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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빙의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모타
작품등록일 :
2020.05.11 14:47
최근연재일 :
2020.08.09 23:23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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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414

작성
20.08.06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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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화. 개나 소나 빙의자 (03)

DUMMY

일리아스의 몸에 들어간 빙의자의 이름은 최 황. 올해 스물여섯의 남자애였다. 우리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취업준비생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다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일리아스의 몸이었다고 한다.

빙의된 지 약 한 달 되었다니 나와 찬송보다 조금 늦게 이곳에 온 거였다.



“······머리 아프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아시스에 계속 있을 수 없어 장소를 우리 집으로 옮겼는데도, 꼭 땡볕 아래 서 있는 것처럼 아찔했다.


일리아스, 아니 황은 나와 찬송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로 두 분도 빙의하신 거예요?”

“네, 맞아요.”

“네.”



우리가 황의 존재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황도 우리의 존재가 의심스러운지 한참이나 눈을 흘겼다.


우리는 마치 아드림 나무에서 그랬던 것처럼 황에게 우리의 정보를 공개했다.

황의 분위기가 바뀐 건 찬송이 찬송작가라는 걸 안 직후였다. 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잠시 후, 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저 팬이에요!”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사인해주세요!”



황의 성격을 보여주듯 곱게 접은 손수건을 보며 찬송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죄송해요. 제가 싸인이 없어서······.”

“없어요? 왜요?”

“······해달라는 사람이 없어서 안 만들었달까······.”



찬송이 드물게 음울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찬송의 등을 토닥여줬다.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게 제일 좋은데 황은 눈치를 밥 말아 먹었는지 열을 토해냈다.



“어떻게 작가님한테 사인 요청을 안 할 수 있지? 다들 보는 눈이 없네!”

“아······ 감사합니다.”

“저 정말 작가님 팬이에요! 데뷔작도 알고 있어요! 처음으로 쓰셨던 판타지도 알고 있고, M사이트랑 J사이트에 올리는 자유연재작도 꼬박꼬박 보고 있어요!”

“으악! 내 데뷔작을 봤다고요?! 자유작도 봤어? 미친, 왜 본 거야!!”



찬송이 몸서리치며 뒤로 도망쳤다.

독자가 자기 소설을 이만큼 알아봐 주면 고마운 일 아닌가?


나라면 엄청나게 기쁠 것 같은데 찬송은 마치 엄청난 흑역사라도 들킨 사람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보지 마! 본 것도 기억에서 지워!”

“어떻게 지워요! 저 특히 N과 M사이 가장 좋아해요!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가 좋다고 할까. 특히 연말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해요! 그때 남주가······.”

“닥쳐!! 제발 부탁이니까 좀 닥쳐!!”



찬송이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크헑!”



이상한 비명과 함께 황이 엎어졌다.

덩달아 놀랐던 난 눈을 홉뜨며 숨을 들이켰다. 찬송 또한 자기가 때려놓고 놀랐는지 때린 부분을 살폈다.



“황 군, 괜찮아?!”

“괘, 괜찮······ 쿨럭······!”



황이 기침을 토하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이쯤에서 한 번 설명하는데 아퀼라 인은 다섯 종족 중 가장 센 힘과 근력을 타고났다. 겉보기엔 야리야리해 보이는 이브락도 실은 괴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걸 직격으로 맞았으니 안 아픈 게 더 이상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괜찮아요, 조금 아프긴 하지만 참을만해요.”

“다행이다······. 까딱하다간 스릴러가 될 뻔했어.”



찬송이 가슴을 쓸었다. 나는 그런 찬송을 어이없이 쳐다봤다. 그때 눈치 없는 황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찬송 작가님 데뷔작 스릴러 로맨스였······.”

“악!!”



찬송이 이번엔 황을 걷어찼다. 배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황의 몸이 붕 떠올랐다 철푸덕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황갈색 날개 몇 개가 허공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황이 씨!”

“최 황!”



나와 찬송은 황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었다. 그러나 맥아리 없는 몸만 흔들릴 뿐이었다.



“기절했어?!”

“뭐?! 최 황! 정신 차려!”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황을 깨우는 찬송과 힘없이 쓰러져있는 황.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우리의 앞날이 쉽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황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대략 10분 정도 후의 일이었다.

나는 황의 맞은 부분을 살폈다. 별 문제 없이 움직이는 걸 보니 다행히도 어디가 부러지거나 한 건 아닌 듯했다.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때려?!”

“······평소엔 안 그래.”



찬송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안다. 찬송은 폭력적인 인간도 아니고, 욱한다고 주먹이 먼저 나가는 인간쓰레기도 아니었다. 아마 깜짝 놀라 옆 친구의 등을 찰싹 때리거나 손으로 입을 막은 정도였겠지. 문제는 그러기엔 아퀼라의 힘이 너무 세다는 거였다.


내가 빙의한 직후 가장 신경 써야 했던 게 힘 조절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들의 완력과 힘이 얼마나 강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지금 잘했다는 거야?”



내가 무섭게 눈을 치켜뜨자 찬송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번엔 황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황이 씨도 이제 그 이야기 하지 마세요. 찬송이가 싫다잖아요. 호의와 관심은 상대방이 원했을 때나 성립하는 거라고요. 원치 않는 호의는 폭력이나 마찬가지예요.”

“죄송합니다······.”

“잘 못 했어······.”



둘 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서로 사과해.”



내 말에 황과 찬송이 서로를 향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제삼자가 봤다면 참으로 웃길 풍경이었다. 평민인 카야가 고귀한 피인 이브락과 귀빈인 타국 왕자에게 설교를 늘어놓고 있으니까.


재수가 없으면 사형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하극상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진심으로 반성한 후에야 잔소리를 끝냈다.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봅시다.”



잔소리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둘이 보다 의욕적인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이런 건 또 잘 들어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아까부터 하려 했으나 작은 소동에 뒤로 미뤄졌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말고도 빙의자가 있을까요?”



내가 말을 꺼내자 찬송이 턱을 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장담은 못 하지만 확률은 있어.”

“설마 전부가 다 빙의자인 건 아니겠죠?”



황의 질문에 찬송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어도 자하룬은 아닐 거예요. 다른 장로들도 그렇고. 글에 안 써먹은 비밀 설정들도 잘 지켰거든요.”

“역시 작가님!”



황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설마 또 조금 전과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잠깐 긴장했지만,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라도 두 번이나 맞아서 그런지 더는 찬송의 (자칭)흑역사를 건들지 않았다.



“페르치 쪽은 어땠어요? 의심 가는 사람 없었나요?”

“글쎄요. 페르치 인 자체가 원작에서도 그리 많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판단이 어렵네요. 그래도 일리아스의 가족들은 빙의자가 아닌 것 같았어요. 만약 설정이랑 달랐다면 분명 눈치챘을 거예요.”



제가 이 글을 백번 넘게 읽었거든요. 황이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했다.

찬송은 아주 오묘한 얼굴로 고맙단 말을 짧게 전했다.



“그럼 우리나 페르치 쪽이나 크게 의심 가는 사람은 없단 거네.”

“그렇지. 근데 우리가 모두를 다 만나본 건 아니니까······.”

“주요 인물들부터라도 관찰해볼까요?”

“보통 빙의 소설에선 누구한테 많이 빙의되더라?”



내 질문에 황이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악녀나 악남, 주인공 친구, 서브 여남주, 쩌리, 흑막······ 아, 곧 죽을 애들한테도 많이 빙의하네요. 뭐, 제집가 애들은 거진 다 죽지만요.”

“하긴······.”



농담이 아니라 제집가는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가 파국이라 살아남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실 전쟁물이니 죽지 않는 것 자체가 무리기도 했다.

어쨌든 카야는 안 죽었다.


······나 방금 너무 이기적인 생각을 했나?

내가 헛기침을 하는 사이 찬송이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찾지? 황군 처럼 대놓고 티가 나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알기 어렵잖아. 특히 쩌리 같은 경우는 설정도 얕고 정보도 적어. 나조차도 확신 못 해.”



찬송의 의견에 황이 턱을 괴며 곰곰이 고민했다.

한참 침음을 삼키던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반대로 접근해볼래요? 이쪽에서 찾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찾아오게끔 하는 거죠.”



솔깃한 제안이었다.



“괜찮은데? 근데 어떤 식으로 낚지?”

“저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요.”

“뭔데?”

“오늘 연회 때 제가 빙의자라면 모두가 다 알만한 일을 벌일게요.”

“그러다 이상한 오해라도 사면 어쩌려고.”

“그렇게 과한 일은 벌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선만 지키면 종족 차이로 보고 넘기겠죠. 대상이 연회 참여자에 한정된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일리는 있었다. 거기다 잘하면 의심 대상자들의 범위를 확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그에게만 큰일을 떠맡기는 것 같아 미안해하자, 황이 걱정하지 말라며 듬직하게 말했다.

딱히 별다른 방도도 없었기에 나랑 찬송은 그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일리아스를 환영하는 화려한 연회가 펼쳐졌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연회였기에 나는 눈치를 보다 찬송 근처로 자릴 옮겼다. 내가 올 줄 알았는지 찬송은 방석과 잔을 미리 준비해 둔 후였다.


황은 자하룬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나 찬송이 보기엔 전혀 일리아스 같지 않았지만, 그를 잘 모르는 자하룬에겐 그저 호탕하고 밝은 성격의 친구로 보인 듯했다.



“괜찮겠지?”

“자신 있다니 한 번 믿어보자고.”



찬송이 내가 좋아하는 과일 하나를 집어 건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걸 아삭아삭 씹었다.


악기 연주를 비롯한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 연회의 분위기가 한껏 올랐다. 그리고 어린 전사들의 검무가 끝났을 때, 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여러분께 작은 답례를 하고 싶군요.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나와 찬송은 직감적으로 황이 작전을 시행하는 걸 알았다.

우리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황은 크게 숨을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풉-

순간 나와 찬송이 동시에 술을 뿜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애국가?


나와 찬송은 입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황만 바라봤다. 이 와중에 노래는 또 어찌나 잘 부르는지 성악가가 따로 없었다.


잘 부르지도 않는 4절까지 완창한 황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며 경건하게 머릴 숙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퍼져나갔다.

정말 대한민국 만만세인 순간이었다.

 

 

 

* * *

 

 

 

“어땠나요?”



일리아스의 처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황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지손가락만 척 들어주었다.



“이제 반응이 오겠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반응할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나흘은 기다려보자.”



찬송이 잔뜩 흥분한 나와 황을 말렸다. 그때 일리아스의 집안일을 도와주게 된 하인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일리아스 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셋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하인은 우리 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말보다 검은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더 빨랐다.


백색의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남자는 나와 찬송이 있는 것에 조금 놀란 듯하다 입을 열었다.



“하. 이 엿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낮게 깔린 목소리에 나와 찬송이 동시에 흠칫 떨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목소리였다.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마른침을 삼키자 남자가 후드를 끌어내렸다.


자하룬과 똑같이 생긴 눈매에 다부진 인상. 하지만 아퀼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청색의 머리가 눈앞에 있었다.


자하룬의 남동생이자 아퀼라 인과 닐바나 인의 혼혈인 ‘나일 아퀼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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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화. 개나 소나 빙의자 (01) 20.08.05 76 2 12쪽
1 프롤로그. 20.08.05 82 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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