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인수 님의 서재입니다.

소꿉친구가 화산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아인수
작품등록일 :
2023.02.08 15:24
최근연재일 :
2023.06.03 18: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31,431
추천수 :
230
글자수 :
421,448

작성
23.05.16 22:00
조회
239
추천
1
글자
11쪽

071

DUMMY

071




천명선사는 무림맹주의 화면에 집중한다. 익숙한 맹주전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단아한 목재 구조물로 장식이 되어 있다.


‘무림맹주···.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군.’


회색 면사포가 맹주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 아래에는 가녀린 목이 하얀 자태를 뽐낸다. 푸른 빛이 감도는 긴 머리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타고 흘러, 무릎 어림까지 흩어진다.


얼핏 한 나라의 공주가 생각나는 외형이다. 그러나 맹주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언제나 모습을 숨기고 다녀 얼굴조차 아는 이가 없다.


정파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나 출신이 어디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무림에는 셀 수 없는 무공 공부가 존재하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단지 알려지지 않은 무공으로 이토록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지.


그, 혹은 그녀는 에덴바와의 전쟁에서부터 홀연히 나타나, 묵묵히 협의지도를 걸어오며 무림맹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져 맹주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일신의 무공과 맹주로서의 지도력을 한 차례도 의심받은 적이 없다. 아직도 수 천 명의 무인을 호령하며 일 수에 수 십의 적을 날려보내던 무위가 회자된다.


게다가 특정 방파에 속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혼란스러운 신 중원시대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무림맹 맹주의 자리를 사십 년 가까이 지켜온 이 무인은, 긴 시간 동안 한 차례도 감정의 동요를 드러낸 적이 없다. 꼭꼭 숨긴 자신의 생김새 만큼이나.


그런데···.


‘··· 이 정도면 극대노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맹주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보는군.’


화면 밖, 면사포 뒤로 무림맹주의 차가운 분노가 느껴진다.


화상 회의에 참석한 무림의 명숙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최소한 한 문파의 수장격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다.


<···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겠습니다.>


쿠궁 –


맹주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각자의 노도복을 통해 흘러나온다.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

문제는, 맹주의 음성과 함께 맹주전의 물건들이 빠지직거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섞여 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꿀꺽.


여기 모인 자들 중 내공으로 외부의 물건을 격할 수 없는 자는 없다.

그런데 건물 하나를 통째로 흔드는 정도의 공부는 다른 문제다.


분노에 휩싸인 맹주는 맹주전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려는 듯, 엄청난 내공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 맹주. 진정하시지요. 맹주전이 흔들립니다. 자칫 힘 없는 자들이 휩싸일까 저어됩니다.]


천명선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소림 방장. 상처가 참으로 위중하셨나 봅니다. 무림이 위기에 빠졌는데도 몸을 기계화하고, 미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셨습니다.>

[······.]


질책하는 맹주의 말이다. 할 말이 궁해진 천명선사는 입을 꾹 닫는다.

상처가 심한 것도, 소림사를 발전시키는 것도 힘이 많이 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욕심이 생겨 좀 과하게 미래 기술을 수용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청성이 멸문했습니다, 여러분. 고작 스물도 안 되는 수가 구파일방 중 하나를 몰락시켰습니다. 이 화상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들만으로 청성파를 멸문시킬 수 있겠습니까?>

<······.>

<방장. 흉수가 소림에도 손을 뻗쳤습니다. 속 편한 소리를 잘도 하십니다.>

[··· 아미타불.]


좌중에 침묵이 감돈다.


‘맹주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처음 보는군.’


천명선사는 한숨을 삼키며 생각했다.

맹주의 성정 상,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뱉은 말을 합쳐도 지금 한 말수보다 적을 것이다.


맹주가 이어 입을 열었다.


<이 맹주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몇몇 변절자가 에덴바 제국과 붙어 먹으며 야욕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한낱 무림맹의 무사조차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무림이 신 중원시대를 맞으며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겁니다. 이전과는 달리, 사파나 마교와 같은 절대 악을 규정할 수 없으니 오히려 무림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리하여 겨우 정사마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맹주. 고생이 많았지요. 아미타불···.]


천명선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자칫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까 봐, 작은 일탈이라고 생각하여 놓아 두었건만···. 결국에는 노도의 힘을 지닌 악마를 만들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며! 이 세계를 고통으로 밀어 놓았다, 이겁니까? ··· 사천당문!>


작은 목소리를 점차 키워가던 맹주가 급기야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 맹주.>


당가주, 천수독객 당천희를 대신하여 회의에 참석한 당비월이 묘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당천희는 십 년이 넘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비월의 신분은 비록 소가주이나, 사천당문의 대소사를 주도적으로 처리해온 만큼 당가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다.


<만파월영. 맹주가 이 사건을 꼭 수면 위로 끌어내야 했습니까?>

<······.>


만파월영은 당비월의 별호다. 이 소가주는 젊은 외모와 달리 마흔을 넘은 완숙한 무인으로, 무림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협의로 무림을 구해낸 노도의 힘을 그대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해야 했습니까? 게다가 에덴바 제국과 붙어먹다니!>

<······.>


당비월은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

화면 너머에 있는 무인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든다. 이 중에는 맹주를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섞여 있다. 개중에는 아마 <제약>에 당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당가의 소가주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말이 험하십니다, 맹주. 우리들은 당신의 부하가 아님을 잊었습니까? 정도를 위해 힘을 합친 연맹체일 뿐···.>

<정도? 정도라 했습니까? 당신의 입에서 정도라는 말이 나오다니!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여기 모인 명숙들도 압니다! 청성은 그대들의 손에 멸문한 것 아닙니까!>

<하하···.>


당비월이 건조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린다.


파직, 파지직.


맹주의 화면이 깨져 나간다. 분명 맹주가 사용하고 있는 노도복의 송출기가 내공의 힘을 이기지 못해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둘로부터 시작한 긴장이 극도로 치달았을 무렵, 청수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증거 있습니까?>


‘······!’

‘허어···!’


그 말이 폭발의 도화선을 당겼다.


<··· 사마청!>

<허허, 내 비록 맹주보다 지위가 높지 않으나··· 맹주께 이름을 불릴 만한 위치는 아닙니다만.>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비월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두뇌!

현 맹의 체계를 수립하고, 완벽한 기억력과 뛰어난 책략으로 책사 중 제일로 꼽히는 <신뇌 사마청>이다.


‘설마··· 신뇌까지 그들이 손에 넣었을 줄이야.’

‘맙소사. 이 무림의 행방은 어디로 가려는가.’


혹자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허허허, 신뇌가 우리의 편이었다니.’

‘신뇌가 없는 무림맹이라··· 승리는 따논 당상이군.’


누구는 승리를 꿈꾼다.


동상이몽 가운데 맹주가 입을 열었다.


<신뇌. 당신까지···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겁니까?>

<‘그들’이라 함이 무엇인지요. 저는 언제나 무림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

<그 길에 무림맹은 수단일 뿐이지요···.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하시게들. 허허.>


빠드득.


맹주가 이를 갈았다.

모든 일이 신뇌, 사마청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면···.


‘맹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군.’

‘맹의 대소사는 신뇌의 손에서 이루어지니. 게다가 그의 능력이라면 책 잡힐 만한 증거를 남겼을 리가 없어.’

‘혹은, 맹주가 문제를 삼더라도··· 무시할 정도의 힘이 있거나.’

‘아무래도 생각을 달리 해야겠군.’


무림의 명숙들은 생각한다.


<이 맹주··· 더 이상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신뇌, 그리고 더러운 끄나풀들. 내 손으로 그대들의 목을 쳐 주마.>

<무섭소이다, 맹주. 허허허허···.>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맹주의 화면이 꺼졌다.


<······.>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천명선사가 눈을 감고 작게 불호를 읊조린다.


[아미타불. 당분간··· 정기 회의는 개최될 일이 없겠구려.]


오늘의 일이 신호탄이 되어, 무림의 소용돌이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무림맹의 수뇌들은 각자의 생각을 숨기며 회의를 종료했다.


**


그 시각, 당소문은 옷을 홀딱 벗은 채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잘 하고 있군.”


김두환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소는 입을 떡 벌린 채 멀찍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대체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 거지?’


소문 오라버니에 대한 방심은 이 순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라도, 나신으로 흰색 뱀 옆에서 기어다니는 꼴을 보면 얼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문의 생각은 다르다.


항아리 속의 물고기를 따라할 때만 해도 의심이 반이었는데, 이제는 김두환의 수련 방식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


‘어떤 내공도 되찾지 못했지만, 몸의 장애가 해결됐다.’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팔다리가 꼬이던 천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게다가···.


<배가 고파. 배가 고파. 쉭쉭.>


뱀의 생각이 들린다.


작은 곤충들과 물고기까지만 해도, 그들과 교감하며 자연스레 몸놀림을 따라하는 데에 그쳤다. 가끔 미묘한 충동이 들기는 했지만 일말의 지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지 능력이 발달한 동물에 이르자 그들의 사고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들 몸 속의 신경망이 감지된다. 눈으로 보고 따라하지 않아도 몸이 그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본딴다.


뱀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소문의 고개도 돌아가고,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면 소문도 혀를 할짝인다.


<먹이다.>

‘쥐다!’


세로로 나 있는 동공으로 생쥐 한 마리가 보인다. 급기야는 뱀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먹자.>

‘먹어야지!’


콱.


찌익!


아무리 내공을 잃었다 한들, 한 때 화경의 경지를 잠깐이라도 밟은 몸. 독도 없는 한낱 뱀에게 밀릴 소문이 아니다.


<나빠···.>

‘맛있네.’


청소소는 꼬리를 파르르 떨며 소문의 입으로 들어가는 생쥐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소문은 최고의 진미라도 되는 듯, 눈을 감고 생쥐를 음미한다.


“완벽해. 이렇게 빠른 성장 속도라니. 이제는 새끼를 밸 수 있는 동물로 넘어가도 되겠어.”


김두환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역시 노도의 유전자를 지닌 무인은 다르군.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인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꿉친구가 화산제일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안내 23.06.25 206 0 -
공지 (수정) 평일 저녁 6시 연재합니다. +1 23.02.08 298 0 -
85 085 23.06.03 309 3 14쪽
84 084 +1 23.06.02 212 2 12쪽
83 083 23.06.01 216 2 11쪽
82 082 23.05.31 209 3 12쪽
81 081 23.05.30 212 2 12쪽
80 080 23.05.29 216 2 11쪽
79 079 23.05.26 228 3 12쪽
78 078 23.05.25 215 2 12쪽
77 077 23.05.24 218 3 10쪽
76 076 23.05.23 227 1 12쪽
75 075 23.05.22 220 2 13쪽
74 074 23.05.19 219 2 11쪽
73 073 23.05.18 221 1 12쪽
72 072 23.05.17 225 1 11쪽
» 071 23.05.16 240 1 11쪽
70 070 23.05.16 238 2 10쪽
69 069 +1 23.05.15 236 2 11쪽
68 068 +1 23.05.10 233 2 11쪽
67 067 +1 23.05.09 232 2 12쪽
66 066 +1 23.05.08 250 2 12쪽
65 065 +1 23.05.05 253 1 12쪽
64 064 +1 23.05.04 258 2 14쪽
63 063 +1 23.05.03 243 2 12쪽
62 062 +1 23.05.02 325 2 12쪽
61 061 +1 23.05.01 254 2 12쪽
60 060 +1 23.04.28 265 2 11쪽
59 059 +1 23.04.27 269 2 11쪽
58 058 +1 23.04.26 263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