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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빙의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모타
작품등록일 :
2020.05.11 14:47
최근연재일 :
2020.08.09 23:23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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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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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58,414

작성
20.08.0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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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화. 제1회 빙의자 대책 회의 (01)

DUMMY

 

“그럼, 지금부터 제1회 빙의자 대책 회의가 있겠습니다.”



황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살짝 고민하다 박수를 쳤다. 찬송도 귀찮은 듯 대충 손뼉을 쳤다. 오직 나일만이 우릴 미친놈 보듯 했다.


황의 애국가의 효과는 대단했다.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빙의자(로 추정되는) 나일이 직접 행차했으니까.


바싹 긴장한 우리와 달리 황은 모두를 식탁으로 안내했고, 그 덕에 우리는 이 웃기지도 않는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요?”



의장(?)답게 황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최황이라고 합니다. 스물여섯 살이에요.”



나와 찬송은 마지못해 소개했다.



“이규리. 스물일곱입니다.”

“박찬송. 같은 나이입니다.”



다소 까칠한 어투에 황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우리와 나일을 한 번씩 오가더니 우리에게서 멈췄다.



“······뭔 일 있었어요?”



나와 찬송은 대답 대신 나일을 노려봤다. 그 또한 탐탁잖은 얼굴로 이쪽을 노려봤다.


나일 아퀼라.

그는 제집가의 흑막이자 내통자인 동시에 배신자이다.


보통은 악역이라 해도 ‘예쁜 쓰레기.’ ‘개새끼만 아니었어도······.’ 하는 등의 평을 얻는데 얘는 정말 말도 못 한 쓰레기라 쉴드가 불가했다.


단순히 악역이란 설정 때문에 그를 불편해하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찬송은 작가였다. 작가가 자기가 짠 캐릭터를 악역이라고 기피 할 리 없지 않은가.

우리가 이렇게 나일을 불편해하게 된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약 한 달 반 전, 그니까 프롤로그 때 언급되는 전쟁 중에 있던 일이다.

아퀼라와 루에르의 전쟁 때 나와 찬송은 찬송의 빼어난 두뇌 덕분에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참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일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참 보수적인 설정이지만 아퀼라는 혈연이나 핏줄을 엄청 따졌다. 귀족들에게 고귀한 피니 뭐니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혼혈인 나일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피가 아니었기에 순수한 아퀼라의 상징인 전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왕족은 또 왕족이라 그만큼의 대우를 받았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호위대였다.

원래의 나일은 호위를 잘 두지 않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걸까. 나일은 호위의 증원을 요청했고 그때 카야를 콕 집어 지정했다.


문제는 찬송 또한 나를 이브락의 소속으로 지정했단 것이다.

결국, 이 둘은 나를 두고 언쟁을 벌였고 이는 끝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브락의 소속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나일은 시도때도없이 나를 호출했고 제2차 나일vs이브락 사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하도 시달렸던 탓에 나와 찬송은 나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근데 그런 그가 빙의자였다니······.



‘언제부터 빙의한 거지?’



나도 그렇고 찬송도 그렇고 위화감을 느낀 적은 없는데.

그럼 빙의한 지 얼마 안 된 걸까? 근데 왜 찬송이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거지?

불편함과 호기심이 공존할 때, 나일이 입을 열었다.



“김재호. 나이는 앞의 둘과 같아.”

“어?”



순간 나도 모르게 반문이 튀어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규리 누님.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아서.”



순간 나일, 아니 재호가 조금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들어봤겠지.”

“네?”



우리가 멍하니 눈만 깜빡이자 재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나 몰라?”



내 눈이 호두알만큼 커졌다.



“우릴 알아요?”



설마 얘도 같은 지역 출신인가?

제법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니 재호가 어이없단 얼굴을 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알아.”

“······.”



나는 아무 말 없이 슥 고개를 돌렸다.

언어 2등급에 나름 독해력도 뛰어나다 생각했는데 재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게 무슨 뜻이야?”

“뭐긴 뭐야 그냥 헛소리지. 우리가 지를 어떻게 알아. 연예인도 아니고.”

“맞아.”



재호가 불쑥 말을 꺼냈다. 우리의 시선이 다시 재호에게 향했다.

어쩐지 잘난 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예인 맞다고. 나 배우야.”

“······.”

“······.”

“······.”



미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약 20초 후 찬송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네가 배우라고?”

“진짠데?”

“이게 진짜 얼굴 안 보인다고 약을 파네.”

“진짜라고.”

“야, 네가 배우면 내 인생은 소설이다.”



찬송이 한껏 비웃는 사이 나는 황과 작게 ‘김재호’란 배우에 대해 떠들었다.



“누님, 김재호란 배우 알아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배우에 관심이 없어서······.”



내가 아는 배우라곤 전지현 장동건처럼 독보적으로 유명하거나 송지효나 차태현처럼 예능으로 알게 된 배우가 전부였다.

한쪽에선 비웃고 한쪽에선 좀처럼 제 존재를 몰라서인지 재호가 다소 붉어진 얼굴로 씨근덕거렸다.



“과일가게 아들들에 나온 둘째! 충의에 나왔던 무사! 그게 나잖아!”



제목을 보니 나름 들어본 드라마같은데 하나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제가 드라마를 안 봐서······.”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자 찬송이 옆에서 나를 말렸다.



“믿지 마, 저거 구라야.”

“진짜일 수도 있잖아.”

“말도 안 돼. 세상에 어느 배우가 내 글을 봐. 심지어 제집가는 선인세도 못 깠어. 가뜩이나 몇 안 되는 독자 중 연예인이 있을 확률이 몇이나 되겠냐고.”



찬송이 절대 그럴 일 없다며 못 박았다.

내가 찬송의 묘한 자존감을 먼저 고쳐줘야 할지 아니면 다른 부분을 먼저 지적해야 할지 고민할 때, 재호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설마 네가 그 찬송작가냐?”

“어, 내가 그 찬송작간데?”

“내가 너 때문에 요 두 달 동안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



재호가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화를 내자 나와 황이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찬송의 앞을 막았다.

재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분을 토해냈다.



“설정을 짤 거면 정도껏 짜야지! 습격을 당하질 않나, 독살 위험에 빠지질 않나! 이 와중에 또 개새끼라 연루된 비리도 존나 많아!”



재호의 억울함에 나는 다시 한 번 나일 아퀼라의 설정을 떠올렸다.


내가 빙의한 카야, 찬송이 빙의한 이브락, 그리고 황이 빙의한 일리아스 다 엄청난 고생 속을 구르지만 나일에겐 비비지도 못했다.


나일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차별과 억압. 그리고 자하룬의 추종세력에 의한 암살 습격.


악역 중에서도 유독 그의 성격이 까칠하고 치밀한 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짜 나일은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졌겠지만, 빙의한 재호에겐 살 떨리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불쌍하게 만들 거면 불쌍하게만 하던가, 개새끼로 만들 거면 개새끼만 하던가 왜 양쪽 다 줘서 쌍으로 고생하게 하는 거냐고!”



재호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것만큼은 찬송도 미안했는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아니, 나는 쓰레기가 그냥 만들어진다고는 생각 안 해서······ 근데 그렇다고 그게 또 쓰레기 짓의 정당한 이유가 되면 안 되잖아? 그래서 정말 완벽한 인간말종으로 만들었지. 설마 죄 없는 사람이 빙의될 줄 알았겠어?”

“야······!”

“뭐라 해줄 말이 없네. 조금만 버텨. 여주가 오면 괜찮아질 거야.”

“야!!”



재호가 소릴 질렀다. 찬송은 기운 내라며 진심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응원을 건넸다.

나는 둘의 대화가 얼추 끝났음을 알고 말을 꺼냈다.



“저기, 이제 우리 통성명도 끝난 거 같은데 슬슬 대화를 진전시키면 안 될까요?”



순간 양쪽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딱히 노린 건 아니었으나 찬송은 내가 최고의 어시스턴트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고, 재호는 나를 원수 보듯 노려봤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빙의자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정했으면 좋겠는데······.”

“하긴, 그게 제일 중요하죠.”



황이 동의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말을 이었다.



“사실 저랑 찬송이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계속 찾는 중이었거든.”

“여기 와서 들은 말 중 제일 반갑네.”

“재호 씨도 같은 생각이에요?”

“당연하지. 미쳤다고 여기에 있냐. 뭐 하나 좋은 구석이 없는데.”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닌데······.



“황이 씨는요?”

“저도 같아요. 물론 가능하다면 여행도 하고 모든 종족도 다 만나고 싶지만, 그래도 최종 목표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가족들도 걱정되고요.”



그래. 설령 여기가 제아무리 좋다 해도 우리의 모든 건 이곳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 가족, 친구, 내가 쌓아온 삶과 인생.

그것이 힘들고 지겹다 하더라도 이곳은 우리의 삶이 될 수 없었다.



“그럼 방법을 몇 개 생각해 볼까요?”



황이 다시금 의장답게 주제를 꺼냈다. 재호는 팔짱을 끼며 찬송을 향해 물었다.



“너 작가라며. 뭐 아는 방법 없어?”

“내가 작가는 맞는데 신은 아니라서.”

“그래도 이 세계에선 네가 신이잖아.”

“그랬으면 여기 안 왔지.”



이브락에 빙의할 일은 더 없고.

찬송이 그리 덧붙였다.


찬송의 말대로 이 세계는 찬송이 구축했지만, 슬프게도 그게 전부였다.

쉽게 말해 찬송이 이곳에서 가지는 매리트는 원작자로서 세계관과 설정을 자세히 안다는 것뿐이었다.



“넌? 넌 뭐 아는 거 없냐?”



재호가 이번엔 나를 향해 물었다. 묘하게 까칠한 어투였다.

근데 얘는 왜 자꾸 반말인 거지?

빈정이 상했던 난 재호가 그랬듯 말을 놓기로 결심했다.



“찬송이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생각해본 것도 없어?”



나는 짧게 고민하다 말했다.



“······엔딩을 보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했어.”

“엔딩?”

“응.”



가끔 소설이나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설정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이상적인 ‘결말’을 내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어떻게 보면 원작의 엔딩이 가장 이상적인 엔딩이잖아. 그래서 원작을 따라가면 어떨까 했지.”

“일리는 있네요. 근데 원작을 따라가면······.”

“나 죽는데?”

“나도 죽어.”

“저도 죽네요.”

“그렇지······. 너희 다 죽잖아.”



내가 멋쩍게 웃었다.

등장인물을 잘 죽이기로 악명 높은 찬송작가답게 제집가의 주요 인물들은 거진 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브락도 일리아스도 나일도 다······.


그리고 개중 가장 비참하게 죽는 나일의 몸에 빙의한 재호가 다시금 이를 갈며 찬송을 노려봤다.



“야. 양심 있으면 말 좀 해봐. 대체 왜 이렇게 많이 죽이는 거야. 어? 내가 왜 현실에서도 못 느낀 살해위협을 여기서 느껴야 하냐고!”

“아니, 그 뭐야······ 전쟁물이잖아.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악당은 죽는 게 깔끔하지 않아?”

“갱생이란 방법은 모르는 거냐?!”

“갱생도 도가 있지 살인자한테 무슨 갱생이 필요해. 게넨 그냥 저승행이 정답이야.”

“야!”

“그리고 너만 비참하게 죽는 거 아니거든? 이브락도 만만찮아.”

“아직 동기도 안 생긴 너랑 나랑 같냐?!”



재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찬송의 경우야 질투에 미치지 않으면 그 모든 일이 발생하지 않지만, 나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 싹을 뿌려놨었다. 솔직히 말해 수습하는 것보다 원작대로 배신하는 게 더 쉬웠다.



“근데 누님, 나일이랑 이브락은 그렇다 쳐도 일리아스는 왜 죽나요? 나쁜 놈도 아닌데?”

“그 뭐야······. 원래 페르치 인이 영혼의 짝과 안 맺어지면 미쳐서 죽는다는 설정이잖아? 근데 서브남주를 미쳐 죽게 할 순 없고. 그래서 깔끔하게 병사로 골랐지.”

“깔끔 좋아하네!”



재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


작가의말

4화만에 표지(?)의 네 친구가 다 모였네요. 정말이지 제목 그대로 개나 소나 빙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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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3화. 능력 좀 확인하겠습니다. (01) 20.08.07 32 2 13쪽
6 제2화. 제1회 빙의자 대책 회의 (02) 20.08.06 142 0 12쪽
» 제2화. 제1회 빙의자 대책 회의 (01) +1 20.08.06 35 2 12쪽
4 제1화. 개나 소나 빙의자 (03) 20.08.06 56 2 12쪽
3 제1화. 개나 소나 빙의자 (02) +1 20.08.05 87 2 12쪽
2 제1화. 개나 소나 빙의자 (01) 20.08.05 76 2 12쪽
1 프롤로그. 20.08.05 82 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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