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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송 님의 서재입니다.

학사무림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봉황송
작품등록일 :
2011.08.25 09:30
최근연재일 :
2012.12.10 11:22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57,827
추천수 :
714
글자수 :
23,207

작성
11.03.13 14:05
조회
40,977
추천
180
글자
9쪽

학사무림 #-29

DUMMY

“말년에 그분은 무공보다 분재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그분께서 직접 만든 분재들로 이뤄진 정원이지요. 학사님이 지금 앉으신 거기 그 자리에 오호도제께서 앉아서 즐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심경이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들었고, 할어버지는 전대의 정원사에게 들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정원사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 셈이었다.

“분재들을 오호도제께서 만드셨다니 정말로 놀랐습니다.”

“기화이초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었지만 분재들은 그대로이지요. 나무들이라고 한정한다면 오호도제께서 보던 그대로의 정원을, 학사님께서 지금 그대로 보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라고요?”

임학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팽가의 역사가 거의 오백년에 육박했는데, 옛날과 똑같다고 하니 놀랐다. 하지만 심경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대로입니다. 아쉽게도 담장 바깥 풍경은 과거에 참화로 인해 많이 달라졌지요. 건물들이 새롭게 지어졌기에 풍광과의 어울림이 달라졌지만 이 정원 자체의 분재들은 그 당시 그대로이지요.”

“그대로라 하더라도 나무들이 오백여 년이 흘렀는데 똑같은 턱이 있을까요?”

“학사님이라고 해도 모든 걸 아시는 건 아니군요. 여기 있는 백팔 그루의 나무들은 모두가 다 분재들이랍니다. 나무가 자라게 되면 그건 분재가 아니지요. 자라지 않아요. 몇 백 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게 하며 살려내지요. 그러니까 분재라는 거지요.”

“아!”

임학후가 탄성을 터트렸다.

분재라는 걸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다만, 인위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막으며 나무의 성장을 막는다는 사실이 싫어서 제대로 보고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들어보니 천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세월동안 변하지 않게 만든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웠다.

“다소 낡아졌습니다만, 오호도제께서 보던 그대로입니다. 단지 나무껍질만 조금 나이를 먹었지요. 오호도제께서 나무껍질은 나이를 먹지만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만든 분재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어리석은 저는 아직 모르겠는데, 학사님께서는 아나요?”

“사람과 같다라? 과연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임학후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무릎을 찰싹 치면서 탄성을 터트렸다.

“분재들이 혹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나요?”

“허허허! 그렇게 보이나 보죠? 저는 그냥 그런데요.”

심경이 분재들을 바라보면서 눈을 껌뻑거렸다.

그저 나무로만 보였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고 있지만 어디가지나 나무였다.

“저의 마음에 떠오른 심상입니다.”

분재가 주고 있는 강렬한 느낌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허허허! 사람처럼 대해주니 나무들이 좋아할 겁니다. 저는 여기의 아픈 아이들을 모두 치료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겠네요.”

심경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굽혔던 허리를 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임학후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좋은 풍경 감상하면서 아름다운 시간 보내십시오.”

심경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에 호미와 가위를 바구니에 챙기고서 옆쪽으로 옮겨갔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분재와 바위에 가라져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슥!

임학후가 다시금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분재를 살폈다.

“나에게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왜 정원사 할아버지에게는 안 보이는 거지?”

그가 분재를 빤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이 분재에게 가서 꽂혔고, 머릿속의 잡념이 모조리 사라졌다.

오백년을 이어온 분재가 다시금 그에게 사람이 되어서 상냥하게 다가섰다.

도를 뽑은 분재 옆의 나무를 보니 삐죽이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하늘을 찌른다. 천주부동의 자세에서 발도진천이지 않은가?

정원의 분재들에는 순서가 있다.

“후후후!”

마음껏 즐기는 임학후의 입에서 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즐거움에 압도되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휘이잉! 휘이잉!

상냥한 바람이 불어왔다.

임학후의 비단옷자락이 사르르 흔들렸고, 정원의 분재들의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이 사사삭 흔들렸다.

오랜 세월 가려져 있던 팽가의 신비의 장막이 한 꺼풀 벗겨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햇볕 따사로운 오후의 시간을 잠룡서고에서 보내지 않고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서 몰두하는 임학후의 기행은 다시금 유명해졌다.

“무엇을 하시는 거예요?”

점심식사를 마친 팽설이 연무장으로 가기 전에 정원에 들렀다.

임학후가 무릎을 꿇은 채로 십여 장 떨어진 분재를 총총히 빛나는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분재들을 보고 있단다.”

“아! 시조께서 만든 분재를 말하는 거군요.”

“보면 볼수록 신기하구나.”

“어떤 부분이 신가한데요?”

“분재들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니?”

임학후가 발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안 보여요.”

팽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라고 태어나면서 무수히 많이 본 나무들이었지만 결코 사람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서서 보면 안 돼. 나처럼 무릎을 꿇어야 한다.”

슥!

팽설이 임학후 옆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임학후가 알려준 소나무를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푸른 잎과 나뭇가지만 보일 뿐이었다.

“사람으로 안 보여요.”

“그래? 이상하네.”

임학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바로 발도하는 것처럼 역동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니?”

“전혀요.”

“저기 아래로 늘어진 나뭇가지 보이지?”

“네.”

“그것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 같지 않아? 내 눈에는 발도할 때 너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데.”

임학후가 손가락으로 자신이 느꼈던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팽설이 좀 더 몰두하여 나뭇가지를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로만 보였다.

“아니요. 저에게는 그렇게 안 다가서요.”

“이상한 일이로구나. 너한테는 보일 줄 알았는데…….”

임학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재를 보면서 도를 뽑아낸다고 느낀 건 수업을 하기 위해서 팽설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발의 움직임과 간격, 팔의 위치 등 모든 걸 전반적으로 꿰뚫어보았다.

그런 것이 바로 나무와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팽설은 보지 못 했지만 임학후의 말이 잘못됐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사부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에요.”

말하면서 짓는 그녀의 웃음이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세상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고, 바로 임학후가 그렇다고 뚜렷하게 생각했다. 뛰어난 학식도 놀라웠지만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서 정열적으로 살피는 모습이 더욱 멋있었다.

“사부님, 저랑 한 가지 약속을 해주세요.”

“무엇이지?”

“사부님이 무엇을 보던 저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세요. 그러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그녀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특별한 임학후가 특별히 본 것을 처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사부님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내용이야.’

앙증맞은 여심의 발로였다.

그녀의 얼굴이 은은하게 붉어졌다.

“약속하마.”

임학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에서 보고 느낀 걸 돌려주고 갈 생각이었고, 제자인 팽설에게 주는 것이 합당했다.

“와아! 새끼손가락 걸어요.”

팽설이 가녀리고 뽀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임학후가 팔목을 들자 학창의의 소맷자락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슥!

그늘이 진 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팽설과 임학후의 손가락이 서로 부드럽게 얽혔다.

따뜻한 온기가 오고갔다.

‘까아! 두 번째 접촉이야.’

팽설이 속으로 환호했다.

파르르!

임학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면서 팽설의 속눈썹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임학후의 모습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귀엽군.’

임학후가 팽설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사랑할 대상은 내가 아닌듯 하구나.’

소녀에서 여인으로 된 팽설이 그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은영에게 주지받았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의 눈은 팽설을 여인이 아닌 제자로 한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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