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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142_kskdlxm 님의 서재입니다.

월타숲의 감시자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추리

묵독
작품등록일 :
2018.06.15 12:41
최근연재일 :
2018.10.12 08:47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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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85

작성
18.09.2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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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소년의 얼굴 (7)

DUMMY

백작 가문의 가신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정신을 차린 시스를 데리고 감시소를 떠났다. 시스는 깨어난 다음부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세네오는 약속대로 가볍게 짐을 꾸리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몇몇 감시원이 세네오에게 구태여 떠날 필요가 없지 않냐고 물었지만, 세네오는 그저 미소만 지어주고 소릭에게 소장의 권리를 위임한 뒤 감시소를 떠났다.

그리고 감시소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감시원들은 날마다 정해진 대로 근무를 섰고, 남는 시간에는 사냥을 하거나 단련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매일 밤마다 달랐던 이야기의 주제가 한동안 같았다는 점이다. 감시원들은 틈만 나면 시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이상한 행동과 세네오의 모호한 행동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서로가 아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으므로, 이야기는 항상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세네오가 돌아온 것은 그런 날들이 스무날 하고도 이틀이 반복된 날의 오후였다.

의미 없는 이야기만 반복하며 궁금증에 목말라 있던 감시원들은 왕이라도 행차한 것처럼 세네오를 환영했지만. 세네오는 그들에게 간단히 인사만 한 뒤 식사도 하지 않고 소장실에 틀어박혀 내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저녁. 모두의 기도가 통했는지, 다행스럽게도 세네오는 그날의 저녁 식사에는 참석했고, 때문에 근무인 감시원을 제외하고는 (그날의 근무자였던 피쿠스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과 근무교대를 할 감시원을 찾았지만 아무도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모두 저녁 식사에 참석해 이야기를 꽁꽁 감춰두고 있는 늙은 감시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

세네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십 수 명의 험상궂은 덩치들이 갈망하는 눈길로 자신의 입술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기에 도저히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자신이 고도로 단련된 산림감시원답게 철저히 눈길을 감추고 있다고 믿었기에 (카페르는 다 먹은 스튜 그릇을 계속 퍼먹었고, 소릭은 불도 붙이지 않은 파이프를 빨아댔다) 더욱 거북했다. 결국 세네오는 입을 닦고 포도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비홀더(Beholder)가 바라봐도 이거보단 낫겠군. 무슨 할 말들 있나?”

세네오의 입이 열리자, 감시원들의 입도 봇물 터지듯 함께 열렸다.

“세네오, 다 알면서 왜 이러십니까. 지금까지 뭘 하고 다닌 겁니까?”

“후작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속 시원히 말 좀 해주세요!”

감시원 들은 스무날 넘게 기다려왔던 궁금증을 해소하려 목이 터질 듯 소리쳤다. 세네오는 그 모습에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별거 없는데?”

“소장님!”

“세네오!”

속이 탄 감시원들의 고함이 식당에 쩌렁쩌렁 울렸다. 세네오는 껄껄 웃고는 새 포도주병의 마개를 열어 잔에 따랐다.

“······이야기가 꽤 길어질 걸세.”

“우리가 언제 이야기가 길다고 탓한 적이 있습니까.”

세네오의 계속된 튕김에 감시원들은 숨이 넘어갈 듯 안절부절못했다.

“좋네······.”

세네오가 얼굴에 살짝 맺혔던 웃음을 지우며 잔을 들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일단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좋지 않은 사고가 일어났다고만 생각했네. 사고야 어디서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또 추궁을 두려워한 연금술사가 자살까지 했다니 사고인 게 더욱 확실해 보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후작의 아들, 그러니까 시스 아우로에게 행해진 암살에 대해 들었을 때였네. 우연이라기 보기엔 너무 갑작스러웠고, 후작이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기에, 나는 그 두 사건에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지. 다들 그렇게 느꼈을 거야. 술집의 주정뱅이들도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감시원들은 숨을 죽이고 세네오의 말에 집중했다. 세네오는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처럼 천천히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바로 그 의구심이 문제였네. 두 사건 모두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뭔가 석연치가 않았거든. 첫 번째 사건을 사고사로 위장할 만큼 용의주도한 범인이 두 번째 사건에서는 그토록 허술하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어쩌면 두 사건의 범인이 서로 다른, 그러니까 두 명의 범인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네. 그래서 피쿠스가 말했던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대입해나갔지. 유령이나 이단에 대한 음모론은 진부하니까 넘어가고, 귀족들은 후작을 죽일만한 힘은 있을지 몰라도 그 계기가 부족해. 후작은 정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고, 그가 비록 새로 발견한 광산과 카수스 백작이 죽은 뒤 곡창지대인 카수스 영지까지 확보하게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생각은 몇백 년 동안 변방을 지켜온 후작 가문에 대한 모욕이지. 후작이 해가 되지 않을 인물이란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 거야.”

팔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후작이 갑작스럽게 다른 마음을 품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가문이 가지는 구속은 예상외로 질기다네.”

소릭이 어느새 불을 피운 파이프를 들고 짙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귀족들의 명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엄격하다는 거군요.”

엔케가 중얼거리자, 소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네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터무니없지. 후작의 영지에서 발견된 광산이라 국왕께서 채굴권을 후작에게 위임하기는 했지만, 후작이 죽는다고 해서 일개 평민인 상인들이 그 광산을 쥐락펴락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세. 후에 그 광산의 채굴권을 가지게 될,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을 해 줄 귀족을 기다린다는 말도 설득력이 없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위해 상인들이 그런 모험을 할 거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네.”

세네오가 용의자를 하나하나 지워가자, 그들이 범인이라 믿었던 감시원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에브리오 카수스는요?”

카페르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 듯, 세네오를 향해 몸을 한껏 기울이며 물었다.

“에브리오 카수스는 후작 부부가 죽은 상황에서 나이가 많은 카수스 백작마저 죽게 된다면 시스 아우로를 제외하고는 그가 유일한 적자이니, 후작 부부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암살을 계획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네. 하지만 그가 첫 번째 사건을 계획할 만큼 용의주도해 보이지는 않았지.”

“그럼 그를 두 번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고 계셨군요.”

카니스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어. 증거가 없었으니까. 그때는 그저 남의 이야기였으니 그 이상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야.”

감시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이 이야기에 자신들이 엮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런데 그때 퀴에스가 한 소년을 데리고 온 거야. 다들 알다시피 그 소년은 시스 아우로였고, 정체를 알게 되자 나는 불현듯 그날 받은 편지가 떠올랐다네.”

“카수스 백작의 편지 말이군요.”

세네오의 말에 소릭이 기억난다는 듯 덧붙였다. 감시원들은 깜짝 놀라며 세네오와 소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백작의 편지요?”

“그렇다네. 자네들에게 세세한 내용까지는 밝힐 수 없지만, 편지에는 혹시라도 시스 아우로가 월타숲을 지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백작의 가신이 데리러 올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적혀 있었네. 다른 감시소에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겠지. 아무튼, 그 편지는 겉으로는 사라진 손자를 걱정하는 내용처럼 보였지만 나는 왠지 석연치 않았네.”

“······.”

감시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시스 아우로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어. 다행스럽게도 그는 금방 깨어났고, 다들 알다시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 근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거야.”

“무엇을 말인가요?”

그 자리에 없었던 코르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어린 소년인 그가 기댈 수 있을 곳은 그의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자 할아버지인 카수스 백작일 텐데, 시스 아우로는 백작이 아니라 국외 도피를 선택했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숨겼어. 그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군. 후작의 죽게 되면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에 막대한 이득을 얻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단 한 명을 말이야.”

감시원들은 세네오의 추측에 경악했다.

“느, 늙은 백작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게 아닐까요? 아니면 백작을 자신을 죽이려 한 범인으로 의심했다거나.”

팔코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카수스 백작은 늙었지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냐. 젊을 적에 그는 정말 대단했지. 그리고 백작이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후작과 자신의 딸인 후작 부인까지 죽인다고? 그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뭔가 석연찮습니다. 단순히 시스 아우로는 미처 할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했고, 카수스 백작은 사라진 손자를 보호하기 위해 편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시스 아우로는 후작의 제1 상속자입니다. 어차피 훗날에 모든 게 고스란히 자기 것이 될 텐데 구태여 도박을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엔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카페르도 엔케의 말을 거들었다.

“카페르의 말대로 시스 아우로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나는 그게 그의 무죄를 입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악마는 어디에나 깃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엔케의 말처럼 그는 후작의 아들인데 구태여 죽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 그래서 나는 일단 시스 아우로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왔다는 그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들이 카수스 백작이 보낸 사람들인 것 같았거든.”

“아, 그래서 그때······.”

카페르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네. 자네들에게는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했네. 내 머릿속에는 나 역시도 확신할 수 없는 추측들로 가득했기에 그저 그것에 이끌리듯 움직이기만 할 수밖에 없었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시스 아우로를 안심시키고 최대한 빨리 그들을 만나려 감시소를 나섰지.”

“근데 소장님은 어떻게 첫눈에 그들이 백작의 가신들인 걸 아셨습니까.”

코르누가 그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들은 백작 가문의 하인일 뿐이지만, 그래도 모험가라고 보기에는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거든. 그들의 행색은 아무리 봐도 모험가의 옷차림이 아니었어. 게다가 피델, 그자의 검이나 몇몇 소지품들은 꽤 비싼 것들이더군. 하지만 확신할 순 없었기에 살짝 떠봤고, 결과는 자네가 본 대로지.”

세네오의 말에 코르누는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모르셨던 겁니까?”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걸 알 리 없잖은가. 만약 아니었으면 뻘쭘할 뻔했지.”

세네오가 껄껄 웃으며 포도주 한 모금을 삼켰다.

“그리고 그때 하셨던 질문들은 무슨 의미였던 겁니까?”

“아, 그 질문들······. 그들이 백작 가문의 사람인 걸 확인한 뒤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군. 그들이 과연 무턱대고 시스 아우로를 공격했을까? 아무리 궂은일을 처리하는 그들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알았을 거야.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카페르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시스 아우로와 부하들이 먼저 자신들을 쫓아온 그들을 입막음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술래잡기에서 들키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술래를 없애는 거 아니겠나.”

세네오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엔케는 그 말에 왠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때 에브리오 카수스에 대해서도 물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왜 그러셨죠?”

엔케가 물었다.

“그 당시엔 모두 가정이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나는 시스 아우로가 후작 부부를 살해한 범인이고, 에브리오 카수스는 거기에 계기를 얻어 시스 아우로의 암살을 기도한 두 번째 범인이라고 생각했네. 그리고 에브리오 카수스에 대해 물어본 이유는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본 거였다네.”

카페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에브리오 카수스가요? 누구한테요?”

“당연히 시스 아우로지. 나는 그가 아우로 영지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온 이유가 국외로 넘어가기 위함이 아니라, 에브리오 카수스를 죽일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아 우리의 영민한 어린 후작은 자신을 죽이려던 범인이 자신의 외삼촌인 것을 눈치챘을 것이고, 그런 그가 눈엣가시였겠지. 덕분에 사고로 묻힐 수 있었던 범행이 드러나게 됐고, 자신까지 죽을 뻔했으니 말이야. 그래서 나는 시스 아우로가 에브리오 카수스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네. 자신을 죽이려 한 것에 대한 복수이자, 용의자로 손꼽히는 그에게 죄를 덮어씌우기에도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내 생각이지만, 아마 시스 아우로는 측근들과 숨어 있다가 부하가 에브리오 카수스를 죽이고 나면 자신은 에브리오 카수스에 의해 어딘가에 납치되어 있었고, 에브리오 카수스는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했다는 소문을 내며 돌아올 생각이었을 거야.”

“하지만 에브리오 카수스는 멀쩡히 살아있지 않았습니까?”

엔케의 질문에 세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예상과는 좀 달랐지만, 그 덕에 나는 내 가설을 더 확신할 수 있었네.”

“네?”

“알다시피 에브리오 카수스는 망나니로, 가문에서 아예 내쳐진 존재야. 카수스 백작이 영영 쫓아낸 그를 집으로 불렀다는 건 아주 큰 일이 생겼다는 뜻이지. 나는 카수스 백작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고, 시스 아우로보다 먼저 선수를 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 않습니까.”

엔케는 세네오의 추리에 놀랐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가신들을 데리고 감시소로 돌아온 거라네. 시스 아우로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다들 알다시피 그는 가신들을 보자마자 달아났지. 본인은 단순히 겁에 질려 그런 행동을 한 것처럼 말했지만, 나라면 십여 명의 레인저들이 보호하고 있는 이곳보다 숲이 그를 안전하게 만들어 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야. 아마 그는 자신을 쫓아오던 그들이 카수스 백작의 부하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든 자신을 백작에게 데려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물론 알았을 테고.”

“······.”

감시원들은 그제야 시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네. 증거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시스 아우로를 챙긴다는 핑계로 그들을 따라가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찾아보았네.”

“어떤 근거들 말입니까?”

소릭이 다디단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일단 이야기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따라갔네. 가장 먼저 간 곳은 폭발이 일어난 광산이었지. 광산은 사고 이후 작업을 멈춘 탓에 폭발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군. 폭발은 단순히 조재 배합의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 큰 흔적이 남아있었어. 거의 감시소의 절반만 한 크기였지. 그래서 나는 연금술 이외의 어떤 술수가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했고, 연금술사의 주변을 조사해보았네. 죽은 연금술사는 평소 꼼꼼하고 일 잘하기로 평판이 좋더군. 그렇기에 후작도 일을 맡긴 것이겠지만.”

“그의 실수가 아니라는 말이군요.”

카니스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감탄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조금 더 알아보던 중 평소 연금술사의 일을 도와주던 꼬마가 있단 걸 알게 되었네. 바쁜 연금술사를 대신해 재료를 사다주던 아이였는데, 녀석은 평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심부름을 맡길 때면 항상 연금술사가 필요한 걸 적어주었다더군.”

“아, 그럼 혹시?”

엔케는 짐작이 간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꼬마는 자신의 침대 맡에 굴러다니던 종이들을 나에게 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채굴식에 쓰였던 재료들이 적힌 종이를 찾을 수 있었다네. 종이를 가지고 다른 연금술사를 찾아 물어보니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정량의 재료라더군.”

“맙소사!”

“게다가 그는 후작의 의뢰가 끝나면 한동안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기에, 연구소에는 잘못 들어갈 여분의 재료도 없던 상태였어. 그는 확실히 잘못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왜 자살을 했을까요?”

카페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금술사의 시체는 이미 매장되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그가 폭발을 그의 실수라고 생각했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게 아닐까 짐작하네.”

감시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불행히 목숨을 잃은 연금술사를 애도했다.

“만약 죽였다면,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팔코가 물었다.

“아마 시스 아우로의 부하들 중 하나였겠지. 아무튼, 그다음으로 나는 에브리오 카수스의 단골 술집들을 전전하며 그에 대한 소문을 알아봤네. 꽤 유명인사더군. 나중에는 묻지 않아도 그에 관해 이야기해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어. 덕분에 나는 그가 후작 부부가 죽은 뒤, 도둑 길드에 조카의 암살을 의뢰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네.”

“쯧쯧, 꼬리가 긴 녀석이로군요.”

코르누가 혀를 차며 비웃었다.

“그의 멍청함을 잘 알 수 있지.”

세네오도 피식 웃으며 목을 축였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정보를 모은 뒤, 카수스 백작을 찾아갔다네. 그리고 백작에게 폭발은 연금술사의 잘못이 아니란 것과 에브리오 카수스의 행적, 그리고 시스 아우로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끝으로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했지. 시스 아우로가 후작 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이며 그를 죽이려던 자는 당신의 아들인 에브리오 카수스라고.”

“백작이 뭐라고 했습니까?”

소릭이 파이프를 피는 것도 잊은 채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더군. 미동도 없이 말이야. 나는 백작이 충격에 기절이라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네. 한참을 가만히 있던 백작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내 앞에 커다란 병과 편지를 놓더군······. 그것은 사람의 손이 들어있는 병과 백작에게로 온 편지였다네. 백작은 나에게 그 손이 자신의 손자를 해하려던 자의 손이고, 편지는 폭발한 곳에서 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라고 말했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스 아우로의 죽은 부하들 중에 꽤 실력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나 봐. 아마 그가 폭약에 무슨 짓을 한 거겠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마법의 흔적을 찾기도 힘들 테니, 괜찮은 방법이로군요.”

엔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세네오의 말을 거들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백작을 보았네. 백작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더군.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고, 나보다도 먼저 결론에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네. 그의 눈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거든.”

세네오의 이야기가 대충 일단락되자, 감시원들은 저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세네오의 뛰어난 추리력에 감탄함과 동시에 알려준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스 아우로가 구태여 후작 부부를 죽여야 했던 이유 말이에요.”

엔케가 찝찝하다는 얼굴로 세네오를 바라보았다. 세네오는 그런 엔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후작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20년도 더 된 이야기야. 후작과 부인은 그 해 결혼했지만, 그의 아들인 시스 아우로는 올해로 15세가 되네. 그가 태어나기까지는 5년이 넘는 공백이 있다는 걸세.”

세네오의 말뜻을 눈치챈 감시원들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시스 아우로가 양자라는 뜻입니까? 단순히 나이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물론 그사이에 어렵게 얻은 아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안 좋은 생각만 들더군. 그래서 며칠 동안 조금 더 조사를 했었네.”

“뭔가 발견하신 게 있나요?”

“전혀.”

소릭의 물음에 세네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저 소장님의 생각일 뿐이군요.”

엔케는 안심한 듯 가슴께를 쓸어내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감시소로 돌아오려 했는데, 하필 내가 떠나려던 그날 사형식이 열리더군.”

“굉장히 급하게 이루어졌군요. 귀족 살해였기 때문인가요?”

엔케의 물음에 세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네오는 목이 말랐는지 말하기에 앞서 잔을 들었지만, 잔은 비어 있었다. 세네오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보고 싶지 않았어. 죽음은 어떤 순간에도 쾌활하지 못한 녀석이니까. 하지만 그때 나를 부여잡는 생각 하나 때문에, 나는 이끌리듯 사형대로 갔다네. 그리고 둘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지.”

세네오는 한숨을 내쉬며 잔에 술을 따랐다. 잔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형대에 걸린 두 사람의 얼굴이 참 닮았더군······.”

세네오는 그 말을 끝으로 잔에 담긴 술을 모조리 비워버렸다. 초가 낳은 불빛이 일렁거리는 식당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노인의 술 넘기는 소리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는 남자들의 숨소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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