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141,168
추천수 :
2,015
글자수 :
999,310

작성
20.05.04 10:10
조회
616
추천
12
글자
12쪽

천향표

DUMMY

그도 슬픈 자이군 ! 류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사랑도 남들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관계에 놓일 때가 많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영주와 왕비라는 지위와 명예 모두 하잘 것 없이 사랑 앞에 무너지는 것이다. 돈 카펠리오는 그런 사랑을 한 자이다. 그의 사랑이 종교의 힘에 의해 무참히 죽어갔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세상 자체가 악마가 아니었을까? 류사는 돈 카펠리오를 동정했다.


“ 그를 죽이지 않겠소!”


류사가 다시 다짐하자 갈리에르는 류사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내일 신부님과 함께 출발했으면 합니다만!”


하고 청하자 갈리에르는 묵묵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도야장이 어색함을 풀었다.


“ 신부님과 같이 가면 불편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뒤를 따르겠습니다. 찾지 못하면 사흘 뒤 양척산 아래 산신당에서 만납시다.”


류사도 동의했다. 주 요연을 구출하기 전까지 갈리에르 신부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류사가 행동하기에 불편했다. 말을 마친 후 갈리에르 신부는 돈 카펠리오를 만나러 가고, 류사는 구야장에게서 양척산의 지세와 주변 형편을 자세히 들었다.


아침에 류사는 길을 나서 장안으로 가는 큰 길에 들어섰다. 사천과 호남에서 올라오는 물산과, 대막과 산동에서 내려가는 물건들이 빈한한 세월에도 한없이 흘렀다. 말과 마차들이 길게 열을 지어 가고, 관청의 포두와 절정산장의 무리들이 눈동자를 힐긋대며 사람들을 감시했다. 길 좌우로 밀밭이 평평히 뻗어 있고, 들판은 지평선 끝에서 희미하게 솟구치는데, 가난한 농군들이 그 사이를 다니며 밀을 베었다.


바람은 축축한 봄기운울 머금고 들과 사람을 건너다니고, 해는 부드럽게 창백했다. 류사는 천천히 말을 몰아가며 사방 형세를 살폈다. 양척으로 가까워질수록 희미하던 산의 윤곽이 뚜렷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류사는 길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을 타서 양척 산으로 넘어가 정상으로 부터 일주향이 있는 동굴로 접근하려고 했다. 그것이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보다 안전해 보였다.


산 아래 농가가 한 채 보였다. 저녁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싸리문 옆에 무명옷을 걸친 중년 남자가 류사를 바라보며 손짓해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니 몸이 수척하고 키는 보통인데 눈빛이 괴이했다. 삼백 안에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 하룻밤 묵고 산을 넘어가시오!”


말에 억양을 두지 않고 무표정했지만 상대를 억누르는 기운이 있었다.


“ 나는 바쁘오!”


류사 역시 떨어지는 잎사귀처럼 무심히 그의 말을 스쳐갔다. 남자는 씨익 웃었다. 하얀 이빨이 반짝였다.


“ 멀리서 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니 그대는 부디 거절하지 마시오!”


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 곳 역시 매서명이 관할하는 초소로 생각되어졌다, 절정산장은 호북 일대를 점점 그들의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은밀하게 그들은 각처에 연락망과 비밀 장소를 두고 있었다. 이 곳 역시 그러한 장소의 하나라고 생각한 류사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 않고 물끄러미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 말에서 내리시오!”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류사는 마상의 자세를 풀지 않고 그를 여전히 내려다보았다. 중년 남자가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 여보! 이리 나와 보시오!”


광목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손에 물기를 닦으며 남자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남자가 말했다.


“ 여보! 오늘 오신 이분이 나의 호의를 무시하는구려! 어떻게 하면 좋겠소? ‘


여자는 얼굴이 수려하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몸매는 버들가지 같은데 가슴과 엉덩이가 컸다. 그녀는 허리를 흔들며 호들갑스럽게 대꾸했다.


“ 그럴 수가 있나요? 우리 집에는 서른여섯 분의 손님이 왔고 그 중 두 분이 거절하셨지만 결국 두 분 다 저의 남편이 되셨지요!”


하고 샐죽 입가를 오므렸다. 류사는 그녀의 말에 놀라 훌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 그 무슨 해괴한 말인가? 하루의 유숙함을 거절한다면 그대의 남편이 된다니!”


여자가 두 손을 단정히 무릎 아래로 놓으며 류사를 바라보았다.


“ 초대에 응하여 하루 밤 유숙한다면, 손님의 대접을 받는 것이나, 그냥 가겠다면 나의 남편으로서 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


“ 그것은 괴상하군! 그대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는데 굳이 묵지 않겠다는 사람을 남편으로 삼는다니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겠는가?”


“ 남자의 마음이란 부평초와 같고, 여자를 쉽게 기만하니 내가 여인들을 대신하여 남자를 쉽게 얻고 쉽게 버려 그 아픔을 느끼게 하리라!”


류사는 그녀의 마음에 증오가 가득 쌓여, 무사히 넘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럼 초대에 응하여 하룻밤 유숙한다면 어찌되는가?”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 세상의 일이란 그렇게 간단치가 않지! 하루의 밤을 지내는데 하루 밤 만큼의 비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자는 류사를 의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강호에는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었다. 친절을 가장하거나, 의혹스러운 상황으로 밀어 넣어, 놀라게 하거나 하여 상대를 제압하려는 교란 책을 쓰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여자도 그러한 무리들이라고 류사는 단정했다. 여자의 얼굴은 극히 평온하게 보이고 눈은 잔잔했다. 하지만 몸 전체에 서린 한스런 기운은 서릿발 치듯 했다. 그러다 문득 한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 아! 혹시!”


류사는 미소지으며 한두걸음 앞으로 나섰다


“ 그대는 천향표(天香瓢)가 아니시오?”


여자가 생긋 웃었다.


“ 아주 어리지는 아니하구나! 나를 아는 것을 보아하니!”


천향표 손향향은 전대의 고수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도박 빚에 팔려 소백정에게 팔려갔다가, 다시 이리저리 흘러 유곽에서 지내다 육지신마(六指神魔)를 만나 무공을 습득했다. 육지신마는 정사파를 막론하고 무림 칠대고수에 들어가는 자로서 얼굴에 화상을 입어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천향표는 그와 삼년의 약정을 하고 부부의 의를 맺었는데, 그사이 육지신마의 진전을 얻었다.


그녀는 삼년 후 육지신마와 헤어져 황산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강호에 출도한 그녀의 손속은 매서워서 많은 강호의 호색가들이 그녀의 손에 죽어나갔다. 욱지신마는 그 이후 강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그녀의 손에 죽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녀는 몇 년간 강호에 모습을 보이다 사라졌는데 , 이미 이십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만나게 되니 세상의 일은 돌고 돌아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류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천향표에게 다시 물었다.


“ 손 선배는 지금 절정산장의 일을 보아주고 있소이까?‘


천향표는 별다른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류사가 슬쩍 그녀의 마음을 건드려 보았다.


“ 굳이 젊은이들의 아래에서 일을 보아주며, 남은 생을 보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산야에 은거하여 고요히 세상 물정들을 잊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그녀의 눈썹이 추켜올려지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 류사! 네가 오늘 나에게 격장지계를 써서 위급을 면하려 한다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매장주와의 계약이 있어 당분간 그를 돕기로 하였으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 나의 신랑으로서 지낼 것이냐? 아니면 나의 손님으로서 지낼것이냐?”


“ 신랑은 무엇이고 손님은 또 무엇이오? 더구나 선배의 나이가 소생을 맞이할 나이는 아니지 않소?”


류사는 그녀의 의도를 분명히 알고자 했다. 그래야만 다음의 행동을 정하기가 쉬워질 것 같았다. 천향표 역시 류사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류사의 나이를 어림짐작으로 보아 아직 두려워 할 무공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그것을 꼭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남녀 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느냐? 호호호!”


천향표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요염하게 웃었다. 목소리는 약간 갈라졌지만 여성의 미태는 흠씬 풍겼다. 그러다 표독하게 말했다.


“너의 자태가 쓸만하니, 지금 떠나겠다면 사로잡아 나의 신랑으로 삼겠다. 하룻밤 유숙하겠다면 순순히 따르는 것을 감안하여 내일 아침 매 장주에게 너를 넘기겠다.”


아주 자신만만한 천향표의 말에 류사는 호기심이 들었다. 한번 천향표를 시험하고도 싶었다.


“ 손 선배 ! 그렇다면 나는 남편은 곤란하고 손님으로 하룻밤 신세 지겠소! 어떠하오!”


천향표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문을 열어 안으로 류사를 들였다. 남편이라 불리던 사내가 말의 고삐를 잡아 헛간으로 끌고 갔다. 천향표는 안채 맞은편의 방 한 칸에 류사를 데려갔다.


“ 잠시만 기다리게!”


류사가 방안에 앉자 천향표는 별다른 기색없이 부엌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했다. 반 시진쯤 지나자 남편이라 불리던 남자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고 그 뒤를 천향표가 따랐다. 상은 고기와 채소가 푸짐했다. 류사가 의아해 하니 천향표가 말했다.


“ 멀리서 온 손님을 어찌 허술히 대접하겠는가? 어머니가 자식을 군역에 보내는 마음으로 상을 차렸네! 많이들게!”


하고는 맞은편에 새초롬이 앉았다. 그런 다음 남자를 향해 눈짓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 내가 술 한 잔 쳐 주겠네!”


여아홍이 한 병 올려져 있었다. 천향표가 병을 기울려 잔에 따라 류사에게 권했다. 류사가 거침없이 받아 한잔 들이키자 이번에는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 나도 한잔 주게!”


내미는 그녀의 손등에 길게 베인 상처자국이 보였다. 그녀가 소매를 내어 덮으며 한숨을 쉬었다.


“ 이게 무슨 상처인지 아는가?”


류사는 알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천향표가 류사가 따르는 술을 받아 한잔 주욱 들이킨 다음 소리나게 밥상위에 놓았다.


“ 사랑받지 못하고 남자의 노리개로 살아온 여자의 마음을 자네는 알겠는가?”


류사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 말하지 못하면 가슴에 맺힌 한이 쌓이고 쌓여 죽을 것 같아서 지나는 행객에게 하룻밤 말을 건넨다네! 괜찮겠는가?”


안된다고 거절할 상황도 아니었다. 류 사는 괜찮다고 말했다. 천향표는 류사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넋두리를 꺼냈다.


“ 나는 호남성 장사의 율리현 사람일세! 그곳에서 나고 자라, 소 잡는 백정인 저 사야에게 시집갔다네! 나이는 많았지만 착한 사람이었어! 그때 내 나이가 열여섯이니 한참 때였지! 그런데 자네! 저 사야는 나이가 얼마였는지 아는가? “


류사는 천향표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면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수저를 들었다. 천향표는 류사의 행동을 힐끗 살핀 후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 이것 보게! 그 때 저 사야의 나이는 무려 사십이라네! 마흔이었다는 말일세! 빚에 쪼달린 우리 집은 은전 두 냥을 받고 나를 팔았다네! 꽃다운 나이의 처녀를 늙은 홀아비에게 말일세!”


천향 표는 치마에 눈물을 찍었다. 겉은 만개한 중년 여인인데 하는 짓은 늙은 노파였다.


잘못 걸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갯불처럼 때렸다. 천향표는 흘끔흘끔 류사의 눈치를 보면서 신이 난 듯 기구한 팔자를 푸념했다. 여자들의 신세타령은 시작하지 않으면 몰라도, 했다하면 끝이 없었다. 류사는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나중에 싸움이 붙어도 힘을 쓸 것이 아니겠는가? 천향표는 류사를 마치 쥐 잡아 놓은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천하 칠대 고수 「육지 신마」의 전인이 아닌가? 육지신마가 당년에 천하를 휩쓸 때 소림 나한진을 격파한 것은 무림 일대 사건이었다.


류사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여아홍 석잔 을 마셨을 무렵, 천향표의 넋두리는 기방에 팔린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밤도 슬슬 깊어가는 술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독행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퇴마사 +2 20.04.27 606 13 11쪽
54 황금 십자가 +2 20.04.25 603 13 10쪽
53 수라도(修羅道) +2 20.04.22 630 13 12쪽
52 시연연 편 +2 20.04.20 648 13 11쪽
51 서호의 달 +4 20.04.18 647 13 12쪽
50 행화촌 +2 20.04.15 669 15 14쪽
49 전투 +4 20.04.14 696 13 13쪽
48 수저용왕포(水底龍王炮) 편 +4 18.10.14 834 14 13쪽
47 “ 갈력위민 사이후이(竭力爲民 死而後已) -백성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다- +2 18.10.06 810 11 11쪽
46 적 그리스도 루시퍼 편 +3 18.09.29 826 13 13쪽
45 죽음의 시작 편 +4 18.09.20 885 18 12쪽
44 작 두 편 +3 18.09.15 891 14 11쪽
43 양이투전 (洋夷鬪錢)편 +2 18.09.08 949 14 13쪽
42 취련 각(醉蓮閣) 편 +3 18.09.02 1,012 12 14쪽
41 수월도 편 +3 18.08.26 1,040 19 11쪽
40 천년 설련자편 +5 18.08.18 1,050 17 12쪽
39 배교 신녀편 +2 18.08.12 1,069 12 13쪽
38 혈수궁 편 +3 18.08.05 1,040 15 12쪽
37 금정사녀의 출현편 +3 18.07.28 1,090 15 13쪽
36 남객 묘일선편 +8 18.07.20 1,089 1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