재미있기도 했다. 처음 무연봉에 올랐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곤륜파가 한 문파로 오롯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제 이곳에 오른 사람중 곤륜파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그것은 곤륜파가 배정받은 자리에서도 곧바로 드러났다. 중소 문파라고 크게 차별을 하지는 않으나, 문파와 세가들의 크기와 영향력, 중요도를 고려해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지금 곤륜파의 자리는 처음의 위치가 아니었다. 구파와 오대세가 바로 옆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자리. 위세가 강한 중소 문파들 몇이 무당산을 떠나 자리가 비었다곤 해도 그랬다. 곤륜파의 이름이 드높아진 것이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무대가 치워진 경기장의 한 가운데 기백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도열.


상석에 오른 선극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호북 무당산에서, 무당파의 주최 하에 열린 금번 천하비무제전의 폐회에 앞서......”


이어지는 말과 치하가 길었다. 그러나 백연은 그것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유왕?’


상석 어귀에 보이는 흑포. 한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유왕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재미있는 일이 있을거라 했던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 허나 저 유왕이 말한 ‘재미있는 일’이 평범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히 강호 무림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말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허언을 마구 내뱉을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기에.


대체 무엇을 준비했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소년의 머릿속에 맴도는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이상이 대회에 참가한 여러분께 보내는 늙은이의 잡설이었소.”


그때였다. 선극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백연이 시선을 들어올리자 허허로이 수염을 쓸어내리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선선한 아침의 햇살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산란하며 부서진다. 서늘한 새벽의 공기가 침묵속에서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백연은 문득 깨달았다.


‘이건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지금부터 나올 말이, 유왕이 말했던 재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그렇게 긴장어린 공기 속에서 잠시간의 침묵이 스치고 다시 선극이 입을 열었을 때.


“허나, 이제부터 폐회식을 마무리 짓기에 앞서 몇가지 알릴 말이 있소.”


화아아아악-!


공기가 뒤집힌다. 그저 분위기가 아니었다. 선극의 소매가 한차례 구름처럼 부풀더니 바람을 휘감는다. 무연봉 위를 따라 거대한 기운이 물결치듯 퍼져나가는데, 그 속에 실린 선극의 음성은 평소와는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


한없이 초탈하면서도 한없이 무거운 음성.


“대명(大明)의 기치가 이 땅에 내려설 적에, 이 봉우리에 오른 삼봉께서는 한가지 약조를 맺으셨다 하오.”


사박.


뒷짐을 진 선극이 내뱉는 목소리가 그대로 귀에 때려박힌다. 휘도는 바람결에 실린 초월자의 음성이 짙었다.


“바로 태조(太祖)와 맺은 약조였소. 그 이래로 정파 무림은 서방으로부터 중원을 수호하는 검(劍)이 되어 기치를 드높였고, 군문은 북방과 남방을 수호하는 방패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기백년간의 평화를 일궈낼 수 있었다 하오.”


“허나 이제는 그 평화가 다했소. 십 오년 전 북경은 무너져 유린당했고, 정도무문의 힘은 기울어 사마외도의 검 앞에 무고한 피가 수없이 흐르는 작금의 세태.”


“마도 무림은 일백년 전 마교(魔敎)의 아래 일통(一統)되어 그 위세를 부풀리고 있고, 사도 종자들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세력의 아래 집결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오.”


“본디 천하비무제전은 정파 무림을 지속적으로 같은 기치 아래 엮어내고자 만들어진 기나긴 전통. 그로써 오랜 세월동안 정파의 힘을 결집시키고 사마외도의 종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확보했었소.”


“허나 작금의 혼란한 세상에 이르러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 이 자리에 모인 모두와 기나긴 의논을 했고.”


“그로써 모두가 한가지 결론에 동의하게 되었음을 알리고자 하오.”


선극이 말했다. 뒤이어 힐끗 뒤를 돌아보는 시선이 가벼웠는데, 어느새 상석에 앉아있던 이들이 전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반장을 하는 신승과, 이곳에 없는 당가주 천독을 제외한 모두가.


‘대체 무엇을.’


백연이 위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선극의 말에 담긴 내용이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때 도열한 무인들 앞에 다시금 선극의 나직한 음성이 떨어져 내렸다.


“세상에 사마외도의 종자들이 횡행하고, 민초가 고통받는 작금의 세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까닭에 정도무문의 힘을 하나의 기치(旗幟) 아래 묶어 세상을 굽어살필 힘을 만들고자 하니.”


바람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한없이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은 까닭이었다. 선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조용히 있었고, 이해한 이는 이해했기에 침묵한다.


고즈넉한 적막이 햇살을 타고 흐른다.


오직 한 노인의 늙수레한 음성만이 그 위로 낙엽처럼 부드러이 내려앉았을 뿐.


“금일. 이월절(二月節)의 나흘 전날. 호북 무당산의 무연봉(舞燕峰)에서 무당 장문의 이름 아래 선언하겠소. 무당파를 비롯해 소림, 화산, 청성 외의 아홉 문파와, 다섯 세가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맹(盟)이 태어났고.”


그 순간이었다.


펄럭-


거친 소리와 함께 바람결 사이로 큼직한 깃대가 머리를 들어올렸다. 상석 위로 펼쳐진 거대한 깃발은 눈처럼 새하얀 백색이었다. 그 위로 새겨진 글자가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그 이름은 무림맹(武林盟)이라고.”


백연은 생각했다.


‘당장 튀어야 하나?’


농담이 아니었다. 흰 깃발에 새겨진 검은 글씨. 무림맹이라고 적힌 글귀는 날아오를듯 웅대했는데, 저것이 가져올 파급력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북경 황실에서 저걸 어찌 생각할까.


‘역모.’


지금 백연의 머릿속에 박히는 글자는 그것 뿐이었다.


그만이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아닐 것이었다. 이곳에 선 무인들 중 절반은 주변을 힐끗거리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허나 그때였다.


“또한 본 맹의 출범은, 이 자리의 유왕께서 직접 입회하신 하에 이루어지는 바.”


그리 말하며 시선을 한쪽으로 돌린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유왕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나른했는데, 그것을 본 백연은 미간을 좁혔다.


‘재미있는 일이라더니.’


이런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주변의 분위기도 느껴졌다.


유왕 주재후. 어찌 되었든 현 황제의 유일하고 적법한 후계이다. 다음 대 황제가 직접 무림맹의 출범을 공인했다고 봐도 좋은데, 이리 되면 황실에서 역모라 치부할 가능성은 없다 봐도 좋았다. 애초에 그의 움직임 자체가 황제의 대리인이나 다름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느낄 터였다.


백연은 아니었다.


‘......진짜 미친건가?’


저 사람. 아무리 봐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허나 선극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곧 저 자리에 앉은 구파와 세가의 수장들은 유왕의 행동에 간접적으로 동의한다는 소리기도 했다.


저들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백연은 한숨과 함께 눈썹을 내리깔았다. 고민이 깊어진다. 유왕이 장담한대로였다.


재미는 둘째치고 이것은 무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일이었다. 무림맹이라는 집단이 출범하면, 사마외도를 압제하는 것은 이전보단 쉬운 일이 될 터. 하나의 기치 아래 합쳐진 정파 무림의 힘은 거대하다.


너무 거대해서 황실이 역모로 간주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만.


“무림맹에 입맹(入盟)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요. 허나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소. 무림맹의 검은 중원 어디든, 사마외도가 횡행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향하리라는 것을.”


단순히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것을 넘어선다. 거대한 힘으로 중원을 누비며 민생 안정을 도모하고 협의를 실현한다.


한없이 드높은 기치인데, 그것 만큼은 굉장히 백연의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곤륜파에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맹의 깃발은 거대했고, 그 끝자락은 청해에 외따로 떨어진 문파에도 닿을 듯 보였기에.


그렇게 백연이 고민에 빠진 그때였다.


“작금의 어지러운 세태에 크게 일을 벌릴 수 없으니, 맹의 출범식은 이것으로 갈음하겠소. 입맹을 희망하는 문파는 언제든지......음?”


별안간 말을 끊은 선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삐이이이이이-!


높다란 바람소리가 허공을 찢을듯이 갈라내었다. 한순간 백연의 시야 가장자리에 짙은 묵빛 선율이 새겨졌다. 찰나지간 소년의 인지가 수천으로 쪼개지며 그것을 눈에 담아내었다.


‘화살?’


돌연 허공에 현현한 화살 한자루. 그에 휘감긴 강대한 기파를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한 가운데로 어떤 인영이 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콰아아아아앙!


황금빛 기파가 번뜩이며 일었다. 직후 신승의 법력 기파와 화살의 충돌로 인한 발경력 여파로 바닥이 쩌적-갈라졌고.


“허억, 헉......!”


인파 사이에서 피투성이가 된 노인 하나가 힙겹게 몸을 일으켰다. 거칠게 흩어진 지저분한 회백색 머리칼과 덥수룩한 수염.


온몸에 상처가 새겨져 있는데, 어느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가 노인의 옷자락이라도 된 양 몸을 뒤덮었다. 두르고 있는 옷도 본래부터 낡은 것으로 보였는데, 그마저도 핏물이 잔뜩 배어 있었다.


“신개(神丐)......?”


문득 누군가가 황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벌떡 일어난 늙은 거지는 그런 것이 귓가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호흡을 가다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지쳐있는 모습에도 한순간 막대한 공력이 노인의 음성에 깃들며 웅웅거리는 육합전성을 형성. 벽력탄 같은 발언을 모두의 귓가에 그대로 때려박았다.


[급보(急報). 사천, 청성, 아미의 방어가 뚫리고 수라궁주와 당가주가 서주(叙州)에서 격돌. 사도(邪道) 육진(六鎭)의 녹림과 수로채가 단일 세력으로 발호. 동시에 패흑련이 청해에서 출현.]


[두갈래로 갈라진 패흑련중 하나는 남하, 하나는 동남쪽 공동산으로 진격. 동남쪽으로 향하는 이들에서 패흑련주의 모습 확인. 공동산의 현천검제가 하산(下山)해 일전을 준비.]


[북방 기마민족의 군세 일부가 장성을 돌파. 그 외에 사마외도의 무인들이 제각기 집결해 큰 세력을 형성. 만금장이 배후인 것이 확실시 됨.]


[개방주의 이름으로써 고하노니, 이 땅에 진정으로 난세가 도래했음을 알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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