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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수 님의 서재입니다.

소꿉친구가 화산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아인수
작품등록일 :
2023.02.08 15:24
최근연재일 :
2023.06.03 18: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31,441
추천수 :
230
글자수 :
421,448

작성
23.05.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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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77

DUMMY

077



실험체로 태어나 끊임없이 감시를 받으며, 죽음의 위기를 넘겨왔던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상념 속에 소문의 유년 시절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유년 시절? 내게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었나?’


그는 혼란에 빠졌다.


열 살이 될 때까지 당가에 빌붙어 살았다. 노비들과 함께 허드렛일을 하며 겨우 배를 곯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살았다.


괴팍하지만 따뜻하게 자신을 돌보아 주던 늙은 ‘노야’도 분명히 기억 속에 있다. 나이가 좀 찼을 때는 설희를 만나서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그 이전의 기억이 없다. 여섯 살 어림부터인가.


자신에게도 분명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지금에 와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운 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나?‘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아무리 희미해진다 한들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리가 없는데. 게다가 소문의 기억력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어쩌다··· 사천당문에서 살게 되었지?‘


단순히 당가주 당천희의 손자이자, 가문에서 내놓은 당문월의 피를 이었기 때문에?

아니면 노도지체 연성계획의 반편이 실험체이기 때문에?


기억이 없다.


누군가 억지로 그의 기억을 감추어 놓은 것처럼.

사라진 유년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꽁꽁 봉인한 것처럼.


동시에, 소문의 머리속에 폭발음이 들렸다.


감춰져 있던 기억들이 고개를 든다.


다섯 살까지 끊임없이 <실험실>로 불려갔던 기억. 그 장소에서 소문은 수많은 실험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소문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복잡한 도형을 보여주며 착란 상태로 만들었다. 멍한 눈으로 그들의 말에 집중하는 어린 자신의 모습이 삼인칭으로 보인다.


‘아아··· 그래. 저건 <제약>이구나.’


김두환의 말이 기억이 난다. 에덴바 제국의 언어로 말하는 ‘약속어‘. 피시전자를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소문은 제약을 당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봉인당한 것이다.


다음 기억은, 어머니의 얼굴과 마지막 모습, 그녀가 사망한 이후 사라진 감시의 눈길이다.


낡은 침상에 한 여인이 누워 있다.

초췌한 얼굴이나 현숙한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는 모습. 그의 어머니다.


그녀는 끊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어린 소문의 볼을 쓰다듬는다. 명상에 빠진 지금의 소문의 눈에서도 한 방울 이슬이 흘러내린다.


‘소문아, 당소문. 이 어미의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저 자들이 다시 너의 영혼을 조종하려 들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떠올릴 수 있을 거다.’


‘열쇠는 네 안에 있어. 네 영혼을 사로잡은 그 말을 기억해야 해.’


‘소문아! 울지 말고 어미의 말에 집중해라. 약속어를 떠올리고, 의지를 담아 말하는 거야. 그래야 네가 자유로워진다. 그래야 이 어미를....’


어머니의 야윈 손에서 힘이 빠진다. 어린 소문은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펑펑 울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윽고, 어머니의 팔이 힘 없이 떨어졌다.


“어머니···.”


소문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잊어야 하건만, 이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떠올라 버렸다.


그 때, 누군가 속삭이는 말이 들려 온다.


“야, 야.“

“······?“

“대답해. 들리잖아.“

“무슨···.“


여기는 소문의 상념 속. 생각이 당사자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목소리다. 소문이 아래를 내려봤다.


“너··· 너는?“


죽은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던 어린 소문이 그를 올려보고 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소문이 멍하니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어느새 잃어버린 기억의 회상은 멈추었다. 한 여름 밤의 꿈이 지나간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처럼 어둠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의 맞은 편에는 어린 소문이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 내고 있다.


방금 어머니에게 안겨 있던 어린 자신, 그 모습 그대로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소문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소리쳤다.


“아! 설마, 여기는!”

“눈치가 빠른 거야, 느린 거야? 맞아. 여기는 너의 내면세계야. 내가 누군지는 알지?“

“··· 그래. 너는 ‘모든 것‘이라고 했지.“

“잘 기억하고 있네.“


어린 소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또 나타난 거야?“

“글쎄. 나타났다는 표현이 맞을까? 내가 곧 너고, 네가 곧 나인데.“

“말장난하지 말고.“


그가 아이답게 킥킥 웃더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내 조언이 좀 도움이 됐을까? 답은 네 안에 있다는 말, 기억해?“

“··· 결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더군.“


해동선결을 수련하며 몸의 장애가 다시 회복되었고, 단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몸 속에 잠자고 있는 수많은 무공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힘을 되찾지는 못 했어. 반사적으로 귀혼 선배의 움직임을 막아내긴 했지만···.”

“잘 알고 있어. 왜냐하면 나는 너....”

“그래. 넌 나지. 난 너고. 그렇다면....”


도덕경의 한 구절이 스친다.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고,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멀리 나갈 수록 더욱 적게 안다.’


“... 얻으려 하면 얻지 못할 것이다.”

“.......”


어린 소문이 그를 빤히 바라본다. 소문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등장하기를 바란 적이 없어. 자룡도 물론이고.”

“그래.”

“무공을 얻은 것도, 노도의 몸을 얻은 것도 스스로 구하지 않았어. 설희가 찾아올 것도 예상하지 못했고, 설희가 떠나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어.”

“알고 있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어났지.”

“··· 네가 내 앞에 나타난 진짜 이유, 뭐야?”


꼬마가 빙긋 웃으며 애매한 답을 내놓는다.


“나는 너, 너는 나. 내가 곧 자룡이고, 노도이고, 네가 배운 무공의 총화야.”


뭔가 알 것 같다.


“내가 곧 자룡이고, 노도이고, 무공이구나.”

“내가 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그저, ‘생각하고 있는 것’.”


어느새 이 둘은 같은 말을 동시에 뱉고 있다.


“내 인생에 ‘내’가 있었던 순간은 언제지?”

“언제나 바라지 않았던 일,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일들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나?”

“아니야. 적어도 설희를 생각하며 강해지고 싶었던 마음, 강자들에게 얻어맞아가며 경지를 높여갈 때는 내 의지가 가득했다.”


동시에 입을 다문다. 이제는 소문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가진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어. 단 하나, 단 하나 가지고 있던 것은 의지야. 삶에 대한 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고 말겠다는 그 단단한 신념 하나로 살아왔어.”


빙긋.


꼬마 소문이 미소를 짓는다.


“그래, 버리마. 모든 것을 버리마. 내가 알았던 무공도, 쓰디쓴 과거도, 원하지 않게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 난 이 몸도 모두 버리마. 그렇지만,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 하나는 버리지 못하겠어. 그것이 나, 어머니의 모습도 잊은 채 꾸역꾸역 살아남은 ‘당소문’ 그 자체니까!”

“··· 그렇구나.”


순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혹은 공간이 깨어지는 소리.


아니면···

무언가 알을 깨고 태어나는 소리.


공간에 가득했던 어둠이 소문에게 흡수된다. 동시에, 어린 소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변한다.


“더 이상 나는 필요가 없어.”

“··· 그래. 내가 너고, 네가 나니까. 우리는 원래 하나였어.”

“맞아. 네가 깨달음의 순간에 만난 ‘자룡’도 너야. ‘노도’도 너야. 네 몸 속에 있는 모든 무공 또한 너야.”

“그러나, 원래 내 것은 아니지.”

“그렇지만··· 뭐 어때? 생(生)의 의지. 그것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 모든 무공이 네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무공이 네 것이 될 거야.”

“아아···. 그래”


이제는 희멀건 얼굴만 남은 꼬마 소문이 활짝 웃음을 짓는다.


“우리의 자연체, 너의 자연체. 이제는 우리의 ‘자연’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치?”

“고맙다.”


소문이 마주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고맙긴···.”


어린 소문이 사라진 자리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동선결>의 마지막 수련과정을 훌륭히 이수한 소문이 술법 밖으로 발을 뻗는다. 곧, 내면 세계에서 의식 세계로 나아간다.


걸음걸이마다 모든 깨달음이 정리된다.


스스로의 의지로 가진 것 하나 없이 태어나, 다시 아무것도 없는 자가 되었다.

삶도, 무공도, 경험도. 심지어는 기억도 내 것인 것이 없었다. 남들이 선물해준 것이며, 강제로 품에 안긴 것들이다.


그 와중에 언제나 소문의 가슴 속에 굳게 선 신념은 단 하나였다.


삶에 대한 애착.

생(生)의 의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는 것. 그리고, 삶을 지키는 것.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


이 신념이야말로 오롯이 소문의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얻었다.

소문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김두환이 대지를 다루는 능력을 깨우친 것과 같이.


아직 하수였던 시절, 남의 무공을 보고 재빨리 습득한 뒤 따라할 수 있었던 능력.

그 능력이 완전히 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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