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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142_kskdlxm 님의 서재입니다.

월타숲의 감시자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추리

묵독
작품등록일 :
2018.06.15 12:41
최근연재일 :
2018.10.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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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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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투구의 가치 (2)

DUMMY

“이게 그건가?”

카페르가 나무 아래에 놓인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페르, 코르누, 그리고 팔코. 세 명의 감시원은 진지한 얼굴로 쌍둥이가 알려준 곳에 놓인 썩어 문드러진 엘크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사체는 하루 사이에 허기진 동물이 많이 다녀갔는지 여기저기 잇자국이 나 있었고, 부패도 제법 진행되어 파리와 구더기가 시체 위를 쉼 없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쌍둥이 말이 맞는 것 같지?”

팔코가 무릎을 굽혀 사체 위를 노니는 구더기를 헤치며 말했다. 엘크의 직접적인 사인은 이마를 뚫은 석궁용 화살이었지만, 라이와 덱스터의 말대로 사체에는 가죽을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 가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산림감시원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제 어떡할까?”

카페르의 물음에 코르누는 고개를 들어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숲은 마치 초록의 안개처럼 세 사람의 시야를 가려 그 속에 숨어있을 누군가를 감추었다.

“찾아봐야지.”

감시원들은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본 뒤, 엘크의 사체가 있던 곳을 벗어나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은 행여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벌레와 짐승의 울음을 뚫고 들릴까 걸음걸음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지만, 숲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만 건넬 뿐,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이, 이리 와봐!”

감시원들이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지쳐갈 때, 불현듯 카페르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동료들과 수십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로 연신 팔을 휘저었다. 코르누와 팔코는 호들갑을 떠는 카페르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뭔데 그래······, 엥?”

또 무슨 설레발이냐며 심드렁하게 다가서던 팔코는 카페르의 앞에 놓인 엉망이 된 공터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두 사람의 앞에 펼쳐진 10야드 크기의 공터는 온 바닥이 엉망이었고, 여기저기 칼이 패어낸 자국이 가득했다. 심지어 나무에는 화살까지 꽂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팔코를 놀라게 한 것은 공터 한 편에 고인 두 개의 흥건한 피 웅덩이였다.

두 개의 피 웅덩이는 특이하게도 반대로 이어지는 긴 핏자국을 달고 있었는데, 모양을 보아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이 이곳에서 다투다 상처를 입고 각자 반대편으로 달아난 듯했다. 뒤따라 다가온 코르누도 그 광경을 보고는 팔코와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얼굴로 공터를 둘러보았다.

“피가 확실한데?”

카페르가 중지로 피 웅덩이를 훑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보았다.

“누가 여기서 싸운 모양이야.”

팔코도 흙이 파헤쳐진 바닥과 짖이겨진 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꽤 격렬했던 모양이군.”

코르누가 나무에 꽂힌 보통 화살보다 살대가 짧은, 조금 전 엘크의 사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석궁용 화살을 뽑아 촉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찾을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것 같은데?”

감시원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엉망이 된 공터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누가 있었던 거지? 쫓아야 할까? 그렇다면 누구부터? 수많은 물음이 그들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따라가 보자.”

세 명의 감시원 중 가장 먼저 고민을 끝낸 카페르가 잔뜩 흥미가 동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팔코의 물음에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카페르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번갈아 돌리며 반대로 이어진 두 핏줄기를 바라보았다.

“둘, 하나로 나눠서 따라가 볼까?”

“그건 너무 위험해.”

카페르의 제안에 코르누가 심각한 얼굴로 반대했다. 피가 이만큼 쏟아질 만큼 싸움이 났다는 것은 핏물의 주인들이 무장을 했다는 뜻임과 동시에, 누구를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비록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나, 그런 상대를 혼자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카페르는 입을 삐죽이 내밀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묘수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뭐 좋은 수라도 있어?”

팔코가 당당한 카페르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써먹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지.”

“뭔데?”

“뭐지?”

카페르는 궁금해 하는 두 사람을 호기롭게 바라보더니, 자신감 넘치게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입 가까이 가져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거세게 입을 열었다.

“퉤!”

툭!

카페르는 왼손바닥에 침을 흥건히 뱉더니, 그대로 오른손 중지와 검지를 모아 손바닥에 놓인 침을 퉁겼다.

“오른쪽으로!”

카페르는 침이 많이 튄 쪽을 향해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

코르누와 팔코는 당당하게 오른쪽 핏줄기를 따라 걸어가는 카페르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당당히 걸음을 옮기던 카페르는 두 사람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고 이상하게 바라보고만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가?”

“투구 가치를 떨어뜨리는······.”

팔코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 인마?!”

“아, 아니야······.”

“잔말 말고 따라와!”

카페르는 주저하는 둘을 향해 거칠게 윽박지르고는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남은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떡하지?”

“가보자고······.”

카페르가 자신만만하게 선보인 방법은 정말 투박하고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지만, 딱히 다른 수도 없었고, 지금 같은 경우에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닌 선택의 문제였기에, 둘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르를 따랐다.

추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른쪽 핏줄기의 주인은 꽤 심한 상처를 입은 모양인지 핏자국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감시원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잔뜩 경계한 채로 풀잎과 바닥에 묻은 피를 따라갔다.

쉭!

대열의 앞에서 피를 따라 걷던 코르누가 막 아래쪽으로 드리워진 무성한 가지를 손으로 들어 올렸을 때,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코르누의 뺨을 스쳤다. 나뭇잎에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던 코르누는 하마터면 눈이 꿰뚫려 얼굴에 커다란 구멍을 얻을 뻔했다.

“엎드려!”

코르누가 황급히 소리치며 몸을 숙였다. 뒤따르던 카페르와 팔코도 그의 고함에 서둘러 몸을 낮췄다.

“저쪽이야!”

코르누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카페르와 팔코는 재빨리 양쪽으로 찢어져 코르누가 가리킨 곳을 향해 달려갔고, 코르누는 그 사이 활을 꺼내 두 사람을 엄호할 준비를 했다. 그때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서 누군가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우리는 월타숲 3번 감시소의 감시원들입니다. 당신은 누구고 여기서 뭘 하고 있었습니까?”

코르누가 목소리를 향해 소리쳤다. 감시원들은 숨을 죽이며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가까이 다가갈 테니 공격하지 마시오!”

코르누는 걸어오는 동안 보았던 핏자국을 떠올리며 다시 소리쳤고, 동시에 카페르와 팔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란 눈짓을 보냈다. 눈짓을 받은 두 사람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조심스럽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울어져 뿌리가 드러난 고목 아래 몸을 숨기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콜록, 콜록!”

“여, 여자? 여자가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거야?”

카페르는 예상치 못한 상대의 정체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목소리가 가냘프다 생각은 했지만, 놀랍게도 핏자국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그녀는 허리에 큰 상처를 입고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는데, 사방이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엉망이었다. 조금 전 쏘았던 활은 최후의 발악이었던 듯했다. 여자는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이 내는 소리에 가냘프게 떨리는 눈을 떠 눈앞에 선 둘을 올려다보았다.

“도, 도와주세요······.”

여자가 카페르와 팔코를 향해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이런!”

여자의 목소리에 카페르와 팔코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팔코는 재빨리 여자가 몸에 두른 장구들을 벗겨 그녀의 몸을 편하게 만든 뒤, 클록을 찢어 여자가 대충 지혈해 놓은 상처 부위를 꼼꼼히 감쌌다.

“뭐야······? 이런, 맙소사! 괜찮으십니까?”

뒤이어 달려온 코르누는 둘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정체가 여자임을 알고 당황했지만,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아채고는 재빨리 곁에 다가와 여자를 살폈다.

“저, 바위 뒤 배, 배낭에 포, 포션이······.”

뒤늦은 소란에 다시금 입을 연 여자는 힘겹게 손을 들어 멀지 않은 곳에 놓인 바위를 가리켰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시체처럼 파리해지고 있었다. 코르누는 여자의 말에 재빨리 바위 뒤편으로 달려가 그녀가 숨겨 놓은 듯한 커다란 배낭을 가져와 포션을 꺼내 여자의 입에 들이부었다.

“으윽!”

여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억지로 목을 움직여 포션을 삼켰다. 먹을 힘조차 없는지, 포션이 태반이 입에서 흘러 옷을 적셨지만, 코르누는 들이붓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그렇게 포션 한 병을 겨우 비우고는 코르누의 손을 밀치며 기절하듯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어떻게 할까?”

쓰러진 여자의 곁에서 감시원들이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껏해야 길 잃은 여행자나 만날 줄 알았던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보이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이었다.

“일단 감시소로 데려가야지.”

코르누가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향해 눈을 돌리며 말했다. 신원이 불확실했지만, 부상자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코르누는 한숨을 내쉬며 여자를 업으려 몸을 숙였다.

“아, 아니.”

코르누가 쓰러진 여자를 안으려는 순간, 기절한 줄 알았던 여자가 황급히 눈을 뜨더니 코르누를 밀쳤다.

“잠깐, 잠깐만 쉬면 돼요.”

“하지만······.”

팔코가 자신을 밀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여자를 말렸다. 포션의 효과로 출혈은 멈췄지만, 흘린 피까지는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문가가 아닌 감시원들이 보기에도 그만한 양의 피를 흘린 여자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감시원들에게 부탁했다.

“대신 불을 피워 줄래요?”

“하지만······, 괜찮습니까?”

코르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그녀는 분명 누군가와 피가 웅덩이를 이룰 정도로 싸웠고, 그럼에도 상대의 목숨을 끊지 못한 상황이었다. 코르누의 질문에는 피를 쫓아 습격을 당할 위험을 안고 이곳에 있어도 괜찮냐는 물음이 담겨있었다. 질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여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친 만큼, 그 녀석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어요. 아마 당장은 못 움직일 거예요.”

감시원들은 여자의 태도가 워낙 확고했기에, 결국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세 사람은 다친 그녀의 곁에서 잠시 쉴 준비를 했다. 팔코는 주변을 앉기 좋게 가다듬었고, 카페르는 불쏘시개를 그러모은 뒤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였으며, 코르누는 바닥에 클록을 깔고 여자를 누인 뒤, 배낭에서 담요를 꺼내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

모닥불을 피우고 저마다 자리를 잡은 감시원들은 한동안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동도 없이 누워 온기를 쬐는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러기를 수십 분, 모닥불의 열기로 몸에 온기가 감돌자 조금이나마 상태가 괜찮아졌는지, 여자가 조심스레 일어나 담요를 어깨에 두르며 감시원들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아깐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 했네요.”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구해준 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천만에요, 성함이?”

“레피. 레피라고 부르세요.”

“아, 그렇군요. 레피 씨. 저는 코르누라고 합니다. 아까 밝혔다시피 이 숲의 산림감시원이죠.”

“팔코입니다.”

“카페르.”

감시원들은 레피와 인사를 나누며 짧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레피는 감시원들이 이름을 밝힐 때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지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코르누의 질문에 레피의 얼굴에 잠시 주저하는, 혹은 당혹스러운 것 같기도 한 기색이 스쳤다. 잠시 말을 아끼던 레피는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산림감시원이시니 당연히 알아야겠죠. 그전에······.”

선선히 입을 열던 레피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몸을 움직이기가 힘겨운지 아주 느릿느릿한 동작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뭐라도 좀 먹어도 될까요? 피를 많이 흘렸더니 배가 고프네요.”

묻는 투였지만, 대답을 바라는 말은 아니었다. 레피는 그대로 배낭을 뒤적거리며 놋쇠 주전자를 비롯해 각종 용기와 음식을 꺼냈다. 그리고는 장작으로 가져온 나뭇가지 중 적당히 튼튼한 것을 뽑아 주전자 걸이를 만들더니, 물과 찻잎을 넣은 주전자를 조심스레 걸어 불 위에 올려두었다.

“차 괜찮으시죠? 여행을 다니느라 좋은 차는 없네요.”

레피는 머쓱하게 웃으며 물이 끓는 동안 빵과 훈제 고기를 잘라 감시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드세요. 보잘것없지만 구해주신 보답이에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손이 무안해지니까 얼른 받으세요.”

감시원들은 사양했지만, 레피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손에 음식을 쥐어주었다.

“하아······.”

음식을 모두 나누어준 레피는 모닥불에 시선을 두고 멍하니 차가 끓기를 기다렸다. 감시원들은 음식을 손에 든 채 그런 레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짧게 자른 갈색 머리, 상당히 단련을 한 듯 단단해 보이는 몸, 무표정한 얼굴도 웃는 것처럼 보일 만큼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닌 호감형의 얼굴.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만한 멋진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그런 그녀가 왜 월타숲에 들어와 피를 흘렸을까 궁금해졌다.

“저, 아까 이곳에 온 이유를 못 들었습니다만······.”

잠깐의 침묵을 뚫고, 코르누가 손에 든 빵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사람을 찾으려고요.”

레피가 말을 장작으로 던지듯 모닥불에서 시선을 때지 않고 말했다.

“사람이요? 누구를?”

“살인자요.”

“······?!”

감시원들은 레피가 담담히 내뱉는 말에 담긴 의외의 단어에 깜짝 놀랐다. 살인자라니. 레피는 그 말을 하면서도 모닥불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기에, 세 사람은 혹여 그녀의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얼굴로 레피를 바라보았다.

“아, 물이 끓네요.”

때마침 물이 보글거리며 주전자의 뚜껑을 흔들었고, 레피는 조심스레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라 감시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죄송해요. 혼자 다니는 처지라 잔이 많이 없어서······.”

레피는 잔이 부족해 식사 때 쓰는 그릇에 차를 담아준 것이 무안했는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쥐고 어설피 웃었다.

“괜찮습니다.”

감시원들은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며 레피가 무안하지 않게 건네준 차를 마셨다. 레피는 그 모습에 다시금 미소를 머금으며 차와 함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한 음식을 삼키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배가 많이 고팠는지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쉴 새 없이 음식과 차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하, 좀 살겠네요.”

음식과 함께 따뜻한 차가 몸에 스며들자, 몸이 한결 나아졌는지 레피가 기분 좋게 말했다. 말처럼 얼굴도 훨씬 혈색이 돌아 보였다.

“차 맛은 어때요?”

“좋네요. 향도 독특하고. 무슨 차죠?”

레피의 물음에 팔코가 빈 그릇을 보여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글쎄요. 우연히 얻은 거라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

레피가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레피 씨. 아까 살인자를 찾는다고 하셨죠?”

코르누가 손에 쥔 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 그랬죠.”

“실례가 안 된다면 이야기를 마저 들어봐도 될까요?”

코르누의 물음에 레피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미동 없는 연한 갈색 눈동자로 코르누를 바라보는 레피의 얼굴은 꼭 유리를 세공한 가면처럼 보였다.

“좋아요. 그러니까 말이죠······.”

온기가 감돌아 한결 발개진 레피의 입술에서 피처럼 붉은 이야기가 미끄러져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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