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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껌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4
최근연재일 :
2023.11.12 20:3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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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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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187,767

작성
23.06.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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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벌레(1)

DUMMY

바닥에서 그릇을 핥짝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소리를 내는 주체가 이상하다. 얼굴을 들이박고 먹고 있는 것은.


"벌레야. 이제는 익숙해보이는 구나."


다름 아닌 필립이다.


처음에는 반항도 하긴 했지만, 이내 꿇려지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전부 말이다.


"예."


고개를 살짝 들자 달라붙은 찌거기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가 먹는 것은 카이렌경이 먹고 남은 잔반이다. 한 그릇에 다 담긴.


그가 식사를 거부한다면 그저 제압당할 뿐이다. 바닥에 꿈틀거리다가 이내 수긍하고 만다.


그 와중에 누가 오지 않았냐고 한다면 그렇다. 오지 않는다. 애초에 까도로운 타입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이 건드리지 않는 다면 넘어서지 않기도 하다. 그렇기에 누가 집무실로 찾아오는 것을 극히 혐오하는 인간이니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예외인 상황은 극히 위급한 상황일때 뿐이다. 급습이라던가 전쟁이라든지.


그렇다고 도움을 바라고 외치기에는 내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벌레 주제에 꿈틀 해봤자 화가 난 인간에게 짓밟히는 것 말고는 없다.


처형에 가까운 태형이 죽을 때까지의 고문으로 변하겠지. 그에게 어떠한 해악도 입히지 못한채 말이다. 그저 기분이 조금 나빠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 나가봐."

"예."


그는 품에서 꺼낸 걸레와도 같이 보이는 천으로 얼굴을 닦고 나간다.


'오늘은 맛있었는데?'


이와 같은 낙천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이다. 벌레로서의 삶 또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나 비이상적인 반응이다.


"필립."


선임병이 그를 부른다.


"옙."


처음 볼때만 해도 친절했던 선임병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그를 쳐다 볼때 눈 찡그림이 보인다.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지만, 기분나쁘게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요새 보기 좋아. 이제 막내 같아지고 말이야."


내심과는 다른 말을 하면서도 어색함이 엿 보이지 않는다. 선임병이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좋다는 것을 엿 볼수 있다.


"감사합니다."

"바이셔 녀석도 똘똘했는데 말이야."


그와 둘이 함께 있으면 항상 대두되는 문제다. 바이셔... 그를 죽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악재였다.


"들어가서 쉬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쳐진 것만 같다. 친한듯 친하지 않은...


선임병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꺼림직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도 이와 같은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직감이 이를 배반한다.


사람 보는 눈은 좋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봐도 이상한 녀석이다.


"하아..."


자신의 아랫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신의 뒤를 맡겨야하는 녀석이라면 더욱이. 하지만 그는 필립에게 무언가를 직접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 간에.


그리고 그것을 쌍둥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아직도 그러고 있어?"

"그렇다니까요."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의 집무실에 대화가 오가고 있다.


"곤란하네."

"그래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맞아요."


두명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선임병을 두둔한다.


"사소한 일이 크게 될 수도 있는거다. 그래도 그녀석이라면 상관 없겠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바라지 않는 혼잣말을 한다.


"벌레는?"

"독기는 빠지고 순한 양이 된 것 같습니다."

"안돼지. 굴려. 갈구던지."

"알겠습니다."

"예."


그가 적응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이 그의 쓸모를 없게 만드는 것이 된다면 환경을 더욱 과격하게 만들어 줄 수 밖에 없다.


근래에 들어 필립과 가장 친해진 것은 쌍둥이 형제다. 그가 벌레가 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카이렌경이 눈을 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한없이 귀족적인 방식이 아닌가. 자신의 노고 없이 사람을 감시한다는 것이.


다른 기사들 또한 이러한 일들을 행하나 그의 수완에 비교하자면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이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사람처럼 보이니 말이다.


사람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다. 사람을 잘 구슬리는 것이 아닌 음습한 방법으로. 밖에 나서는 이미지는 강하고 당당하게 실제로는 음침하게.


필립은 나름대로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피똥만 오지게 쌀 날이 길어질 줄 알았지만 적응이 빠르게 되고 있다.


선임병은 자신을 잘 챙겨주고 있지는 않지만 쌍둥이 형제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이 잘 대우해주고 있다.


눈치도 좋고 뭘 빼는 법도 없으니 사랑받기 딱 좋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재는 것처럼 그를 건드렸지만 이미 우울함에 찌든 탓에 되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육점갈래?"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호이트 병사가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겪게 해주겠다면서 난리를 친다.


"정육점이 뭐야 임마. 차라리 홍등가라 하던가. 사창가라던가."

"정육점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차라리 창녀라든가."

"됐다마."


네이션은 그의 천박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고쳐서 말하라는 내용 또한 그리 좋지 못한 표현같다. 하긴 뭐라 하든 별로 듣기 좋은 언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주 가십니까?"

"돈만 있다면?"


껄껄 걸이며 자신이 받은 돈의 절반 이상을 그에 쏟아붇고 있다며 자랑한다. 어디 지역의 누가 좋다느니. 나이가 든 사람하고 해봤는데 스킬이 좋았다든지.


"쌍둥이~ 어디갔다 왔냐구~"

"꽁짜술이라고 해서 얻어먹고 왔지."

"우리도 부르지..."

"그게 양이 얼마나 된다고 다같이 먹어. 내것도 아닌데 말이야."

"음음. 술은 줄 수 없지."


생활관 인원들은 엄지를 밑으로 내리며 야유를 날린다. 필립도 그에 녹아들어 있다.


"새끼가 벌써부터 밝히기는."


쌍둥이 중 형인 카렌이 자신의 머리를 팔로 옥죄인다.


"항복! 항복! 아파요! 아프다니까!"

"짜슥이~"

"탭! 탭! 항복!"


겉으로 보기에 친해보이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쌍둥이들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러고 있지 않다.


"3소대는 한명 사라지더니만 조용하네."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네."


2소대의 기사 다이크경이 카이렌경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한명이 사라져봐야 얼마나 조용해지겠는가. 그것도 이제 신참도 들어와서 공백도 그리 느껴지지 않을 텐데.


"네 소대나 신경써라. 능력도 없는 녀석 밑에 굴러다닐 녀석들이 불쌍하다."

"너는 능력도 없어서 부하나 죽게 만드냐!"

"닥쳐!"


결국 서로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외치고 만다. 그 소란에 다른 소대의 기사들까지 찾아와 말린다.


"xx!"

"한심한 새끼!"


서로에게 엿을 날리며 끌려간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났어."


4소대 기사가 그에게 묻는다.


"갑자기 와서 시비를 걸지 뭐던가. 귀족같지도 않은 녀석이."


실제로 2소대의 기사는 귀족이 아니다. 아니 귀족은 맞는데 아니다.


가진바 무력으로만 올라온 인물이다. 그래서 무식하기가 병사랑 별반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그의 주변 사람 평가 또한 인색하기 그지없다.


"자네가 참아.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거니까."

"그래야지."


그에 대비해 2소대 기사는 반응이 격렬하다. 그가 잘못을 먼저 한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다.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해!"

"조용히해! 뭘 잘했다고 난리야!"


처음에는 어르고 달랬지만 계속 소리만 치니 견디지 못한 1소대와 5소대 기사다.


"자중하게!"

"조용히 하고 있게. 이래서 평민들이란... 쯧."


1소대는 나갈때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마저 내뱉으며 나간다. 그것은 다이크의 역린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나가!"

"쯧."

"별 거지같은."


그들이 나가고도 한참이나 몸부림을 치고서 지쳤는지 한참을 쉬다가 쓰러지듯 잠에 드는 인간이다.


2소대는 그것을 들으며 한동안 사려야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괜히 위로한다고 하다가 잘못되면 병x이 되기 십상이다. 어디 얻어터지고 부러지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있는게 가장 좋다.


"또 다른 소대 건드리로 갔나보네."

"저러고 살고 싶을까?"

"이번엔 2소대라던데?"

"제정신이 아닌거지."

"왜 이런 녀석이 기사가 된거야."


평민은 역시 평민이구나하며 호박씨를 까댄다.


작위가 세습이 안되는 준남작이지만 평가가 매우 바닥이다. 평민 정도에게는 즉결처형권도 있는 자인데도 말이다.


힘도 명예도 없는 준남작. 차라리 평민인 병사였을 시절이 그에겐 더 좋았을 터이다. 하지만 전장으로 굴리라면 기사로 쓰는 것이 편했으니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게 받게된 직위다.


본인도 바라지 않고 주변도 바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힘 없는 이들이 그러하듯 윗사람의 명령을 듣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x같은 세상."


덴하르트 성주의 군대에서 벌어지는 60퍼의 사고는 혼자 치고 다니는 녀석이 잠들기 전 하는 말이다. 그가 사람 죽이는 재주가 좋아 다행스러운 일이지. 그가 아니라면 이미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릴 터였다.


그의 무력은 카이렌경과 비등하다. 카이렌이 정교한 검술로 그를 이긴다면 그는 본능으로 이긴다. 강한 육체 하나로 이기는 것이니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그 피지컬에 성격은 망니니여서 골치 아프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성주 또한 그를 죽여야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한 것이 여러번이다.


그래서 위험한 임무가 생기면 다 그에게 몰아주고 있건만, 부하들이 죽든말든 자신은 멀쩡하게 돌아오는 녀석이다.


눈에 아픈 가시지만 빼질 못하고 있다. 계륵과 같은 녀석이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일하던 중 갑자기 여상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건넨 말이다.


"예. 지금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류를 들어 보이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어필한다.


"다이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준남작님 아니십니까?"

"그렇지. 평민이지만 주제도 모르는 녀석 말이야."


황제에게도 인정받지 않는 지위인 준남작. 귀족이라면 누구나 내릴수 있는 명예작위. 그러나 실상은 명예도 뭣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작위.


성주의 영향력 밖으로 나가면 평민이나 다름없는 직위다. 그나마 성주를 존중하기에 준남작 취급정도는 해주고 있지만 그것 또한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새 너무 설치고 다녀. 방안이 있겠나?"

"알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이크님이 뭔가 사고를 치신 모양이네.'


그에게 굉장한 골치덩이가 들어섰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데 말이다.


준남작이라도 귀족이다. 심지어 같은 성주를 섬기고 있는 군인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는 아니나 윗사람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갑작스레 당면한 위기에 머리를 굴려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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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1) 23.06.24 51 1 11쪽
6 병사(3) 23.06.24 62 1 11쪽
5 병사(2) 23.06.23 65 0 11쪽
4 병사(1) 23.06.22 76 0 11쪽
3 징집병(3) +1 23.05.13 85 3 11쪽
2 징집병(2) +1 23.05.11 104 2 11쪽
1 징집병(1) +1 23.05.11 17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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