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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빙의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모타
작품등록일 :
2020.05.11 14:47
최근연재일 :
2020.08.09 23:23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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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추천수 :
19
글자수 :
58,414

작성
20.08.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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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화. 제1회 빙의자 대책 회의 (02)

DUMMY

“깔끔 좋아하네!”



재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으아!”



묵직한 소리에 깜짝 놀란 난 가쁜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내가 놀란 것에 더 놀랐는지 황과 찬송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봤다.

나는 재호를 향해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부탁이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 간 떨어지겠다.”

“안 죽는 앤 빠져!”



······미안하다, 안 죽어서.


졸지에 한 소리 듣게 된 나는 다시금 크게 심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그 사이 찬송과 재호의 투닥거림이 다시 시작됐다.



“글도 거지 같아, 개연성도 부족해, 흐름도 구려. 애초에 전쟁물이라고 다 죽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쓰고 싶은 거 쓴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불만 있으면 보지 마.”

“독자가 피드백을 하면 좀 받아들여.”

“그게 피드백이냐? 비난이지.”

“확실히 피드백은 아니죠.”



나름 얌전하게 회의를 진행하던 황 또한 정색하며 거들었다.

아무래도 찬송과 그의 글이 욕을 먹어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이 나무라면 괜히 불쾌하지 않은가. 하물며 황은 찬송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으니 더욱 기분이 나쁠 것이다.


두 사람이 합세해 뭐라 하는데도 재호는 조금의 기도 죽지 않은 채 특유의 까칠한 어투를 쏘아붙였다.



“그럼 너는 이게 재밌냐?”

“찬송작가님 작품 다 제 인생작인데요.”

“이게 인생작이라고? 너도 취향 한번 구리다.”

“그럼 형님은 제집가 왜 봤어요? 나일이 죽는 걸 안다는 건 못 해도 후반까진 읽었다는 거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일은 제집가에 나오는 두 명의 흑막 중 한 명이었고, 그 정체가 밝혀지는 건 극이 후반으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심지어 죽는 건 그보다 훨씬 뒤였다.


거기다 제집가는 로판치고 꽤 분량이 많은 편이었다. 즉 못 해도 4권 이상은 봤다는 건데, 저렇게 악평을 쏟아내는 이가 봤다기엔 그 분량이 너무 많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실은 재호가 이 글을 꽤 자세히 읽은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고민을 했다.

그 사이 세 사람의 말싸움은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누가 보고 싶어서 본 줄 알아? 어쨌든 어떻게 할 거야. 너 때문에 이 사달이 났잖아.”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설정을 그렇게 짜지만 않았어도 다들 안전하게 지냈을 거 아냐!”

“그러게 누가 빙의하래?”

“야, 너 지금 말 다 했냐?”

“아니? 아직 한참 남았거든?”



재호와 찬송 사이로 불꽃이 튀었다. 옆에 있는 황 또한 찬송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반박했다.


나는 턱을 괸 채 세 사람을 바라봤다. 육두문자와 주먹만 오가지 않았을 뿐이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말려야 하나?

······아니다, 그냥 두자.


애들도 아니고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좀 웃긴 것 같았다. 거기다 내가 말한다고 들을 성격들도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들 진정하겠지.

나는 그리 여기며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다.


내가 너무 조용히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수세에 몰려서 그럴까. 돌연 재호가 내 쪽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는 왜 아까부터 가만히 있냐?”

“어? 아니, 그냥. 기운도 좋다 싶어서.”

“시비거냐?”

“시비는 아니고 그냥 솔직한 감상인데······ 그보다 다 싸웠어? 나 하던 말 마저 해도 돼?”



내 딴에는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인데 그게 뭐 그리 이상했는지 세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의아함에 눈만 깜빡이는 나를 보며 재호가 한마디 했다.



“너 성격 이상하단 소리 많이 듣지?”



······재호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심지어 나일의 얼굴로 성격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성격이 특이하단 말을 듣긴 했기에 나는 대충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크흠, 어쨌든 아까 하던 이야길 계속 하면 말이야. 원래는 원작을 완벽하게 따라가려 했는데, 그건 찬송이도 그렇고 너희한테 너무 위험한 거 같아. 그래서 기본적인 큰 흐름만 쫓되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했어.”

“큰 흐름이 뭔데?”

“해피엔딩이지.”



이해가 잘 안 가는지 재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는 재빨리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제집가는 로판이잖아. 그리고 으레 로맨스의 엔딩은 여주와 남주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고.”



실제로 제집가의 엔딩도 여주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걸 포기한 채 자하룬과 함께하길 선택한다.



“이브락이나 나일의 악행으로 시작되는 사건도 많지만, 그게 없더라도 자하룬과 여주가 이어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다 같이 여주랑 자하룬을 이어주자 이거야?”

“근데 그 둘이라면 우리가 이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맺어지지 않을까요.”



재호의 질문에 황이 대신 답을 내놨다. 찬송도 같은 생각인지 뒤를 이어 말했다.



“아마 그럴걸. 둘이 워낙 잘 맞기도 하고, 어쨌든 주인공들이니까. 적어도 여기에서 우리 말고 설정과 따로 노는 사람은 본 적 없어.”



찬송의 말대로 이 세계에 있는 유일한 변수는 바로 빙의한 우리 네 사람과 더 있을지도 모르는 빙의자였다. 그러니 우리가 가만히만 있다면 흐름이 크게 틀어지진 않을 것이다.

재호도 이 부분은 동의했는지 드물게 고갤 끄덕였다.



“일리는 있어. 어쨌든 이 글은 로맨스니까. 하지만 그것만 믿고 가기엔 불안해.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확실한 방법.

나와 찬송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우린 모두 시선을 내린 채 진지하게 고민했다.

제법 긴 침묵이 이어질 때, 찬송이 말했다.



“그럼 여주가 했던 걸 해볼까?”

“여주가 했던 거 뭐?”

“칸티오의 혼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 그거.”



원작 제집가의 여주는 제목대로 제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 떠돈다. 그리고 끝내 하나의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이 바로 ‘칸티오의 혼’이라 불리는 꽃이었다.


수천만 명의 숨이 섞인 혼의 결정체. 그리고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기적의 꽃.


하지만 이 꽃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완전한 존재만이 이 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완전한 존재는 바로 하나의 육체에 온전한 혼이 담겨있는 이를 뜻한다.


이는 제집가의 스토리와 크게 관련되는 설정이었다.


신기하게도 제집가의 다섯 종족은 하나의 육체에 온전한 혼을 담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반쪽짜리 혼은 불안정해 생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불안정한 혼과 육체를 지켰다.


가령 아퀼라의 경우는 처음부터 하나의 혼을 가지고 태어나 제 혼의 반을 무기에 부여하고, 페르치의 경우는 날 때부터 반쪽짜리 혼으로 태어나 제 영혼의 짝을 찾아 연을 맺게 된다.


루에르, 닐바나, 니샨도 비슷하다. 쌍둥이처럼 두 개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혹은 다른 생명과 계약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새로운 육체를 계속 만들며 혼을 옮겨간다.


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은 불안전한 육체와 혼의 균형을 잡아간다. 하지만 차원이동자인 여주만이 특이하게도 하나의 육체에 온전한 혼을 담는 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 덕분에 여주는 칸티오의 혼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니까 그 꽃 그냥 우리가 찾자.”

“괜찮은데?”



정말로 좋은 방법이라 여겼는지 재호가 처음으로 찬송의 말에 동의했다.


근데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칸티오의 혼은 실존하는 거였고, 여주를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했으니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왜 여태 이걸 생각 못 했지?

스스로의 멍청함에 탄식하며 어이없어할 때, 황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근데 저희 칸티오의 혼 못 찾지 않아요?”

“왜 못 찾아? 우리 칸티오의 혼 어디 있는지 알잖아.”



우리는 원작을 읽었고 여주가 어디서 어떻게 칸티오의 혼을 찾는지도 알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방법을 아니 여주만큼 힘겹게 찾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 달리 황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하나의 사실을 꺼냈다.



“그게 아니라, 저희 지금 빙의 상태잖아요.”

“······.”

“······.”

“······.”



허를 찔린 우릴 향해 황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희는 여주처럼 차원이동한 것도 아니고, 종족의 설정도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뭐, 저는 아직 영혼의 짝을 못 만나서 체감이 덜 되는데 형님하고 누님들은 바로 알 수 있지 않나요?”



그래, 바로 알 수 있다.

아퀼라의 특징을 지난 나와 찬송 둘 다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소환도 가능했고, 무기 고유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었다.



“재, 재호 넌? 너도 그래?”

“······내 늑대 지금 집에서 자고 있다.”



모친의 피를 더 진하게 물려받은 탓에 닐바나의 특징을 지닌 나일의 몸에 들어간 재호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나 걔랑 대화도 가능하다······.”

“······끝났네.”

“망했다.”



음울한 공기가 우릴 짓눌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시도조차 못 하게 막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제 어떡해? 그냥 해피엔딩까지 기다려?”

“그걸 언제 기다려. 꽃 찾아서 소원 빌어야지.”

“우린 못 찾잖아.”

“조금 있으면 찾을 수 있는 애가 오잖아.”



재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금세 그게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주 말하는 거야?”

“그래. 우린 걔가 꽃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로채면 돼.”



가로채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그러지 않니?


꼭 도둑질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찬송은 별 반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싶었다.



“좋은데? 이 자식, 이제 보니 솔로몬이네.”

“그치? 어차피 여주 소원도 안 빌어. 우리가 그거 빈다고 문제 될 것도 없어.”

“아예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뿌릴까?”

“오, 그것도 괜찮네.”



꽃만 찾으면 자하룬이랑 여주가 이어지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재호가 그리 덧붙였다.


재호와 찬송은 그 후로도 원작의 근간을 흔드는 계획을 이어나갔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던 둘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이상했다.


거기다 뭐랄까······. 나일과 이브락의 외모여서 그런 걸까. 저 가로채기가 단순한 가로채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턱을 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사이 황이 내 쪽으로 자릴 옮겼다.



“누님, 정말로 꽃 찾는 거 도울 거예요?”

“글쎄요······ 근데 분위기로 봐선 말려도 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럼 저희 대륙 여행할 수 있는 거예요? 니샨 족도 만나고?”



황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이 타이밍에 그런 걸 기대하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창 너머로 옮겼다. 샛노란 반달이 밤하늘에 걸려있었다.


여주가 오기까지 약 이주.

왜일까. 지난 두 달보다 더 긴 이주가 될 것 같아 살짝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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