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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급과의 비밀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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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
작품등록일 :
2020.01.05 23:22
최근연재일 :
2020.03.24 21:0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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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5
추천수 :
313
글자수 :
239,897

작성
20.02.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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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헬퍼, 양희린

DUMMY

2. [ 헬퍼, 양희린 ]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던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몸 안쪽부터 퍼진 이상한 액체가 손끝부터 발끝까지 도달한 느낌이 들었을 때,

주위에서 소리치며 내 몸을 들고 눈을 까뒤집으며 여러 번 몸을 확인하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그래도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자, 억지로 덩치가 거대한 무엇인가가 나를 들쳐 엎었다.


그러고 나서 난, 한 번 더 기억이 끊겼다.




-



어느새 다시 무겁게 눈이 떠지고, 그런 무거운 눈을 겨우 지탱하여 주위를 둘러보니까···

난 어디론가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아직 죽은 게 아닌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가슴 중앙 부근이 두근두근하고 옥죄어 오는 고통에 헉하고 숨을 골랐다.


너무 아픈 나머지 억- 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낸 것도 같았는데, 나를 감싸고 무어라 떠들어 대던 사람들은 그런 내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내 몸 구석구석을 들추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각사각 종이에 적는 소리가 들리고 아주 미세하게 ‘좋았어.’ 라는 소리가 들렸다.


저 좋았다, 는 소리는 설마 나한테 하는 소리일까.

아닐 수도 있지만, 좋았다는 건 내가 괜찮다는 것인가 싶어 가볍게 안심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싶어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신기하고 이상하게 두 눈이 막을 씌워 둔 것처럼 뿌옇게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이 되었다.


모든 감각도 마비되었는지 아무런 냄새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직도 심장이 무엇인가 조여져 있는 것처럼 뛰는 속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굉장히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내 몸인데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치 두근거리는 범위가 무엇인가에 억눌려서 미처 다 뛰지 못하고 반만 뛰다 만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해서 헉헉 걸릴 때쯤.


구궁-


몸이 거칠게 흔들리자, 순간 머리에 픽- 하고 빛이 번쩍였다.


뭐지? 어디에 부딪혔나?


으악! 하며 나를 감싸고 있던 사람들이 저 멀리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아수라장이 된 분위기에 패닉이 되어, 그대로 숨을 멈췄다.


두근두근


숨을 멈추자, 심장이 뜨거울 정도로 응축해서 뛰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어, 욱-! 하고 나도 모르게 숨을 한번 토해냈다.


무슨 일이지? 대체···


소리만 들리고 눈 또한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

분명히 눈앞은 보이는데 세상이 온통 필터를 입힌 듯 뿌옇게 보이는 현상에 실명이 된 걸까? 뒤늦게 생각해보지만,

그저 암울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짙게 눈을 깔았다.


혹시 모르지.

현재 상황이 아예 다른 세계일 수도-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다.


그래, 이왕이면 천국이 좋을 것 같아.

꽤 바른대로 살았고, 남한테 나쁜 짓을 저지른 적도 없었으니까. 신이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아 저 녀석은 천국으로 가도 되겠구나··· 분명히 그럴 거야.


이런 생각이 머물자 이제야말로 죽은 걸까? 싶었지만···.

이번에는 몸 중앙에서 무엇인가 조그마한 빛이 생성되더니 곧 얼굴 쪽으로 달려들어, 내 볼에 열심히 비비적거렸다.


빛이 스쳤던 볼 부분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 덕분인지, 기분이 이상하리만큼 포근했다.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따뜻하다.


상냥한 터치가 나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짓게 했다.

점차 아팠던 몸 또한 서서히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좋았던 온기는 얼마 되지 않아서 내 곁으로 다가온 검은색 그림자에 의해 두려움을 느꼈는지 재빠르게 귓가로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숨은 건가.’


어두움이 무서워서 숨었는지 잔뜩 응축되어 웅크린 빛이 꽤 귀여웠다.


바로 그때였다.

위쪽으로 어둠이 짙게 깔리자, 뿌옇게 변했던 눈은 점차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훅하고 예고 없이 다가와 내 얼굴을 한가득 감싸 쥐는 듯 했다.


‘어? 누구···?’


정말 누군가가 내 얼굴을 쥐었다고 할 정도로 감싸 쥐어진 얼굴은, 엄청나게 차가워졌다.

사람의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아귀에 점차 볼이 얼어붙는 듯 아파졌다.


그 손은 엄청나게 크고 단단하고 마디마디가 두꺼워서, 얼굴에 닿는 감촉이 퍽 이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눈은 뿌옇고 차갑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었던 손은 내 볼에 비비적거렸던 조그마한 빛이 귀 언저리에서 숨어있는 것을 금세 발견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빛을 이상한 병에 그대로 움켜쥐어 담았다.

힘없이 검은 손에 붙잡혀 갇혀버린 빛은 서서히 반짝임을 잃어갔다.


서서히-.


그래, 아주 서서히.

유일하게 밝았고 따스했던 빛이었는데, 그 빛은 검은 손아귀에 붙잡힌 순간부터 자신을 깜빡이던 그 발악이 멈췄을 때 쯤.


검었던 손은, 내 얼굴이 영영 안 보일 정도로 푹 덮어버렸다.


무섭게도 뿌옇게 보이던 눈조차 안 보이는 짙은 어둠에 잠식된 기분이 들었다.

불안감에 살짝 입술이 떨렸다.


뭐지? 무섭다. 나··· 진짜 죽는 걸까?


서서히 정신이 번 아웃 된 기분이 들었다.

점차 생각도 사고도 끊길 때쯤, 아주 미세하게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윙윙거리며 맴돌았다.


“이것으로 너와는 또 볼 수 있겠지. 그때까지 이건 내가 맡아두지. 너는 아마도···”


아마도··· 뭐?


결국 몰려오는 어둠에 이기지 못한 채, 마지막 단어를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



“헉!”


몸에 한기가 들어 두 눈을 번쩍 떴다.

나··· 살아있나? 두 눈이 뜨였다는 건?


‘후- 살았구나.’


살아있어.


“윽-! 아야···”

“깨셨습니까? 아직 움직이기 힘드실 겁니다. 조금만 더 누워 계세요.”


욱신거리는 가슴 언저리를 부여잡고 반쯤 몸을 일으켜서 한차례 숨을 골랐다.

아, 방금 누군가가 말을 걸지 않았나?

일어나자마 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로 말을 건 사람이 어디 있는지 눈으로 쫓았다.


누구지? 내가 쓰러졌을 때 보살펴 준 사람인가?


“이제 눈에 초점이 돌아왔군요. 영영 안돌아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 혹시 절 보살펴 주셨습니까?”

“보살폈다고 해야 할지··· 우선은 보살핀 것이 맞겠죠. 계속 곁에서 몸 상태를 체크했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게 제 일이니까.”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한 사람이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선 몇 번 더 내 눈을 뒤집어 보고 ‘괜찮네요.’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어안이 벙벙했다.


난생 처음 겪어 본 일이었기에 아직도 그 불쾌한 기억이 선명했지만, 어찌 됐던 간에 살아는 있다는 거니까.


그 덕분에 모란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아, 그러고 보니··· 분명히 이동 중에 무엇인가 본 것 같았는데, 그것이 꿈인지 현실이니 조금 구분이 가질 않았다.


초반에는 엄청 온기가 느껴져서 안도했는데, 그 온기가 점차 사라지고 검은 위압감을 가진 누군가가 나를 어루만졌던 기억이 난다.

그 무엇인가 커다란 손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느껴져서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했던 상황이었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미쳤다.


정확히는 딱히 무슨 일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마지막에 뭐라고 했더라.


‘또 볼 수 있을 거라고···.’


그 검은 손을 가진 사람을 맨 정신에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는 엄청난 위압감에 오줌을 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음··· 그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 손을 가진 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있으면 몸에 좋지 못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걸어 온 사람은, 내가 몸을 일으켜서 흐트러진 주위에 침구를 정리해주고 다시 몸을 뉘어줬다.

좀 머쓱한 기분이 든 나머지 뒷머리를 긁적이니, 팔 쪽에 뭔가 탁- 하고 걸리는 게 느껴졌다.


어? 이게 뭐지? 전선?


“아, 그거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칩이 무리하게 심장하고 융합을 시도하면서 세포가 손상된 것을 복원하려고 부착해둔 겁니다. 비싼 거라 망가지면 물어주셔야 하니까 돈이 많으면 만지시던가요.”

“······.”


비싼 거구나?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겠네.


젠장, 슬프지만 난 돈도 뭐도 없으니까. 안 그래도 아직 집 얻으려고 대출받은 것도 겨우 갚고 있는 마당인데···

이 이상 더 돈이 깨지면 진짜로 파산이었다.


그나저나 이곳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나 혼자인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하얀색 물건들과 정돈이 되어 있는 서류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은 여태껏 누워있는 나와, 날 보살펴 준 듯한, 이 사람밖에 보이질 않았다.


약간 섬뜩함이 드는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있다니···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간간이 나는 시큼한 소독약 냄새와 규칙적으로 들리는 삐-삐- 거리는 소리 덕분에 약간 불쾌한 마음과 더불어, 내 몸에 사라졌던 감각들이 조금씩 살아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어, 근데 설마 여기··· 병원인가?’


개인적으로 예전에 병원에서 안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난, 병원에 대한 안 좋은 트라우마가 상당했던 터였다.


소중한 사람 중의 한 명을 병원에서 허망하게 떠나보내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조차도 내가 그저 나약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유세 떨지 마라! 이런 너의 멘탈이 약했기 때문에 생기는 트라우마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난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철저히 이런 안 좋았던 과거들은 숨기기 급급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이 병원이라면 조금은 경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최대한 티는 내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만 들 뿐.


그런데···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이렇게 돌봐주는 것이 일이라고 했었지? 외형으로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목소리로 딱 구분할 수 있게 확실한 것도 아니었거니와, 저 사람의 피처럼 검붉은 머리카락은, 앞머리가 양 눈을 다 덮을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다른 머리 길이는 전체적으로 짧고 잘 다듬어진 형태.


‘키도 나랑 비슷 해보이고···’


굉장히 다부진 몸매가 딱딱한 정장에 가려져서 각이 잡혀 있었다.

음··· 실례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궁금하니까 물어보고 싶은데.


뭐, 괜찮지 않을까? 물어보자.


“저기···”

“네? 무슨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보살펴 주셨는데 성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아··· 그러고 보니까 아직 통성명을 안했군요.”


조금 딱딱해 보이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린다.

어? 이 사람 웃으니까 생각보다 내 취향인데?


“제 이름은 양희린 입니다. 참고로 성별은 여자입니다.”

“네? 아, 네··· 여자.”


이 사람 독심술을 쓰나? 물어보지도 않은 궁금한 것 까지 다 답해주니, 마치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서 얼굴이 후끈해 질 정도로 급 민망해졌다.


“다들 제가 여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더군요.”

“그렇습니까?”

“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여자 아닙니까?”


이 사람···.


아니, 희린이 하는 말에 난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도 헷갈릴 정도로 희린은 매우 중성적이었으니까.


뭐··· 그게 이 사람의 특징이고 매력일 테니 딱히 이상해보이진 않았지만, 희린의 외모는 이런 일을 자주 겪어서 그녀가 조금 고생 할 것 같은 외모이긴 했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본인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음···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참에 다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우선 내가 해커가 된 것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등등,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고민했지만,


아, 모르겠다. 그냥 막 물어보면 알아서 대답해주겠지.


“궁금한데··· 양희린 씨는 여기서 저만 보살피고 있었습니까, 설마 그쪽도 해커?”

“네. 저도 해커가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우연오 씨를 전담마크 할겁니다.”


나를 전담마크 한다니? 그럼 설마 나··· 정말, 해커가 된 건가?


보통 해커 중에 상위 해커인 경우 법적으로 관리 할 수 있게 전담으로 헬퍼를 붙여줬던 것을 기억한다.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 대었으니, 나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난 적어도 ‘3’급 이상이라는 건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 골치 아프게 됐네.


“우연오 씨는 2 트리플 급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우연오 씨가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3급 이상의 상위 급 해커는 헬퍼를 붙여주게 되어있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아참, 그러면 나 방어형이야? 공격형이야?


헤커 들은 능력과 융합에 따라서 방어형하고 공격형하고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능력인지에 따라서 해커에게 주어질 칭호 또한 판이하게 달라진 다는 점도.



방어형이면 방어에 맞는 칭호가, 공격형이면 공격에 맞는 칭호가 주어졌다.

개인적으로는 공격형 칭호가 매우 징그러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성격에 공격형이면 조금 이상한 놈으로 찍혀서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저는 무슨 형입니까?”

“아직 제대로 결과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근데 방어형인 제가 헬퍼로 온 것을 보면 우연오 씨는 방어형 쪽으로 칩 융합이 됐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같은 형 헬퍼를 붙여주기 마련이니까요.”


아, 불행 중 다행이네.

공격형이라고 할까 봐 내심 쫄았었는데, 한시름 놓았다. 아무래도 칭호가 찢어발긴 심장 이딴 거는 받을 일이 없다는 거니까.


방어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심신에 안정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징그러운 것은 질색이라, 만약 해커가 된다면 방어형이나, 전선에서 일이 불가능한 낮은 등급이 나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2 트리플이라니···.

생각 외로 높은 급을 받아서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전선에서 생체 바이러스랑 싸워서 실적을 내야하고, 어찌 됐든 간에 기관에 소속되어서 일해야 할 테니까.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해봤자, 넌 높은 급을 받아서 인생에서 탄탄대로를 탔는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 하고 욕이나 듣겠지.


나는 그냥 평범하게 귀찮은 것 연루되지 않고 살길 바라는 사람이라서 해커가 되어 탄탄대로가 펼쳐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다.


근데 생각보다 칩이라는 그 ‘백신’이 나랑 궁합이 잘 맞았나 보네.

보통은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고 싹수가 괜찮아 보이는 놈들만 픽업해서 헬퍼를 배치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기절한 사이 전담 헬퍼까지 붙여진 것을 보니 대충은 예상이 가는 시나리오인가.


“저기 양희린 씨.”

“네.”

“전 그럼 양희린 씨가 헬퍼로 이미 배정되었으니, 아카데미는 따로 이수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음··· 저도 상부의 지시를 받지는 못했지만 원래 아카데미 특성상 헬퍼가 필요한지를 보고 기본적인 자신의 능력을 찾기 위해서 입학하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제가 이미 배정된 우연오 씨는 별도로 입학은 하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보고가 들어오는 대로 바로 안내할 테니 걱정하세요. 아 참, 그리고-”

“네?”

“양희린 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이래 보여도 실장입니다.”


뭐?! 거짓말.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실장이라고?


아니, 저런 어려 보이는 사람도 실장인데, 일도 못 하고 겨우 하루살이 인생을 살던 내 인생은 꼴이 뭐가 되는 거지?


무슨 일이야··· 아아, 우울하다 진심.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바짝 벌면 집 대출금은 금방 갚을 수 있겠지···?


한 번 더 행복 회로를 돌려보자.

해커가 된 것이라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은 된다잖아?


“그러면 앞으로 양 실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울한 마음은 집어 치우고 큰 소리로 소리치며 경례 자세를 취하니, 희린이 활짝 웃었다.


‘와···’


진심 미쳤다.

희린의 웃는 얼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눈이 부셨다.


큰일 났네···.

순간 아름다운 미소를 봐서 그런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아 그만 나대라! 좀. 나름 심각한 상황인데 넌 누굴 닮아서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진짜.


“미인이시네요.”

“농담하십니까?”

“아뇨 진심입니다만···”

“그것참 고맙습니다.”


미인이라는 말에 혹시 화가 났나 싶어, 괜히 눈치가 보였다.

생각으로만 했던 말을 그냥 내뱉다니···. 이 정도로 내가 얼빠일 줄이야.


근데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모두가 말한 것보다 심각한 얼빠였으니까.


스스로 얼빠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므로 괜찮으리라 생각 한 것이 큰 오산이었을까.


민망해서 뒷머리를 긁적이려고 팔을 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 걸리적거리는 전선이 탁-! 하고 걸려서 더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희린이 풋- 하고 웃었다.


“이곳은 우연오 씨를 도와주는 시설입니다. 세포 재생 센터라는 일종의 문제가 생긴 해커들을 보살피는 보호시설입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이곳을 이용하는 데는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필요한 것이나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저를 불러주시면 됩니다. 조만간 심장에 융합되었다가 망가진 세포가 다시 생성되기 시작하면, 해커로서 필요한 것 부분을 배울 겁니다. 설명은 우선, 여기까지 입니다. 궁금한 것이 많으시겠지만, 곧 다 알게 되실 거니 염려 마세요.”


깔끔하게 설명을 마친 희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희린의 외모는 최고다.


아니, 외모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밸런스도.


얼빠 레이더가 저 사람은 미인이니까, 그리 알아라!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외모 칭찬만 하니까 내가 진짜 쓰레기가 된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 씨. 망했네···.

순간, 다시 보이는 희린의 미소에 말랑해지다 못해 결국 흐물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 2020. 향신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말

2편입니다. 이번 편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운 날씨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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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7 [탈퇴계정]
    작성일
    20.02.04 21:12
    No. 1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벌써 궁금해지네요~계속 읽어보고 싶어요.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향신
    작성일
    20.02.06 21:08
    No. 2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잘 부탁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밤 보내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1 미혹의왕
    작성일
    20.02.28 09:49
    No. 3

    10프로에 두 근을 띄우시니 고기 두 근같아요 붙여주세용 띄워쓰기는 내 영역이 아닌데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향신
    작성일
    20.02.28 17:51
    No. 4

    안녕하세요, 해당 내용은 확인한 뒤 수정 한 상태입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마스터조인
    작성일
    20.03.01 15:35
    No. 5

    되도않는 잡소리를 줄이면 배는 좋아질 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향신
    작성일
    20.03.01 16:58
    No. 6

    안녕하세요, 감상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그 되도않는 잡소리는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주인공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런 성격을 조금이나마 보이기 위함이기도 해서 그대로 넣고 있지만,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마스터조인
    작성일
    20.03.02 11:03
    No. 7

    어렵게 얻은 대출금 남은 집이라면 곁다리 아쉬워 하는 것에 공감하겠지만
    세상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 마지막 생각이 대출금을 못 갑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걸 3절까지 한다고 캐릭터가 만들어질도 의문이고 그런 캐릭터가 매력적일지것 같지도 않군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향신
    작성일
    20.03.02 11:11
    No. 8

    독자분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죠.^^ 저는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대출금이나 집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서 이렇게 썼는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가 봅니다. 매력적이지 못한 캐릭터라고 이미 정해두신 거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향신
    작성일
    20.03.02 12:00
    No. 9

    댓글 좋아요 눌러드리고 싶은데, 앱에서는 해당 기능이 안보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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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뉴스 속보입니다(2) +1 20.03.24 308 3 12쪽
33 뉴스 속보입니다(1) +2 20.03.13 223 4 10쪽
32 현계 가이드 북(4) +2 20.03.12 189 4 12쪽
31 현계 가이드 북(3) 20.03.11 184 5 13쪽
30 현계 가이드 북(2) 20.03.10 179 5 10쪽
29 현계 가이드 북(1) 20.03.09 150 6 16쪽
28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5) 20.03.06 171 6 17쪽
27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4) 20.03.05 138 7 14쪽
26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3) 20.03.04 140 8 20쪽
25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2) 20.03.03 364 7 13쪽
24 또 다른 정태하 씨 입니다(1) 20.03.02 195 6 14쪽
23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4) 20.02.28 149 7 15쪽
22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3) 20.02.27 136 6 18쪽
21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2) 20.02.26 151 7 13쪽
20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1) 20.02.25 200 5 14쪽
19 결심했습니다 20.02.24 178 7 19쪽
18 정태하 씨(4) 20.02.21 160 9 17쪽
17 정태하 씨(3) +1 20.02.20 176 10 16쪽
16 정태하 씨(2) +1 20.02.19 363 9 16쪽
15 정태하 씨(1) +1 20.02.18 174 10 16쪽
14 외전. 모란이 지다 +1 20.02.17 273 8 12쪽
13 영원한 상처 20.02.17 163 9 15쪽
12 이게 다 테스트였다고? 20.02.14 137 10 26쪽
11 구하러 왔습니다 20.02.14 136 8 18쪽
10 결국 싸웁니다 20.02.13 171 9 16쪽
9 중앙 동물 해커 센터 소장 기호랑(2) 20.02.12 137 11 17쪽
8 중앙 동물 해커 센터 소장 기호랑(1) 20.02.11 154 11 18쪽
7 해피니스 +1 20.02.10 183 10 18쪽
6 검은 산양 +1 20.02.07 233 14 14쪽
5 은발 머리의 남자 +6 20.02.07 270 11 19쪽
4 해커의 마음가짐 20.02.06 368 15 16쪽
3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6 20.02.05 471 17 15쪽
» 헬퍼, 양희린 +9 20.02.04 608 20 19쪽
1 융합 +4 20.02.03 950 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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