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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142_kskdlxm 님의 서재입니다.

월타숲의 감시자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추리

묵독
작품등록일 :
2018.06.15 12:41
최근연재일 :
2018.10.12 08:47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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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85

작성
18.09.2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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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소년의 얼굴 (1)

DUMMY

한 마차가 달빛을 찢으며 절벽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는 거친 대지를 달릴 때마다 부서질 듯 튕겨 나갔지만, 마부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말을 더욱 채찍질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말이다. 뒤에서는 험상궂은 괴한들이 마치를 쫓아왔고, 그들이 날려대는 화살은 초침처럼 마부의 곁을 스쳐 가는 중이었다. 괴한들이 흔들리는 말 위에 있지 않았다면 마부는 진작 화살에 꿰뚫려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마부는 자신이 나름대로 건실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기에,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술집에서 주정뱅이의 머리를 깨거나 작부의 허리를 더듬는 건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까) 물론 마차에 타고 있는 주인은 그와 달리 고결한 사람이고, 따라서 그런 이들이 으레 겪듯 위험한 시련이 닥쳐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마부는 자신도 그 시련에 휘말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차를 멈추고 괴한들에게 왜 그러냐고 묻고 싶기까지 했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동료들처럼 싸늘하게 식어 땅 위를 뒹굴 것이 분명했으므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마부의 그런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화살이 오른쪽 어깨를 스쳤고, 마부는 헐레벌떡 몸을 더 움츠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마차를 손보는 대신 술집에 앉아 술이나 퍼마시는 건데. 마부는 이 사단에 휘말리게 된 그날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휙.

화살이 또다시 마부의 곁을 스쳤다. 이번에는 꽤 위험했다. 마부가 조금만 더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더라면, 화살은 지금까지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그의 머리를 처음 구경하는 영광을 누렸을 것이다.

좋았어!

마부는 자신의 귀 끝을 스쳐 가는 화살을 보며 절체절명의 순간에 찾아온 작은 행운에 환호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행운에 너무 심취해 버린 나머지, 마부는 그의 앞에 놓인 길이 갑작스럽게 휘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히이잉!

마부는 뒤늦게 알아채고는 고삐를 틀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마차를 온전히 돌리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마차는 마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체의 절반이 절벽을 벗어나 허공에 떠올랐다.

찰나의 멈춤. 그리고······.

추락이었다.

마부는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의 마지막 행운에 대한 저주와 주인에 대한 걱정, 혹시나 나뭇가지에 걸려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머리를 스쳤지만, 자신의 머리 위에서 발버둥 치며 떨어지는 말의 거대한 엉덩이를 보고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


짐마차가 기분 좋게 덜컹거리며 숲길을 달렸다.

마차에는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이 가득했고, 위에 올라탄 남자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들이 있는 숲이 월타숲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월타숲은 두 나라의 국경에 위치한 거대한 숲으로, 그곳에 서식하는 유해한 동·식물과 숲과 인접한 카팍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다양한 몬스터, 넓은 숲에다 죄를 숨기러 오는 범죄자 덕분에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였다.

“곧 있으면 감시소예요, 소릭.”

마차를 몰고 있던 흑요석처럼 검고 단단한 피부를 가진 청년이 짐칸에 앉은 중년의 남자에게 말했다.

“음? 큼. 그렇군. 고생했네, 카니스.”

물건으로 가득한 부대를 뒤적이며 수량을 확인하고 있던 소릭은 물건을 살피는 데 집중하느라 감시소가 가까워진 것도 몰랐는지, 제멋대로 자란 까칠한 수염을 긁적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미 확인했는데 또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요, 소릭.”

카니스와 함께 마부석에 앉아 있던, 온 이목구비에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청년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더 해봐야 손해 볼 것도 없지 않나. 피쿠스”

“하여튼 꼼꼼하다니까.”

우직한 소릭의 말에 피쿠스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세 남자의 정체는 월타숲의 전반을 관리하는 산림감시원(Ranger)으로, 인근 마을에서 보급을 마치고 감시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을에서 감시소로 돌아가는 길은 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선대 감시원들이 잘 닦아둔 덕에 큰 위험은 없었지만, 길이 무성한 숲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탓에 그들은 벌써 한나절 가까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점처럼 보이던 감시소가 망루 위 보초들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카니스는 서서히 마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곧 감시소가 커다란 입을 벌리며 그들을 반겼다. “죽어버려!”

그리고 귀를 찢을 듯한 고함도 함께 그들을 반겼다.

“무슨 일이야?”

천천히 마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온 카니스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이마를 찡그렸다.

“카페르야. 아까 연병장에서 팔코랑 카페르가 대련한다고 우르르 몰려가더니 또 카페르의 화를 돋운 모양인데?”

보초를 서던 감시원 한 명이 피식 웃으며 연병장 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수많은 감시원들이 낄낄거리며 달아나고 있었고, 그 뒤로 오우거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한 남자가 미친 사람처럼 목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쫓고 있었다. 카페르였다. 잘 단련된 감시원들 사이에서도 도드라지는 덩치를 지닌 그는, 다혈질에 놀리기 쉬운 성격이라 저렇게 곧잘 동료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별일 아닌 것을 안 카니스는 피식 웃으며 짐마차를 창고로 몰았다. 감시소는 그리 넓진 않았지만,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넓었다. 감시원들이 머무르는 막사, 식사하는 식당, 각종 장비와 물품, 식량이 보관된 창고, 감시원들의 피땀이 밴 연병장까지. 조금 낡긴 했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카니스는 익숙하게 짐마차를 창고 앞에 갖다 댄 뒤, 마부석에서 내려와 말에 묶인 고삐를 풀었다. 소릭과 피쿠스는 짐마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마차를 타느라 굳어진 몸을 풀었다.

“다들 수고했어. 소장에겐 내가 보고할 테니 자네들은 짐을 정리해주게.”

소릭이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며 말했다.

“알겠어요, 소릭. 고생했어요. 얼른 보고하고 저녁때까지 좀 쉬세요.”

“그래. 곧 비가 올 모양이니 자네들도 얼른 정리하고 쉬게나.”

소릭의 말에 카니스와 피쿠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위가 어둑어둑한 이유가 밤이 찾아오려는 언질인 줄 알았던 둘은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고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짐마차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소릭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소장실로 향했다. 소장실은 사실 식당 옆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이지만, 소장이 집무를 보는 책상과 서류가 가득한 책장, 그리고 무엇보다 소장 본인이 있었기에, 위치보다는 소장의 지위를 존중해(소릭 같은 사려 깊은 감시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 유감이다) 소장실로 불렸다.

소릭은 소장실의 문을 두어 번 노크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낡은 나무문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아귀를 벌렸다.

“······졸았군요, 소장.”

문소리에 놀라 떨어뜨린 깃펜을 주우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세네오를 보며 소릭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세네오는 이곳, 그러니까 월타숲 3번 감시소의 소장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감시원인 동시에 가장 경험 많은 감시원이었다. 제2차 늑대인간 토벌 때부터 있었다는 그는, 쉰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세네오는 소릭의 핀잔이 멋쩍은 듯 주운 깃펜으로 정수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졸았다기보다는 명상이지. 왜, 숲의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필요한 물품은 모두 사 왔습니다. 조금 있다 확인하시죠. 그리고······.”

소릭은 세네오의 변명을 무시하며 배낭을 열어 편지와 서류 뭉치를 꺼냈다.

“감시소로 온 서류와 대원들에게 온 편지입니다. 아, 오늘은 소장한테 온 편지도 있던데요?”

“나한테가 아니라 소장 자리에 온 편지겠지.”

세네오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소릭이 건네는 편지와 서류를 받아 들었다. 감시원들 중에는 가족과 친우에게 꾸준히 편지를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하는 이도 있었는데, 감시소 소장의 직함 앞으로 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네오도 후자였다. 세네오는 편지를 슬쩍 확인하더니 책상 서랍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래, 그건 그렇고. 요즘 밖에 재미있는 소식은 없던가?”

세네오가 편지를 받을 때와는 다르게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회와 고립되어 같은 일상이 살아가는 감시원들에게는 달마다 보급조가 마을에서 가져오는 바깥소식이 최고의 오락이나 다름없었다.

“아, 그거라면 아주 엄청난 이야기가 있죠. 오늘 피쿠스의 입이 쉴 새가 없을 겁니다.”

세네오의 물음에 소릭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대답했다.

“그래? 후후, 잘됐군. 덩치들이 아주 좋아하겠어.”


***


식당은 보급조가 돌아오는 날이면 으레 그렇듯 이야기를 기다리는 감시원들로 북적였다. 감시소에서는 밖을 나갔다 돌아온 감시원이 저녁 식사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이 일종의 전통처럼 여겨졌기에, 감시원들은 마을에서 가져온 신선한 음식을 먹으며 간만에 바깥소식을 들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참, 아까 낮에는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능금 한 알을 먹기 좋게 쪼개던 피쿠스가 문득 낮에 본 모습이 떠올라 물었다.

“아, 그게 말이야······.”

피쿠스의 물음에 몇몇 감시원이 카페르를 보며 킥킥거렸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쓸어 담던 카페르는 험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별거 아니야. 저 녀석이 팔코한테 한 대 얻어맞고는 화를 못 참고 날뛴 것뿐이야.”

“네 녀석들이 옆에서 재잘재잘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어!”

카페르가 억울하단 듯 식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쯧쯧, 대련 중 한눈판 건 네 잘못이지.”

분개하는 카페르의 모습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팔코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이기죽거렸다. 매를 닮은 팔코의 날카로운 얼굴도 카페르를 골릴 때만큼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졌다.

“옆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래요?”

“이야기하자면 긴데 말이야, 저 녀석이······.”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마!”

카페르가 얼굴이 붉히며 소리쳤고, 감시원들은 그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게 어떠한가, 피쿠스. 듣자 하니 오늘밤을 짧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던데?”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듯하자, 세네오가 기대에 찬 얼굴로 피쿠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참 흩어져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던 감시원들도, 세네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피쿠스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피쿠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전율하며 손을 비볐다. 피쿠스는 감시소에서 제일가는 능변가로, 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도 그의 입을 거치면 남다른 감칠맛이 더해졌다.

“다들 기대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저번에 했던 빌리의 암탉 사건보다 훨씬 엄청난 이야기니까요.”

피쿠스의 설레발에 감시원들이 눈이 한층 더 반짝였다.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우, 난 빌리의 암탉이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한데.’, ‘입 닥쳐, 카페르.’-대부분 기대감이 한층 오른 얼굴이었다.

피쿠스는 식탁의 얼굴들을 쭉 훑어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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