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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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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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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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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9,310

작성
20.08.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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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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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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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은령 14대

DUMMY

빠르면서 무거운 칼질이 떨어지자, 정팔은 무조건 사령곤을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류사는 변화를 구하지 않고 그대로 칼에 힘을 실었다. 마치 장작을 패듯하였다. 무거운 힘과 속도에는 초식의 변화가 무의미했다. 변화를 구할 여유가 없었다. 정팔은 온몸으로 류사의 칼을 받았다. 쇠와 나무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무는 쇠를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정팔의 손아귀에서 수많은 쇠를 이겨내었던 나무는 슬픈 소리를 내며 쪼개졌다. 정팔은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마가 불에 지진 듯 화끈했다.


“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몸이 심해로 가라 앉는 듯 무거웠다. 다 쓰지도 못할 돈과, 많은 부하들을 가진 권력이 그를 지켜주지 못하다니! 말도 안돼! 그는 부정하려했지만, 이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젊은 하인과 바람난 마누라는 생각나지 않았다. 애비 돈을 제것 처럼 쓰는 자식새끼들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거 하나만 기억났다. 며칠 전에 찾아왔던 동생에게 장사 밑천 대어주기로 하였는데! 아! 제기랄! 난 착한 일도 못해보냐?


그러나 정팔은 무릎을 끓지는 않았다. 벌렁 큰 대자로 나자빠졌다. 나름 와석종신 한셈이다.


류사는 뚝뚝 떨어지는 피를 빗방울에 적시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장이 낮았다. 세차게 올 비는 아니었다. 이층 사무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던 졸개들이 류사를 보자 흠씬 놀라며 고개를 모로 돌렸다. 대가리가 떨어진 뱀은 지렁이 보다 못한 법이다. 정팔이 죽자 그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었다.


류사가 그의 크게 떠진 눈을 감기고 자리를 떴다. 류사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상인들과 행인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조합의 졸개들이 뛰어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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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락가락했다. 두정만은 강가의 넓적한 바위 돌 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옆으로 갈대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낚시는 산산의 밑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배웠다. 그에게 일을 가르친 반장은 흑룡문이라는 하오문 출신이었다. 흑룡문은 계림의 이강을 오르내리는 뗏목꾼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것을 주 수입으로 하는 하오문의 잡배였다.

반장은 자신의 출신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자주 보였다. 그래서 악명이 높은 자였는데, 일이 끝나면 난폭한 모습이 사라지고 아주 조용한 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여가는 북문 밖 한수 강변의 낚시터에서 보냈다.


“ 죄를 씻으려면 물로 씻어야지!”


낚시를 마치고 손을 강물에 씻으면서 중얼거릴 때면 성인의 모습이 비쳤다. 잡은 물고기는 모두 놓아주었다.두정만이 물었다.


“ 방생한다고 죄를 사하겠소?”


“ 네 죄를 용서하노라!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누가 자신을 사한다는 말인지는 몰라도 두정만은 알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를 사했다. 그리고 자신을 열번째 용서하던 날 젊은 아낙의 식칼에 찔려 죽었다.


그가 죽고나서 낚시터는 두정만의 차지가 되었다. 그도 자신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고는 다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강물에 손을 씻었다. 반장의 말이 이해되었다. 방생으로 용서받을 수는 없었다. 강물로 손을 씻었다. 강에서 물 비린내가 났다.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냄새였다. 강물이 말했다.


“ 네 죄를 사하노라!”

.


부슬비가 오락가락했다. 오전 나절은 허탕이었다. 늦게 나온 탓이었다. 물 때가 아니었다. 한 식경 전에 찌가 흔들렸는데, 먹이만 뺏겼다. 교활한 놈이었다. 낚시바늘의 아래 부분에 걸린 미끼를 교묘하게 낚아챘다. 이런 날은 재수가 별로 없다.


‘그만 가 볼까?“


중얼거리면서 강가로 피어오르는 물 안개를 바라보았다. 버들이 축 늘어진 풀 밭으로 키가 크고 약간 마른 사내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상투를 동여맨 흰 띠가 어깨에서 나풀거렸다. 등뒤에 칼을 맨 듯 했다. 흰 장삼이 너펄거리는데 큰 새가 날개 치는 듯했다.


’멋지군!‘


두정만은 감탄하며 낚싯대를 들어 공중으로 빙 돌렸다가 다시 물 속으로 집어 던졌다. 바람이 불어 물살이 크게쳤다.


사내가 두정만의 뒤에 서서 말했다.


” 고기가 물렸소!“


찌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불쑥 솟았다. 두정만이 낚싯대를 잽싸게 쳐 올렸다. 휘청했다.


” 농어로군!“


뒤에 선 사내가 말했다. 반자 정도의 농어였다. 두정만은 농어의 아가미에서 낚시바늘을 뽑아내고, 고기를 놓아주었다.


’첨벙‘


물이 튀어 오르며 농어가 빠르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 크진 않군!“


뒤에 선 사내가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아냐!‘


두정만은 속으로 짜증을 내었다.


’난 용서받고 싶을 뿐이라구!‘


두정만은 대꾸하지 않고 허리를 구부리면서 강물에 손을 담궜다. 물이 끈적거렸다. 강물은 살아서 움직이는 물이었다. 생물의 체액이 같이 흘렀다. 두정만이 손을 씻고 주섬주섬 낚시도구룰 챙기는 것을 사내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 나에게 볼일이 있나?“


두정만이 망태를 손에 잡으며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당신이 두정만이오?“


두정만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젊은이가 자신을 막 대하니 불쾌했다.


” 넌 어떤 놈이냐?“


여차하면 두들겨 팰 각오로 두정만은 젊은이를 노려보았다. 젊은이는 선선히 대답했다.


” 나는 태허도관의 류사요! 특별히 그대를 찾아왔소!“


” 류사?“


두정만은 어리둥절하다가 곧 깨달았다.


” 네가 묵완자를 쫒아보낸 놈이군!“


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정만이 소리쳤다.


” 내일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 협객이라면 약속을 지켜라!“


하고 투덜대자 류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 묵완자를 만나기로 하였지만, 영감은 아니지!“


” 버르장머리 없는 놈! 그래! 나를 만나 뭘 하려고?“


” 나쁜 짓을 많이했더군! 이제 그만 할 때가 됐어!“


” 누가 그래? 내가 그랬다구!“


두정만이 화를 냈지만 공허했다. 그는 시간을 끌려고 했다. 슬그머니 망태 옆에 놓인 사모(蛇矛)를 잡으려고 하였다. 류사는 냉정히 그를 바라보았다. 사모를 손에 잡으니 힘이 났다. 피 냄새를 맡았는지 창대가 번들거렸다. 창날에 씌운 헝겊을 거두면서 두정만이 씨익 웃었다.


’넌 이제 죽었어!‘


두정만이 사모를 중평으로 겨누었다. 류사가 칼을 뽑아 아래로 향하였다. 들어오길 기다리는 자세다.


’유인 하는 것인가?”


두정만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한가로워 보이는데 예리한 살기가 번득인다.


‘들어갈까?’


망설이면 안된다. 주춤거리는데 류사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다시 창날을 부른다. 두정만은 창대를 움켜잡았다. 손에 땀이 배어 미끌거린다.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온 몸이 비었는데, 단 한번의 찌름이면 되는데... 갑자기 두정만이 내찔렀다.

독사출동(毒蛇出洞), 창날이 영활하게 번득이며 류사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쌍두사(雙頭蛇 )로 변하려는데


툭툭 두세 번 창끝이 들락거리며 류사의 자세를 흩트리려하였다. 그리고 창이 바람개비 같이 사방을 몰아쳤다. 사막의 모래 폭풍이 두정만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어허허허이!”


오랜만의 창놀림에 두정만은 흥이났다.마치 전장에서 적을 휘몰아치듯 창대로 후려치고 서릿발 같은 창날로 찔러대었다, 온몸의 근육이 날을 세웠다.


“ 쾌하구나!”


류사가 물러서자 두정만은 온몸이 짜릿해지며 창자루에 힘이 들어갔다. 오이랏트 족에게 단기필마로 돌격하던 일이 생각났다.


“ 이엽!”


기합을 잔뜩 넣으며 툭툭 창대를 쳐내는 류사에게 비전의 한수를 날렸다. 연운십육식의 운변폭뢰(雲變暴雷)였다. 팔방으로 돌아가던 창날이 도끼로 찍듯이 내리쳤다. 류사의 칼은 안으로 들어서며 창대를 옆으로 밀쳤다.

그러면서 주루룩 미끄러지며 창 자루를 잡고 있는 두정만의 왼 손가락을 “투둑‘ 잘랐다. 붉은 피가 툭툭 떨어지며 손가락이 떨어지고 곧 창대가 땅바닥을 굴렀다.


“ 살려다오!”


두정만이 손가락이 잘린 고통 속에서도 손을 모았다.


“ 너에게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라!”


류사가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갈대 숲에서 화살이 연이어 날아왔다. 류사는 부득이 칼을 휘둘러 화살을 쳐내었다. 이어서 창검을 든 은빛 무복(武服)의 무사들이 류사를 포위했다.


“ 크흠!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온 줄 아느냐? 은령대는 어서 저놈을 잡아라! ”


두정만이 호령하자 왼쪽 뺨에 칼자국이 길게 난 중년 무사가 응답했다.


“ 사호와 십호는 장주님을 호송하고 나머지는 저자를 잡는다!”


류사의 몸이 먼저 날았다. 그는 진형이 짜이기 전에 귀두도를 든 사내의 팔목을 서걱 베었다, 그리고 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창수의 창을 잡아당기며 목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두정만은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류사가 쫓으려 하자 은령대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돌격했다.

수월도가 창칼을 정면으로 쳐내며 류사의 온 몸에서 기가 솟구쳐 올랐다.흑암의 기운이 류사를 휘어감자 무사들이 돌격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류사는 성큼 발을 내딛어 수월도를 거침없이 횡으로 휘둘렀다. 창이 칼에 밀리며 쓰러지자 뒤에서 넓적한 도신의 귀두도가 달려들었다.


류사는 귀두도의 도신을 아래에서부터 쳐 올리며 그 자세 그대로 상대의 턱을 부수었다.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적의 움직임을 선제적으로 제한하며, 적으로 방패를 삼아, 적을 공격해야 했다. 류사는 칼을 올려치면서 뒤의 적을 피하고, 막기에 앞서 먼저 적의 뼈를 부수었다. 류사의 몸은 한가닥 연기처럼 움직이며 무사들의 옆으로 들어가고 뒤로 빠졌다. 창은 검을 막고 칼은 창을 베었다. 아수라 장이 벌어졌다. 부슬비가 무사들의 운신을 더디게 했다. 류사의 일장이 폭발하며 주위의 무사들을 쓰러뜨렸다.



류사의 기가 순행하다, 다시 역행하며 공기를 흔들었다. 일순 어둠이 류사의 몸에 몰려들었다가 확 퍼져나갔다. 기의 흐름이 무사들의 몸을 흔드는 가운데 부드럽게 수월도가 흘렀다. 마치 월광 같았다. 어느덧 열 한명의 무사가 뼈가 부숴지고, 근육이 잘라져서 여기저기 뒹굴었다. 은령대는 녹림의 호한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나름 산과 강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인물들인데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은령대의 대장 여불사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자가 강호에서 들어보지 못하였는지 눈을 의심하였다. 마침내 땅에 쓰러져 신음하는 부하들을 보며 그는 대감도를 겨누었다.


“ 류사라고 하였느냐? 참으로 대단하구나! 내가 강호의 밥을 먹은지 이십년에 너와 같은 자는 보지 못하였다. 내 안목의 저열함을 알겠구나! ”


류사는 멀리 성안으로 들어가는 두정만을 보며 여불사를 꾸짖었다.


“ 먹고 사는 일에도 도리가 있는 것을 ! 너희들은 두정만의 편에서 협박과 갈취를 예사로 하였으니 내가 인정 없음을 원망하지 말라!”


여불사가 류사를 탓하였다.


“ 내가 불의하지 않으면 세상이 불의한데 누가 누구를 꾸짖는단 말이냐! 어차피 칼밥을 먹는 길은 칼로서 승부를 결하는 법! 잔말할 것 없이 덤벼라!”


“ 제법 기개가 있구나! 무사답게 베어주마!”


류사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불사는 비스듬히 칼을 메었다. 땅바닥의 풀이 비를 머금어 미끄러웠다. 여불사는 위치를 바꾸려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왼 발이 뒤로 빠지는데 하늘에서 폭우가 내렸다. 비가 아니었다. 구름을 머금은 수월도가 비가 되어 쏟아졌다. 쇠가 아니고 기운이었다. 예리하지 않고 둔탁했다. 칼이 쇠망치로 치듯이 여불사를 때렸다.


‘이게 꿈인가?’


의심할 사이도 없이 바람이 몰아쳐서 그를 땅에 눕혔다. 일신의 혼백들이 주인을 찾아 헤매고, 빛은 그들의 혼령이 되어 강산으로 떨어지는데 강물은 성난 소리를 내었다. 류사는 피와 살점과 고름이 묻은 수월도를 강물에 담그었다. 용서받으려 함이 아니었다. 다시 곤고한 칼의 길을 머금으려 함이었다. 수월도는 물을 품으며 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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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30 11:33
    No. 1

    잘 봤습니다. 류사의 성정도 어느 틈엔가 단호함 그 자체가 되었네요. 칼을 휘두를 때마다 서리꽃이 피어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류청
    작성일
    20.11.30 18:51
    No. 2

    어가빙님! 과감한 액션을 원하시는 독자님들이 많은 듯 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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