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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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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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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8,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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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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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12쪽

4장. 유벤타 공장을 향하여(5)

DUMMY

리네아 안쪽은 끝이 날카롭고 거친 커다란 다면체의 얼음바위 범벅이었다. 어떤 것들은 내 키의 3배나 되었고 집채만 한 부피를 가진 것도 있었다. 어떤 얼음은 너무 날카로워 우주복이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오와 목성의 중력에 얼음 대지가 뒤틀리고 갈라지며 물이 솟아올라 떨어진 흔적들이었다.


나는 미찌코 뒤에서 서서 얼음에 스치지 않게 조심하며 천천히 공중을 유영하듯 걸어 30m 정도 아래로 내려갔다. 내 뒤로는 김철수와 린이 내려오고 있었다. 톰슨은 지형에 익숙한 듯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분출공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래의 얼음 바위 위에 새로 떨어진 바위들을 따라가면 됐다.


곧 우리는 분출공 근처에 도착했다. 분출공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심해로부터 따뜻한 물이 올라와 아주 두껍게 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출공 주위의 얼음은 상당히 두꺼운 듯 했다. 그래서 분출공은 더 확장되지 못하고 리네아의 폭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분출공에 도착하자 톰슨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린과 김철수는 왼쪽으로 분출공을 따라 돌았다. 둘 다 사진을 찍거나 얼음 대지에 새로 추가된 얼음 조각을 채취하기도 했다. 앞서 가던 톰슨이 걸음을 멈추고 얼음에 붙은 검은 뭔가를 살폈다. 미찌코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뭘 발견했나요?”


톰슨이 자신이 발견한 것이 이상한 듯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스타키보트리스 카르타룸(Stachybotrys chartarum:검은 곰팡이의 한 종류)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나도 그들에게 가 검은 물질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내가 보기에도 습기 찬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곰팡이 같았다. 그러나 희뿌연 얼음 색이 배경이라서인지 지구의 곰팡이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중얼거리듯 톰슨에게 물었다.


“검은 곰팡이가 영하 150도의 진공에도 생존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나요?”


“글쎄요. 전공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는 못들은 것 같아요.”


톰슨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검은 곰팡이의 흔적을 살폈다. 분출공 주위의 날카로운 얼음 끝에는 검은 곰팡이와 함께 투명 니스같은 물질이 넓고 길게 묻어 있었다.


“이건 우르의 몸에서 나오는 체액 같은데, 그렇다면 우르의 몸이 이곳에 닿았었군요. 어쩌면 이 검은 곰팡이가 우르에서 묻어나왔을 수도 있어요.”


나는 우르에 몸에서 봤던 검은 반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미찌코는 말하기도 싫다는 듯 곰팡이 쪽은 보지 않았다. 미찌코의 눈은 분출공 반대편에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김철수에게 가있었다.


톰슨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내 검은 곰팡이를 담았다. 톰슨은 이어서 배낭에서 전동 드릴을 꺼내드니 분출공 가장자리를 뚫기 시작했다. 아마 분출공안으로 카메라를 넣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톰슨, 분출공 아래에 아직 우르가 있을지도 몰라요. 진동을 일으키는 건 위험해요.”


나는 통신기로 고함을 질렀다. 톰슨은 내 말을 무시하며 드릴을 끄지 않았다.


“지진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우르가 나올 리 없지 않아요? 지진이 일어나고 우르가 올 때를 대비해 계측기와 카메라를 설치하면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분명해지겠죠.”


톰슨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계속 구멍 뚫었다. 분출공 밖으로 우르가 몸을 내밀 때 신경을 타고 흘렀던 흥분이 내 몸을 찌릿하게 지나갔다. 왜 그때 그 흥분이 느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우르를 쫓아다니며 쌓였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저런 이유를 생각 틈도 없이 나는 정신없이 외쳤다.


“피해요. 우르가 나와요.”


그러나 제타 리네아의 바닥과 분출공은 조용히 얼어붙은 얼음 그대로였다. 어느 누구도 소릴 내지 않았다. 모두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톰슨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보던 미찌코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천천히 몸을 돌려 분출공에서 떨어졌을 뿐이었다.


“강박증이 심하시네요.”


톰슨의 비웃음이 통신기에서 튀어나와 헬멧 안을 쨍쨍하게 돌아다녔다. 톰슨은 드릴을 더 꽉 붙잡았다.


“파워를 최대로 높였어요. 얼음도 그리 두껍지 않아요. 곧 끝납니다.”


톰슨은 1분 정도 드릴을 더 가동한 후 뚫은 구멍 안으로 기다란 계측기를 밀어 넣었다. 그러는 동안 우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 몸을 퍼져나갔던 흥분은 사라지고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는 자책감과 창피함에 숨 쉬기도 어려웠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돌며 분출구를 조사하고 오는 김철수와 린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헬멧의 통신기는 공용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들도 내 호들갑을 다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만나는 걸 잠시라도 지연시키고 싶은 마음에 내려왔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얼음이 흔들렸다. 땅 전체가 흔들리는 지진의 진동이 아니었다. 어떤 것이, 어딘가에서, 용트림하며 몸을 꼬아댈 때 생기는 진동이었다.


진동이 전해져오는 근원도 분명했다. 톰슨 바로 앞에 있는 분출공이었다. 나는 황급히 톰슨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분출공을 덮고 있던 얼음이 깨어지며 조각조각 하늘로 날아오름과 동시에 톰슨이 비명을 질렀다.


우르가 거대한 몸을 드러내며 분출공 위로 솟구쳐 올랐다. 분출공의 폭이 30m 정도이기에 솟구치는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르는 자신을 불러낸 진동의 근원을 찾는 듯 얼음 밖으로 내민 몸을 두세 번 흔들었다.


“움직이지 말고 엎드려요.”


나도 모르게 외치는 동안 하늘로 날아오른 얼음 조각들이 우리의 몸 위로 떨어졌다. 몇 개는 수백Kg은 나갈 것 같았다. 약한 중력이 우릴 살렸다. 수십kg짜리 얼음조각에 맞았지만 충격은 적었다. 하지만 톰슨은 분출공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우르가 몸을 솟구칠 때 날아온 지름 4,5미터는 될 것 같은 얼음 덩어리를 정면으로 맞았다. 톰슨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하지만 우주복과 중력 덕에 다치지 않았는지 톰슨은 바로 일어났다. 충격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도망쳐야한다는 본능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톰슨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것이 더 나빴다.


우르가 움직이는 물체를 알아챘다. 공중으로 솟아오는 우르의 몸 일부가 철퇴처럼 뭉쳐져 톰슨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가격으로 헬멧과 우주복 사이가 벌어지며 톰슨의 목이 꺾였다. 톰슨은 쓰러지며 얼음에 강하게 부딪치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우르가 철퇴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우르는 그렇게 꼿꼿이 서서 다른 움직이는 물체를 찾고 있었다. 나는 조용하지만 절박하게 외쳤다.


“제발 움직이지 말아요.”


나의 경고가 없었더라도 누구도 공포에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같은 몇 분이 지나갔다. 더 이상의 진동이 없자 우르는 천천히 철퇴처럼 뻗은 부분의 힘을 뺐다.


그러나 우르는 얼음 밑으로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우르는 철퇴처럼 뭉쳤던 부분을 넓게 펴 쓰러진 톰슨 근처로 가져갔다. 보자기처럼 펼친 부분은 쉽게 톰슨의 몸을 찾아냈다. 우르는 톰슨의 몸을 완전히 감아 사냥감을 가져가듯 바다 안으로 당겨 들어갔다.


나는 우르가 그렇게 행동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우르가 몸의 일부를 채찍으로 만들어 공격은 했었어도 그 대상에 대해 관심은 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우르의 행동은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더 크게 놀란 것은 우르가 분출공 밑으로 들어가며 몸을 틀었을 때 보인 반대쪽의 몸 색깔이었다. 광택이 약해진 베이지 색 몸 곳곳에 검고 넓은 반점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르가 바다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몇 분이 더 흐르고 우르가 사라졌다는 걸 자신할 때 즈음 미찌코가 감정을 누른 소리로 말했다.


“빨리 돌아가요. 빨리!”


우리는 진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며 몸을 움직였다. 김철수는 그 와중에서도 톰슨이 있었던 자리에 가 곰팡이를 담은 플라스틱 통과 떨어져 있는 톰슨의 가방을 챙겼다. 내가 앞장서 길을 찾았고 김철수가 가장 뒤에서 주위를 살피며 리네아를 벗어났다.


궤도차에 돌아와 의자에 앉자마자 미찌코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톰슨과 논쟁을 벌이던 린은 얼굴을 들지 못했고, 나도 같이 다니던 연구원이 죽었다는 책임감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철수는 침울해했지만 리더답게 감정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김철수는 미찌코부터 다독였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어요. 충격이 커겠지만 일단 로사 기지로 돌아갑시다.”


김철수는 제임스 기지와 로사 기지에도 사고를 알렸다. 김철수가 운전하는 궤도차는 침묵 속에 로사기지를 향해 왔던 길을 달렸다.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우르의 철퇴를 맞아 목이 꺾이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르 몸 위의 검은 반점들, 곰팡이로 생각되는 그 반점들···, 하지만 김철수와 미찌꼬는 곰팡이에 놀라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앞자리에 앉아 있는 미찌코에게, 김철수도 들리게 큰 소리로 물었다.


“유로파와 우르가 곰팡이에 오염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미찌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지 않아요? 그 때문에 우르가 광파 발생기에 반응하지 않는 것까지 짐작하고 있지 않았나요? 우르에게 영향을 줄 요인은 그 뿐이죠?”


나의 거듭된 물음에 김철수가 단조로운 소리로 대답했다.


“유로파의 바다 밑 일은 아무도 몰라요. 꼭 곰팡이 때문이라고는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하죠. 그래서 김 박사를 부른 거고요.”


미찌코가 입을 뗐다.


“우린 모든 규정을 지켰어요. 모든 걸 정해진 대로 했다고요.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곰팡이 포자가 빠져나간 걸 어떻게 하겠어요?”


미찌코의 항변을 들으며 아까 톰슨이 물속에 넣으려던 계측기를 떠올렸다. 규정에 따라 지구에서부터 생물 검사를 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사용 전에 철저한 세척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측기의 표면에 곰팡이 포자하나가 없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어떡한단 말인가?


당장 나부터 생물 검사는 달에서 건성으로 받았다. 우주복을 입고 벗을 때마다 우주복 겉면에 손이 닿았지만, 그 손가락 끝 손톱 밑에 포자가 없었다고 누구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인간들이 오갔는 동안 지구에서 묻어온 곰팡이나 세균, 바이러스가 하나도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놀랄 일이 아닌가! 여기서 죽었던 사람들은? 저 톰슨의 몸에 있을 수 억, 수 조의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은?


하지만 유로파의 환경을 버텨내며 장시간 생존할 수 있는 지구의 생명체가 있을까? 하필이면 왜 지금인가? 갑자기 ‘적응과 진화’라는 말이 머리를 치듯이 떠오르며 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왜 지금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 바이러스나 세균, 진균 등은 유로파의 환경에서 수없는 희생을 치러가며 적응하고 진화해 왔던 것이다. 그 진화가 어느정도 완성 된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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