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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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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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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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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결승(3)

DUMMY

※※※



“너를 처음 만난게 한해 전이었나.”


희미한 미소를 단 유성의 첫마디였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툭 내뱉는 어조가 봄바람 같았다. 경기장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환호를 비롯한 거대한 압박감은 느껴지지도 않는듯 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것 같은데.”


검파에 한손을 가벼이 올린채로 백연을 향해 짓는 미소가 싱그러웠다. 무언가 많은 생각을 털어낸 듯한 표정이다. 처음 섬서에서 보았던 소년의 얼굴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간 겪은 일들 때문일까.


“그때와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아서.”

“어떤 의미에서?”

“내 마음가짐부터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 하려나. 옳고 그름이란 없지만,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


그리 말하며 한발을 비스듬히 움직인다.


스윽.


가죽신의 앞코가 백연을 향하는 자세. 모든 몸짓이 출수(出手)의 전조다. 삽시간에 백연의 머릿속에 수많은 투로가 스치는데, 그 모든게 유성이 또 한번 성장했다는 방증과도 같았다.


화산제일기재.


가지고 있는 재능만 단련해도 지고한 검에 닿을 오성이다. 정석적인 수련만을 거듭해도 성장세가 다른 이들을 압도했다. 그런 녀석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신강에서 청화단주를 상대하던 검룡과, 지금 눈앞의 소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네 검을 봤어. 그게 전부가 아니지?”


분광뇌풍검법에 대해 묻는다. 백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였다. 검법이 초식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끝까지 보고 싶네. 욕심이 나.”

“꺼낼 수 밖에 없게 만들면 되겠네.”


백연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에 유성이 픽 웃음을 흘리고는 답한다.


“그래야겠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두 소년이 입을 다물었다.


이미 경기가 시작된 후였다. 당장에 출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검을 꺼내지 않았다. 발검(拔劍)조차도 하나의 초식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하나의 초식을 내치는 것은 한번의 기회를 소모한다는 의미.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응시하며 가만히 기운을 끌어올릴 뿐.


파락.


백연의 옷자락 끝단이 흔들렸다. 어느 순간부터 소년의 흑단같은 머리칼 위로 뇌기가 흰 꽃잎마냥 분분히 튀어오르고 있었다.


태청신공의 공력이 세맥을 가득 채우고 휘돌며 몸의 상태를 극상으로 끌어올린다. 켜켜이 쌓여가는 진기의 중첩이 백회를 뜨겁게 달궜다. 동시에 소년의 눈에는 한없이 짙은 기파가 휘감기는 중이었다.


자령안(紫玲眼).


이 순간 투명한 자색으로 변한 백연의 눈동자는 마치 제비꽃으로 물을 들인듯 했다. 그 눈동자 위로 스치는 것은 수십, 수백에 달하는 가능성의 편린.


머릿속에서는 이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격하게 가속한 사고 속에서 수없이 많은 투로를 미리 예측하고 가늠한다. 그것은 아마 유성도 마찬가지일 터.


지금 저편에 선 화산파의 기재의 몸에서도 진한 기운이 물결처럼 흩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하신공의 진기 파동이 노을처럼 허공을 물들이는데, 어느새 그 내공 화후가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 만으로도 주변 대기에 영향을 줄 정도로 깊어진 까닭이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수 호흡에 달하는 시간이 흘렀다. 두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백합이 오가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고.


‘지금.’


먼저 움직인 것은 백연이었다.


검파에 손을 올린채였다. 어느 순간 소년의 발치에서 전조없이 뇌기가 작열하듯 터져나오더니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구축.


직후 백연이 서 있던 자리부터 유성의 코앞까지 한줄기 백색 선율이 새겨졌다.


“......!”


쩌억.


길쭉하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백연이 진각을 밟았다. 용형보의 여파가 그대로 허벅다리를 타고 상승. 맥동하는 근맥을 따라 찢어질 듯 거친 뇌기가 솟아오르고, 찰나에 허공을 격하는 흐린 빛살이 일었다.


일절의 화려한 움직임을 배제한 쾌속한 발검식의 극치인 발검. 묵(墨).


검귀의 무공중 하나에서 묘리를 가져왔다. 그 형태와 구성이 분광뇌풍검법에 더해져 새로운 검법의 첫 초식을 이룬다.


그 자체로써 하나의 벼락을 심상에 새기니.


발검. 뇌인(雷印).


극한의 쾌(快)와 예(銳)만을 취한 발검식이다. 백연 스스로의 인지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요, 잠깐이나마 검성조차 놀라게 만들었던 일검.


당진천의 만독을 찢어내고 무영의 태극혜검을 부쉈으며 악예린의 화광충천을 갈랐다.


하령이 언급했던대로 막는것이 본질적으로 불가(不可)에 가까운 일격이다. 정면으로 붙으려 한 이들은 전부 뚫렸다.


유성은 막으려 들지 않았다.


후욱.


검이 허공을 격하기 직전이었다. 백연이 걸음을 뗀 순간 코끝에 닿아오는 암향이 진했다. 직후 유성이 서 있던 자리에 한줄기 선이 그어졌다. 궤적에 있는 모든것을 갈라내는 검로(劍路).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암향표(暗香飄)를 미리......?’


허공에 은은하게 섞여든 향만이 검의 풍압에 흩어져내렸다. 직후 돌연 사선에서 흐릿한 형체가 일렁였다. 그와 함께 강렬한 기파가 구름처럼 부풀어오르며 허공에 수십갈래의 검로를 형성.


어느새 노을로 뒤덮인 검날이 가볍게 까딱이는 것과 동시에 수천장의 낙엽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바람과 함께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 양 수십장에 달하는 매화 꽃잎 형상의 검기가 일제히 낙하하며 백연의 신형 전체를 뒤덮었다.


쩌저저저저정!


허나 들려온 것은 피륙음이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연분홍빛 꽃잎 사이로 흐린 은하수같은 빛이 발출. 백청색 장포 위로 별무리같은 빛이 출렁이며 이지러졌다.


호신기 성라기단이었다. 백연의 신형 위로 자그마한 동심원이 수십겹 겹쳐 일어나며 연속적인 파문을 그리는 것도 잠시.


타악.


그 정도는 막아낼 줄 알았다는 듯 백연의 바로 옆에 내려앉은 유성이 검을 휘둘렀다. 여상한 표정으로 자하강기를 두른채로.


“......”


빨랐다. 이 순간 성라기단으로 초격을 막고 사선으로 짓쳐오는 검을 지그시 응시하는 백연에게도 그랬다. 간극 속에 접어든 상태에서도 직진 횡격으로 짓쳐 들어오는 검로가 매서웠는데, 그 순간 순간마다 변검과 환검의 묘리가 섞여 있다.


검격이 전진하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위협적으로 피어나는 꽃잎같은 검로가 있다. 그 수가 비록 십수개에 불과하다 해도 그랬다. 꽃잎의 수를 줄인 대신 파괴력을 증대시킨 매화검법.


‘전부 막아야 해.’


호신기로 받아낼 수 없는 수준이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백연의 몸에 운무같은 기파가 발현. 풍신을 연상시키는 바람같은 기파가 흐릿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그와 함께 여상히 발을 들어올린 백연이 일보를 사선으로 내딛었다. 뇌인을 내친 검을 회수하며 비스듬히 휘두르는 것과 동시였다.


본래라면 어려울 움직임이다. 발검식 뇌인은 그 파괴력과 속도를 대가로 보법을 크게 가져가는 초식이었고, 어깨의 움직임과 보법 간합을 크게 쓴 이상 반 호흡 이상을 빼앗기게 된다.


허나 백연은 그런 여파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꽃잎처럼 휘돌아 검을 내쳤다. 뇌인으로 인해 일어난 검풍을 휘감아 운해비영을 전개한 덕분이었다.


그와 함께 소년의 검이 이지러지며 흐릿한 빛으로 화했다. 검신의 내부에서 진기가 연이어 충돌하며 거대한 파문을 그려내었다.


-전진 투로로 전개. 음공 기예를 섞는데, 내칠때 기파를 사방으로 흩뿌려......


과거 곤륜의 무학을 꺼내어 엮어낸 초식을 손에 쥐고 휘두른다. 본래 장법이었던 무공은 이제 소년의 검의 일부가 되었다.


쿠르르르릉!


백연의 검이 비스듬히 횡격 궤적을 그려내는 것과 동시에 소년의 신형이 전진. 그 앞을 따라 천둥같은 굉음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음공 기예마냥 연이어 일어나는 굉음은 실재하는 파괴력이 되어 매화 꽃잎과 충돌했다. 직후 두 소년의 진기가 충돌한 타점에서 수십개의 파문이 일었다.


두번째 초식. 선운비뢰(仙雲飛雷).


광역 절기였다. 매화검법을 비롯한 상대의 커다란 초식을 짓이겨 베어버리기 위한 일검. 허나 음공 기예가 전부가 아니었다. 허공을 저미는 진기의 여파 사이로 일어나는 흐릿한 횡격. 옅은 운무같은 진기에 휘감겨 인지조차 어려운 검격이 스산하게 대기를 갈랐고.


쩌어어엉!


자하강기를 일으킨 유성의 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



[군문에서는 사승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풍백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가면 아래로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숨결이 짙었다. 받아친 화살이 지나치게 무거운 까닭이었는데, 십리나 되는 거리에서 저리 화살에 내가중수법의 묘리를 담아 쏘아낼 수 있는 무인이라 하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초월의 위에 다다른 자일 터.


‘설상가상.’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로써도 초월에 다다른 무인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행위. 하물며 그 상대가 눈앞의 노인인 이상에야 하나도 감당이 어려울 터인데.


[그러니 제겐 스승이 없습니다.]


백연에게 말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입에 담는다. 말에 큰 뜻을 두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화살을 연이어 받아친 여파가 극심했는데,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호흡 정도 더 벌필요가 있었다.


허나 눈앞의 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고집은 그대로구나. 네가 손에 쥔 그 무공을 누가 만들었지?”

[군부의 도지휘사, 대녕(大寧:내몽고) 일대를 평정하고 대명(大明)을 수호하던 추혼이었지요.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멀쩡하게 살아있는 노부를 죽었다 말하는고.”

[마음의 검(劍)이 부러진 칼잡이를 살아있다 말할 수 있습니까?]


두 호흡이 지나는 순간이었다.


풍백이 곧장 전진 보법을 내딛었다. 이 순간만큼은 계속해서 날아오던 화살이 없었는데, 추혼이 끼어든 탓인듯 했다.


기회였다.


한순간 검끝이 휘어들며 신공이 극한으로 발현. 사방 바람이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검신에 깃들었다.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풍백의 두자루 검이 그대로 노인의 몸에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고.


쩌저저저저정!


굉음이 일었다.


튀어오르는 핏물은 없었는데, 돌연 일어난 흐릿한 검풍(劍風) 두 줄기가 풍백의 검로를 전부 차단해버린 탓이었다.


그때쯤 혈선은 반보 뒤로 물러난 자세로 여전히 검을 껴안고 있었다. 찰나지간 그 검이 뽑혀나왔었다는 유일한 흔적은 전보다 조금 흐트러진 장포의 옷소매 뿐이었다.


“아직도 급하다. 그리한다고 베이겠느냐?”


풍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순간 그의 눈이 시리게 빛나며 형형한 연청색으로 발광했다. 그와 함께 한줄기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그의 검신에 휘감겼고.


[동청(東靑)].


문득 일어난 푸른 빛이 그와 혈선의 사이 허공에 새겨졌다. 한순간 혈선이 놀란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도 잠시.


콰아아아앙!


곧장 간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혈선의 코앞에 떨어진 검격 경파. 노검객의 검(劍)을 중심으로 거대한 동심원이 그려지더니 굉음과 함께 혈선의 신형이 뒤로 쏘아진 포탄마냥 튕겨나갔다.


“호오......!?”


삽시간에 삼십여장이 넘는 거리를 튕겨나간 혈선. 그 동선을 따라 희뿌연 분진이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한편, 풍백은 이미 발치에 진각을 내려찍고 있었다.


[방주 어르신! 활잡이는 여전히 그 자리입니까?]

“그렇네! 하지만 혈선까지 상대하려 들면......”

[어르신께선 이대로 무당산으로 가주시지요.]

“차라리 내가 혈선을 상대하겠네. 같이 싸우는 것이!”

[만금장의 전력이 저게 전부가 아닐겁니다. 설령 상대방이 지원 없이 이대로 붙는다 해도 승산이 희박하지요. 제가 붙들고 있겠습니다. 어르신의 걸음이라면 추적을 떨칠 수 있을테니.]

“자네......!”


쿠웅.


풍백은 더 말을 듣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직후 그의 신형이 멀리 떨어져 나간 혈선을 향해 급격하게 가속.


[서백(西白)]


어느 순간 불어온 흰 바람결을 휘감은 채로 풍백이 검을 휘둘렀다. 그때쯤 자리에서 멈춰선 혈선이 발검하는 것과 동시였다.


쩌엉!


검격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한손으로 검을 쥐곤 풍백의 이검을 여상히 막아낸 혈선이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늙은 거지 하나 잡는데 제자가 끼어들줄은 몰랐구나.”

[만금장은 정녕 정파 무림에 전쟁을 선포할 생각입니까? 개방주의 목을 노리다니.]

“몰랐더냐?”


혈선이 손목을 비틀었다. 한순간 그의 검이 휘어지며 압도적인 기파가 일어났다. 동시에 그의 검신을 타고 거대한 척력(斥力)이 발현.


그로 인해 풍백의 신형이 퉁기듯 뒤편으로 주욱 밀려났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평화에 찌든 벌레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런......만금장이 구파를 비롯한 정파 전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습구나. 지금 이것은 그저 작업을 편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일이 복잡해진다 해서 달라질 것이 없거늘.”


검을 늘어뜨린 혈선이 수염을 쓸었다. 하얗게 멀어버린 두 눈이 풍백을 스치듯 담았다.


“허나 개방주를 여기까지 몰아놓고 놓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 간만에 제자를 만나서 즐거웠다만, 이만 해야겠구나.”

[어딜......]

“뒤는 맡기겠네. 이 늙은이는 방주를 잡아야겠으니.”

“알았다.”


등뒤였다.


[......!]


돌연 일어난 커다란 기척이 사방을 점유. 기척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바람처럼 회전한 풍백이 이검을 내쳤고, 그에 길다란 흑포를 두른 사내가 화살을 손에 쥐고 그것이 단검이라도 된 양 휘두르는 것도 찰나.


쩌저저저정!


삽시간에 그어진 수십갈래의 검로를 일일이 한손에 쥔 화살로 전부 쳐내는 신기였다. 허공에 불티가 연달아 피어올랐다. 풍백조차 잠깐 경악으로 눈을 부릅뜰 정도였는데, 정작 화살을 손에 쥔 사내는 한없이 태연했다. 무감하다 느껴질 정도로.


[무슨.]


풍백 자신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뒤집어 쓴 가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한없이 깊은 흑색의 눈동자가 엿보였는데, 강대한 안법 구결이 웅웅거리며 휘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십리가 넘는 거리에서 화살을 쏘아대던 궁귀가 눈앞의 사내라는 것을.


등 뒤에 매건 키보다 큰 장궁(長弓)이 아니라도 알 수 밖에 없었다. 그 기운이 한없이 초월적이었고, 또 지금 손아귀를 저릿하게 만드는 내가중수법의 여파 때문에.


괴력난신.


‘화천귀제 그 이상. 어쩌면 대호법마저 넘는 강자.’


이런 작자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강대한 괴물이었다.


“죽지는 말아 보거라. 하나 남은 제자가 명을 달리하는 것은 아쉬운 일 아니겠더냐.”


그때쯤 혈선은 허허로운 기세로 풍백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막 시야 저편에 길게 늘어지는 개방주의 걸음을 붙잡으러 가는 모양새였다. 본래라면 신개가 충분히 따돌릴만 하지만, 그는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잡힐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그때였다.


[당신 둘 모두.]


돌연 바람이 멎었다. 삽시간에 사방의 대기가 배는 무거워진 듯 적막이 내려앉았다. 태연히 걸음을 떼던 혈선이 흠칫하며 멈춰서게 만들 정도로 갑작스레 일어난 일.


직후였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기파가 한줄기 태풍이 되어 궁귀와 혈선의 머리 위에 내리꽂혔다. 사방 대지에 널려있던 바위들마저 삽시간에 깎여 나갈만큼 강대한 기의 운집체.


그 속에서 가면이 청년의 발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바람을 타고 미친듯이 흩날리는 길다란 머리칼 아래 연푸른 눈이 형형하게 빛을 내었다.


우웅-


그와 함께 돌풍 속에서 흐린 검(劍)의 형상이 수없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족히 수백자루에 달하는 무형(無形)의 검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마치 검으로 이루어진 별무리라도 되는듯한 풍경으로.


[이곳은 못 지나갑니다.]


검성(劍星)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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