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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님의 서재입니다.

사랑하는 중입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9.02.26 18:54
최근연재일 :
2019.03.07 09: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6,086
추천수 :
104
글자수 :
249,983

작성
19.02.28 06:00
조회
358
추천
5
글자
10쪽

01. 저지르다

DUMMY

돌이켜보면, 일 년이 수십 년 같았던 그런 한해였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다시 봄이 왔고, 이제 곧 여름을 바라보는 유월이 돌아왔다. 그리고 희연의 맘에 다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사표요.”


“누가 뭔지 몰라 이래?”


희연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그렇게 조차장 앞에 묵묵히 서 있었다.


“내가...”


조차장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누르고 있는 듯 했다.


“김희연씨 맘이 어떤지 몰라 이러는 거 아니야.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왜이래?”


“수리 해 주세요. 한두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라서 이래요.”


“조카는? 조카는 어쩌고?”


“그니까요. 조카 때문에 그래요.”


“지금 말장난 해?”


버럭 화를 내는 조차장의 격양된 목소리에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희연은 이렇게 일을 저질렀다.


사무실을 나온 희연은 홀가분한 목소리로 나경에게 전화를 했다.


“나, 저질렀어.”


-뭘?


“사표. 그만뒀어. 드디어.”


-응.


“응? 그게 다야?”


-나 수업시간이야. 들어가야 해.


“어, 응.”


참 맥 빠지는 대답이다. 누구보다 먼저 얘기한 건데. 솔직히 달리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전화 해야지 하고 떠오른 사람도 없었던 희연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반응은 참 서운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뭐를 해야 할지 몰랐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공부에도 취미가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으니 대학에 가야할 필요성은 더욱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엄마와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성적에 맞춰 대학에 입학을 했고, 여느 아이들처럼 적당히 20대 청춘을 즐기며 적당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 살 터울인 희연의 언니는 달랐다. 공부라면 둘째가라고 하면 서운하다 할 정도로 욕심이 많았고, 그 흔하디흔한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그야말로 공부를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를 재미있어 했다.


희연은 언니를 보면서 적잖이 비교도 당했고, 적당히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러다 제풀에 죽어 ‘언니는 언니고, 나는 나지 뭐.’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변이 있었다. 알아주는 S대 공대를 나와 미국의 유명한 공대 TAMU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언니는 공부보다 더 좋은 게 생겼다며 형부를 우리 가족에게 소개했다.


희연의 엄마 배윤화 여사는 자식들 공부로 키워 호사부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니에게 내심 기대하는 바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는지 꽤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언니가 한 사람의 여자로 살고 싶다고 선언을 하자 배여사는 머리를 싸고 드러누웠고, 언니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배여사에게 반강제의 동의를 얻고서 형부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조카가 생겼다.


형부는 적당히 애교도 있으면서 자상한 그런 사람이었다. 여태껏 희연이 알고 보아온 가족 중에 TV나 영화 속에 보이는 가장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에 가까운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던 그런 가족의 모습이었다.


이른 결혼을 한 딸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배여사도 행복하게 사는 언니 부부를 보며 마음을 놓았던 듯 했다.


하지만 어디서나 있듯이 하늘마저 이들을 시기했던 듯하다. 희연의 언니와 형부는 한날한시에 죽자고 결혼식에서 외치던 그 행복했던 모습처럼,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어린 조카는 배여사와 희연의 가족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희연의 언니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릴 즈음 희연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의 기자가 되었다.


기자는 희연이 대학 학보사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꿈이었다. 대학 시절에 특집으로 실었던 고목에 관한 취재기사가 유명 일간지에서도 소개가 되면서 잠시 기자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희연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대학 학보사의 기자와 사회에서의 기자로 요구되는 자질들은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희연 스스로가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도 컸다.


그러다 희연은 언니부부가 사고로 죽고 조카인 나경과 한 집에 살기 시작할 무렵 7년간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CS 교육 강사로 전향을 했다.


희연이 입사 년 수를 따지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6년이나 되었다. 정말 1년만 버텨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던 회사였다.


항상 어느 샐러리맨처럼 나 또한 그만둬야지 하면서 6년을 지내왔던 터였다. 그런 희연은 나이 37살이 되어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길이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옆자리 민숙이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감기야?”


“아니요. 꽃가루 알레르기요. 봄만 되면 죽겠어요.”


희연은 민숙의 꽃가루라는 말에 그 옛날 제게 나경이 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일년 전 유월의 꽃피는 봄날 주말, 공원의 오후는 활기 차 보였다. 소풍 나온 가족의 모습들, 다정히 자전거를 배우는 연인들,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의 모습, 나란히 손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선글라스에 짧은 운동복을 입고 음악을 들으며 뛰는 여자, 그런 여자를 넋 놓고 바라보는 남자들, 기타 등등 각양각색의 공원의 평화로운 일상 위로 아주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아주 가식적인 모습이야. 왜 저러고 살아. 피곤하게.”


활기찬 공원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36살의 희연과 12살의 나경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이건 가식적인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거거든?”


희연이 아이답지 않게 말하는 나경을 향해 말했다. 그런 희연의 말에 나경은 조깅하는 여자를 쳐다보며 희연에게 다시 말을 했다.


“저 여자가 정상으로 보여? ‘나 좀 봐주세요.’하면서 쇼하는 거지.”


희연도 나경의 말에 조깅하는 여자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치??”


그러다 곧 나경의 무표정한 얼굴에 정색을 하듯 희연이 다시 고쳐 말했다.


“나도 저 정도면 저러고 다니겠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하는 거지.”


희연이 나경의 머리를 콩 쥐어박으려하면, 나경의 손이 벌써부터 희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에 무안한 듯 희연이 심드렁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넌 무슨 초딩이 이렇게 매사 부정적이냐?”


“부정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거야. 무슨 어른이 그렇게 꿈만 가득 품고 있어? 요즘 초딩도 안 그렇거든!”


“뭐? 이게~~”


티격태격하는 나경과 희연의 모습 뒤로 봄의 기운을 가득 품은 공원이 짐짓 평화로워 보였다. 어디선가 살랑대는 바람이 불어와 꽃가루를 흩어지게 하고 있었다.


꽃가루가 바람에 흩어지며 어느 집의 담벼락 위에도 앉았다. 집의 마당에도 봄꽃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이때, 대문이 열리며 희연과 나경이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텃밭의 흙을 호미로 갈아 주고 있는 배여사가 이들을 한번 쳐다보다 혼잣말을 했다.


“유월이라 그런지, 꽃들이 바람이 잔뜩 들어서 아주 난리를 피우는 구나.”


배여사의 혼잣말을 들은 희연이 화단 옆의 평상에 앉으며 대꾸를 했다.


“무슨 꽃들이 바람이 들어...”


그러나 나경이 희연의 말에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근거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니야. 5월과 6월에 꽃가루가 가장 많이 날리니까. 이 꽃가루가 짝짓기의 의미도 되는 거니까.”


나경의 말에 희연이 놀란 듯 나경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넌 그런 거 다 어디서 아니?”


그러나 나경은 희연의 질문이 한심한 듯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건 상식인거거든?”


“내가 봤을 때, 넌 책을 그만 봐야 해. 책이 아주 애를 버린다니까.”


나경이 지숙의 말을 무시하고, 배여사 옆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 바람도 시원한데.. 우리 칼국수나 먹을까??”


희연은 나경의 말에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정색을 했다.


“난 싫어. 날도 더운데 무슨 칼국수야. 냉면 어때? 요 앞 사거리에 새로 생겼던데.. 내가 쏠게.”


배여사가 장갑을 벗으며 일어나면, 나경이 호미와 빈 화분을 챙겨 구석으로 옮겼다. 배여사는 그런 나경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정스레 대답했다.


“그럴까? 마침, 호박도 있는데..”


배여사가 희연을 약 올리듯 집안으로 들어갔다. 희연은 그런 배여사의 뒤를 졸졸 쫓아가며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왜 맨날 둘이 좋아하는 것만 먹어?? 왜 그런 건데??”


후우. 희연이 놓고 간 지갑과 요구르트와 우유, 주스가 담긴 비닐봉투를 보자 나경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나경은 희연의 것들을 챙겨 집안으로 들어갔다.


상을 차리고 있는 나경 뒤로 주방에서 칼국수를 냄비에서 퍼서 그릇에 담고 있는 배여사가 보였다. 이때, 희연이 외출준비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런 희연을 발견한 배여사가 매서운 눈으로 한마디 했다.


“야, 어디가?”


“냉면 먹으러..”


“왜? 아주 냉면 공장을 차리지..”


“그럴 거거든..”


배여사와 희연의 대화에 상을 차리고 있던 나경이 말없이 식탁에서 희연의 수저와 젓가락을 치웠다.


“좀 늦을 거야. 일 때문에 나가는 거야.”


이에 나경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화장도 안하고?”


“원래 이쁘면 안 해도 괜찮은 거거든!”


배여사는 밖으로 나가는 희연의 뒤로 소리 질렀다.


“야!! 일찍 들어와.”


희연은 뭐가 급한지 대답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희연이 나간 문 사이로 따뜻한 바람만이 남겨졌다.


작가의말

문피아에는 처음 올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78 하무린
    작성일
    19.03.02 07:08
    No. 1

    글이 무척 정갈하고 아름다워요.
    저는 다른 작가님의 글에 대해서
    평을 하지 않지만(자격이 없어서)
    님의 글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잘 보고 가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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