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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송 님의 서재입니다.

학사무림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봉황송
작품등록일 :
2011.08.25 09:30
최근연재일 :
2012.12.10 11:22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57,822
추천수 :
714
글자수 :
23,207

작성
11.02.16 15:10
조회
37,302
추천
102
글자
8쪽

학사무림 #-2

DUMMY

한상운은 불현듯 임학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길을 찾지 않고 고집스럽게 책을 사랑하는 임학후를 보면서 처음 만났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과거에서 네 번 미끄러졌을 때, 태산서원에 갓 입학한 동생으로 임학후가 들어왔다.

대나무처럼 마른 몸에 여기저기 수선하여 꿰입은 허름한 학창의를 입고 있었다. 귀를 덮을 듯 말듯 정돈되지 않은 수더분한 머리카락,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숨길 수 없는 그늘…….

지금은 밝은 모습이지만 그때에는 세상의 어둠이란 어둠은 모두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임학후는 어리고 천진난만한 또래의 동생들과는 달랐다. 보통의 동생들이 동네글방에서 태산서원으로 올라온 학동이라면, 임학후는 책을 읽고 세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어엿한 선비였다.

우수에 젖은 눈빛에 말수가 적고 의젓한데다가, 외모가 출중하고 머리도 비상하여 여자들이 꽤 따랐다.

한상운은 임학후에게 처음부터 관심이 생겼다.

한상운이 임학후와 가까워진 데에는 술 덕이 컸다.

능력이 닿지 않았기에 과거를 포기한 그는 일자리를 찾는 한편으로 수업을 빼먹고 술을 즐겨 찾았다. 그러던 중에 임학후와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 인연이 생겼다.

한상운으로 인해 어리던 임학후가 술을 알게 됐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가까워졌다.

잦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임학후가 술의 참맛을 알아갔다. 거나하게 술을 마시면서도 다음날 수업에 일절 지장이 없었다.

한상운은 자신이 원하던 사해서고에 취직했다.

그 뒤 가는 길이 달라 오랜 세월 만나지 못 했다.

한상운이 임학후를 다시 만난 것은 태산서원의 한 서고에서였다.

붉게 충혈된 눈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고, 얼굴이 빼빼 말라있었고, 여기저기 기운 흔적들로 도배된 학창의가 더욱 허름해서 완전히 누더기 수준이었다.

그를 두고서 태산서원의 학사들은 서고에 한 명의 책귀신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학식이 차고도 넘친 임학후가 과거에서 떨어진 뒤에 오로지 서고에서 책과 씨름을 하며 살았다.

배경 없고 연줄이 없으면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이 과거였다. 과거가 학식의 대결이 아니라 배경과 연줄 다툼으로 변질됐다.

한상운은 사람몰골 아닌 궁핍한 임학후를 그냥 두기 안쓰러웠기에 도와줄 길을 찾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사해서고에서 밤에만 잠깐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수선하고 복원하는 일만 잠깐 맡길 셈이었다.

그의 부탁을 임학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잠깐이라고 하던 시간이 몇 년이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도움을 주려고 한 순수한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태산서원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임학후가 공부를 때려치우게 만들어버렸다. 사해서고에서 눌러앉게 되는 원인제공을 한 셈이었다.

“너 이번에 새롭게 부임한 점주님 알고 있지?”

한상운이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귀가 있어서 들었지요.”

최근 사해서고의 점주가 교체되면서 커다란 폭풍이 일었다. 대륙십대상단 가운데 하나인 사해상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해서고이다. 상단주의 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능력있다는 고은미가 점주로 올라섰다.

내심 점주의 위치를 바라보고 있던 한상운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면서 고은미의 깔끔하고 능수능란한 일처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친우인 하북팽가의 팽설에 대해서 특별히 부탁한 거야. 그래서 내가 능력이 출중한 너를 추천했지. 그분도 자네라면 좋다고 하셨어.”

개별적인 인맥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임학후의 능력을 발군이었다. 태산서원이라는 간판과 뛰어난 학식 그리고 수많은 고서들을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문자를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뛰어난 능력의 임학후가 계속하여 박봉의 사해서고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사해서고가 괜찮은 일자리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임학후라면 더욱 높고 좋은 일자를 얻을 자격이 충분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해주세요.”

“너 왜 이래? 그분이 누구인지 잘 알잖아. 상단주님의 친딸이란 말이야. 힘들게 말해서 승낙을 얻었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내 얼굴이 어떻게 되겠냐?”

한상운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월급쟁이 인생의 그에게 권력을 지니고 있는 윗사람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윗사람에게 말했던 내용을 다시 되돌리기란 어렵다.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한다는 다급함이 넘쳤다.

“그러기에 왜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벌이세요?”

“너에게도 좋은 일이야. 지금처럼 번거롭게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하루에 한시진만 가르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했어. 보수 좋고 일 편하니까 네가 공부하기에도 좋잖아.”

한상운이 필사적으로 임학후를 설득했다.

상단주의 친딸인 고은미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일처리도 척척 깔끔하게 잘하고, 성격도 사근사근했다. 상사인 고은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갖은 열성을 보였다. 빨리 친해질 방법을 궁리하다 고은미가 친구인 팽설의 개인학사를 구한다고 하기에 대뜸 임학후를 추천했다.

고은미도 임학후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기에 바로 승낙했다.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요.”

“내가 총관에서 잘려도 좋아? 내 둘째 부인이 다섯째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지? 서원에 다니고 있는 첫째와 둘째 학비도 매달 펑펑 들어가고, 병환에 든 노모 약값도 만만치 않아. 내가 지금 총관에서 잘리면 우리 집 쫄딱 망한다.”

“선배…….”

한없이 거절하던 임학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일이 끝나고 간혹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세상살이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한상운이었다. 그렇기에 한상운의 집안사정에 대해서 빤히 알고 있었다. 한창 돈이 들어가고 있는데 가장이 직장에서 잘리면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딱 잘라 거절했지만 실상 마음이 여리고 따뜻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파하고 상처받는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제발 부탁이다. 이번만 내 처지를 생각해다오. 다음부터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을 게.”

“휴우! 알았어요. 이번만이에요.”

“고맙다. 정말 고마워.”

한상운이 임학후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 부탁에 임학후가 손을 슬며시 빼냈다.

“팽가에 대해서 준비한 자료들 있나요?”

임학후가 물었다.

일을 맡지 않으면 모를까 맡으면 항상 철두철미하게 임하는 성격이었다. 개인학사로 떠나기 전 일해야 하는 무림가문 팽가와 팽설에 대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있지. 네가 간다고 점주님께서 특별히 준비한 책이야.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드려. 사해상단의 대외비라고 하니까 머릿속에 집어넣고 태워버려.”

한상운이 책상 서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어서 임학후에게 내밀었다. 임학후가 잠시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을 맡길 심산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군요.”

“유비무환이라고 해줘.”

미안한 마음의 한상운이 입가에 머쓱한 웃음을 지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임학후는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지만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 머리숱 적어 대머리가 될 한상운을 보자니 애잔한 마음이 밀려왔다.

“가볼게요.”

“출발일은 내일이라고 점주님에게 보고한다.”

“알아서 하세요.”

임학후가 집무실을 나섰다.


추신 - 오랜만의 연재입니다.

오타와 문맥에 이상한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더욱 깔끔한 글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많은 댓글에 불끈 힘이 솟습니다.

연재하니까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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