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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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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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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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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예선(3)

DUMMY

※※※



“들어보자.”


곤륜파의 전각이었다. 한창 수련하는 사형들을 제치고 안에 들어온 백연이 남궁유진과 마주앉았다. 백색 장포의 소년이 주변을 살풋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백연이 덧붙였다.


“여긴 다른귀는 없어.”


백연 자신이 직접 밤낮으로 확인중이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선아가 조사하고 있는 무기. 누군가의 사주가 분명한데, 그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무당파 경내에 들어온 모든 인물들을 한번씩은 의심해야 옳았다. 적어도 그들이 무기를 조사하는 와중에는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백연은 극히 경계중이었다.


덕분에 곤륜파 근처는 무당파 경내 어느곳보다도 깨끗하다 할 수 있었다. 백연이 아는 가장 믿을만한 장소였다.


“우선 순서대로 들려줘. 내가 떠나고, 천주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거의 이야기부터 묻는다. 용봉지회 이후, 겨울 초입에 들어선 남궁세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인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그의 물음에 남궁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에서 감찰사가 내려온다는 소식은 백연도 들었죠. 그리고 남궁에서 가주직 계승을 위한 연회를 연다는 것도.”

“그래.”

“연회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어요. 검왕께서는 장로들을 비롯한 가문 내의 여러 분파와 세력들을 명분을 잡은 김에 싹 정리해 버리셨고, 그 덕에 가주직의 권한은 제게 온전히 승계될 수 있었죠.”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한다. 아니, 반발할 수 없었다는 말이 옳다. 당장 검왕의 두 아들이 만금장과 함께 검왕을 도모하려다 실패했던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중독에서 벗어나 힘의 대부분을 되찾은 검왕은 그 병세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위세를 흩뿌렸다고.


남궁유진을 가주직에 올리는 일은 쾌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 없이 가주의 위에 오르고, 연회가 끝나갈 무렵.


“감찰사와 대화를 나눈 아버님께서, 굳은 얼굴로 급박히 여정을 떠나셨어요. 아무런 짐도 아무런 행낭도 없이, 검 한자루만을 걸치고 낭인의 행색으로 가시더군요.”


담담히 말하는 음성에 옅은 슬픔이 묻어났다.


“네게 아무말도 남기지 않고?”

“......아니요. 하지만 정확한 대답은 해주시지 않더군요. 아버님께서는 제게 건네는 조언과 당부 외에, 당신의 행선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모호하고도 짧은 답만 남기셨지요.”


-북방의 별이 위험하다. 낡은 검이 거들어야 할 일이야. 검은 태양이 다시금 떠오름에.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남궁유진이 전달해준 검왕의 말. 세 마디 중 하나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낡은 검이라는 것은 아마 검왕 스스로를 일컫는 명칭일 터.


허나 나머지 둘은 명확하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북방의 별은 누구이고, 검은 태양은 누구인가.


“북방의 별......이쪽은 짐작이 아예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일전 스치듯 지나간 이름이 머리에 떠올랐다. 외세로부터 장성을 수호하는 괴물이라고 했던가. 철야방주가 직접 입에 담았던 인물을 뇌리에서 되새긴 백연이 중얼거렸다.


“천뢰시 종리군.”

“아버님께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에요. 북방 장성 일대의 도지휘사(都指揮使)라고.”

“도지휘사라.”


본디 한개 성의 군정을 통솔하는 장수의 직책이다. 하지만 뒤이은 설명은 그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 힘과 위세가 도지휘사를 초월한 인물이라 들었어요. 산서부터 하북, 요녕 일대까지의 장성을 수호하는 괴물.”


무지막지한 범위를 가볍게 언급한다. 그만한 범위의 군대를 통솔하는 이라니.


“도지휘사의 자리에 머무는 이유는 종리군 본인이 북방 외세들과 곧잘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때때로 장성을 벗어나 북방을 휩쓸고 올때도 있기에.”

“일선에 목을 내놓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소리네. 고위 직책을 맡겼다가 죽거나 잡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그렇죠. 다만 그 무위가 더없이 드높다 했어요.”


남궁유진이 미미하게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가장 강력할 때의 아버님께서도 승부를 가벼이 논하기 어렵다 평하실 만큼.”

“......검왕이?”


백연이 반문했다.


그가 아는 검왕의 무위는 초월의 영역을 넘어선 괴물이다. 검왕의 심상에서 보았던 그 힘, 그것이 바로 남궁산의 진정한 무위일터.

지금의 검왕도 강력하지만 분명 세월과 병세의 앞에 약해진 몸이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힘을 선보이며 천주산 일대를 간단히 정리한 인물인데.


그런 그가 전성기 힘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울 인물이라고?


“괴물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나보네.”

“그렇죠.”

“그런데, 그가 북방의 별이라고 하면......”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괴물이 위험할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새외 북방의 무신(武神)들, 누백년을 넘어 명맥을 이어온 원(元)의 잔당들, 빙궁의 초월자들 등등이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런 이들은 수십년간 종리군의 선에서 막혀온 인물들이에요.”


남궁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검은 태양은 도대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질 않아요. 아버님께서도 그 부분은 일절 말없이 함구하셨고요.”


측정되지 않는 변수라는 의미였다. 남궁세가의 가주직에 오른 남궁유진조차 모른다면 알고 있는 이가 몇 없을터.


아마 남궁유진도 나름대로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찾아봤겠지. 북방의 별이 종리군일 것이라는 추측에 바로 동의하는 것도 그러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검은 태양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마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그 뜻을 알겠지.


황실의 인물이나 풍백을 비롯한 초월자들에게 물어야 할 일이었다.


“나도 따로 알아볼게. 그건 제쳐두고, 그 뒤는 어떻게 된 거야?”


백연이 물었다.


“들어보니 검왕이 떠나고도 감찰사는 남은 것 같은데.”

“맞아요. 아버님께서 떠나시고 감찰사는 안휘성 포정사(布正使)와 협조를 통해 회녕부 지부대인의 사건에 관해 조사를 시작했지요. 다만, 처음에는 분명 적극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결론이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남궁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부터 감찰사의 행동이 이상해지더군요. 증거를 적당히 묻고 폐허가 된 회녕부 관아를 밀어버리지 않나, 심지어는 몇몇 흔적들은 은폐를 한 정황까지 있어요. 남궁세가는 본래 조사에 관여할 수 없기에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요.”

“......어째서.”


백연이 중얼거렸다.


감찰사라면 황실의 관리. 사사로이 행동할 인물이 아니다. 만금장의 흔적을 덮어버린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게 일은 대외적으로는 금원전장의 장주, 그러니까 금원방 금원방주의 소행으로 매듭지어졌어요. 나머지 관련된 모든 증거는 전부 인멸.”

“......”

“만금장의 이름은 이번 일에서 완전히 지워졌어요.”


담담히 말하는 남궁유진의 얼굴이 심각했다. 백연은 그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내용들은 네가 조사한거야? 남궁세가 앞에서 대놓고 드러냈을 리는 없어 보이는데.”

“네. 아버님의 당부도 있었고, 무언가 일이 있을때 손놓고 맡겨놓은채로 지켜보는건 가주의 자세가 아니라고 하셨기도 했고요.”

“위험했을 수도 있는데.”

“필요한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괜찮으니까요.”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짓는 남궁유진의 모습. 그 행색이 퍽이나 대견했다. 잠시 지켜보던 백연이 손을 뻗어 머리를 쓸어줄 만큼.


“고생했어.”

“헤헤......”


칭찬에 실없이 웃는 소년의 모습이 또래의 모습을 얼핏 드러낸다. 잠시 그렇게 남궁유진의 모습을 보던 백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실이 묻어버렸다는건 네 추측?”

“......음, 네.”

“이유가 있어? 증거라거나.”


백연의 물음에 남궁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순전히 제 감이에요. 무엇보다 아버님께서 황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기도 했고.”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추측이었다. 당장 감찰사가 그리 행동했다면 합당한 이유는 몇가지가 없으니까.


황실 감찰사에도 개입할 만큼 만금장이 넓게 손을 뻗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황실에서 무언가 만금장과 모종의 관계가 있거나.


가능성 낮은 가설로는 감찰사 본인이 죽임당하고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추측도 가능할테지만, 황실 관리에 손을 대고 오랜기간 그 사실을 숨기는 것도 쉽지 않다.


“우선은 거기까지인가.”

“네. 당장 바로 말씀드릴 일은 그거였어요. 그리고 또......”


남궁유진이 고민하듯 말끝을 늘이다 중얼거렸다.


“아버님께서 행방이 묘연하신 것도요.”

“검왕과 연락이 안되는거야?”

“네. 그날 이후로 따로 연락이 온 적이 없어요. 어디서 나타나셨다는 말도 듣지 못했고. 이쪽에서 기별을 보내고자 해도 위치를 모르니까요. 아마 북방 어디선가 알아서 잘 지내고 계실테지만. 그곳은 워낙에 마경(魔境)이기도 하고요.”


말하며 어설피 웃는 모습이 어색했다. 옅은 한숨을 내쉰 백연이 남궁유진의 머리를 재차 쓸어댔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도 관련해서 힘 닿는데까지 알아볼게.”


남궁유진이 언급한 정보의 중요도가 무거웠다. 백연 자신도 당장 어느것을 우선에 둬야할지 머리가 아플 만큼.


‘우선은 검은 태양에 관한걸 뒤로 미룬다.’


검왕이 북방으로 향하며 언급한 이상 종리군과 검왕이 검은 태양이 무엇이건 간에 대책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 두사람의 무위면 천하에 막아내지 못할 것이 거의 없을테고.


당장은 괜찮을 것이다. 당장은.


‘만금장에 관한 일은.’


앞으로 알아봐야겠지. 동시에 황실을 무작정 믿으면 안된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검수림(劍樹林:칼로 이루어진 숲)도 아니고 사방에 믿을 사람이 없네.’


사방에서 칼끝을 겨누고 있는 느낌. 정파 무림의 중심에 발을 들이고 있는데, 갈수록 사마외도의 마경보다 심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왠지 익숙한 감각에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간 잘해왔네. 네가 또 이곳저곳에 연락을 보냈다며. 남궁가주한테 내 이름을 들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던데. 청성파도 그렇고.”


백연의 말에 남궁유진이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별거 아니에요.”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만금장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정파 무림 곳곳에 연락을 취하고......몸이 열개라도 바쁠텐데.”


백연이 웃었다.


“진정한 남궁의 가주구나. 부족함이 없어.”


남궁유진의 자질은 뛰어났다. 저 나이에 이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련지.


“다만,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거야. 네가 말한대로 심상치 않은 상황이니까.”


마교가 움직이고 있다. 혈교의 동태도 보인다. 사파는 사방 천지에서 날뛰며 녹림과 수로채는 점차 모이며 세력을 온존시키고 있다.


전부.


백연이 직접 겪은 일들이었다.


청해 옥수는 모든 시기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으나 나머지 영역은 그렇지 못했다. 사천의 코앞까지 사파가 날뛰고 있으니.


“가문의 방비를 철저히 해둬.”

“명심할게요.”

“아마 안휘쪽은 조금 더 안전할거야. 사마외도의 물결은 서쪽과 남쪽에서 몰려올테니. 그렇다곤 해도 방심할 수는 없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백연이 남궁유진과 눈을 마주쳤다. 눈앞의 어린 소년은 이제 짊어진 것이 많았다. 정파 무림에서 중요한 존재라고 칭할 수 있을만큼.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멀쩡해야 한다.”

“네.”

“그래. 잘 새겨두고.”


고개를 살풋 숙인 남궁유진이 미소를 흘렸다. 짧은 당부와 조언 몇마디가 이리 기분 좋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검왕이 사라진 이후 그 누구도 이리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주로써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남궁유진 자신의 몫이었으니.


그간 일을 잘 수행해온 것은 맞았으나,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기에. 남궁유진은 지금의 시간이 너무나도 달가웠다.


눈앞의 소년.


환골탈태를 겪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앳된 느낌을 벗어난 백연은 이제 소년과 청년 어디 사이의 중간에 선 존재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변한것은 겉모습밖에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상황을 가늠하고, 조언을 하는 말에 담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은 여전했다.


처음 백연을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 고민되는게 있으면 논의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백연의 모습에 남궁유진이 생긋 웃었다.


이어지는 안부 대화가 가벼웠다. 무거운 주제를 치워버린 뒤에는 각자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다.


“......내 이야기는 조금 긴데.”

“나중에 들려주셔도 괜찮아요.”

“그래.”


신강에서 겪은 일은 전부 입밖에 내지 못했다. 간략하게 태청신공을 엮어냈다는 말로만 기나긴 여정을 갈음했을 뿐.


그렇게 각자의 간략한 이야기가 끝나고 뒤이은 것은 비무제전에 관한 대화였다.


“남궁세가는 이번에 몇명 출전하지 않아요. 본래는 제가 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가주가 참여하기는 그렇지.”

“그러게요. 가문의 방계중 몇분이 참여하긴 하는데,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가주 직전무공인 제왕검형과 천풍검법은 물론이고, 직계들의 창궁무애검법까지 전부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남궁의 상징이 비무제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남궁세가의 가주로써 가문의 선전을 바라기는 하지만, 동시에 곤륜파도 응원하려고요.”

“곤륜을?”

“네. 저는 백연을 비롯한 곤륜파 무인분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어요. 비록 지금 사람들에겐 암화 하나만이 경계 대상이지만.”


남궁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번 비무제전에서 곤륜파의 이름이 만방에 알려질거라고 믿어요.”

“남궁가주의 믿음이라니, 무겁네.”

“내일부터 예선의 시작이죠? 전부 챙겨볼테니까.”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바라보는 소년의 기대가 컸지만, 그는 그것에 부응할 자신이 있었다.


“기대해도 좋아. 내일 보면 알겠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남궁유진이 백연을 쳐다보았다. 본래 그 또한 비무제전에서 언젠가 우승하는게 꿈이었건만. 이제는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적잖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눈앞의 백연이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지켜볼 수 있다는 기쁨도 스쳤다.


어쩌면 저 사람은 정말 모두의 위에 설지도 모른다.


아니, 설 것이다. 남궁유진은 그렇게 믿었다.



※※※



이튿날 아침.


이른 시각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백청색 장포를 걸친 곤륜파의 소년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 잔뜩 긴장한 듯한 행색을 한 무인들이 제각기 몸을 풀거나 하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암.”


반면 백연의 사형들은 나무에 기댄채로 하품을 하거나 하는 행색이 여유로웠다. 아니, 너무 긴장감이 없다고 해야할까.


“......다들 멀쩡한가보네?”


가만히 쳐다보던 백연이 물어볼 정도로.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단휘의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너한테 매일 두들겨 맞으면 이렇게 된다.”

“하하.”

“그나저나 다들 산문 근처에서 뭐하는거야?”


눈을 가늘게 뜬 단휘가 물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아침 일찍 이동해 미리 대회장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려 일어난건데, 이상하게 무당파의 산문 근처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덕분에 길이 꽉 틀어막힌 상황.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가만히 기다리거라. 지금 올라오는 문파가 있단다. 아마 그 행렬을 보려 모인 이들도 꽤 있는 듯 싶구나.”


운결의 음성에 곤륜파의 소년 소녀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누가 오길래 그러는 겁니까?”


이결의 질문에 운결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문파가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그때였다.


쿠웅.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아침 햇살이 기울어졌다. 깃털같은 구름을 뚫고 내려앉은 빛살이 황톳빛 가사(袈裟)와 그 아래의 회색 빛깔 승포(僧布)를 비춰내었다. 무당파 산문의 너머로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문파보다 길다란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한명 한명이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역근경(易筋經)으로 빚어진 신체는 강건한 기세를 받쳐주는 바위와 같고, 흘러나오는 법력(法力) 기파는 끊이지 않는 물결처럼 허공을 물들였다.


그런 기세가 수십.


그리고 그 사이, 한 승려의 등에 눈을 감은채로 업힌 늙은 노승(老僧)이 눈에 보였다. 다리가 불편한 듯 업혀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주변의 모두가 그 승려를 에워싸고 호위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아무런 기파가 느껴지지 않음에도.


‘반박귀진이다.’


백연이 감탄과 함께 생각하는 그 순간이었다.


문득.


어느 순간 노승이 눈을 뜨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서.


인파 사이를 꿰뚫고 정확히 백연을 향해 꽂힌 시선이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무거웠다.


아주 찰나였으나 선명하게 인지했다.


그러나 그 직후.


꿈결처럼 스쳤던 시선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노승은 여전히 눈을 감은 모습 그대로 업혀 행렬 사이로 사라졌다. 백연 자신조차 방금의 시선이 착각인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소림사가 왔다!”


이윽고 사람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조금씩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마침내 북숭소림(北崇少林)이 무당산에 당도한 것이었다. 비무제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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