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2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25
“그렇군. 우리도 움직이자.”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상한 거?”
“예. 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세가라면 어딜 말하는 거냐?”
“제갈세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남궁세가입니다.”
“개자식들! 아예 노골적이군.”
“세심각의 피해는 어떠냐?”
태민의 질문이다.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만큼 강한 자들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며칠 전 낭인촌에서 봤던 독룡지체를 말한다.
“다섯? 좋다. 그놈들부터 먼저 처리한다. 가자!”
“예.”
일초는 정말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몸을 날린다.
“야, 야! 어딜 가는데?”
“어디긴 어디야? 사지(死地)지. 사지. 죽을 곳이라고, 몰라?”
“안다. 이 자식아! 친구라는 것들이 도무지 도움이 안 돼요.”
조충은 중얼거리면서 뒤따른다.
“멈춰라!”
“뭐하는 놈들이냐?”
일초 일행이 달려가자 세심각의 무사들이 길을 막고 소리친다.
“지랄하네. 니들은 멈추라고 하면 멈췄냐?”
일초가 처음부터 시비를 건다.
“흐흐흐, 미친놈들! 무덤에 온 걸 환영한다.”
“고맙다. 근데 충아! 누구 무덤이 될 것 같니?”
“그거야 당연히.... 가만, 가만! 다들 안면이 있네. 야, 넌 광호고, 넌 창이잖아? 저기 홍이도 있네. 니들이 여긴 어쩐 일이냐?”
“.....?”
조충이 아는 체를 하자 세심각의 무사들이 극도로 당황한다.
“하하하하! 그랬군. 그랬어. 난 니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기에 힘들어서 도망친 줄 알았지. 근데 세심각에 들어갔구나. 어쨌든 반갑다 친구야.”
조충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민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기운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돌풍을 일으킨다. 충돌음에 비해 양측은 뒤로 약간 물러날 뿐 큰 피해가 없다.
“어라? 아닌 모양이네. 내가 착각했나? 그래. 차라리 잘됐지 뭐. 친구면 싸우지도 못하고 입장만 난처해질 텐데. 간다!”
조충은 그대로 앞쪽으로 몸을 날린다.
“야, 야! 위험해!”
조충이 혼자서 세심각의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자 일초가 황급히 막으려 한다. 하지만 조충이 조금 더 빨랐다.
“퍼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뒤로 튕겨 나온다. 일초가 날아가서 그를 안는다.
“쯧쯧, 그놈의 급한 성격은 언제 고칠래?”
물론 조충이 다친 건 아니다. 다만 상대의 무공에 상당히 놀란 눈치다. 그는 지금껏 몸으로 부딪혀서 이렇게 밀린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나자 태민 사형제와 곤일이 나선다. 그때 일초의 전음이 들려온다.
‘자연무예는 안 된다. 그 외에는 마음껏 해도 좋다. 형님의 말씀이다.’
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자연무예를 펼치지 마라는 건 독기를 빨아들이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는 뜻이다.
“미친놈, 지도 어려운데 동생들을 내보내? 희생양이냐?”
“어쩌겠냐? 애들이 나보다 더 센걸.”
일초는 농을 하며 여유를 부린다. 하지만 조충과 촌장의 마음은 불안한가 보다.
“야, 애들이 괜찮을까?”
“글쎄다. 사실 나도 쟤들 실력을 몰라. 하긴 생각을 해보니까 6개월이 넘도록 쟤들이 공격한 걸 본 적이 없네. 아니지. 아까 올 때 봤네. 그 자연 거시기란 걸 봤지.”
“기대해도 좋다. 내 동생들이라서가 아니라 무서운 얘들이다.”
조충의 걱정과는 달리 동생들은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걸 보고 촌장이 한 소릴 한다.
“왜 안 움직이지?”
“탐색하는 거지. 쟤들은 이미 저 놈들을 한 번 봤어. 쉽지 않은 상대란 걸 안다. 그래서 조심하는 거야.”
“으음, 도..독이다!”
갑자기 촌장이 친구들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난다.
“야, 쟤들은 멀쩡하잖아?”
조충이 물러나면서 불만을 표시한다.
“주위를 잘 봐라. 저들을 제외하곤 모두 죽었다.”
“허억! 정말이네. 애들이 괜찮을까?”
“지난번에도 문제가 없었다.”
“독을 뿌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야?”
“놈들은 독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성지체다.”
동생들 앞에는 세심각의 무사 세 명이 서 있다.
“독인(毒人)?”
“전신이 독이라고 보면 된다.”
“독성지체란 말은 들어봤지만... 세심각이라고 했던가? 무서운 곳이군.”
“지금부터 더 재밌을 테니 잘 봐라.”
일초의 말에 두 사람은 싸움에 집중한다.
“후후후, 맹랑한 놈들이네.”
“그러게. 설마 멀쩡한 건 아니겠지?”
“그러기야 하겠어? 세심삼독이 어떤 건데....”
독인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상대가 곧 쓰러질 거라 믿는 눈치다. 하지만 금방 표정이 달라진다.
“며칠 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지.”
“며칠 전?”
“그래. 니들처럼 건방 떨다가 한 방에 훅 가더라.”
태운이 상대를 자극한다.
“네놈들 짓이냐?”
“뭐가?”
“십 호를 제거한 놈들이.”
“우리가 한 일은 없어. 독이 안 먹히니까 그냥 나가떨어지더라.”
“용독술(用毒術)을 제외하면 젬병이더라고.”
“씹새들이, 감히 세심각을 모욕해? 죽여라!”
한 명이 소리치며 세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린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태민의 형제들이 움직인다.
퍼억!
“케엑!”
연속으로 세 마디의 비명이 들린다. 태민 형제들의 생사무에 독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이게 무슨 무공이야? 크아악!”
이번에도 역시 연속으로 세 마디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생사무의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관절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나 싶으면 정상적인 공격이 들어오고, 정상적인 공격에 대비하면 반대 방향으로 손과 발이 날아오니 막을 도리가 없다. 독인들이 바닥에 쓰러지자 곤일이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서 그들에게 던진다.
“으아아악!”
독과 상극이 불이기 때문에 독인들은 꼼짝을 못하고 불에 타 죽는다. 순간 뒤쪽에서 또 다른 세심각의 무사들이 달려 나온다.
“네놈들은 우리 몫이다!”
그들이 공터로 나오자 일초를 비롯한 친구들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퍼엉!
이번에는 일초가 선방을 친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죽통을 두 개 꺼내더니 세심각의 무사들을 향해 던진다.
“도..독이다!”
죽통엔 독가루가 들어 있다.
“해독약을 먹어라. 어서!”
순식간에 세심각의 무사들은 혼란에 빠진다. 정파의 무사들에게 자신들이 했던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당하자 당황한 것이다. 그들은 독인을 앞세워 상대를 중독 시킨 다음 인정사정없이 도륙했다. 이제 그들이 당할 차례이다.
“니들은 잠시 구경해라.”
“왜? 우리도 한 몫 할 수 있다니까!”
“정이 너도 하고 싶니?”
촌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거 먹어라. 해독약이다.”
일초는 품속에서 해독약을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넨다. 그들은 그걸 얼른 받아먹곤 일초를 뒤따른다. 예상대로 일초는 세심각의 무사들을 상대로 생사무를 펼친다. 하지만 촌장과 조충은 검을 든다.
“형님들이 괜찮을까요?”
“너 일초 형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알죠. 후후,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인 기념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러기엔 딱 좋은 그림이다.”
“봐라. 벌써 두 양반은 구석에 몰렸다. 한, 두 명은 몰라도 다섯 명 이상이 덤비니 밀릴 수밖에.”
태민의 말대로 촌장과 조충은 다섯 명의 세심각의 무사들에 의해서 포위돼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야! 대체 이런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이크! 이 새끼들이.”
조충은 간신히 몸을 피하며 촌장에게 시선을 보낸다.
“나도 몰라.”
“혹시 일초의 장난에 당한 건 아닐까?”
“일초가 말리는 걸 우리가 한다고 했잖아?”
“그야 그렇지만 우리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니 그렇게 만들 수도 있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결국 밑천을 드러내야 하나?”
“어쩌면 시험일지도 모른다.”
“시험?”
“아마 이런 걸 통과의례라고 하지?”
“의례? 좋지. 그럼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
두 사람은 한 발 뒤로 물러나더니 자세를 바로 잡는다.
“우리 형님들께서 결국 결심을 하셨네.”
“어느 정돌까?”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보단 훨씬 더 잘하겠지.”
“대형께서 결정하셨으니 어련하실까요? 시작했습니다.”
곤일의 말대로 두 사람은 내공을 끌어올리더니 세심각의 무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기다!”
“아니, 검강이다!”
두 사람의 검에서는 처음에는 푸른빛이 나오더니 점차 맑고 투명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그게 바로 검강이란 걸 증명하는 것이다.
“크아악!”
두 사람의 검이 지나가자 세심각의 무사들은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한 번의 공격에 두 사람이 다리가 잘리면서 바닥을 뒹군다.
“거..검진을 펼쳤라!”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심각의 무사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한 줄로 선다. 그러더니 검과 검으로 기운을 모아서 제일 앞쪽의 무사에게 전해준다.
까까꺙꺙!
양측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히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고 양쪽이 동시에 뒤로 날아간다.
“형님!”
태민을 비롯한 동생들이 달려가려 하자 일초가 손을 들어 막는다.
“끄으응!”
조충과 촌장이 앓는 소릴 하면서 일어선다. 뒤이어 세심각의 무사들도 일어난다.
삐이이익!
“퇴각하라!”
그들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호각소리와 함께 후퇴 명령이 떨어진다.
“형님!”
태민이 일초를 쳐다본다. 일초는 자신이 맡은 세심각의 무사들을 모두 제압하고 동생들 곁에 서 있다.
“놔둬라. 원래 구석에 몰린 쥐는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분타주입니다.”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개방의 여수 분타주가 달려온다.
“대협! 다들 모였습니다.”
개방은 물론이고, 묵사회와 낭인촌의 무사들까지 다 왔다는 뜻이다.
“당분간 이곳은 완전히 폐쇄하시오. 그리고 최대한 많이 불을 피워서 독기를 제거하시오. 적어도 사, 오 일은 계속해야 될 거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보니 이상하네. 사태가 이 정도 되면 나와 볼만도 한데....”
조충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말대로 안쪽에선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 그쪽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부상자가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분타주의 설명이다.
“으음! 들어가자!”
일초는 즉각 움직인다.
“언제 오셨소?”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무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성한 사람은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서 부상자들을 돌보는 중이다.
“말할 시간이 있으면 환자들이나 살펴라.”
“어찌된 일이오?”
“직접 보면 알 것 아니냐?”
무진은 상당히 냉정하게 말한다.
“화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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