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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급과의 비밀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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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
작품등록일 :
2020.01.05 23:22
최근연재일 :
2020.03.24 2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8,180
추천수 :
313
글자수 :
239,897

작성
20.0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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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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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8쪽

구하러 왔습니다

DUMMY

11. [ 구하러 왔습니다 ]





[끼에엑, 끼엑!]


푸드덕


쩌 쩍-


<필드가 손상되었습니다.>

<필드 내구성 80% 감소>

<필드 시전 종료까지 7분 남았습니다.>


<파랑새의 새장 내구도 30% 감소>


“아, 역시 무리인가.”


서서히 녀석을 옥죄고 있던 새장에 반 이상 금이 가버렸다.

아니, 반이 뭐야. 거의 얼마 남지 않은 내구도가 아슬할 지경인데.


아직 완벽한 결계 형태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어쩌면, 그전부터 계속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서 힘이 맥스치가 아니었던 점도 작용했을 거다.


솔직히 방어형이라면 정신계 쪽이나 신경계가 대다수라서 멘탈이 나가게 된다면, 제대로 된 스킬을 적용시키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서 난 그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저 정도의 결계를 쳐낸 것이니, 꼴에 높은 등급의 밥값을 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역시 조금 모자랐던 건가.’


아예 무 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고, 애초에 방어형이 이렇게 체력을 쓸 일이 있을까.


정식 배치가 되기도 전에 체력을 쓸 일이 생길 줄이야.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반드시 헬스라도 끊어서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면 현재보다는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쩌 쩍-


파삭!


<파랑새의 새장 내구도 10% 감소>


‘윽, 또 깨졌어. 이제 20%정도 남은건가?’


무참히 또 한쪽의 결계가 깨져버리자, 힘겹게 뜨고 있는 눈꺼풀에 서서히 힘이 풀려갔다. 갑자기 무리해서 많은 힘을 써버린 탓인지 몸 안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도 겨우 버티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추워서 몸이 점차 마비되어 갈 뿐만 아니라 겨우 잡고 있던 정신도 서서히 흐릿해졌다.


<필드 안에 압력이 증가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진득했던 침이 서서히 녹아내려 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필드 안에 압력이 증가했기 때문인가. 압력 때문에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거야.


“하하···”


미치겠네, 실성할 정도로 헛웃음까지 나왔다.

진짜 끝인가. 이대로?


아아, 죽겠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밖에 나가도 슬퍼해줄 사람 몇 없고, 집 대출금도 많이 남아서 죽어라 반평생 일만 해야 하는 갑갑한 인생이었다. 하고 싶지 않았던 해커 일도 정식적으로 하게 된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지겹다고 느껴질 정도로 빈도수가 높아질 터였고.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자 역시 죽는 게 나으려나. 하며 눈을 감았다.


퍼석!


쨍-!


[끼야아아아아악!!!]


<필드가 손상되었습니다.>

<필드 내구성 90% 감소>

<필드 시전 종료까지 5분 남았습니다.>


<타액 효과 증폭 제어 종료>

<바이러스 빙결 독수리 결빙 효과 발동>

<필드 내 전투 중 시전자에게 치명타 50% 증가>


“허억-!”


시발! 치명타!


<필드 내 시전자 세포가 일정량 부식되었습니다.>

<타액 효과 증폭 제어 사용 불가>

<파랑새의 새장 스킬 사용 불가>


‘젠장. 다 깨졌다 보네··· 망했다.’


저 바이러스 명이 빙결 독수리구나. 이제 알았다. 미안하다 이름도 몰라주고.


“헉- 헉-”


누워있는 몸 안에서 점점 세포가 얼어붙어 조각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아까 저 녀석이 걸었던 결빙 효과가 그대로 적용된 것 같았다.


아아, 정말 손 하나 까딱일 힘조차 없네.

눈을 감고 있어도 바이러스가 풀려나서 괴성을 지르고 날 죽이려고 날갯짓을 하는 것이 온 감각으로 다 느껴지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두 눈을 아직도 감고 있던 나는, 내 앞으로 달려오는 듯 괴성을 지르는 녀석한테 입만 뻥긋거렸다.


“야, 그냥 깔끔하게 죽여주라. 아프지 않게 바로 즉사 시켜. 그냥 날 죽여서···“


콰 쾅!!


[끼야아아아아악!!!!!]


<필드가 일부 손상되었습니다.>

<필드 내구성 95% 감소>

<필드 시전 종료까지 3분 남았습니다.>


어? 필드 한쪽이 깨졌다! 갑자기?

뭐야 누구야. 어떤 놈이 이런 위험한 짓을!


너무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깨진 필드 모퉁이를 열심히 쫓았다.

하지만, 필드가 깨져 이리저리 나뒹구는 파편 때문에 가려져서 필드를 깬 자의 형체가 보이질 않았다.

반짝거리며 외부 빛과 반사된 필드 파편이 눈이 부실 정도로 시야를 가리자, 최대한 가늘게 눈을 뜨고 다시 한번 보이지도 않는 형체를 바라봤다.


역시 잘 안 보여.

뭐지? 누구길래 필드를 깨고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만든 거야?

그러자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한 번에 정리시켜주는 목소리가 필드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죽긴 누가 죽어! 데리러 왔다, 우연오.”


“···기···호랑?”


씨익-

자기 이름이 불리자 정답이라는 듯이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입을 찢어지게 웃는 녀석의 모습이 파편에 살짝 가려져 조금은 살벌하게 비췄다.


[끼야아아아아악!!!!꺄아아악!!!]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바이러스는 주춤거리다가, 금세 깨진 틈으로 나가려고 휘릭 소리를 내며 궤도를 바꿨다. 저쪽은 안돼!


위험해, 기호랑!


“막아!!”


모든 파편이 걷히고 파편이 떨어진 어깨를 미처 털 생각도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자신 쪽으로 돌진하는 녀석을 호랑은,


콰앙!


“어딜!!”


단박에 한 손으로 턱하고 가볍게 막아낸다.

그런 어이없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해 세웠다. 아니 미친, 무슨 녀석의 힘이 저렇게 괴물 같아? 도대체가 기호랑 너란 녀석은 대체···


“호, 호랑···“

녀석한테 겨우 발길을 옮기던 내게 호랑은 커다랗게 변해버린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을 내 쪽으로 제지하듯 뻗었다. 그 몸짓이 굉장히 위압적이고 단호해서 숨이 헉-하고 막혀왔지만, 그래도 호랑한테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 뜨고 움직였다.


“허억- 헉-”


아··· 미친, 너무 힘들어.

힘이 빠져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던 참에 다시 한번 이런 내 행동을 날카롭게 제지하는 호랑의 목소리가 필드 안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니, 안돼. 오지 마, 우연오.”


“하지만···!”


고집을 피우며 제지하던 호랑한테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씩- 하고 웃는 살벌한 녀석의 웃음이었다. 녀석의 손에는 커다랗게 솟아있는 손톱이 마치 맹수처럼 번뜩였다.


아니, 정말 녀석의 손톱은 호랑이 발톱처럼 변해 있던 거다.


“뭐야, 이 형 걱정하는 거야?”


“!”


미친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하냐?


호랑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지탱하던 다리의 힘이 몽땅 풀려버려 털썩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날 매서운 눈으로 좇던 호랑이 자기가 한 손으로 붙들고 있던 바이러스를 노려보며 한 번 더 외쳤다.


“니스, 필드 구멍을 막아.”


“뀨귝귝-“


뭐? 니스도 왔다고? 주저앉아 겨우 뜨고 있던 눈에 ‘니스’라는 이름이 들리자, 곧바로 힘을 실었다. 아니, 그 작은 녀석이 어떻게 필드 구멍을 막는다고! 진짜 기호랑 저 미친!


쿠구구구궁!


“!?”

“뀨귝!”


<필드가 일부 복구되었습니다.>

<필드 내구성 5% 증가>

<필드 시전 종료까지 5분 남았습니다.>


뭐, 커졌어···?!

니스가 커졌다고?? 순간 내 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실화가 맞는 걸까 여러 번이고 깜빡이며 비벼봤지만,

하. 하하, 저게 뭐야.


“완전 거대 고슴도치네.”


우리 니스 겁나 잘 먹고 잘 컸다.

이 형아는 너의 대견함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주 그냥 신나게 날뛰는 꼴이 볼만하네.


어느새 건물의 한 채가 될 정도로 커다랗게 변한 니스는, 몸을 한가득 웅크리더니 부서진 필드 모서리를 커다란 몸으로 막아냈다.

그러자 곧 무너질 것처럼 파삭 거리던 필드가 쿵쿵! 소리를 내며 아주 조금 안정화를 되찾았다.

그 모습을 힐끔 지켜보던 호랑은 만족 한 듯이 ‘잘했어 니스’라고 니스의 기를 북돋아 줬다.

아마도 갈라진 틈이 메꿔지자 균형이 맞지 않았던 필드 내부가 붕괴될 조짐이 보였는데, 니스의 활약으로 균형이 맞아가면서 붕괴가 늦춰진 거겠지.


나는, 그 두 녀석의 전투를 넋을 놓고 바라만 봤다.


저래서 해커들이 페어를 맺는구나.


서로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고 도와주면서 이루어 내는 신뢰.

한 명으로는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이런 진귀한 싸움을 드디어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나머지, 이래서 해커들을 추앙하고 아이돌 마냥 떠받드는 건가 싶었다.


필드도 안정화됐겠다, 호랑은 곧 자신의 손아귀에 부리가 잡혀 속으로만 울어대던 바이러스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호랑의 그런 눈은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커다란 맹수 같아서 나 또한 그 모습에 기가 죽어 살짝 어깨가 떨렸다.


저것이 제로 급의 전투.


“네가 범인이었군.”


[꾸루루 룩-]


“말하기 힘들겠지. 네 녀석의 부리를 잡고 있으니까. 하필이면 내 앞에서 동물로 둔갑한 형태라니 조금은 찜찜해도···“


꾹-!


[끼끽!]


“너 보다는 연오가 더 중요하니까!”

“!”


호랑의 손아귀에서 이글거리는 어두운 주황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점점 강해지고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쯤.

녀석은 손아귀의 힘을 한껏 올려서, 잡고 있던 바이러스의 부리를 있는 힘껏 우직 소리가 날 정도로 비틀었다.

파직! 소리를 내며 바이러스 부리에 균열이 생기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호랑은 부러진 부리 틈 사이로 진득한 염산을 부어 넣었다.


[끼에에에에엑!!!!!]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설마···


‘녹고 있는 건가?’


바이러스의 부리에서 썩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호랑은 흐물흐물하게 변한, 바이러스의 부리를 조금 더 강하게 으깨듯이 움켜쥐었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필드 안이 위태롭게 좌우로 흔들렸다.


<필드가 곧 종료됩니다.>

<필드 내구성 1%>

<필드 시전 종료까지 1분 남았습니다.>


마치 지진이 난 듯 조금씩 필드 파편이 파르르 떨어지는 것이 육안으로 보이자, 불안해진 나머지 호랑을 향해 외쳤다.


“필드가 무너져 내리려고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 빨리-“

“싫어.”

“뭐···?”


싫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던 호랑은 바이러스를 쳐다본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 호랑의 눈매는 매섭게 치켜 올라가서 마치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은 호랑이 아니었다.


저건, 다른 사람이야.


여태껏 내가 알던 호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조금은 두려워졌다. 아니, 왜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난 거지? 원래 저 녀석 화나면 저 정도로 막무가내였나?


분노의 휩싸인 호랑이 이내 모든 힘을 이끌어 내듯, 더 강하게 빛을 뿜어내자, 콰직! 소리를 내며 호랑이 딛고 있던 필드 지면에 균열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필드 자체가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이러스를 죽이기도 전에 필드가 붕괴되면 위험해. 밖으로 바이러스가 다 빠져나가 버린다고!


“야! 네가 뭐 때문에 화가 난 지 모르겠는데, 필드가 깨지면 큰일 난다고!”


내가 외친 말에 바이러스를 노려보던 호랑의 눈이 꿈틀거리며 떨렸다.

천천히 바이러스를 향해 시선을 거둔 호랑은 조금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네가 죽은 줄만 알았어.”

“야······”

“갑자기 바이러스라고 말하면서 전화가 끊겼는데, 그랬는데!”

“······”

“네가 죽으면 어쩌나 내가 늦으면 안 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기호랑··· 너···“


소리치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까지 화내는 거고 뭘 그렇게까지 감정이 격해져서 걱정하는 건데? 싶었지만, 곧 배시시 하고 웃던 호랑이 이제 이 무의미한 싸움을 끝내려는 듯 양손으로 바이러스의 부리를 잡아채는 것이 보였다.

꾸 욱-


[끼, 끼에-]


날카롭고 강하게 빛나던 호랑의 커다란 손톱이 녀석의 단단한 얼음 같은 살갗을 한방에 우지끈 소리를 내며 뚫어냈다.

뚫린 살갗 아래로 푸시 시- 하며 보라색의 액체가 뿜어져 나오자, 곧 바이러스의 형태가 징그럽게 일그러졌다.


“······”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역해서 보기 힘들었다. 나는 여태껏 고통스럽게 전투를 치렀던 바이러스의 마지막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질끈 눈을 감았다.


[끼야아악!!]


펑!!


곧바로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 소리.

이어지는 찢어지는 잔인한 비명이 뇌리에 박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 진짜···

역시 난 해커 체질이 아닌 것 같아.


잘근 입술을 씹어 바이러스가 죽어가는 그 잔인함을 감내했다.


후드득-


후 득-


“······”


“눈 떠. 다 끝났어.”


호랑의 냉정한 목소리에 파르르 떨리던 입술과 눈에 힘을 풀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서서히 무너져 가는 필드와 작아져서 구석에서 여유롭게 털을 고르고 있는 니스가 보였다.


아- 다 끝났구나. 정말 다···행-


“하하···”

“······우연오”


이게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거였나?

여태까지 나는 겨우 몸을 굴려 피하고 방어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심각할 정도로 차이 나는 힘과 능력에 두려움과 공포. 아니, 수치심이 몰려와서 주먹이 아플 정도로 꽉 쥐었다.

쥔 주먹 사이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지자, 내 앞으로 털썩 무릎을 꿇는 호랑이 눈앞에 아른아른 그려졌다.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게 죽였어야 했는데.”

“···뭐?”

“널 잃을 뻔했어. 우연오.”


호랑의 말에 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이 쓰게 웃었다.


“잃지 않았잖아.”

“운이 좋았을 뿐이야.”

“야···”

“운이 나빴다면, 그랬다면···“


녀석의 말에 깊은 한숨이 났다.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 응?


아직도 필드 안에 미세하게 진동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폈다. 어둡고 짙게 깔린 필드 안이 계속 붕괴를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 필드가 붕괴하고 있다는 메시지만 떠 있을 뿐.


바이러스는 이미 죽었고, 필드도 완전히 깨지게 된다면 여태까지 있었던 이 악몽도 다 꿈이려니 하며 생각하고 말겠지.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필드 한가운데에, 범접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을 가진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기호랑. 넌 도대체가···


꽉 쥔 내 손을 호랑은 자신의 손으로 한가득 감싸 쥐었다.

내 손을 가득 담은 녀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이 느껴지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그런 날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맞잡은 손을 쭉 끌어당겨, 녀석은 자신의 이마로 가져다 대었다.


여전히 벌벌 떨리는 녀석의 손아귀가 생각보다 아파서 가슴 한편이 염산을 부운 것 마냥 쓰라렸다.


남들이 다 좋다고 최고라고 난리 치는 제로 급 주제에 고작 나 하나가 뭐라고 벌벌 떠는 꼴이라니.

너 사람들이 이러는 거 알게 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야.


게다가 내가 너한테는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거였냐, 기호랑?


‘운이 나빴다면 정말 죽었을 거라는 거 나도 알아.’


녀석의 말 중에 틀린 것 하나 없다.

하지만, 그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에 보잘것없는 자존심이 구겨졌다.

겨우 큰맘 먹고 새 거로 꺼낸 종이가 강력한 힘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구겨진 것이다.

나도 열심히 싸웠다고. 야, 방어형인 내가 이 정도로 싸운다면 진짜 대단한 거 아니냐? 고작.


고작-


“그래 난 2 트리플 밖에 안돼. 제로 급인 너랑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급이지.”

“뭐?”

“솔직히 어정쩡하잖아. 강하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는 그 어정쩡함. 그게 나야.”


살짝 떨린 목소리로 말한 내 대답에 당황스럽다는 듯이 호랑의 말이 겹쳐졌다.


“···우연오.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냐.”


피식.

안다. 녀석이 그런 뜻으로 내게 상처 줄리가 없는 녀석이라는 것쯤은.

그저 내가 한없이 땅굴 파던 때에 이런 일이 생겼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결과적으로 힘겹게 싸웠던 나와는 달리 너는 그렇게나 완벽하게 싸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건 어떻게 해도 당연한 사실인데 또 한 번 생명의 은인이 된 너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나 자신이 정말이지 추악하고 짜증이 난다.


“네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거야.”

“우연오.”


내 이름을 부르는 호랑의 목소리가 가엽게 떨렸지만, 무시했다.

예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네, 우리는.

넌 구해주고 난 살아나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너나 나나 항상 우리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거다. 그러니 이 거지 같은 굴레를 내가 끊어내야겠어.


“오늘도 너 말대로 운이 나빴던 거고, 앞으로는 이런 일 따위 없을 거야. 아니, 없도록 해야겠어.”

“······”

“물론 너보다는 약할 수 있겠지. 너는 제로 급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래도···그래도-“


내 옆에는 어느새 털을 다 고르던 니스가 앉아있었다.

까만 두 눈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응시하던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런 니스를 고개를 숙여 가볍게 쳐다보다가, 녀석의 코를 한차례 톡 건드렸더니, 발라당 넘어지는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그래. 이제 이런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인생은 살지 않을 거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당당히 안타까울 정도로 상처받은 얼굴을 한 호랑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난 강해질 거야. 너랑 나란히 설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네가 구하러 올 일이 더 이상 없도록 당당해지겠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거야.”


녀석이 걱정하지 않도록 너에게도 자랑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다.


<필드 시전 시간 종료>


이것이 너를 위한 내 진심. 내 목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 2020. 향신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향신입니다. 오늘은 11편 입니다.

이번편도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 드립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오늘은 11편, 12편이 동시에 업로드 됩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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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1) 20.03.02 194 6 14쪽
23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4) 20.02.28 147 7 15쪽
22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3) 20.02.27 135 6 18쪽
21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2) 20.02.26 150 7 13쪽
20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1) 20.02.25 199 5 14쪽
19 결심했습니다 20.02.24 177 7 19쪽
18 정태하 씨(4) 20.02.21 159 9 17쪽
17 정태하 씨(3) +1 20.02.20 175 10 16쪽
16 정태하 씨(2) +1 20.02.19 362 9 16쪽
15 정태하 씨(1) +1 20.02.18 173 10 16쪽
14 외전. 모란이 지다 +1 20.02.17 270 8 12쪽
13 영원한 상처 20.02.17 160 9 15쪽
12 이게 다 테스트였다고? 20.02.14 136 10 26쪽
» 구하러 왔습니다 20.02.14 134 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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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중앙 동물 해커 센터 소장 기호랑(1) 20.02.11 153 11 18쪽
7 해피니스 +1 20.02.10 182 10 18쪽
6 검은 산양 +1 20.02.07 232 14 14쪽
5 은발 머리의 남자 +6 20.02.07 269 11 19쪽
4 해커의 마음가짐 20.02.06 367 15 16쪽
3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6 20.02.05 470 17 15쪽
2 헬퍼, 양희린 +9 20.02.04 605 20 19쪽
1 융합 +4 20.02.03 949 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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