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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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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연재수 :
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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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9,310

작성
20.04.22 09:40
조회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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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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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라도(修羅道)

DUMMY

청 후가 진중하게 물었다.


“ 기녀로 팔린 여자가 중원 천지에 시 연연 하나겠는가?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보면 기녀들 각자 눈물겨운 이야기가

큰 물동이 하나씩 채우고도 모자라네! 그런데도 굳이 연연을 방면해달라고 하니 그 연유가 무엇인가? 혹시 그녀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겐가?”


류 사가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소생은 약속된 여인이 있는 몸! 어찌 미색에 취해 두 여인에게 마음을 두겠습니까? 더구나 천하의 간사한 대적을 앞에 두고 다른 뜻을 품으리이까?”


이 때 배교 신녀의 면사가 미미히 떨렸다. 청 후가 못 본체 하고 크게 헛기침을 한 다음에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인을 위해 이렇게 까지 어려운 청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고? 참으로 괴이하네!”


류 사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정중하게 답했다.


“ 인연이란 가벼이 보면 깃털과 같고, 무심히 지나치면 강바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외다. 허나 남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사람을 구하여 세상을 평화로이 하라는 도의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릇 도란 커지면 천지와 같고, 작아지면 겨자씨 보다 작으니, 한 사람의 인연을 구함이 천지의 인연을 구함과 같을 것입니다.”


하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청 후는 그 말을 듣고 수긍하면서도 재차 류 사의 속을 떠 보았다.


“ 그렇다고는 하나, 시 연연이 그대가 머리만 얹어주면 그 것으로 평생을 위안하겠다고 하였는데 굳이 절색을 거절하고 그를 구하겠다니, 허허! 참 보기 드문 협의로세!”


하고 짐짓 찬탄하고는 청후가 다시 말을 꺼내었다.


“ 그러나 이화원은 기녀로서 사업하는 곳이니, 쉽게 사람을 내어 줄 수는 없네. 하지만 그대의 협의를 보아, 우리 주인께서도 인정을 베풀고자 하지만, 그 마음의 진실을 알기 어려우니 한 가지 시험을 하고자 하네!”


류 사가 의아하여, 청 후의 얼굴만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며 말하였다.


“ 자네가 진정 남을 가엾게 여겨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이화원의 수라도(修羅道)를 시험해 보고자 하네!”


“ 수라도가 무엇입니까?”


“ 그 곳은 이 세상의 온갖 쾌락과 유혹. 고통과 번민의 지옥도라네! 이화원에만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지! 하지만 자네는 하루 밤 하루 낮을 유혹과 연민에서,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지켜낸다면, 시 연연을 방면하겠네!”


류 사는 그 말을 듣고 묵묵히 생각했다. 과연 자신이 그 어려운 일을 해 낼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선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더구나 사람을 구하고자 하였으니,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 류 사는 단호히 결심하고 두 손을 모았다.


“이화원 주인의 뜻이 그러하다면, 뜻에 따라 시험 하소서!”


침묵하던 배교 신녀가 말을 더 얹었다.


“ 중도 포기하면 시 연연은 다시 볼 수 없소!”


그 녀의 목소리는 메아리 울리듯 웅웅! 거렸는데 아마 가성을 쓰는 듯하였다. 류 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청 후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자운을 불러들였다. 자운이 공손한 자세로 명을 기다리자 배교 신녀가 명하였다.


“ 류 공자를 명부전(冥府殿)으로 모셔라! ”


배교 신녀와 청후가 돌아가고 자운이 류 사를 안내했다. 그녀는 먼저 화청으로 가서 호 려정에게 배교 신녀의 명을 전했다.

호 려정은 그 말을 듣고 류 사를 살펴보았다.


“ 결심이 섰다면 해 보시오, 하지만, 사람의 오욕칠정은 다스리기가 그리 쉽지 않다오! ”


하고 말하고는 류 사에게 눈짓하여 자신을 따르라고 하였다. 자운을 돌려보내고 호 려정은 벽에 걸린 사자 머리 상의 입안에 손을 넣어 꿈틀거리는 혀의 중단을 잡고 우측으로 돌렸다. 그러자 벽이 빙글 돌아가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호 려정이 앞서고 류 사가 뒤를 따랐다.

계단을 내려가자 황건 역사 둘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낸 채 호 려정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참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고, 양 편으로 석등이 길을 밝혔다. 왼 편으로 길을 돌아가자, 모란이 가득 핀 정원 한 가운데에 붉은 단청을 칠한 전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꽃 과 나무는 모두 조화이며, 생화가 아니었다. 전각 앞에 궁장을 하고 머리에는 가채를 얹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희었고 입술은 새빨갛게 칠하여, 경극 배우처럼 분장하였다. 그 녀에게 호 려정이 류 사를 인도하였다.


“ 염라 시녀 (閻羅 侍女)! 여기 계신 분은 신녀의 명에 따라 수라도(修羅道)에 드신 분이니, 법에 따라 행하시오!”


염라 시녀가 명을 전해 받아 류 사를 전 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호 려정은 바로 돌아갔다. 류 사가 전각 안으로 들어가니 큰 방 한 편에 붉은 보료가 펼쳐져 있고 그 옆에 장죽이 놓여 있었다. 몽롱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붉고 노란 양귀비가 은은한 향을 뿜었다.


“ 무기를 맡기고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류 사가 거절하지 못하고, 수월도와 수리검을 맡겼다. 그리고 그 녀가 청하는 대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보료에 몸을 비스듬히 눕혔다. 염라 시녀가 장죽을 권했다.


“ 여기는 이승의 근심을 모두 잊는 환각전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즐거움을 누리소서!”


그 녀의 은근한 강요에 류 사는 장죽을 물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처음엔 숨이 컥! 하고 막혔으나,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한 식경 쯤 지나, 류 사의 맞은편에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뼉을 딱! 하고 치니 천정으로부터 노란 새가 포로롱!하고 날아왔다. 지난번 류사가 머물던 방의 앵무새였다.


“ 안녕 !”


하고 새가 지난번처럼 물었다.


“ 안녕!”


하고 류 사가 대답하자 앵무새가 날개 짓하며 허공에 머물렀다. 새는 빤히 류 사를 내려다보았다. 새의 눈동자가 오므려지며 흰 자위가 가득히 펴져 나갔다. 흰 자위는 안개처럼 퍼지며 방 안을 휘감았다. 부연 안개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인들이 장난치는 소리였다. 소리가 가까워지며 속이 훤히 비치는 박사(薄紗)를 걸친 여인들이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춤을 추었다. 노래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후끈한 단내가 류 사의 관능을 흔들었다. 달콤하면서 아찔한 유혹이 류 사의 전신을 개미처럼 기어 다녔다.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나른하면서 몸을 비비꼬는 음악이 바닥에 낮게 깔렸다. 그 노래 소리를 사뿐히 밟듯 한 여인이 하늘과 땅의 방향으로 두 손을 펼치며 여인들의 사이로 걸어왔다. 그 여인 역시 몸이 비치는 얇은 천을 입고 가슴과 아랫도리만 붉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엷은 면사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 녀가 류 사 앞으로 다가와 옥 같은 손을 내밀었다. 류 사의 몸이 절로 일어나 앉았다. 그 녀가 면사를 살짝 옆으로 내리며 호수 같은 눈을 흘겼다.


“ 대대!”


류 사가 신음했다. 그 녀는 틀림없는 주 요연이었다. 허우적거리며 그 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마치 환영처럼 흩어졌다. 어디선가 봉황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물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안개가 몰려오며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안개들이 삐죽삐죽한 봉우리로 변하며 솟구치다가 툭 떨어지며 계곡을 만들었다. 휘어져 내려오는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계곡 맞은편에 정자가 보였다.


그 곳에서 학창의를 입은 중년 유사가 단정히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소리는 처음에 솔숲을 부는 바람처럼 청아하다가, 스산한 초겨울 바람처럼 슬피 변하였다. 류 사의 감정이 숙연해 지는데 그가 계곡을 건너왔다. 피리의 곡조는 변하여 이번에는 남녀 간의 사랑처럼 정겹다가, 이별의 슬픔을 읊었다. 이윽고 피리 소리는 류 사의 앞에서 멈추었다.


“ 그대는 누구시오?”


류 사가 묻자 그가 얼굴을 바로 하여 류 사를 바라보았다.


“나는 동방 삭이니 이 세상의 모든 풍진을 겪은 사람일세!‘


류 사가 웃었다.


“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 그대는 공연한 말로 어지럽히지 마시오!”


동방 삭은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하였다.


“ 동방 삭이 어찌 하나의 목숨이겠는가? 윤회하여 삼천세를 돌았으나 아직 그 업이 끝나지를 않았네! 본시 업이란 윤회를 말하는 것이니 업과 윤회를 달리 말하고 동방삭과 삼천갑자를 같이 생각함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로세!”


류 사는 그의 말이 괴상하여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 인생의 쾌락이란 극히 짧으며, 그것을 억제함은 인생을 낭비함과 같네! 지옥의 고통과 삶의 쾌락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한쪽이 없어지면 다른 쪽도 사라진다네! 구도의 길을 걷는다는 수행자여! 생각해보라! 모든 것이 사라져 무로 화한다면, 무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은 어디 있는가? 삶이 없다면 무는 얻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쾌락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원천이니, 그 것을 받아들여 영원한 복락을 누리라!”


류 사가 아무 말이 없자, 동방 삭이 양 팔을 벌리며 류 사를 불렀다.


“ 이리오라 ! 류 사여! 아무런 고뇌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류 사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자, 동방 삭의 모습이 변하였다.

형체가 흩어지다가 다시 나타나며 주 요연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 녀는 무척 고뇌하는 모습으로 말하였다.


“ 낭군! 아 사랑하는 내 님! 나는 이들에게 무척 괴롭힘을 받고 있어요! 날 구해줘요! 낭군! ”


류 사가 크게 손을 뻗으며 허우적대는데 그 녀의 모습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식은땀이 흘러 눈가에 흘러내렸다.다시 봉황새의 날개 치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안개가 걷히더니 커다란 전각이 떠오르며, 양편으로 도열한 무희들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반나체의 모습으로 몸을 흔들며 류 사에게 손짓했다.


색정의 기운이 류 사의 몸을 휘감았다. 그 녀들이 춤을 추고 있는 등 뒤로 검은 장포를 입은 장한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옷을 벗어던지며 여인들의 허리를 휘감았다. 교성이 난무하고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전각 안을 후끈 데웠다. 전각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매 서명의 모습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장한들이 여인들을 놓아주고 한 쪽 옆으로 물러났다. 매 서명이 그들에게 물었다.


“ 주 요연은 어디 갔느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때 류 사의 앞에 부복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그 녀는 옥 같은 몸을 하늘하늘한 흰 명주로 반쯤 가린 채 구름 같은 머리채를 어깨 위로 덮었다. 류 사가 당황하여 그 녀를 일으키려하니 여인이 머리카락을 제치며 흐느꼈다.


“ 상공! 모시려 하나 하늘이 허락지 않고, 사모하기 그지없으나 한을 풀기 어렵습니다.


주 요연이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망상이야! 류 사는 속으로 부르짖었으나, 주 요연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했다.


“ 이제 날이 새면 나는 매 서명에게로 떠납니다. 그 전에 상공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습니다.”


주 요연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떠듬떠듬 말했다. 류 사는 이것이 환영인지 아닌지 애매했으나, 마음은 한없이 격동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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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11 11:49
    No. 1

    잘 봤습니다. 아직까진 수라도가 아닌 극락도네요.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 대가가 과연 시연연뿐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류청
    작성일
    20.11.12 06:38
    No. 2

    여자들의 마음이란 알 수 없더군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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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라도(修羅道) +2 20.04.22 628 13 12쪽
52 시연연 편 +2 20.04.20 647 13 11쪽
51 서호의 달 +4 20.04.18 644 13 12쪽
50 행화촌 +2 20.04.15 669 15 14쪽
49 전투 +4 20.04.14 696 13 13쪽
48 수저용왕포(水底龍王炮) 편 +4 18.10.14 834 14 13쪽
47 “ 갈력위민 사이후이(竭力爲民 死而後已) -백성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다- +2 18.10.06 810 11 11쪽
46 적 그리스도 루시퍼 편 +3 18.09.29 826 13 13쪽
45 죽음의 시작 편 +4 18.09.20 885 18 12쪽
44 작 두 편 +3 18.09.15 891 14 11쪽
43 양이투전 (洋夷鬪錢)편 +2 18.09.08 947 14 13쪽
42 취련 각(醉蓮閣) 편 +3 18.09.02 1,012 12 14쪽
41 수월도 편 +3 18.08.26 1,040 19 11쪽
40 천년 설련자편 +5 18.08.18 1,047 17 12쪽
39 배교 신녀편 +2 18.08.12 1,069 12 13쪽
38 혈수궁 편 +3 18.08.05 1,040 15 12쪽
37 금정사녀의 출현편 +3 18.07.28 1,089 15 13쪽
36 남객 묘일선편 +8 18.07.20 1,086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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