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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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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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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유벤타 공장을 향하여(7)

DUMMY

의무실의 침대는 두 개였는데 두 개 모두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시체가 있었다. 바닥에도 살이 썩어 뼈가 드러난 두 구의 시체가 있었다. 고열의 고통을 덜기 위해 의무실을 다시 찾았다가 쓰러져 사망한 것 같았다. 우리가 오는 동안 기지안의 미생물이 열심히 그들을 분해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끔찍한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우주복을 입었기에 시체 썩는 냄새를 맡지 않아 다행이었다. 김철수가 희생자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모두가 알고 있거나 최소한 한 번은 얼굴을 마주쳤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한국인 한명을 보며 김철수는 비통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람은 대학원에서부터 알던 사람이었어. 이제 아들이 7살인데···”


하지만 슬퍼도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일단 의무실을 나와 수색을 계속했다. 다른 희생자들은 자신의 방에서 발견되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체도 있었지만 두 구의 시체는 바닥에 쓰려져 있었다.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고통스러워했던 것 같았다. 방의 시신들도 의무실과 마찬가지로 모두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숙소동 수색은 오래 걸렸다. 특히 장영은 우주 정거장에서 가장 먼저 발열이 있었던 통신 엔지니어와 친분이 있었던 아서 기지의 엔지니어 방을 철저하게 수색했다. 장영은 아서 기지 엔지니어의 개인 노트북에 보조 전지 같이 생긴 사각형 박스를 연결했다. 김철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장영에게 말했다.


“그건 개인 컴퓨터지 않아요? 허락을 받지 않고 열면 법 위반이 될 겁니다.”


장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유족에게서 허락을 받았어요.”


“예? 언제?···”


“우리가 지구에서 오는 동안 지구의 WHO에서 역학 조사에 대한 정보 수집 동의서를 받았죠. 그래서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장치를 연결할 수 있었던 거죠.”


장영이 자신이 연결한 박스를 보며 말했다. 김철수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암호는 금방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는 장영을 남게 두고 수색과 소독을 계속했다. 본부동과 숙소동의 수색을 끝내고 연구동으로 들어갈 때 즈음에야 장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와 합류했다.


아서 기지는 우르 관련 연구를 하지 않아 생물 실험실은 없었다. 대신 통신 설비나 행성 물리학에 대한 실험실이 있었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서 기지는 연구보다 유벤타 공장과 제임스 기지 사이의 중간 기지로서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수색은 핵발전소까지 이어졌지만 더 이상의 희생자들이나 이상 상황은 발견하지 못했다. 핵 발전소는 자동으로 가동되고 있었고, 전력도 충분했다. 수색을 마치고 시신마다 샘플을 채취해 조심스레 봉인한 뒤, 마크가 우울한 저음으로 김철수에게 말했다.


“12명 시신 모두가 확인되었습니다. 네 명은 의무실, 나머지 여덟 명은 각자의 침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제 이 유해들을 어떡하죠?”


사실 그게 문제였다. 지구로 보내 가족에게 인계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신종 바이러스 덩어리를 지구로 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서 태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소도 없는 이곳에서 열두 구의 시체를 어떻게 화장한다는 말인가! 매장도 어렵다. 흙이 없는 유로파에서 매장이란 얼음 속에 넣는다는 말과 동일했다. 즉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의미로 바이러스 또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보안요원 하나가 말했다.


“식품 냉동고에 넣어 두는 게 어때요? 난 지구에서 그런 경우를 봤거든요.”


당장 생각에는 나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철수는 얼마간 고심하다 말했다.


“이 기지는 계속 사용해야 해요. 당장이라도 사람이 드나들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그들이 먹을 음식을 저장하는 곳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체를 둘 수는 없어요.”


김철수는 잠시 생각하다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시체를 최대한 밀폐해 밖으로 옮겨다 놓읍시다.”


마크가 물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시체를 밀폐하죠?”


“그걸 찾아야죠.”


“까닥 하다간 유로파에 바이러스가 퍼질지도 몰라요.”


내가 걱정하자 김철수가 다시 말했다.


“영하 150도의 진공 상태에서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없어요. 더군다나 이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의 변형이에요. 공기나 대인 접촉이 없다면 전파되지 않습니다. 여기는 대기가 없고 온도도 냉동고보다 낮으니 일부러 파헤쳐 들지 않는다면 전파될 가능성은 낮아요.”


막상 김철수의 말을 들으니 그의 의견이 타당한 것 같았다. 우리는 기지를 돌아다니며 시체를 넣어 밀폐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내가 기지 식당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지구로부터 보급되는 식품을 포장했던 박스와 그 속에서 내용물을 1차 포장했던 비닐이었다.


박스는 강화 플라스틱으로 사람을 똑바로 눕혀 넣을 길이는 안 되었다. 하지만 무릎을 세워 한명을 앉혀 놓기에는 충분했다. 더 마음에 든 것은 박스 안에 들어있는 비닐이었다. 비닐은 우주용에 맞게 두껍고 방사능과 우주의 물리, 화학적 변화를 얼마간 이겨낼 만큼 튼튼했다. 김철수가 웃으며 칭찬했다.


“좋은 걸 찾아냈군요.”


신디케이트의 임원인 김철수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큰일을 해 냈다는 생각도 들지도 않았다. 1초라도 빨리 이 위험하고도 비극적인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는 식당과 창고를 뒤져 박스와 비닐들 몽땅 찾아냈다. 바로바로 폐기물을 처리하지 않은 모양으로 양이 상당했다. 12구가 아니라 30구라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의무실의 시체부터 비닐로 싸고 박스에 넣어 금속 테이프로 틈이 생기지 않도록 감아 고정시켰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김철수와 마크, 장영이 했다. 그들은 의사들이었다. 해부학 실습 때 시체를 만지고, 병원에서 주검을 접했기 때문인지 유해를 수습하는데 나보다는 거부감이 덜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반쯤 부패한 시체들이었다. 나는 시체 수습을 그들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서있을 수만 없어 박스 밖과 안에 열심히 소독약을 분무했다.


가냘픈 장영은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앞장서 일했다. 마크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가장 열정적이고 궂은일을 한 사람은 김철수였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떻게 유벤타를 분리해 냈고, 신디케이트의 유력한 임원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는 천재에 열정적이고 성실하며 리더십까지 있었다. 우르 하나 사냥했다고 세상이 내 것인 양 희희낙락했던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 셋 덕분에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시체가 있었던 곳의 바닥까지 닦고, 소독하고, 그렇게 사용한 천과 종이마저 비닐로 몇 겹을 싸 박스에 담았다.


시체가 수습되자 궤도차에 남아 있던 보안요원과 운전사까지 동원되어 1회용 걸레에 소독액을 묻혀 기지 전체를 한 번 더 닦았다. 바이러스 감지 로봇 두 대가 분주히 돌아다니며 바이러스가 남아있지 않나 검사했다.


그동안 미찌코는 복도의 한 의자에서 멍하게 생각에 잠겨있었다. 뭔가 괴롭고도 끔찍한 상상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찌코는 때때로 고개를 돌려 김철수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지켜보았다. 김철수와 다른 사람들은 미찌코의 고뇌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기지가 소독되는 동안 나를 비롯해 시체를 수습한 팀은 둘이 한 조가 되어 그것을 기지 밖으로 옮겼다. 기지 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작은 얼음 구덩이를 여러 개 찾아 시체가 든 박스를 넣고 얼음 조각들로 덮었다. 아서 기지 앞에 갑작스레 공동묘지가 만들어진 셈이 되었다. 우주환경에 맞춰 특수 플라스틱이라지만 영하 150도의 온도에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디케이트가 시체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 낼 때까지는 견딜 것이라 믿었다.



다음은 통신센터 차례였다. 통신기지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기계들이 많아 신경을 더 써야했다. 통신센터에서도 장영는 컴퓨터에 접속해 자료들을 복사했다. 소독이 끝나자 우리가 탔던 궤도차의 운전자가 통신센터의 기기들을 점검해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그것이 그가 궤도차를 운전하면서 우리와 왔던 진짜 이유였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는 다시 6시간이 지난 뒤였다. 모두가 지쳤지만 우리들 중 아무도 아서 기지에서 잠을 자거나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를 제거했다고 하지만 꺼림직 한 기분은 남아 있었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궤도차로 돌아왔다. 아서 기지를 나오기 직전 우주복에 소독약을 뒤집어쓰고 나왔지만 궤도차의 에어록에서 또 한 차례 소독을 했다. 그리고 궤도차의 객실로 들어와 헬멧을 벗었다.


보안 요원 네 명은 규정을 어기고 우주복까지 벗었다. 김철수가 뭐라 말하려 하다 그냥 목구멍으로 삼켰다. 각자의 궤도차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세 ,네 시간 자기로 했다. 나는 커피와 오토밀에 계란오믈렛을 데워먹고 의자를 젖히고 누웠다. 몸은 지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내민 박스에 담기던 뼈가 드러난 시체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아서 기지의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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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7 최초
    작성일
    22.09.27 02:05
    No. 1

    좀비들이 돌아다니는데 시체가 안전할 거라는 발상을 저렇게 똑똑한 인간들이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9 Fragarac..
    작성일
    23.01.04 02:33
    No. 2

    모종의 방법으로 시체가 좀비가 되는 거라 시체는 안전한 게 맞지 않나요? 시체 도둑 맞을 일을 거정하면 몰라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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