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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수 님의 서재입니다.

소꿉친구가 화산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아인수
작품등록일 :
2023.02.08 15:24
최근연재일 :
2023.06.03 18: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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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40
추천수 :
230
글자수 :
421,448

작성
23.02.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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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1. 첫 번째 장 - [노도지체]

DUMMY

001



꾀죄죄한 모습의 소년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짙은 녹의를 보아하니 당가의 꼬맹이가 분명하다. 적어도 이 사천 바닥에서는 당가의 허락 없이 함부로 녹색 옷을 입을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사천당문>, 혹은 줄여서 <당가>로 불리는 이 무림세가의 위세는 그만큼 대단하다. 그들의 심기를 거스리는 자들이 사흘 넘게 생존할 확률은 일할 이내다.


어린 아이라고 하나, 그 대단한 가문의 일원이 이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먼지가 잔뜩 날리는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말이다.


“가지 마, 설희야!”


쏟아낼 액체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는 눈물을 넘어서 콧물까지 질질 짠다. 그 모습을 자꾸 뒤돌아보면서도 어딘가를 향하는 소녀가 보인다.


“소문아. 울지 마. 나도··· 네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나잖아···.”


소녀가 눈가에서 한 줄기 물방울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삐죽삐죽 장비의 수염이 난 험상궂은 장년인이 소녀의 손을 잡아챘다.


“아가씨! 당신은 저런 놈과 말을 섞을 신분이 아니십니다. 장문인께서 기다리십니다. 어서 발길을 옮기시지요.”

“하지만···.”

“어서!”


매화가 섞인 도복의 소매 아래로 흉터가 가득한 팔이 보인다. 허리춤에 찬 청강검에도 매화 모양이 수놓아져 있다. 무림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그의 말을 거스를 놈은 몇 없을 것이다. 게다가 힘 없는 여덟 살짜리 여자애는 더욱 그렇다.


“설희, 설희! 설희야아!”

“소문아, 안녕. 너를 잊지 않을게···.”

“안 돼!”


앞으로 엎어지는 소년의 허름한 옷이 팔까지 흘러내렸다. 잔뜩 마른 팔 위에 울긋불긋한 멍이 가득하다. 또래 녀석들에게 맞은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설희라는 소녀를 끌고가던 무림인이 몇 대 쥐어박은 것이리라. 소년은 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같은 꼬맹이는 개미 목을 따듯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손속을 많이 봐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아이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함께 울고 웃던 소꿉친구를 뺏기고 싶겠는가? 게다가, 그 아이가 어린 소년의 첫사랑을 가져갔던 아름다운 소녀라면.


“담설희··· 이렇게 갑자기 가는게 어딨어···. 으흑···.”


소년, 당소문은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흙바닥을 긁어댔다. 벌어진 손톱 사이로 흐르는 눈물 만큼의 선혈이 비져나온다.


“꼭, 꼭···. 멋진 무림인이 되어서 너를 찾아갈거야. 그리고 너와 평생 백년해로 할 거야···. 꼭!”


소년은 바닥을 몇 번이고 내리치며 다짐했다. 멋진 사내가 되어서, 소녀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그리고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그 곳이 칼끝에서 향긋한 매화를 피어낸다는 기적을 부린다는 화산파라고 하더라도. 설사··· 그녀의 사부가 화산파의 장문인이라도. 당소문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당소문! 당소문! 네 이놈, 어디 있느냐!”


그 때,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소문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일어났다. 손에 묻은 피는 다 헤져가는 녹색 옷에 대충 닦았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치도곤을 당할 테고, 그러면 고수가 되는 수련에 방해가 될 테니까.


“여··· 여기 있습니다, 노야!”


당소문이 애써 씩씩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속에 섞인 울음은, 여덟 살 아이가 지우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다. 그를 향해 깡마른 늙은이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내 분명히 셋째 도련님의 방을 청소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서 먼지투성이가 되도록 무슨 짓을··· 응?”


노야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당소문의 신색을 살폈다. 소년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렸다.


‘또 죽어라 맞겠구나.’


소문이 다가올 격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눈을 꼭 감자,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문아. 설희··· 아니. 설희 아가씨가 떠나는 길을 배웅한 것이냐.”

“···그렇··· 습니다.”


소문이 실눈을 뜨고 대답했다. 그의 답을 들은 노야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깨 위로 주름이 가득한 손을 올렸다. 역시 머리부터 맞는 구나. 눈을 다시 질끈 감자, 머리 위에 툭하고 노야의 손이 올라왔다.


“소문아, 당소문. 너의 위치를 자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와 설희 아가씨는 어울리지 않는다.”


노야가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호통도 많이 치고, 때리기도 많이 때렸지만 그게 이 늙은이의 본심은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위계가 바로서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설희는 제 반쪽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여덟 살배기 아이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도 되바라진 소리군.’


이렇게 당소문과 같이 영특한 녀석이라면 더욱 훈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게다가···.


“소문아. 네놈은 ‘얼자‘이지 않느냐.”

“······.”


양인이 첩과 낳은 자식은 서자라 하고, 천민과 낳은 자식은 얼자라고 한다. 둘은 ‘서얼‘이라 불리며 정실의 자식에 비해 천한 취급을 받는다. 즉, 당가의 식솔로 인정을 받지만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거나 하독과 제독 방법을 익히지는 못하는 것이다.


“네가 서자만 되었어도 내가 이리 너를 타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얼자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 알고 있습니다.”


당소문, 그는 가주의 둘째 아들의 얼자다. 즉, 가주의 피를 직통으로 잇기는 했다. 아버지가 당가 역사상 최고의 망나니며, 어머니는 동쪽 오랑캐 출신의 노비라는 점이 문제지만. 덕택에 당소문은 당가에서 거주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지만, 아버지는 커녕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가문 노비들의 손에 자라왔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라···. 네가 어리지만, 내 할 말은 해야겠다. 둘째 도련님의 자제들 중 네가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점을 명심하거라. 비록 네 어머니가 알 수 없는 일로 목숨을 잃었지만···.”

“가문에서···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 우리들이 네 녀석을 정말 혈육이라고 생각하고 키웠다는 것쯤은 기억하란 말이다.”

“노야···.”


당소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린 나이지만 이들이 자신을 왜 험하게 다루는 지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자신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가문의 눈 밖에 난다면, 아무것도 아닌 자신은 분명히 제거당할 테니까. 당소문, 소년은 가문의 치부일 뿐이다.


한참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노야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 어서 셋째 도련님의 방을 청소하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 죄송합니다, 노야! 빨리 광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소문은 조금 남은 눈물을 훔치고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려갔다. 소년은 다짐했다.


‘절대, 절대! 아무도 무시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겠어! 당가도, 화산파도 다 내 손 안에 넣을거야! 그리고, 설희. 조금만 기다려. 내가 진짜 남자가 되어서 나타날 거니까!’


그 이후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



“우울하다.”


스무 살이 겨우 되었을 법한 청년이 사천의 한 뒷골목을 걸어가며 중얼거린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이번에도 공쳤네. 젠장, 이젠 더이상 일할 곳도 없는데.”


그가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언제 씻었는지, 손가락 사이로 비듬이 떨어진다. 얼굴을 잔뜩 덮고 있던 기름낀 앞머리를 치우자, 준미한 얼굴이 드러난다.


요새 사내들과는 달리 새하얀 피부에, 오똑한 코. 다소 병약해보이는 인상이지만 눈매가 깊다. 입은 좀 험해도, 감추어둔 지혜가 하나둘 정도는 있을 것 같다. 날렵한 턱선이 그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여러 여자를 울릴 것 같다.


“하아···. 난 왜 되는 일이 없을까.”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되는 대로 발길을 옮긴다. 이윽고 인파가 바글거리는 시장이 나타났다. 청년은 자신에게 들려올 말을 예상하며 한숨을 내쉰다.


“어머, 저기 봐!”

“그, 그···. 맞다! 소문의 당소문이다!“

“킥킥. 소문의 당소문이래.“

“그, 하는 일마다 다 잘린다는 전설의 당소문?”


‘나쁜 자식들. 소문의 당소문이라니···. 그럴 듯한 별호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너무하잖아.’


청년은 당소문이다. 올해 열 여덟이 된 그는, 십년 전 설희를 떠나보내며 했던 다짐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무림 고수는 무슨,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한다.


5년 전에 모종의 일로 가문에서 쫓겨난 후 이른 나이에 독립했다. 그 후로 안 해본 일이 없다. 동네 물건 배달부터 시작해, 청소부, 인력거, 막일, 쟁자수, 그리고 지금의 점소이에 이르기까지. 험한 일만 골라 하다가 드디어 편하게 할만할 일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결과적으로 달포도 되지 않아 잘렸다.


“얼굴도 잘 생긴 사람이 왜 제대로 하는 일이 없대?”

“몰라. 얼굴 믿고 나대나 보지.” 두 아낙네가 당소문을 흘긋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대답한다.

“너희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뭔데, 뭔데?”


‘다 들린다고. 하아, 남의 치부를 놓고 저리 재미있게 이야기하다니···. 무림의 미래가 어둡구나.’


차라리 자신을 욕하면 모를까, 치부를 건드리는 것은 어떤 사내도 참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당소문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귀를 닫았다. 동네 아낙네들이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면 자신만 손해다. 여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인간, 장애가 있다던데?”

“헐, 멀쩡해 보이는데? 무슨 장애?”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팔다리가 꼬인다나?”

“풉, 그게 뭐야?” 비웃음이 들려온다.


멀어지는 그의 뒤로 여자들이 떠들어댄다. 양 손을 들어 귀를 꾹 막아도, 손가락 틈새로 음성이 파고든다.


“··· 그니까, 어린애들이 할 수 있는 일상생활만 가능하다고?”

“그렇다니까! 조금만 힘을 쓰거나, 달리기만 하더라도 사지가 제대로 움직이지를 않는대.”

“아! 그래서···.”

“응. 그래서 점소이도···.”


빌어먹을 세상. 그는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세상을 원망한다. 누구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숨만 쉬어도 부족한 없는 생활을 한다. 또 누구는 명가의 자제로 태어나 갓난아기 때부터 분골세수를 받고, 영약을 밥 먹듯이 먹는다.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야··· 앗!”


별안간 당소문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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