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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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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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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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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양이투전 (洋夷鬪錢)편

DUMMY

세상의 일이란 모두 믿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큰 도둑 도척도 도적질의 믿음을 이야기 하였고, 나라를 팔아먹는 간신배들도 믿음을 앞세운다. 어찌 나라 일에만 그러하랴? 인간사의 크고 작은 일이 모두 믿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믿음과 의리는 사람이 살아감에 근본인데, 이는 도박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규칙을 정하고 속이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면 지켜지리라 믿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박이라는 여흥이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믿음이 있으려면 그러한 규칙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올바르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와 신이 도박의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다. 세상 이치와 다를 바 없다.

관지효가 휘호를 손을 들어 가리키며 크고 넓은 얼굴의 볼 살을 실룩거렸다.


“ 류 사부! 「도자 즉 의신」은 옳은 말이지만 「의신즉 생사」는 아니오이다.”


하고는 고개를 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류사의 긴장을 풀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도박의 본질은 속임수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함이 컸다.


“ 의신즉 사위(義信卽 詐爲)”


뒤 따라 오던 설중영이 씩 웃으며 관지효의 말을 덧붙였다. 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법에 이르기를 「이길 수 있어야 싸우고, 이길 수 없으면 물러난다.」 하였으니, 이기고 짐은 속임수에 있고 의와 신에 있지 아니하였다. 의와 신은 생사가 될 수 있으나, 그 이전에 속이고 속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 과정이 의와 신의 결과를 만들고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방안은 화로 불을 지펴서 훈훈했지만 은밀한 기운이 구석구석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거짓과 한숨이 만들어낸 요사스러운 은밀함이었다. 눅눅한 습기가 불기운에 마르며 희미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관 지효는 눈을 가늘게 떠서 탁자와 사방의 벽을 살펴보며 헛기침을 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 반대 편 문으로 자주색 저고리에 흰 비단 바지를 받쳐 입은 취련각주가 들어왔다. 그는 이마가 좁고 눈이 가늘어 간교하게 보였으나 끝이 말려 올라간 콧수염과 텁수룩한 턱이 그 인상을 희석시켜, 무던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짐짓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인사를 건넸다.


“ 취련각주 호천 상이오이다. 이렇게 뵙게 되어 대단히 광영이오!”


하며 입 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 지었다. 그의 입술과 광대뼈가 씰룩거렸지만 눈동자와 이마는 미동도 없었다. 대단히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관 지효는 그를 아는 듯 했다. 입을 비쭉대며 무슨 말인가를 건네려 하다 그만 두었다. 대신 고개를 숙이며 무표정하게 답례했다.


“ 산동 제남의 관 지효라 하오!”


호 천상의 눈길이 슬쩍 그들 모두를 훑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속마음을 들여다보듯 넓고 깊게 보았다. 장한 둘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 왔다. 한 사람은 마른 체격에 턱이 뾰족하며 눈썹은 희미한데다 흰자위가 짙었다. 둥근 고리가 달린 오구(吳䤛)검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사람은 후리후리한 키에 눈이 둥글고 구레나룻이 가득했다. 장검을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 이 두 분은 취련각의 집법장(執法長)이오, 오구 검을 든 분은 무정단혼(無情斷魂) 도연표(陶淵飄)라 하고 옆에 계신 분은 질풍검(疾風劍) 오방이오.”


하고 그들을 소개했다. 그 때 류사 일행이 들어왔던 문으로 매서명이 나타났다. 붉은 홍포를 입고 손에 긴 검을 들고 있었다. 그 뒤를 표범 가죽을 걸친 눈 꼬리가 올라간 젊은 여인과, 둥근 테두리의 모자를 쓰고 검은 장포를 걸친 중년 사내가 따라 들어왔다. 손에는 박도를 쥐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호 천상이 무정 단혼과 질풍 검을 다시 소개하고, 그들은 호천상의 뒤에 시립했다. 호천상이 바튼 기침을 하며 스윽 좌중을 훑었다.


“ 오늘의 이 자리는 우리 취련 각 으로서는 큰 광영이오이다. 두 가문이 재력을 겨루어 은자 오천 냥이라는 겨룸을 하는 자리에 나서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오”


이 당시 은자 오천 냥은 비옥한 토지 삼 결 ( 십 만평 정도 )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매년 거두어들이는 곡식이 구백두이니 천 석 군의 재산에 해당했다. 부유한 설가 장으로서도 가산에 타격을 입을만한 돈이었다. 이 큰 은자를 한 번의 노름에 쏟아 부으니 구경하는 사람으로서는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취련각의 입장에서는 이 큰 대회를 무사히 치러낸다면, 신용이 올라가 돈방석에 앉는 일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었다.

호 천상이 말을 계속했다.


“ 우선 두 가문이 서로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나누시오!”


그러자 설 중영이 먼저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 설 가장의 둘째 설 중영이오! 서로 공명정대한 승부가 되길 바라오!”


이어서 관 지효와 류 사가 자신을 소개했다. 매 서명은 별다른 기색 없이 인사를 받아주고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앉은 채로 툭 내뱉었다.


“ 절정산장의 매 서명이다!”


하고 눈을 가늘게 떠서 류 사를 응시했다. 교만하다고 볼 수 도 있지만 격장지계(激將之計)였다. 이미 승부는 시작되고 있었다. 류 사는 일부러 대거리 하지 않았다. 단지 숨만 가지런히 정돈했다.


“ 절정산장의 금사(金蛇)예요!!”


여자가 일어나며 몸을 교묘하게 꼬았다. 그러면서 가죽 외투를 슬쩍 벗어 옆의 사내에게 내밀었다. 안에는 금빛의 엷은 천으로 만든 저고리를 걸쳤고 아래에는 옆구리가 터진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눈은 가늘고 길었으며 눈썹은 그믐달 같이 휘었다. 슬쩍 눈웃음을 치는데 안개서린 강에 잔물결이 이는 듯했다. 갸름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이 빨간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소매는 비치지 않았으나 가슴 부위는 박사(薄紗)로 만들어 비칠 듯 말듯 수밀도 같은 크고 허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풍정이 아찔했다. 여인이 붉은 혀를 꺼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달큼하고 척척한 몸내가 확 풍겼다. 요물이었다. 설 중영과 관 지효도 아찔했다. 류 사 역시 빨아들일 듯 강렬한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급급했다.


“ 아미타불!”


옆자리에서 관 지효가 무어라고 염불을 외웠다. 급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주워섬기는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설 중영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여인이 허리를 비틀며 자리에 앉았다. 표정이 새침해 졌다. 태도가 변화무상했다. 그 옆의 사내가 일어나서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절정산장의 소 윤무(蘇 倫武)요! ”


하고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설 중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친밀한 음성으로 그를 아는 체했다.


“ 소 표두(標頭)! 얼마 전까지 관직에 있던 분을 뵙다가, 민간으로 만나니 서먹하군요! 부인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다정히 말했다. 소 윤무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다.


“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오! 아직 차도가 없소이다.”


그러자 매 서명이 오른 손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들겼다.


“ 사담(私談)은 그만하고! 호 각주! 이제 시작해 봅시다.”


호 천상이 손을 들어 턱수염을 만지며 헛기침을 했다.


“ 자! 그럼 밤은 짧고, 임은 가까우니 회포를 풀어보십시다.”


하면서 매서명과 설 중영을 바라보았다.


“두 가문에서는 판돈을 내 놓으시오.”


설 중영이 먼저 품안에서 전표가 담긴 봉투를 꺼내 호 천상에게 주고 곧이어 매 서명 역시 그렇게 했다. 호 천상이 봉투를 열어 확인하고 뒤에 있던 오방에게 넘겼다. 오방이 받아 흑 단목의 탁자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봉투를 보관하고 열쇠를 채웠다. 그리고 반대편 서랍을 열어 투전목과 묵직한 가죽 주머니 네 개를 꺼내 왔다. 호 천상이 그것을 열어 좌중에 펼쳐 보였다. 엷은 은박을 한 동전이 주르륵 쏟아졌다.


“ 이것을 투패(投牌)로 쓰겠소이다. 투패 하나에 은자 열 냥으로 계산하겠소이다.”


투패란 은자를 대신하여 사용하는 포커 판의 칩을 말하는 것이었다.


“바닥돈은 각 은패 두패. 다시 말해 은자 스무 냥씩 내고 배(排)는 한 번에 스무 냥 한도, 골과 라도 스무 냥을 한도로 하여 시작하겠소이다.”


모두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는 포커의 배팅이었다.


“ 류 대협과 금사 소저는 자리를 바꿔서 앉으시고 설 장주와 소 포두는 비켜서 앉으시오.”


모두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금사가 치마를 흔들며 관지효의 옆에 앉자, 관지효의 입에서


“아미타불”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금사가 생긋 웃으며 관 지효를 놀렸다.


“ 작은 스님! 가까이 앉으니 잘 생기신 분이군요!”


관 지효가 그 말을 되받았다.


“ 여 시주! 서방 정토가 멀지 않으니 악업을 그만두고 소승과 같이 수도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하고 껄껄! 웃는데, 그 사이를 호 천상이 끼어들었다.


“ 정담은 끝난 뒤에 나누고 수담이나 나눕시다.”


하고는 매 서명과 관 지효 사이에 좌정했다. 앉은 순서가 전주(딜러)인 호 천상의 오른편이 관 지효이고 돌아가면서 금사 그 옆이 류 사, 매 서명 순이었다. 호천상이 투전목을 들고 개장을 선언했다.


“ 양이투전 황. 용. 봉. 응 사십 엽의 승부외다! 먼저 다섯 목을 받고 배를 결정하시오,”


일단 각자의 판돈 은패 두 패 씩 여덟 패가 탁자 가운데에 모였다. 투전목이 호 천상의 손에서 섞였다.

사십 엽은 네 가지 무늬였다. 황은 사람 , 용과 봉 , 응은 수리였다. 계급의 순서는 황. 용. 봉. 응 이며 숫자는 각 계급에서 1에서 10까지였다. 높은 숫자가 이기되 같은 숫자이면 높은 계급의 목을 든 자가 이겼다. 예를 들어 황과 응의 1땡이 용봉의 1땡을 이겼다. 삼팔 광땡은 오직 황의 3과 용의 8을 같이 쥐었을 때 인정되었으며 다른 계급의 3과8은 인정되지 않았다. 사구는 황의 4와 9를 가졌을 때만 판을 무효화 시킬 수 있었다.


“ 흐흐흐!”


매서명이 음흉하게 웃었다. 류사가 질책했다.


“ 조용히 해! 매서명!”


매서명이 눈을 흘기며 자신에게 돌아온 투전목을 잡았다. 첫 번째 목이 돌았다. 관 지효의 목울대가 크게 꿀꺽거렸다. 이목과 삼목이 순차적으로 흘러왔다. 호천상의 손길은 등평도수(登泙渡水). 사마귀가 물위를 걷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투전목을 뿌렸다. 류 사는 이 자리에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네 사람 중에서 그는 자신의 술수가 가장 낮으리라 짐작했다. 자신은 관지효의 승부를 돕는 보조수의 역할이었다. 섣부른 승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섯 목이 다 돌았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호 천상 오른편의 관 지효가 바닥에 황의 3을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금사가 “호 하고 한숨을 쉬더니 응의 9를 바닥에 정성스레 펴서 놓았다. 류사가 봉의 2를 내놓았다. 매서명이 스윽 좌중을 훑어보더니 용의 10을 던졌다. 좌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호천상이 매 서명을 보고 물었다. 바닥에 펼쳐놓은 숫자가 가장 높은 참가자가 배를 먼저 할 권한이 있었다. 하지 않으면 다음 숫자에게로 순서가 돌아갔다.

매서명은 망설였다. 그러다 은패 하나를 잡고 힘없이 앞으로 밀었다.


“ 배.”


다음 순서는 배를 한 자의 오른편으로 순서가 돌았다. 관 지효가 커다란 이마를 왼손으로 쓸며 고민했다.


“ 어쩔까나! 어쩔까나 !”


그러다 쑥 은패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골”


금사가 입술을 깨물더니 조용히 말했다.


“다이.”


류 사가 그 뒤를 따라 목을 덮었다. 매 서명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관 지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절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 나 다이할까? 말까?”


(여우같은 놈.) 류 사가 속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노름판이란 게 아귀 축생의 지옥도이니 무어라고 흉을 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호 천상이 매 서명에게 주의를 주었다.


“ 매 장주! 판을 어지럽히지 마시오!”


갑자기 매 서명이 소리쳤다.


“라! 따라오려면 오라! 관지효!”


은패 두 장이 판 가운데로 떨어졌다. 관 지효는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호천상에게 말했다. 은패 두 장을 앞으로 밀었다.


“ 골!”


호 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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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08 19:12
    No. 1

    투전판의 공기가 엄중, 삼엄하여 숨소리조차 내기 힘듭니다.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류청
    작성일
    20.11.08 22:31
    No. 2

    포커와 도리짓고땡을 혼합시켰습니다! 실제 노름으로 이용해도 되겠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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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죽음의 시작 편 +4 18.09.20 885 18 12쪽
44 작 두 편 +3 18.09.15 891 14 11쪽
» 양이투전 (洋夷鬪錢)편 +2 18.09.08 948 14 13쪽
42 취련 각(醉蓮閣) 편 +3 18.09.02 1,012 12 14쪽
41 수월도 편 +3 18.08.26 1,040 19 11쪽
40 천년 설련자편 +5 18.08.18 1,047 17 12쪽
39 배교 신녀편 +2 18.08.12 1,069 12 13쪽
38 혈수궁 편 +3 18.08.05 1,040 15 12쪽
37 금정사녀의 출현편 +3 18.07.28 1,089 15 13쪽
36 남객 묘일선편 +8 18.07.20 1,087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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