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거주민 입성(2)
“주문하신 핫도그 8개 나왔습니다!”
“헐.”
성민이란 이름의 남학생이 갓 튀겨진 핫도그를 받아 들곤 탄성을 흘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태정과 나은도 입을 쩍 벌리긴 매한가지였다.
핫도그도그 점포 안, 노랑머리 종업원은 남은 주문 수량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핫도그를 튀겼다.
“저, 저기요. 아저씨.”
나은이란 여학생이 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쩝. 왜 자꾸 아저씨래?’
이제 서른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저씨 아니고 오빠야!’라고 정정해주자니 너무 추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응? 왜?”
“저거 진짜 핫도그에요?”
“어. 진짜 핫도그야.”
“그럼······.”
나은의 시선이 점포 안 노랑머리 종업원에게로 돌아갔다.
“저 사람도 진짜 사람이에요?”
나은을 포함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저 노랑머리 여자가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아이들은 어떤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사람 같지 않다는 위화감이었다.
그녀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고, 표정도 똑같았다.
주문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사소한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휴게소에 낯선 아이들이 찾아왔는데도 ‘어디서 왔냐’든가 ‘오느라 고생했다’든가 말 한 마디가 없다.
무엇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실실 웃으며 핫도그나 튀기는 모습이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아니. 진짜 사람은 아니야.”
“그, 그럼요?”
“음. 너희 게임 하니?”
“하죠 당연히.”
“저도요.”
“저는 좀비고나 마크 조금······.”
진수의 물음에 성민과 태정, 나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NPC라고 생각하면 돼.”
“NPC요?”
진수는 핫도그가 나오는 시간 동안 〈휴게소 키우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자신이 그 게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음도 덧붙여서.
“와, 대박.”
“그럼 저 벽도 그 게임 능력으로 만든 거예요?”
“그런 셈이지.”
“아저씨는 어떻게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몰라? 그냥 되던데?”
“쩐다······.”
주문하신 핫도그 8개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핫도그 8개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핫도그 8개 나왔습니다!
쟁반 위로 핫도그가 쌓여 갔다.
한 번에 주문할 수 있는 최대 수량이 8개인 것이 아쉽다.
‘개수가 개수다 보니 오래 걸리네.’
점포를 업그레이드해서 ‘온장고’를 설치하거나 종업원을 더 뽑으면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리라.
다만 당장은 사치인 행동이었다.
진수와 아이들은 참을성 있게 남은 핫도그를 기다렸다.
그러고 있으려니 남자 화장실에서 대성이 나와 이리로 다가왔다.
“왜 나오셨어요? 안에서 기다리시지.”
“안 오시길래 뭐 하나 싶어서······.”
“대성쌤, 이것 보세요. 진짜 핫도그에요!”
쟁반 가득 쌓인 핫도그를 본 대성의 눈이 커졌다.
“장사를······ 영업을 진짜로 하는 거였습니까? 어떻게?”
“쌤. 저거 진짜 사람 아니고 NPC래요. 이거는 게임에 나오는 핫도그 가게고요.”
“뭐, 뭐라고?”
진수를 대신해 아이들이 핫도그도그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주문하신 핫도그 8개 나왔습니다!”
마지막 핫도그 8개가 나왔다.
아이들은 총 40개의 핫도그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남자 화장실로 돌아갔다.
“하, 핫도그!”
“진짜 핫도그야!”
꼬박 며칠을 굶은 아이들은 핫도그를 본 즉시 조건반사로 군침을 뚝뚝 떨어뜨렸다.
“두당 3개씩은 돌아갈 겁니다. 다 드시고, 혹시 부족하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얘들아 잘 먹겠다고 말씀 드려야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어, 그래. 꼭꼭 씹어서 많이들 먹어.”
사람들이 핫도그를 먹기 시작했다.
꼭꼭 씹어 먹으란 말이 무색하게, 먹성 좋은 남자애들은 핫도그 하나를 10초 만에 해치워댔다.
체하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괜찮으리라.
돌도 씹어 먹을 나이니까.
진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핫도그도그에 가봤더니 서린이 핫도그를 주문하고 있었다.
“핫도그 주고 왔어요? 우리도 밥 먹죠.”
“오. 안 그래도 그러자고 하려 했는데. 한발 빠르시네요.”
“척하면 척이죠.”
서린은 싱긋 웃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진수 씨 팔 괜찮아요? 아까 피가 뚝뚝 떨어지던데.”
“아.”
진수는 구울에게 물렸던 왼팔을 내려봤다.
상처가 꽤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피가 멎고 피딱지가 두껍게 내려앉았다.
꾹꾹 눌러 보는데 통증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건강 스탯이 최고야.’
병원 갔으면 최소 12방은 꿰매야 할 상처가 20~30분 만에 자연 치유 되다니.
“괜찮아요. 거의 다 나았어요.”
“한 번 봐봐요. 오······ 진짜네.”
“서린 씨는요? 어디 다친 데 없으세요?”
“나는 한 대도 안 맞았다니까요. 아으 찝찝해.”
그녀가 별안간 머리를 벅벅 긁었다.
대강 씻은 것 같긴 하다만, 간장에 절은 머리가 마구 엉켜 있었다.
그건 진수 또한 마찬가지이긴 했다.
“진수 씨. 저 사람들 남자 화장실에 계속 둘 거죠?”
“예, 뭐. 당장은요. 에어컨 되는 데가 화장실밖엔 없으니까.”
“그럼 여자 화장실에 이불이랑 짐 빼고 거기서 좀 씻어도 될까요? 웬만하면 참겠는데, 진짜 찝찝해 죽을 것 같아서요.”
진수도 서린도, 또 옥산중에서 구출해 온 사람들도 씻긴 씻어야 했다.
서린은 식사가 끝나거든 남자, 여자 나누어서 각각 화장실에 들어가 씻자고 제안했다.
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안 그래도 샤워실 하나 놓을 생각이었으니까.”
“네? 샤워실이요?”
샤워실이란 말에 서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휴게소 키우기란 게임에 샤워실도 있어요?”
“네.”
“아니······ 왜요? 그 게임엔 휴게소에 있는 시설만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요. 원래 휴게소에도 샤워실이 있어요.”
그녀는 못 믿겠단 눈치였다.
진수가 설명해주었다.
“화물차 라운지라고 해서, 화물차 기사님들 쉬거나 자고 갈 수 있는 곳이 원래도 휴게소에 있어요. 사람들한테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그게 진수 씨 하는 게임에도 있는 거예요?”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니까요.”
서린은 감탄하다가 물었다.
“그런 좋은 걸 왜 이때까지 설치 안 했어요?”
“돈이 없었잖아요.”
“아하.”
그리고 곧바로 수긍했다.
“그런데 그 건물 설치하려면 이 벽을 좀 넓혀야 하거든요. 그 작업이 한두 시간쯤 걸릴 것 같아요. 정 찝찝하면 화장실에서라도 먼저 씻고 있으시던가요.”
“아니요, 아니요. 기다릴래요!”
“그러세요 그럼.”
이윽고 주문한 핫도그가 나왔다.
진수는 서린, 그리고 시우와 함께 따로 밥을 먹었다.
냠냠대며 핫도그를 먹던 서린은 불쑥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큐큐큐, 그 사람한테 쪽지가 많이 왔더라고요.”
qqq, 포도 농장에 알바하러 왔다가 고립됐다는 대학생.
“뭐래요?”
“왜 갑자기 연락이 안 됐냐고 묻길래 사정 설명했죠. 그랬더니 자기도 구하러 와줄 수 있느냐고 묻던데요?”
“그래서, 뭐라고 답했어요?”
“친구랑 상의하고 나서 알려주겠다고 했죠. 나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까.”
“흐음······.”
진수가 콧바람을 길게 내뿜었다.
“구해오고 싶긴 한데, 위치가 구체적이질 않으니 골치 아프네요.”
“맞아요. 그게 문제죠.”
옥산중에서 구출해온 사람들은 ‘옥산중학교’라는 구체적이고 적확한 위치가 있었다.
그 위치를 아는 서린도 있었고.
하지만 qqq의 경우 ‘사촌리에 있는 포도밭’이 위치에 대한 정보 전부였다.
qqq부터가 타지인인지라 본인의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하질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 하나 구하자고 사촌리에 있는 포도밭을 전부 뒤져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포도밭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내라고 하세요. 어딘지 알아야 구하러 가든 볶으러 가든 한다고.”
“알겠어요. 그렇게 말해 놓을게요.”
밥을 다 먹은 진수는 곧장 벽 넓히기 작업에 돌입했다.
기존에 세워둔 장벽은 매점 건물과 (구)화장실 건물만 감싸도록 해놓았다.
그 때문에 건물 하나 더 놓기엔 자리가 협소했다.
‘이참에 과감하게 확장해야겠어.’
진수는 주차장 부지를 싹 다 벽으로 감싸기로 마음 먹었다.
주차장만 다 먹어도 1,200평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선 경계선부터 만들자.’
그는 ‘벽돌 담장-5’ 오브젝트를 이용해 벽이 쌓일 경계부부터 쫙 둘렀다.
이 일에만 ‘벽돌 담장-5’가 70개 사용됐다.
쭉 늘어선 담장의 둘레만 따져도 280m에 달했다.
“와, 저것 봐.”
“뭐 하시는 거지?”
“진짜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벽이 막 생겨나고 있어.”
기력을 회복한 아이들이 몰려나와 진수의 기행 아닌 기행을 구경했다.
“야야, 얘들아. 구경할 거면 벽 안에서 구경해. 밖으로 나오지 말고.”
“앗!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진 없고. ······아! 너희 마침 잘 나왔다. 너희 벽 위로 올라가서 구울 오나 안 오나 감시 좀 해줄래? 거기 보면 벽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있어.”
“네! 알겠어요!”
“맡겨두세요!”
“그래, 고맙다. 안 떨어지게 조심하고.”
혹시나 휴게소까지 쫓아오는 구울이 있을 수 있으니, 사주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후. 이제 쌓아 올리자.”
경계부를 만들었으니 이제 담장을 쌓고 겹쳐 높이와 두께를 보강할 차례였다.
진수는 기존 장벽처럼 3중으로 쌓아 4.5m 높이로 할까 하다가.
‘에이.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자.’
한 중 더 쌓아 올려서 6m짜리 벽을 만들었다.
딱 6m까지가 지상에서 원격으로 쌓을 수 있는 최대 높이였다.
벽두께 역시 기존 4겹(1m)에서 8겹 (2m)으로 늘렸다.
장벽 정상에 보행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1m 너비도 거니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까딱 잘못하면 추락할 위험이 있다.
너비가 2m는 돼야 발 헛디뎌 떨어질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
그렇게 벽을 쌓고, 쌓고, 쌓는 지루한 작업이 수없이 반복됐다.
서린에게 한두 시간이면 끝날 거라 말했던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 오후 7시 18분.
“헉헉······. 어우 씨, 드디어 끝났네!”
마침내 신(新) 장벽이 완성됐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완성은 아니었다.
벽에 드나들 출입로를 뚫지 않았으니까.
‘아, 몰라. 통로는 내일 만들자.’
어차피 오늘은 밖으로 나갈 일이 더 없으니 통로는 내일 뚫기로 했다.
진수는 게임창을 살펴 소비 현황을 확인했다.
“미친······ 2,240개나 썼어?”
1200평 규모, 높이 6m 두께 2m 장벽을 쌓는 데 ‘벽돌 담장-5’ 오브젝트가 정확히 2,240개 쓰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224만 원어치다.
시설 하나 들일 수도 있는 큰돈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구울이 아니라 구울 할애비가 와도 저 미친 장벽을 넘을 생각은 못할 테니까.
“우와아아.”
밖으로 나온 서린이 사방을 틀어막은 벽을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그녀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연거푸 탄성을 냈다.
“이제 다 된 거예요?”
“후! 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네요. 한두 시간이면 뚝딱하고 될 줄 알았는데.”
“에이. 저런 걸 한두 시간 만에 만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어? 그런데······.”
서린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던 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여전히 간장을 뒤집어쓴 더러운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안 씻었어요?”
“아하하.”
“설마 샤워실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이때까지?”
“그냥 뭐······.”
그녀가 어색하게 웃더니 대답했다.
“샤워실 기다린 것도 있고, 진수 씨는 씻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혼자 씻고 쉬려니까 좀 미안해서요.”
“아이고 참······. 별게 다 미안하네요. 그냥 씻고 쉬면 되는 거지.”
진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감동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 보니 그들 역시 꾀죄죄한 꼴 그대로였다.
누가 보면 거지촌인 줄 알 것이다.
자신도 사람들도 일단 씻어야겠다.
진수는 게임창을 조작해 새로운 홀로그램을 불러냈다.
상당히 거대한 홀로그램이었다.
[시설»편의시설»고객편의]
휴게텔(화물차 라운지)
-건설비용 : ₩4,000,000
-유지비용 : ₩15,000(일일)
그가 널찍한 부지 한 편에 ‘휴게텔’ 홀로그램을 내려놓았다.
즈즈즛!
홀로그램이 실체를 잡으며 세련된 2층짜리 건물을 만들어냈다.
수면실과 샤워실, 세탁실까지 갖춰진 쌈뽕한 휴게텔이다.
진수는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전부 가서 세면도구 챙겨 오세요. 씻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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