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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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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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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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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호의 달

DUMMY

주먹코의 발 쓰는 법수는 불안정 했으나 내지르는 힘이 강했다. 동 이야는 가슴을 부여잡고 땅바닥을 굴러 류사의 발밑에서 겨우 멈췄다. 기혈이 막혔는지 허리를 구부리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주 요연이 그를 데리고 느티나무 아래로 피했다. 류사의 안색이 변하며 주먹코를 손가락질했다.


“ 새가 가지에 앉되 가려서 앉으며, 장 닭이 울어도 때를 살펴 우는 법! 너희들의 핍박함이 정도가 지나치다. 이쯤 하고 물러감이 어떠냐?”


그 말을 알아들을 왈짜 들이 아니었다. 주먹코와 작달막한 사내의 손발이 동시에 류 사를 때리고 발로 찼다.

하지만 주먹과 발의 치고 들어감과 두 사람이 땅바닥을 뒹구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너무 변화가 빨라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무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영문을 몰랐다.

그러자 다시 왕조한의 옆에 서 있던 장한 둘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였다. 그러자 왕조한이 말렸다.

그는 역시 사세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괜한 거인 합격자는 아니었다.

류사의 기와 자세를 보아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눈치 채고 재빨리 미소 지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 범부가 눈이 어두워 귀인을 몰라 뵈었소이다! 나는 왕가 성을 쓰는 조한이란 사람이오. 귀인께서는 널리 용서하시오!”


하고 힐끔 류 사의 눈치를 살피고는


“실례를 사죄하기 위해 저희 집에 초대하고자 하는데, 귀인께서는 잘못은 작게 보시고 용서를 크게 하시어 청을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만.”


류사 역시 작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마주 인사를 건넸다.


“ 살면서 실수야 늘 일어나는 일 아니겠소이까? 하지만 저희 내자 될 사람이 몸이 불편하여 쉬고자 하니

청을 받들기가 어렵소이다. 그만 물러갈까 하니 대인은 가납하여 주시기 바라오!”


하자 뒤에서 듣던 주 요연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눈 꼬리를 모로 세워 흘겼다.

그러나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다. 왕조한이 음흉하게 웃으며 순순히 긍정했다.


“ 굳이 강권하여 무례를 범하고 싶진 않소이다. 그럼 살펴 가시기 바라오!”


그리고는 수하들을 호령하여 그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도 흥미를 잃어 뿔뿔이 흩어지자

류사가 주요연의 곁으로 다가갔다. 느티나무 옆의 바위에 동이야가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서. 주의를 주었다.


“ 미련한 촌사람이 눈은 있되 망울이 없어 류 대협의 고명함을 몰라 뵈었소. 나는 그렇게 빠른 손속은 생전 처음 보았소. 그렇지만, 조심하시오! 왕조한 그 사람은 절대 그냥 당하는 사람이 아니오! 앞으로 숙이고 뒤통수를 치니 각별히 몸조심하시구려!”


“ 고맙소이다! 말씀하신대로 주의하여 당하지 않도록 하겠소이다.”


그러면서 요상약 한 알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동이야가 거듭 감사하며 그 자리를 떠나자,

그들도 집으로 향하였다. 산길을 오르는 도중에 주요연이 한 숨을 포옥 쉬었다. 류 사가 걱정되어 물었다.


“ 대대! 무슨 근심이 있다면 말해주구려! 나는 무척 답답한 마음이오!”


이 때 류사의 마음은 걱정과 의문으로 뒤범벅되어 혼란했다. 주요연이 류 사를 빤히 바라보며 보석 같은 눈을 반짝였다.


“ 지금 내 걱정은 오직 하나 뿐이랍니다. 류 대협님! ”


“ 그게 무엇이오?”


하고 류 사가 초조히 묻자 그녀는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언제 류 대협님의 내자가 되기로 하였지요? 시집도 안간 처녀의 혼사 길을 이렇게 모함해도 되는 건가요?”


하고 은근히 앙탈하였다. 그녀의 호기심 서린 눈동자에 별빛이 서렸다.

보얀 피부에서는 향기가 나고 숨소리가 새근거리자, 류사는 참을 수 없어 그 녀를 꽉 끌어안았다. 주요연이 몸부림 쳤다.


“ 이 손 놔요! 내가 언제 당신 아내가 되겠노라고 했는지 어디 한번 말해 봐요!”


류 사가 주요연을 놓아주더니 그녀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왕부의 금지옥엽 주 요연 군주 마마! 금릉의 류 사가 감히 혼사를 청하옵니다!”


하면서 시장에서 산 비녀를 주요연에게 바쳤다. 수월도를 옆에 놓았다.


“ 지금은 이것 밖에 드릴게 없사오나, 저의 모든 마음을 바칩니다!”


하니 주요연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녀의 심장은 한없이 쿵쾅거리고, 숨은 풀무질 하듯 가빴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작아져서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어 포근히 감쌌다.

평소에 위엄 있고 침착한 절세의 재녀 주 요연은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벅찬 기쁨에 온 몸을 떨었다. 사랑의 감정이란 노도와 같고 솟구치는 화산과 같았다. 그것은 냉정한 이성으로 막을 수 없고, 장벽과 계급으로 막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별 빛이 흐릿한 안개 속에 잠기며 주 요연의 보얀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침내 주 요연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단정히 말했다.


“ 일어나라! 류 사. 노간 왕의 장녀 주 요연은 그대의 간청을 허락하노라!”


하며 몸을 일으키는 류 사의 품속에 쓰러졌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천지의 모든 조화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고 빛을 내었다. 뜨거운 열기가 주위를 녹였다. 시간은 짧았지만 영원하였다. 그러다 류 사는 어깨가 축축해 지는 것을 느끼고 그 녀의 얼굴을 살피려고 하였다.

주 요연은 몸부림치며 더욱 얼굴을 류 사의 가슴에 파묻었다. 말 할 수 없는 천만가지 고뇌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시간이 그 눈물 속으로 들어가 흐릿하게 만들었다.


“ 이제 가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주 요연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앞장섰다. 바람이 잦고 새도 울지 않았다. 달빛이 사방에 편만했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장 영감의 초막집이 멀리 보였다.

류사가 주요연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간단한 저녁을 지어 먹고 탁자에 마주 앉았다. 녹차 한잔을 두고 마주 앉았지만 행복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오고갔다. 창 밖에서 별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맑고 고운 밤이었다. 시간이 삼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절규하는 듯 애끓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창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져 왔다. 두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윽고 그 소리는 마당 안에서 멈췄다.


“ 금릉의 류사 ! 무창의 원 규가 그 대를 보고자 하네!”


호소하는 듯, 원망하는 듯 한이 잔뜩 서린 목소리가 류 사를 불러내었다.

주 요연이 침상에 놓인 수월 도를 류 사의 손에 가만히 쥐어 주었다. 그 소리가 다시 울리자. 문이 열렸다. 교교한 달빛 아래 사람의 긴 형체가 나타났다. 밖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담장 옆에서 그림자처럼 한 사람이 일어나 미끄러지듯 류 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있다가 천천히 풀어내었다. 창백한 얼굴이 달 빛 아래 드러났다. 조각 같이 정갈한 작은 얼굴이었다. 그의 눈빛은 변화가 없었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류사가 물었다.


“ 왜 우는가?”


“ 나는 매우 슬프네!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


“ 누가 죽는가?”


“ 그것은 오직 검만이 알 뿐이지!”


그가 허리를 감았던 면검을 풀어 손에 잡았다.


“ 살 길은 없는가?”


“ 이미 늦었네! 살고 죽는 것도 시기가 있다네!”


류 사가 수월도를 칼집에서 뽑았다. 칼이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 자네는 어디에서 왔는가? 왕 거인의 심부름으로 왔는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 나는 일곱의 아이들과 하나의 과부를 돌보아야 한다네!”


“ 일곱의 아이는 알겠으나 하나의 과부는 누구인가?”


“ 하나의 과부는 일곱 아이의 어머니이지!”


“ 자네는 그 과부의 남편인가?”


“ 나는 그 과부의 남편이기도 하고, 원수이기도 하지! 내가 그 과부의 남편을 죽였거든!”


류 사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 왜 웃는가?”


“ 나는 자네가 누구인지 알겠네! 자네는 그 과부에게 찔려 죽은 그림자이지!”


그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 아닐세! 자네가 잘못 알았네! 나는 죽지 않았네!”


류 사가 강하게 반박했다.


“ 자네는 죽어서 다시 살아 온 아비규환의 규. 절규라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부인했다.


“ 아니다! 아니야! ”


그 때 갑자기 지붕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새처럼 날아 그를 저격했다.

규의 손에 든 면검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번쩍였다가, 잠잠해졌다. 검은 그림자의 목 부분에 가느다랗게 피가 새어 나왔다. 그림자는 땅바닥을 두 손으로 긁다가 곧 절명했다.


“ 이 자는 누군가?”


류 사가 놀라서 묻자 규가 대답했다.


“ 그는 자네가 잘 아는 자이지!”


“ 나는 그를 모르네!‘


류 사가 부인하자 규가 되받았다.


“ 모르는 것은 곧 아는 것이지! ”


규의 칼날이 땅바닥에 쓰러진 그림자의 복면을 조각내었다. 그는 동 이야였다.


“ 이 자는 나를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린 자일세!”


“ 그는 누구인가?”


“ 나를 죽인 모산의 다섯 흉수중 하나이지!”


류 사는 경악했다.


“ 그런데 왜 그가 자넬 죽이려 하는가?”


“ 그는 나에게 죽어야 될 모산의 세 번째 흉수이거든!”


그의 눈에서 눈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호곡 소리가 은은히 울리다 “윙윙” 거리는 말벌 떼의 소리로 바뀌었다.


“ 시간은 죽음을 기다리지 않아! ”


규의 목소리가 아득해져 갔다. 주 요연이 창백한 안색으로 문 밖으로 나와 그들을 지켜보았다. 바람이 격렬해지며 마당을 휩쓸었다. 규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류 사의 수월도가 격렬한 바람의 한 가운데를 돌기둥처럼 묵묵히 버티고 섰다.

바람이 돌을 기습했다. 회오리가 소용돌이치며 치솟았다. 호곡소리가 종소리처럼 급박해지며 얼음 같은 면검의 날이 원을 그리며 돌다 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수월도가 면검을 쳐내었다.

그러자 짧은 단창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면검과 단창이 벌려졌다가 좌우로 합격했다. 수월 도가 그 가운데서 하얗게 빛을 뿜었다. 좌우로 흔들리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거대한 물기둥이 면검의 바람을 위에서부터 내리쳤다.


“ 청그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창이 떨어져 나갔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면서 어두워졌다.

류 사의 상투를 뜬 머리 끈이 풀어져 나가며 치렁한 머리가 양 어깨에 드리워졌다.

규의 호곡 소리가 잦아지며 두 사내는 마주 보았다.


“ 항주에 가 보았나?”


류 사가 물었다.


“ 서호의 달빛이 좋지!”


규가 답했다.


“ 일곱 개의 달이 뜬다네 !”


류사의 말에 규가 면검을 허리에 감았다.


“ 평평허허! 변변불변 ! 나는 태허도관의 류사라네!”


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서호의 달이 하나가 될 때 그 곳에서 기다리지!”


류사가 동의했다. 규의 신형이 번득였다. 모래 바람이 일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주요연이 쓰러질 듯 뛰어와 류사에게 안겼다.


“ 좋은 날이야!”


류사가 달을 보며 웃었다. 주요연이 상긋 웃으며 동조했다.


“ 좋은 날 이예요!”


바람이 그치고 달이 다시 나타났다. 새벽이 오기에는 시간이 아직 멀었다. 축시가 지나가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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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호의 달 +4 20.04.18 645 13 12쪽
50 행화촌 +2 20.04.15 669 15 14쪽
49 전투 +4 20.04.14 696 13 13쪽
48 수저용왕포(水底龍王炮) 편 +4 18.10.14 834 14 13쪽
47 “ 갈력위민 사이후이(竭力爲民 死而後已) -백성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다- +2 18.10.06 810 11 11쪽
46 적 그리스도 루시퍼 편 +3 18.09.29 826 13 13쪽
45 죽음의 시작 편 +4 18.09.20 885 18 12쪽
44 작 두 편 +3 18.09.15 891 14 11쪽
43 양이투전 (洋夷鬪錢)편 +2 18.09.08 947 14 13쪽
42 취련 각(醉蓮閣) 편 +3 18.09.02 1,012 12 14쪽
41 수월도 편 +3 18.08.26 1,040 19 11쪽
40 천년 설련자편 +5 18.08.18 1,047 17 12쪽
39 배교 신녀편 +2 18.08.12 1,069 12 13쪽
38 혈수궁 편 +3 18.08.05 1,040 15 12쪽
37 금정사녀의 출현편 +3 18.07.28 1,089 15 13쪽
36 남객 묘일선편 +8 18.07.20 1,086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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