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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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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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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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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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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음모(3)

DUMMY

술법을 논한다.


천하에 가장 신비한 기예다. 백연도 하령에게 조금이나마 전수 받았다지만, 그 한계나 방향성은 그의 손아귀에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년의 근본이 검(劍)과 무예(武藝)에 있는 탓이다.


그런고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 공능을 예측할 수 없다.


뛰어난 술법가가 미리 준비한 술법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준비 시간과 희생되는 매개체를 대가로 개인에게 허락된 것 이상의 힘을 끌어내어 현실에 구현시킨다.


다르게 말하면.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었나.”


철야방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그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술법무공의 매개체라. 그렇다면 이런 것이 스물여섯자루가 더......적은게 아니었군.”


그의 말대로였다.


어떤 술법무공을 위한 장치인지 알 수는 없다. 허나 그 양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런것을 무당파 경내 전역에 뿌린다면?


“정말로 뛰어난 술법무공의 대가가 있다 하면, 큰 피해로 다가올 물건이군요.”

“그리고 지금 무당산에는 그런 이가 둘이나 있지.”


팔짱을 낀 철야방주가 입매를 비틀었다. 거한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와룡천견(臥龍千見), 그리고 만귀(萬鬼).”

“만귀는 별호입니까? 지금 모산 장문인의 이름은 도홍이라 들었는데.”

“만귀 도홍. 맞네.”

“살벌한 별호로군요. 어째서 그런......”

“거의 십여년 전에 일어났던 일 때문일세. 마교와의 소요전을 벌이던 와중 만귀가 신강에 단신으로 쳐들어갔지. 당시에는 장문인이 아니었는데.”


과거를 입에 담는 철야방주의 눈매 한쪽이 찌푸려졌다. 싫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이.


“마도(魔道)의 마을 하나를 술법무공의 매개로 삼아 교의 마인들 수백과 당대 장로중 하나를 격살했던 일이 있네.”


백연과 선아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들었다.


그 위업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철야방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기에.


“지금, 술법무공의 매개로 마을을 삼았다고 하셨습니까?”

“마을 전체의 생명이지.”

“그게 가능한거에요?”


선아의 물음. 그에 답한것은 백연이었다.


“가능하지. 술법무공은 술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했어. 아마 하령도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거야.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

“하지만, 마을 하나의 생명이라면......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야 당연히 전부-.”


백연이 입술을 베어물었다.


“죽었겠지.”

“죽는것보다 못할 것이네. 만귀 도홍은 넋과 혼백을 부리는 것에 능통하다 하더군. 전대 장문인인 쇄혼노군도 그쪽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만귀는 더해.”

“그것을 다른 정파인들이 그냥 두고 봤습니까?”


철야방주가 고개를 저었다.


“정파 내에서도 그의 처분에 대한 의견이 많이 갈렸었지.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마도의 생명. 만귀가 중원에 피해를 끼친것이 없으니 유야무야 넘어갔네. 더욱이 당시에는 우호법의 사건이 워낙 강렬하게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고.”


이번것은 백연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우호법 화천귀제. 중원에 등장해 연이은 소요전을 벌이다가 그의 염혈신공을 기반으로 여러개의 마을을 불태우고 먹어치웠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증폭되는 염혈신공의 특성상 현천검제와 맞붙었을때의 화천귀제는 이미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뒤였을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 뒤였다면, 당연히 마도 무림에 대한 정파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잔악하기 그지없군요. 마도 무림에 살아가는 사람......무림인이 아닌 민초들은 어딜가나 별다를게 없는것을.”

“암화 그대의 말이 맞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 하오문은 만귀를 주의하기 시작했지. 쇄혼노군도 음침한 작자였지만, 만귀는......”


철야방주가 코끝을 찡그렸다.


“성화방주가 보면 일언반구 없이 격살을 시도할걸세.”

“하령이 말입니까?”

“그렇네.”


백연이 검파를 매만졌다.


그 하령이 일언반구 없이 살초를 내친다니. 그자에 대한 하령의 적개심을 듣는 것 만으로도 알법했다. 모산의 음침한 늙은이라 표현하던 쇄혼노군에게조차 그런 식으로 행하지는 않을테니.


“구파중 하나의 수장이 그런 사람이라니.”


선아가 중얼거린 말에 철야방주가 답했다.


“깨끗하기만 한 집단은 없지. 정사마 전부 마찬가지로.”


옅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직전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선아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힐끗 살핀 백연이 한숨을 뱉었다.


“기분 풀어.”

“......응.”

“일 끝나면 운현에서 자고 가야할테니까. 오늘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러 가볼까.”

“......정말?”


스르륵 표정이 풀리며 반색하는 선아였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철야방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만귀는 주의해야겠군요. 어떤 술법을 위해서 만든건지는 아직 모르니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와룡천견쪽은......제갈세가는 술법무공에 매개를 그리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압니다만.”

“그렇지.”

“진법과 기예에 능한 이들이니, 조금 제쳐둬야 할지.”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제갈명에게 물어보거나 제갈천을 한번 떠보는 것도 좋을 일.


“그리고 아예 제 삼자가 숨어들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용봉지회처럼.”


백연이 말했다.


그가 희박하다 생각하고 있는 가능성이긴 했다. 비무제전 첫날 신승이 보여준 것은 분명 무당산 자락 전체를 훑는 광대한 파사현정의 기운이었고, 사마외도의 삿된 무인들이 있다 하면 그 기감에 걸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 무구를 주문했던 노도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쪽 세력이 어떻게 암약하고 있을지 몰랐다. 백연은 이번 일에도 만금장의 손이 닿아 있다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모산파도.


‘천살문에서 괜히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는 참월대주가 아는것을 전부 말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기저에 깔린 이유가 있을테니.


그쪽에서는 모산파를 주의하라 했고, 이 자리에 술법무공의 매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새로 모산파의 장문직에 오른 이는 만귀라 불리는 자였다.


‘넋과 혼백을 잘 다룬다고?’


-모산파에는 귀혼대법(歸魂大法)이라는 무공이 있다는데.

-귀혼대법은 금술(禁術)이야.


참월대주와 하령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완전한 우연이라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한번쯤 천살문을 찾아가봐야 할 일일지도 몰랐다.


고민하듯 뺨을 두들기던 백연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무구들은 전부 빼놓도록 하죠. 애시당초 그쪽에서도 우리가 찾아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겁니다. 만약 이것들을 전부 은밀히 찾아냈다면 몰라도 칠룡의 대련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마음 같아서는 숨겨놓고 주모자를 찾아보고 싶지만 안되겠군요.”

“그게 맞아 보이는군. 우선은 안전을 챙겨야지.”

“돌발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소림방장과 무당장문이 함께 자리한 장소를 정면으로 뒤집어 엎을 작자는 없겠지요.”


신교 교주라도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이상에야 자살 행위다. 백연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술법무공의 매개가 발각이 된 이상 상대가 아예 움직이지 않을수도 있었다.


특히 그 상대가 모산파라면.


“그리고 선아 네가 말한대로 무구의 용법은 알았지만 목적은 아직 불명이니까.”


그것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히 그들의 손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허나 해결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철야방주. 하오문의 연락망을 써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헌데 무슨 생각인가?”

“이것, 몇개만 취합해서 서안으로 보내도록 하죠. 하령에게.”


철야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성화방주라면 이것들이 어떤 술법을 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을법 하군. 그리하겠네.”

“좋습니다. 이번 일은 그리 하지요.”


철야방의 사건, 얼추 매듭이 지어졌다. 그들이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뒷일은 두고봐야 알겠지.


백연은 길게 한숨을 뱉고는 선아를 돌아보았다.


“잘했어. 고생많았다.”

“뭘. 당연한거지.”

“네 덕분에 일이 많이 단축되었으니까.”


철야방의 사건이 일단락된 일등 공신이었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백연은 잘 알고 있었다.


혼자 무구를 조사하고, 파편이 술법무공의 매개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잠깐만, 파편을 어떻게.’


문득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보니 무기에 기를 불어넣었을때 박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것을 처음부터 알고 실험했을리가 없었다. 반복적인 조사 속에서 얻어낸 결과라고 하면. 처음 했을때는 파편이 터져나올것도 모르고 했을텐데.


“잠깐만. 백선아. 너 조사할때는 어떻게......”


소년이 성큼 다가섰다. 그의 물음에 선아가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숨을 작게 들이키는 것이 보였다.


“그냥, 어쩌다보니? 예상이었어.”

“무구에 기를 불어넣는 짓거리를 한번만 했을리가 없는데. 너.”


백연이 팔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기감이 예리하게 일어섰다. 확장된 기감 속에서 백연은 옅은 혈향을 느꼈다. 빠르게 손을 뻗은 백연이 그대로 선아의 팔목을 낚아챘다.


“으앗!”


스륵.


지금껏 백청색 장포로 덮여있던 소매가 죽 내려갔다. 오랜 야장일로 군데군데 흉이 있지만 본래 매끈하게 드러나 있어야 할 팔은 그렇지 못했다. 깨끗한 천으로 칭칭 감긴 선아의 팔을 확인한 백연이 이를 깨물었다.


“지, 진짜 괜찮은데!”

“붕대 풀어봐.”

“다 나았단 말야.”

“혈향이 나는데. 잘 눌러놔서 지금까지 내가 못 맡은게 용하다만.”


백연의 말에 난처하게 웃은 선아가 한숨과 함께 팔에 두른 천을 풀어냈다.


“......으읏.”


그녀의 잇새로 옅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천에 가려져 있던 상처를 확인한 백연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곁에서 팔짱을 끼고 보던 철야방주도 헛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그러고 있었단 말인가? 자네는 대체......”


그녀의 팔은 빈말로도 상태가 좋다고 해줄 수 없었다. 수십조각이 넘는 철편이 그녀의 팔을 파고들거나 스치고 지나간 듯,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상처가 아직도 선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와중에 피를 열심히 닦아냈는지 상처는 깨끗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벌어진 상처 사이로 핏물이 진득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지독하게 아팠을 것이 뻔한 상처. 심지어 이것은 이미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한 뒤로 보였다.


피부에 파고든 철편을 전부 빼내야 했을 텐데, 그것을 혼자 했다고?


“방주께 나머지 일은 부탁드리지요. 저희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약선객을 만나러 가야 했는데,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해야겠군요.”

“그리하게. 빨리 치료받는게 좋아 보이는군. 백철 야장의 안위는 철야방과도 관련이 없다 할 수 없으니.”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은데......”

“선아 그대는 암화의 말을 좀 더 잘 듣는게 낫겠군. 앞으로도 속을 썩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일세.”


철야방주가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 사이 백연은 선아의 팔에 천을 다시 꼼꼼히 감아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약선객을 만나 선아의 치료부터 부탁할 생각이었다.


“가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참을만 하니깐 그리 급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보고 다칠까 매번 걱정하던 사람은 어디가고?”

“헤헤......”


철야방주의 집무실을 나서는 뒷모습이 재빨랐다. 폭풍처럼 들이닥쳐 벽력탄 같은 소식을 던지고 지나간 두 사람의 등을 보며 철야방주가 제멋대로 뻗은 수염을 쓸었다.


“좋을때군.”


무뚝뚝한 그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깃들었다. 그렇게 잠시간 문을 응시하던 철야방주가 이윽고 철편을 그러모았다. 옅은 한숨과 함께 다시 책상 앞에 앉은 그가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서안에 소식부터......”


할일이 매우 많았다.



※※※



“명이 오빠!”


맑게 달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무표정하게 무당산 방면의 하늘을 응시하던 제갈명이 금새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려려양. 아직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돼요. 오늘치 약효가 돌려면 숨을 크게 쉬어야 하는데.”

“이렇게요?”


그의 말에 가슴을 크게 부풀리는 소녀다. 제갈명은 그것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그렇게 열심히 하면 아마 려려양은 나중에 엄청 강해져 있을거에요.”

“강해져요? 얼마나?”

“음......”


제갈명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실체화하기 힘든 수치였다. 이 소녀는 암화 백연이 말한대로 구음절맥을 앓고 있었고, 절맥증을 완치시키기만 한다면 아마 천하에 몇 없을 내공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그것을 체화해 무공의 바탕으로 삼는것은 소녀의 역량에 달렸다곤 하나, 이 소녀는 자질이 있었다. 적어도 제갈명의 짧은 무공 식견으론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미래를 예측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백연이 오면 알법도 한데.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별호 한 자 얻는 정도는 충분하겠죠.”

“백연 오빠처럼요?”

“맞아요. 그런데 백연의 별호는 어디에서 들었나요?”

“저어기, 사람들이 매일 말해요.”


소녀가 손을 펼친다. 그녀의 생각의 크기를 표현하려는 듯이.


“암화 백연은 엄청 엄청 강하대요. 제가 아는 오빠 맞죠?”

“하하. 맞을거에요.”


그렇게 제갈명이 석려려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였다. 문득 소녀가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제갈명의 귓가에 옅은 미풍같은 바람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허공에 물밀듯이 몰려오는 해일같은 혈향, 그리고 동시에 쏟아지는 바람, 숲, 햇빛, 흙더미와 비바람과 뇌전......온갖 향이 하나로 뒤섞이듯 몰아친다.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예민한 감각 속에서도 독보적인 향취를 인지한 제갈명이 몸을 일으켰다.


“오셨군요.”


그가 말하기 무섭게 탁 노인의 집으로 들어서는 두 인영을 보며 제갈명이 말했다. 그의 인사에 백연이 고개를 홱 돌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헌데 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자주 보는 표정이었다. 누군가가 다쳤을때,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내보이는 얼굴.


조금 더 침착하고 냉정했지만 골자는 다르지 않았다. 그것을 인지한 제갈명이 옆을 살폈다.


“환자입니까?”

“맞습니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팔에 상당한 수의 자상과 열상......직접 보는게 빠르겠지요. 약선객.”

“예.”

“치료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투가 위압적이지 못했다. 다친 사람에 대한 걱정이 묻어있으나 동시에 제갈명의 의사를 진지하게 묻는 것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할만큼 위험한 것은 아닌가. 아니, 어쩌면 이것은 암화의 성정을 나타내는 부분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제갈명은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지요.”


그가 흔쾌히 답했다. 그러자 백연의 표정이 탁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분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선아에요. 백선아.”


선아가 한걸음 나섰다. 그녀에게 제갈명이 다가왔다. 천으로 칭칭 감싼 팔을 내어보이자 제갈명이 들춰 속을 확인하고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군요. 아직 철조각이 안빠진 자리도 있습니다.”

“준비해드릴 건 없습니까?”

“필요한건 없습니다. 백연은 쉬고 계셔도 됩니다.”

“흉은.”


백연이 문득 물었다. 그의 말에 선아와 제갈명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상처가 작지 않다. 그어진 자국이 많아 저리 그냥 두면 십중팔구 산적이나 사마외도의 낭인마냥 팔에 수십갈래의 흉이 남을터인데, 선아에게 좋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녀가 그런 방면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라곤 해도 그랬다.


그의 물음에 제갈명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 별호가 헛으로 얻은건 아닙니다.”

“......감사하군요.”

“쉬고 계시지요. 그렇잖아도 려려가 보고 싶어 하더군요.”


그 말과 함께 제갈명이 선아를 끌고 탁 노인의 집 안으로 사라졌다.


일전 왔을때보다 부쩍 커진 탁 노인의 집이었다. 막 지은 새로운 전각이 두채나 생긴 것이 철야방 측에서도 힘을 쓴 모양이었다.


그 바깥 한 구석의 바위에 걸터앉은 백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그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오는 작은 인영이 눈에 띄었다.


“려려?”

“백연 오빠!”


그 말에 바로 달려오는 모습이 활기찼다. 확연히 좋아진 안색에 백연이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아직 다 나으려면 많이 남았겠지만, 빠르게 차도가 보이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제 아이의 체온도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 했다.


“몸은 좀 어때?”

“하나도 안아파요. 명이 오빠 덕분이에요.”

“그래. 다행이다.”


백연이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쓸었다. 그에 미소를 지은 석려려가 갑자기 손을 쫙 펼쳤다.


“신기한거 하나 보여줄까요 오빠?”

“뭔데?”

“저번에 오빠가 안 춥게 해줬잖아요. 그래서 그걸 이렇게......”


그 순간. 자연스레 허공에 그어내린 석려려의 손끝을 타고 선명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화륵.


“무슨......”


극히 찰나지간, 백연의 눈 앞에 스친것은 선연한 푸른색의 불꽃이었다. 한없이 정제된 기파.


직후 석려려가 손을 쥐는 순간 불꽃은 환상처럼 사라졌다. 누군가는 착각했다 느낄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백연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


“흐아아. 힘들다. 어때요?”


백연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석려려. 그녀가 방금 펼친 무공은 바로,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적양공인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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