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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바퀴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의 관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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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바퀴
작품등록일 :
2020.05.12 13:06
최근연재일 :
2020.10.22 13:00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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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9
추천수 :
598
글자수 :
510,770

작성
20.05.1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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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화. 식물인간?

DUMMY

전신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난 그저 음식물의 소화흡수, 호흡, 노폐물의 배설, 혈액순환 등 식물성 기능들만 작동하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의학적으로는 실외투증후군 또는 천연성 의식장애라고 한다.

그리고 의사들은 나에게 식물인간이란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의식이 있다.

그들이 그걸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희미하지만 외부의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평소보다 느리지만 조금씩 사고의 속도도 빨라졌다.


회복의 증조일까?

하긴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랴.


짐작컨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난 식물인간에서 회복되기를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희미하게 들려온 타인의 동정어린 목소리.


“아이고~ 세상도 무심하지. 부인이랑 딸래미도 데려갔으면 됐지 아비마저 식물인간이라지?”


그 소리가 나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로소 난 회복되고자 하는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살아봐야 의미가 없었다.


회복된 나를 보고 기쁘게 웃고 울어줄 존재들이 사라졌다.


자기야.

우리 아가.

날 기다리고 있는 거지?

바보같이 생에 미련이 남아서 늦은 날 용서해줘.

금방 찾아갈게.


내가 식물인간이 된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의식적으로 사고의 흐름을 멈췄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어가던 중이었다.


무심한 하늘은 나에게 악마 같은 속삭임을 전해 주었다.


[최대 1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 속삭임은 죽어가던 내 의식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박혔다.

죽어있던 사고의 흐름이 맥동한다.

아내와 딸아이를 찾아가려던 나약한 의지가 희미해졌다.


10년전?

내 아내와 내 딸이 살아있던 그 행복했던 시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차원에서 최후의 1인이 될 기회를 드립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 *


나는 식물인간이다.

악마의 속삭임은 내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래.

이건 악마의 농간이다.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든 후 좌절을 선물해 줄 악마적이고 변태적인 사기 행위다.


속지 않으리라.

소중했던 내 삶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분명 무언가 대가랍시고 농간을 부릴 것이다.


작은 불씨였던 희망이 활활 타오를 때 그 희망의 불길은 좌절로 바뀌어 나를 덮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망상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내 사고를 가속화 시켰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의 불씨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결국 난 아무런 보증도 없는 사기꾼인지 악마일지 헛된 상상의 산물일지 모를 메시지에 답하고 말았다.


‘수락... 한다!’


* * *


헛움음이 나온다.


분명 최후의 1‘인’이라고 들었다.

‘기회’를 준다고 했다.

아니, 최소한 기회라는 건 맞는 건가?

이딴 몸뚱이로 대체 무슨 기회를 잡을지 모르지만...


이걸 몸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기는 한가?

몸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를 내 몸을 내려다 본 순간 다시 헛웃음이 나온다.


하하하.

빌어먹을 새끼.


딸아이를 위해 한동안 입에서 멀리 했던 온갖 비속어들이 입가를 맴돈다.

일단 내게 ‘기회’라는 걸 준 새끼는 변태적인 가학을 즐겨하는 놈이 분명하다.


아니, 년일수도 있겠네.


* * *


나는 식물인간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교통사고는 삶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가볍게 앗아가 버렸다.

TV속 뉴스를 보면 늘 나오는 사건사고중 하나가 나에게 닥칠 것이라 누가 알 수 있을까.


흔하지만 나에게는 찾아오질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고들.

이 또한 남에게는 하루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찾아온 좌절과 시련, 고통, 허무와 절망감이 얼마나 클지는 뉴스에 나오지 않으니까.


뭐, 이제는 괜찮다.

생생한 감촉과 낯선 풍경의 이곳은 내게 빌어먹을 기회라는 것을 제공해 주었으니까.


나는 식물인간이었다.

경직돼 있던 전신이 움직인다.

낯설긴 하지만 감각이란 것이 느껴진다.

어찌되었든 병원 침대에 누워 저승사자와의 면담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보단 나을 것이다.


근데... 정말 괜찮은 걸까?


난 식물인간이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식물(植物).


풀때기? 나무때기?


하하하.

광합성을 하고 살아가야 하나?

말 그대로다.


난 식물인간이다.

아 잠깐. 인간도 아니니까 그냥 식물인가?


젠장.

뭐 그래도 괜찮다.

괜찮아야 했다.

그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면 그만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좌절과 고난이 생길지라도...


난 내 아내와 딸아이를 만나야 했다.

반드시.


* * *


이하진.


내 삶은 평범했다.

평범하게 살기 힘들다는 요즘 세상에서 대학도 나오고 직장도 다니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평범해서 순탄하게 잘 풀린 내 인생.

이걸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세상은 이를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학창시절 평범하게 공부를 했고, 평범하게 군대를 다녀오고, 평범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내게 조금 특별한 세상이 찾아온 건 가장 바쁜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평범하게 각종 스펙이란 것을 채워가며 취업준비에 열중하던 치열했던 순간.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수강했던 교양 수업은 내게 소중한 인연을 가져다주었다.


별다른 의미가 없던 교양 수업은 까치의 날개가 되었다.

귀찮던 조별과제는 까치떼가 되어 그녀와 나 사이에 ‘인연’이란 다리를 놓아 주었다.

평범하던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건 순간.

내 인생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전염되어버렸다.


하유선.


그녀를 만나고 평범한 삶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으로 바뀌었다.

그건 결코 ‘평범’이라 부를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반했다. 그녀가 웃었다.

웃었다. 그녀가 날 보았다.

좋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했다. 그녀와 손을 잡았다.

사랑했다. 그녀가 수줍게 내 고백을 들어주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행복의 연속이었다.


힘들었을 취업활동 시기.

그녀로 인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평범하던 취업준비는 그녀에게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변했고, 평범하던 내 모습은 끊이지 않는 웃음으로 활기가 가득 찼다.


순간순간이 추억이 되었고,

그 추억은 내 머릿속에 박혀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범하던 난 특별해 보이던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난 잇몸을 만개하고 웃었다.

평범하던 난 특별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녀는 수락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버렸다.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평범하던 내게 어쩜 이리 보석 같은 존재가 찾아온 걸까?

아직 뜨지 못한 눈.

올망졸망 모여 있는 귀여운 코와 입술.

앙증맞은 얼굴.

깨물어 주고 싶은 귀.

봐도봐도 신기한 손가락과 발가락.


아아!

천사다!

세상의 모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이 작은 존재에 모두 어슴푸레 얹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눈부신 반짝임이 한알 한알 그녀의 몸을 채워주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 존재는 내 딸로 세상에 태어났다.


행복한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갔다.


“오구오궁~ 우리 공주님 일어났어요~?”


큰 천사가 작은 천사에게 말을 건다.


“꺄아~”


작은 천사가 큰 천사에게 대답한다.


방긋 웃는 모습을 보라.

이건 찍어야 된다.

평범한 인간이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에 큰 천사가 웃는다.

오!

이것도 찍어야 된다.


“아! 오빠! 그만 찍고 이리 와서 좀 안아줘. 우리 공주 맘마 먹을 시간이야~”


천사가 악마로 변해 날 때렸다.

그래도 아직 괜찮다.

오늘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일단 오빠라고 불러주었으니까.


그녀의 기분이 나쁠 땐 뭐라고 하냐고?

묻지 마라.

야나 너는 기본인 것만 알면 되었다.


그녀가 아직 웃고 있을 때 재빨리 움직여 우리 작은 천사님을 조심스레 안는다.


“꺄아~”


작은 천사가 내게 안기며 웃는다.

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우리 공주님은 아빠에게 더 방긋방긋 웃어준다는 사실을.

분명 1데시벨 정도는 더 크게 웃었다.

분명하다니까?


“오구오구~ 우리 공주님 아빠가 그렇게 좋아요?”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간다.


어느덧 딸아이가 미운 4살이 되었다.

미운 네 살이란 말은 헛소리였다.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미울까?

그치 하늘아?


어느덧 딸아이의 나이가 8살이 되었다.

저 작고 가녀린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어느새 훌쩍 자라 결혼을...

아아, 안 돼!

망상이 너무 멀리 갔다.

딸아이는 또박또박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내게 말했었다.

주입식 교육은 위대했다.


어쨌든 오늘은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놀이동산으로 놀러가는 날이다.

아내도 딸아이도 모두 기대감에 눈이 초롱초롱 했다.


별 헤는 밤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을 그려놓았다지만 그녀들의 눈빛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의 남편이자 아빠인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평생 그녀들을 위해 살아갈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참...

좋았다.

그리고 행복했었다.


그 빌어 쳐먹을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기야. 사랑해.”

“갑자기?”


그녀가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는 무슨. 난 항상 널 사랑하고 있는데?”

“참 나. 또 뭐 잘못한 거 있어?”

“글세... 잘못이라...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과분한거 같아서. 어떻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여간 별 생각을 다하셔요.”


눈에 콩깍지가 씌웠나?

툴툴거리는 모습도 예쁜 아내였다.


“그래서 자기는?”

“뭘?”

“자기는 행복해?”

“나? 뭐 오늘 하는 거 봐서! 호호호!”


삐진 척을 하고 있는 날 보며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작은 천사를 살핀 후 내게 다가왔다.


쪽!


“사랑해...됐지?”


볼 뽀뽀를 한건 자긴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귀여웠다.


그런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난 영원히 사랑할거다.

그녀도.

우리 하늘이도.


알았지?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작가의말

첫 글이니 만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충고와 격려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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