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왜 나한테 물어요?
저스티스와 판다즈의 팀간 4차전이 종료된 후, 다음 날 펼쳐 진 5차전. 이 경기는 시작부터 저스티스의 리드가 이어졌다. 판다즈의 2선발 이반 라자레브가 1회에만 3실점을 기록하면서 일찍 교체되며 시작부터 저스티스의 리드가 시작되었고, 저스티스의 다니엘 토메이는 5회까지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버텨 주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투구 수가 많았던 탓에 6회에 올라오기는 힘들었고, 저스티스는 3점차의 상황에서 필승조를 가동. 정민현, 이건규, 강경준이 각각 1.2이닝, 1.1이닝, 1이닝을 맡아 주면서 경기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로서 시리즈 스코어는 1 대 1. 하지만 1차전에서 강백규, 정민현, 이건규가 각각 2.1이닝, 1이닝, 1이닝을 던졌으니 정민현과 이건규는 이미 2연투. 오늘 경기를 쉬긴 했지만, 1차전에서 2.1이닝을 던진 강백규도 조금은 더 휴식이 필요 할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판다즈도 2차전에 선발이 일찍 교체되면서 불펜의 소모가 꽤나 진행되었다는 점. 자연스럽게 양 팀은 각각의 선발 투수인 이훈승과 윤창운에게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
이훈승은 현성에게 구종과 구질, 그리고 완급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시점 이후,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 해 왔다. 그러면서 완급 조절이라는 전략을 계속해서 연마 해 왔지만, 실전에서는 아직 제대로 사용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써야 할 이유도 있고, 쓸 만 한 정도까지 올라왔지.’
이훈승은 현재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까지 3개의 구종의 구속을 각각 5~6km/h정도, 혹은 그 이상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완급 조절을 연마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변화구의 변화량. 커브와 체인지업이 모두 낙폭이 늘었다. 만약 ‘코리안 캡틴’시절의 이훈승이 던지던 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이훈승이 던지는 공을 보고 ‘리틀 코리안 캡틴’ 정도의 별명은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자, 라스트 하나!”
“그래~!”
이훈승의 불펜 투구에서 현성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공은 바로 이훈승의 체인지업.
-슈우욱-
여타 다른 투수들의 체인지업과 같이, 똑 같은 폼에서 똑 같은 팔 스윙으로 나오는 체인지업이다. 홈 플레이트 근처까지 거의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 오지만, 홈 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탓에 타자들의 배트를 피하기 딱 좋은 궤적.
-팡!-
“나이스, 나이스!”
“””
과거 메이저리그의 한 타자는 이훈승의 체인지업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What? Is it a changeup? Oh, Men! Are you kidding me? That’s a fXking splitter!.”
번역하면 ‘그게 체인지업이라고? 농담하지 마. 그건 X같은 스플리터야!’ 정도의 뜻이다. 물론 체인지업이 아니라 X같다는 뜻은 아니고, 진짜 X같은 스플리터라는 말이지.
‘타자들이 아무리 X같은 스플리터라고 해도, 투수 본인이 체인지업을 던진다는데 뭐라고 할거야···’
검지와 중지 끝을 실밥에 거는 그립이 일반적인 포심 패스트볼 그립이라면,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의 첫 번째 마디 근처에 실밥을 거는 그립이 이훈승의 체인지업 그립. 쓰리 핑거 체인지업이라고 부르는 그 그립인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서클 체인지업 그립은 아니더라도 스플리터는 절대 아니다.
‘애초에 이훈승이 스플리터를 제대로 던졌으면 최고 구속이 160km/h쯤 나왔을텐데··· 다행인 줄 알아야지.’
물론 낙폭 큰 153km/h의 체인지업도 타자들에겐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긴 하지만.
“””
“플레이볼!”
아무튼 경기는 시작되었다. 저스티스의 1회 초 공격. 윤창운은 ‘왕조’ 판다즈의 토종 에이스 다운 피칭을 선보였다.
-파앙!-
“스트라이잌!! 아웃!”
1번 타자 강주환을 공 3개만에 삼진으로 잡아내더니
-딱-
“세컨!”
“마이, 마이!”
2번 타자 우경태를 공 2개만에 2루수 플라이로 잡아 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3번 타자 박현성.
-슈우욱-
-팡!-
윤창운은 초구로 자신의 주 무기인 투심 패스트볼을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찔러 넣었다.
‘···와우.’
투심 패스트볼과 싱커, 스플리터를 사용하는 윤창운. 그 중에서도 투심 패스트볼은 항상 리그 내에서 손에 꼽는 구종 가치를 지닌 공이었다. 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투수가 던지는 탑 클래스의 구종 가치를 지닌 공은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
-슈우욱-
-팡!-
“스트라이잌!”
2구는 투심 패스트볼에 의해 위력이 배가되는 싱커. 존 바깥쪽으로 흘러 나갈 것 같던 공은 직전에 본 투심 패스트볼보다 더 큰 각도로 휘어져 존 안으로 들어왔다.
‘참···나.’
현재 KBO리그에 있는 선수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시일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는 선수가 바로 윤창운. 이전의 삶에서도 그가 좋은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고, 충분히 경계한 상태에서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그런데··· 준비가 무색할 정도의 공이다. 숫자로 표현한 수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야.’
구속이나 RPM 같은 숫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위압감. 윤창운의 공에는 그것이 있었다.
-슈우욱-
-팡!-
“스트라이잌, 아웃!!!”
“””
윤창운의 공은 현성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겼다. 윤창운의 공은 포수로서 거의 처음 느끼는 감정까지 맛보게 해 주었다.
‘내가 받고 싶다.’
현성이 야구를 시작 한 이후, 거의 처음 느껴보는 감정. 너무나도 위력적인 투수의 공을 보고, 그 공을 직접 받아 보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공을 받는 순간, 미트를 통해 전해지는 충격과 함께 공을 직접 받았다는 쾌감까지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공.
‘너무 묵직해서 마치 내가 밀려날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공이야···’
현성은 윤창운의 공에 감탄하며 잠깐 동안 그의 팬이 되어버릴 뻔 했지만, 1회 말 수비를 위해 홈 플레이트 뒤에 앉은 순간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잠깐··· 내 기억 속의 윤창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훈승의 아랫급인데···?’
그렇다. 이훈승이라는 투수는 윤창운 이상의 공을 던지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
1회말이 시작되고, 첫 타자는 국가대표 리드오프 이동해.
-슈우욱-
-팡!-
현성은 완급 조절의 테스트 겸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이훈승에게 전력으로 던지는 패스트볼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공은 현성을 포함해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공이었다. 물론 이훈승도 포함해서.
“배··· 백···!!! 백 오십 팔!!! 158km/h의 패스트볼입니다!!!”
이훈승이 던진 초구의 구속이 158km/h가 나온 것이다. 사실 오늘 경기의 관전 포인트 중에 하나는 두 선발 투수의 구속이었다. 투심 패스트볼로 최고 구속 155km/h까지 나오는 윤창운. 복귀 경기에서 최고 구속 153km/h를 찍고, 이후 자신의 최고 구속을 155km/h까지 상승시켰던 이훈승.
최고 구속 155km/h의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의 대결은 야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기에 좋은 이야깃거리였지만, 이훈승은 단 한 개의 공으로 그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158km/h???? 이게 어떻게 가능해?’
현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공을 던져주기 위해 바라본 이훈승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던져놓고 저런 표정을 지으면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훈승의 구속이 갑자기 상승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전의 삶에서 직접 목격했던 이훈승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66km/h. 158km/h가지고 놀랄 수준은 아닌 거지.
‘아휴··· 나라도 침착해야지.’
현성은 심판의 양해를 구하고, 공을 받아 들고도 멍하니 있는 훈승에게 달려갔다. 심판의 눈에도 투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겠지.
“형! 훈승이 형!”
“어? 어···”
“봐요. 내가 완급 조절 하랬잖아요.”
“···158km/h이라는 구속이 완급 조절 덕분에 가능한 거야?”
“당연하죠!”
솔직히 말해서 사실 잘 모른다.
“공을 느리게 던지는 법을 연습했잖아요? 당연히 반대로 빠르게 던지는 방법도 몸에 익은 거죠.”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게··· 가능해?”
“형이 해놓고 왜 나한테 물어요?”
책임전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 한다.
“158km/h짜리 패스트볼 던져놓고 왜 나한테 묻는대?”
“그런가···”
“이훈승이라는 투수가 그 증거잖아요. 그쵸?”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했는데 뭐··· 너한테 그게 되냐고 묻는 게 이상한 거지.”
“그쵸? 이제 정신 차리고 하는 겁니다?”
“그래. 알겠어. 신경 안 쓰고, 너만 믿고 던진다.”
“고맙습니다. 믿음에 보답하도록 하죠.”
현성은 따봉을 날리며 홈 플레이트 뒤로 돌아갔다.
“””
공 하나 만에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판다즈의 1번 타자 이동해는 단 1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맙다는 쪽이 맞겠지.
‘저런 걸 연속해서 3개를 던졌다? 죽으라는 말이지.’
차라리 158km/h의 구속을 다시 그려보면서 적응 할 시간을 주는 편이 타자에게 더 나은 상황.
‘그나저나 어떻게 갑자기 3km/h나 오른 거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구속 상승 방법에 대한 궁금증. 하지만 타자 이동해는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기로 했다.
‘나한테는 저걸 어떻게 치느냐가 중요한 거지. 155km/h와 158km/h. 확실히 빠르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야. 전략을 수정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이동해는 다시 타석에 들어섰고, 이훈승의 2구를 기다렸다.
‘일단 최대한 공에 배트를 맞추면서 타이밍을 잡아 보자. 어차피 밀리면서 파울이 될 것 같기는 한데, 그건 그것대로 투구 수 늘리고 좋지.’
이훈승이 와인드업을 시작하고, 이내 날아오기 시작하는 제 2구.
-슈우욱-
‘낮다. 하지만 존 안이야.’
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 한 이동해는 자신이 생각 한 타이밍대로 배트를 돌렸다.
‘맞춘ㄷ··· 어어?’
158km/h의 속도로 날아오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에 밀리지 않기 위해 히팅 포인트를 앞쪽으로 이동시킨 이동해. 하지만 이동해의 배트가 히팅 포인트에 도착했음에도 공은 도착하지 않았다.
‘체인지업?’
변화구라고 생각하며 공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공은 속도가 줄어들지 않은 채로 날아와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패스트볼···?’
곧바로 전광판으로 눈을 돌린 이동해가 확인 한 구속은 149km/h.
‘149가 체인지업일 리가 없으니··· 패스트볼이라고?’
초구로 보여줬던 158km/h의 패스트볼과 10km/h가까이 차이가 나는 두 번째 공. 마찬가지로 패스트볼이었다.
‘하··· 나 참. 완급 조절을 해도 이따위로 하냐···’
이동해는 공 두 개 만에 오늘 경기의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가 배트에 공을 맞추기도 힘들 정도면··· 다른 타자들은···’
“””
“초구로 158km/h의 패스트볼! 이훈승 선수의 종전 최고 구속이 155km/h였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하. 선수 본인도 놀란 것 같네요. 포수가 심판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마운드로 달려 나갑니다. 자기가 던진 공이 빨라서 당황하는 투수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타자 입장에서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겠습니다만, 사실 저런 공을 본 이후에는 타자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투수가 자신의 최고 구속을 1km/h차이도 아니고, 3km/h차이로 갱신했습니다. 아무래도 타이밍을 맞추고 온 타자가 전략을 다시 세울 시간이 필요 할 겁니다.”
“그렇군요. 경기 재개됩니다.”
“자··· 제 2구는 과연?”
“···배 ···백 사십 구?”
- 작가의말
우려하던 일이 일어 났습니다.
추석과 백신 접종이 겹치면서 피로는 쌓이고 비축분은 바닥이 났군요.
썸바디헬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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