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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바퀴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의 관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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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바퀴
작품등록일 :
2020.05.12 13:06
최근연재일 :
2020.10.22 13:00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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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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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0,770

작성
20.09.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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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3화. 속이고 속고

DUMMY

레오나르는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꼴에 용사라고 재빨리 자신과 거리를 벌린다.


“옆구리가 시원하지?”


플러스는 레오나르가 같잖았다.

용케 급소는 피해냈지만 자신의 가벼운 공격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용의주도한 놈인 만큼 신중을 기했는데...

놈을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표정관리가 안되는군. 그 잘난 입이라도 나불거려야 하지 않겠나?”


고통에 일그러진 레오나르의 얼굴이 썩 마음에 든다.

아직도 회복을 못한 놈의 호흡이 가쁘다.

옆구리에 박힌 단검이 호흡을 더 망가트릴 것이다.


“절 죽이실 생각입니까?”

“상황파악은 빠르군.”

“왜죠?”

“넌 자격이 없으니까.”


놈이 잔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플러스는 천천히 기다렸다.

놈이 부상을 입었으니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제가 죽는다고 당신이 용사가 되진 않습니다.”


역시나 놈은 머리가 비상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을 한 걸까?

그 좋은 머리를 제대로 된 곳에 활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요.”

“흠... 역시 말을 섞으면 안 되겠어. 넌 입이 문제야.”


놈은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저 알량한 화술로 자신의 대답을 유도한다.

그 꼴을 보자니 그냥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제가 살 방법이 있습니까?”

“...... 있다면?”


하지만 일을 쉽게 풀 수 있다면 잠깐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의 숨겨진 한수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뭐... 살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용사의 검을 내놔. 일이 잘 풀리면 한 번 생각해보지.”

“......”


놈도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은 레오나르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레오나르에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때? 일단 시간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나?”

“...... 그렇군요.”


레오나르가 천천히 용사의 검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슬며시 물러선다.


플러스는 유심히 그의 모습을 살폈다.

혹여나 자신이 용사의 검을 집었을 때 기습을 할지도 몰랐다.


“좋군.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있어.”


역시나 놈은 망설였다.

그러더니 이내 단검이 박힌 옆구리를 움켜쥔 채 땅바닥에 배를 맞댄다.


“좋은 판단이야. 잠시라도 흙내음을 즐기고 있으라고.”


일이 쉬워졌다.

똑똑한 녀석이라 상황파악이 빨랐다.


플러스는 더 이상 새오나오는 실소를 참지 않았다.

천천히 용사의 검을 향해 손을 뻗는다.

비록 이전처럼 쥬베흐가 깃든 검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용사의 인장이 새겨진 용사의 검이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검.

플러스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용사의 검을 다시 한 번 손에 든다.

색다른 기분이다.


“좋군.”


이제 품안에 넣어둔 시약을 시험할 차례다.


* * *


경험이 많고 신중한 이를 속이기는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이상함이 보이면 준비했던 모든 작업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런 자들을 속이려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색함이 있어선 안 된다.

차근차근 밑 작업을 쌓아나가야 했다.


플러스가 자신의 신중함에 속아 넘어갔을 때!

자신이 방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그 때를 기다려야 했다.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플러스는 아무런 의심 없이 용사의 검을 손에 쥐었다.


자신에게 달려든 고블린이 큰 역할을 해냈다.

놈을 확실하게 베어 넘겼기에 플러스의 움직임을 강제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단검이 깊게 박혔지만 상관없었다.


‘목숨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했었지?’


용사의 검.

그곳에 깃든 초대 용사 얀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몸뚱어리면 족하다 하였다.


‘플러스... 당신은 그게 문제야.’


레오나르는 있지도 않을 자신의 기습을 염려중인 플러스가 가소로웠다.

오랜 경험과 연륜이 있으면 뭐하나?

그 경험들은 생각을 굳게 만든다.

또 다른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다.

오직 예상 가능한 것들만 경계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고 만다.


‘당신이 그랬잖아? 전장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라고.’


플러스와의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레오나르는 실소를 흘리는 플러스가 같잖았다.


* * *


플러스가 레오나르를 경계하며 용사의 검의 매끈한 검신을 살핀다.

조심스레 그 위에 시약을 흩뿌린다.


“보이셀란이 제법 대단한 일을 해냈더군.”

“......”

“용사의 인장을 재설정하는 시약이야. 이제 여기에 내 영을 각인시키면 날 용사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게 가능할까요?”

“뭐, 나도 장담은 못하지. 가능하길 빌고 있으라고. 용사의 인장이 날 인정하지 않으면 뭐 별 수 있겠나?”


플러스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는 즐겁다는 듯이 레오나르에게 속삭였다.


“그럼 널 죽이면 그만이지. 용사가 죽었는데 어쩌겠어? 용사의 인장도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 그게 전대 용사라면 인장도 만족하지 않을까?”

“......”


레오나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플러스를 바라본다.

그 처량한 눈빛이 꽤나 마음에 든다.


“죽지 않으려면... 네 스스로 용사임을 포기해라.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플러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용사의 검에 의지를 밀어 넣었다.

자신의 영과 검을 연결시킨다.

익숙하고 쉬운 일이다.

쥬베흐와는 다른 불완전한 에고가 그의 영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여라!’


플러스는 성공을 자신했다.

보이셀란의 성정 상 허투루 시약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실패해도 상관은 없었다.

레오나르를 죽인 후 보이셀란과 다시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와의 사이가 조금 불편해졌지만 어차피 보이셀란은 대의를 따를 자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이 자리에서 끝냈으면 좋겠군.’


어느새 플러스의 영이 용사의 검과 맞닿았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 알아서 찾아와 주다니. 일이 쉬워졌구나....

‘!!! 누구냐!’


플러스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 * *


초대 용사 얀.

그는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

기약 없는 기다림 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온전한 영을 버리고 용사의 인장에 숨어들었다.

쥬베흐의 눈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처지.

어쩌면 영원토록 그 잔인한 감옥에 갖혀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오로지 천운만이 그의 기다림을 끝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많은 작은 확률들을 뚫고 자신에게 천운이 닿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용사의 인장이 쥬베흐와 떨어졌다.

인장을 지탱해줄 새로운 검이 완성됐다.

불안전한 영을 보충해줄 만만한 에고가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쥬베흐가 자신의 탄생 설화를 버렸다!

검에서 깨어난 자!

오직 한 존재에게 허락된 탄생 설화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스스로도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부상당한 자신의 몸에 미련을 버린 용사 레오나르.

그를 만족시킬만한 육체를 지닌 전대 용사 엘프 플러스.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짜놓은 상황마냥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얀은 레오나르를 설득했다.

아직은 쥬베흐와 다르게 스스로 설 수 없었다.

용사의 인장에 묶인 존재였기에 그런 듯싶었다.

현 용사인 레오나르의 허락이 필요했다.


╺ 좋은 거래였지.


그는 생각보다 손쉽게 설득됐다.

레오나르도 자신도 모두 만족할 만한 거래였다.


╺ 내가 레오나르의 몸을 차지하고... 플러스의 몸을 레오나르에게 전해주면 될 일이었어...


분명 그리 약속을 했었다.

레오나르는 순순히 얀의 새로운 육체를 허락해줬었다.


╺ 헌데... 일이 이리 풀릴 줄이야.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일까?

자신의 운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플러스가 무언가를 자신의 검신에 흩뿌리는 순간.

더 이상 레오나르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사라져버렸다.


╺ 어쩔 수 없는 게야. 미안하게 되었군.


한낱 약속 따위.

얀에겐 손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때도 그랬으니까.


* * *


무언가 이상했다.

검을 흔들며 플러스가 다가온다.

플러스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저런 눈빛은 어울리지 않는다.


“플러스? 아니, 얀?”


놈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레오나르는 일이 꼬였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애써 혓바닥을 놀려 상황을 외면해 본다.


“뭐야? 장난은 그만두지? 이제 몸을 바꾸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런가?”


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놈의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하다.


제길!

빌어먹을!

시약인가 뭔가를 뿌릴 때부터 불안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기어코 화를 불렀다.

플러스를 비웃던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X발!”

“흐흐흐...”


자신이 차지했어야 할 몸을 초대 용사 얀이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다.

놈은 플러스의 육체를 비루한 자신의 몸뚱이와 교환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안 돼! 난 허락하지 않았어! 당장! 그 몸을 내게 바쳐라!”


레오나르가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허나 그도 알고 있었다.

놈은 이미 자신의 손을 벗어났다.


“워...워... 일단 진정하시게나.”

“뭐라고?”

“그런 말을 내뱉으면 안 될 상황이네. 애써 미안함에 살려줄까 하던 마음도 사라지지 않겠나?”

“......”


최악이었다.

우습게만 보이던 플러스의 위협과는 다르게 놈은 정말로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놈은 더 이상 아쉬운 게 없었다.


“사... 살려다오!”

“다오?”

“살려 주십쇼! 제발... 제발 살려 주십쇼!”


레오나르는 놈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 살아야 했다.

살아야 망가진 자존심과 명예도 회복할 기회가 있는 거다.


“허허허... 마음이 약해지는 구만.”


놈이 조롱해도 별 수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었다.

을의 위치에 맞게 숙이고 또 숙여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어차피 병신이 된 몸... 팔 한 짝 없다고 별다를 건 없지 않겠나?”


X발!

X발!

X발!!!


레오나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굴욕감에 온 몸이 덜덜 떨린다.

당장에라도 놈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참아낸다.

곧 남에게 줘버릴 몸이라고 부상을 도외시한 자신을 후회한다.


“살려만 주십쇼.”

“그리하지.”


레오나르의 왼팔이 외로이 허공을 유영한다.


* * *


노르의 치료가 무사히 끝났다.

사쿠라는 잠든 노르를 품에 안고 아늑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말똥말똥 눈을 빛내는 하늘이와 레온을 바라본다.

둘은 하염없이 노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만 보니 귀여운 강아지 셋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만 같다.


“오늘은 더 수련하지 말고 노르가 깨어날 때까지 여기 있어.”

“알았어. 언니!”

“네. 그런데 어디 가시게요?”


사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걱정을 끼칠까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건 일단 레온 네가 가지고 있어.”


사쿠라가 손목에서 팔찌를 풀었다.

흑목으로 만들어진 멋들어진 팔찌였다.


“이건 뭔데요?”

“우릴 지켜줄 보물. 참!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늘이는 꼭 챙겨야 된다? 알았지?”


레온이 불안한 눈빛을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쿠라는 아무런 걱정을 말라는 듯 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네...”

“그럼 잠깐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배고프면 먼저 밥들 챙겨 먹고. 알았지?”

“네...”


어차피 노르를 받아들인 이상 고르란 놈을 처리해야했다.

그런데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든다.


가까운 곳.

고르로 추정되는 마기가 느껴졌었다.

문제는...

조금은 익숙한 마나들도 그 곳에 함께했다.


“그럼 다녀올게.”

“빨리 와! 언니!”

“다녀오세요.”


누군가가 자신을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꼭 돌아올게. 너흰 아무 걱정 하지 마.’


사쿠라가 떠난 뒤.

레온이 이상하게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팔찌를 쓰다듬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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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화. 마왕 vs 용사 (2) +2 20.10.21 24 3 12쪽
90 90화. 마왕 vs 용사(1) +2 20.10.20 26 2 12쪽
89 89화. 잊혀진 섬(3) +2 20.10.20 29 2 12쪽
88 88화. 잊혀진 섬(2) +2 20.10.16 26 3 12쪽
87 87화. 잊혀진 섬(1) +2 20.10.15 23 3 13쪽
86 86화. 인성 문제 있어? +6 20.10.14 33 4 13쪽
85 85화. 많이많이많이많이 사랑해. +6 20.10.13 33 4 13쪽
84 84화.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2 20.10.12 34 4 13쪽
83 83화. 마왕 마령이라 하네. +4 20.10.09 40 3 13쪽
82 82화. 꽃이 지다. +2 20.10.09 36 2 13쪽
81 81화. 혈화가 예쁘다. +4 20.10.08 32 6 12쪽
80 80화. 끝났구나. +6 20.10.07 36 3 13쪽
79 79화. 전쟁은 아름답지 않다. +6 20.10.06 44 3 12쪽
78 78화. 용이 날아올라! +4 20.10.02 40 3 12쪽
77 77화. 끝맺음 그리고 시작 +4 20.10.01 39 3 12쪽
76 76화. 고고한 구름이 되어 +4 20.09.30 41 2 12쪽
75 75화. 성녀의 싸움(2) +4 20.09.25 46 3 11쪽
74 74화. 성녀의 싸움(1) +4 20.09.24 42 3 12쪽
» 73화. 속이고 속고 +4 20.09.23 44 3 12쪽
72 72화. 괜찮나? +4 20.09.22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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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깨어난 자들(feat. 뀨?) +6 20.09.18 50 6 12쪽
69 69화. 받아랏!파이어볼! +2 20.09.17 42 4 12쪽
68 68화. 내가 지켜줄게. +2 20.09.16 45 3 12쪽
67 67화. 기적을 바라다. +2 20.09.15 41 5 12쪽
66 66화. 설득 +4 20.09.14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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