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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님의 서재입니다.

검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샛강
작품등록일 :
2023.01.22 01:55
최근연재일 :
2024.01.11 20:3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32,362
추천수 :
2,453
글자수 :
238,240

작성
23.12.17 09:37
조회
503
추천
13
글자
11쪽

그림자의 춤

DUMMY

아침이었다.



   흩어지고 망가진 방안, 사라진 금화영의 모습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


게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남지상은 처음은 당황하기만 했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부근의 그녀가 갈만한 곳을 찾았으나 역시나 아무도 그녀


의 행방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남지상이 나중에야 그녀가 신지의 사람이고 여하튼 그쪽


에 연락이 먼저 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흐트러지고 깨진 집기를 보아서 누군가와 싸움이 있었던 것이 분


명했다.


   싸움의 소란을 옆방의 사람들이 알 수 없게 기파를 차단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 심야에 찾아온 것이다.


   찾아 온 목적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 별일이 없을까?


   걱정스러웠고 불안했다.


   그녀의 진정한 정체를 누가 알고 있던가?


   떠오르는 사람은 단지 비맹의 청룡비주 천기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아니었고


오히려 그녀를 목숨 걸고 지킬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청룡비주 천기중의 옆에 있던 그 낯선 남의 소녀


인가?


   남지상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녀 역시 청룡비주 천기중이 있는 한 아닐 것이다.


방안 서랍에 들어 있는 석상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석상, 곧 천의 무공 때문도 아니었다.


   결국 다시 깊이 생각하니 금화영이 일전 자신을 찾다가 신


원이 노출된 것 같았다.


   그녀에게 죄스러웠다.


   고민하던 남지상이 그래도 막연히 무림맹 순창분타의 힘을


빌어볼까 하고 황급히 집을 나설 때였다.


   남의를 입은 한 미소녀가 그의 앞에 나타나 아는 체 했다.


남영 바로 그녀였다.


"남소협,안녕하세요"


   남지상도 일전 무한지단의 청룡비주 천기중의 집무실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는지라 의아해 하면서도 마주인사를 했다.


"예, 소저, 안녕하세요"


   그녀는 남지상이 다급해 하는 이유를 이미 아는 눈치였다.


몇 마디 자기소개를 한 그녀가 그를 부근의 찻집으로 안내


하며 말했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어요"


   꽃 같은 얼굴에 달같은 자태의 미소녀의 초대였으나 급한


마음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금화영에 대해 알려줄것이 있다했다


   차를 마시며 자기이름을 남영이라 밝힌 소녀는 그가 궁금


해한 금화영의 행방에 대해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 주며말했다.


"먼저 이편지를 읽어보세요"


   그녀가 내민 글씨가 번진 편지를 읽으며 남지상은 마음이


끊어지는 듯 했다.


   품속의 종달새가 갑자기 먼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남영이라는 소녀는 그의 비감스런  모습을 안쓰러이 지켜보더니 그가 천부를 다녀와서


혼자 지도에 가리키는 장소로 떠나야 하는 사유를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다음에 또 뵐께요"


   남지상이 더묻고 싶은것이 있었으나 소녀의 모습이 홀연 시야에서 사라졌기에 남지상  홀로 그자리에 앉아 있


었다.


   남지상이 생각했다.


   그녀의 집안사람이 금화영이 그와 같이 있는 것에 격노하


여 다툰 듯 했다.


   그리고 금화영이 그에게 말을 남길 사이도 없이 집안사람


들에게 억류되었고 그녀는 미련을 못 버린 그가 혹시나 찾아


오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았다.


   폐쇄된 사회일수록 신분간의 벽은 두터웠으니


금화영의 남지상에 대한 눈물어린 배려가 전혀 엉뚱한 방


향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남지상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비감과 자괴심이 다시 마음속에 찾아


들었다.


   역시 자신은 아니었다.


   두꺼비는 천상의 거위고기를 탐내는 것이 처음부터 결코


아니었다.


   풀이 죽었다.


   혈육의 죽음을 잊고서 여자에 탐닉한 죄였다.


   남지상과 같이 결국 불쌍한 인생은 싸구려 화주만이 친구


였다.


   만취했다.


   해가 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가다 강둑길에서 넘어져 아래


로 굴렀다.


ㅡ쿵


   개울에 쳐 박힌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찍 나온 초승달이 여름하늘에 차가운 비수인양 걸려있


었다.


   남영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부를 먼저 들러 사부님의 유명을 전한후 곧바로 석상의 비밀을 찾아야해요.중요한 일이니 내일 바로 출발하도록 하세요"



발걸음이 상처받은 마음과 같이 무거워져 있었다.


자기는 거지가 아니었다.


무공은 스스로 배워 익힐 수 있었다.


'천인(天人)들은 하늘의 무공을 배워라! 나는 삼류의 무공


을 익히리라!'


   천의 무공이 아니라도 삼완검법이라도 충분했다.


   복수는 못하더라도 혈육을 살해한 살인자들과 마음껏 싸울


수는 있었다.


   심법이 고절하지는 않더라도 삼완검법의 심법을 운기하면


적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적어도 적 앞에서, 원수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싸


울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죽을 수 있으면 되었다.


   그 후 아무도 그의 주검 앞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




   조용히 잊혀 질 것이다.


   그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렸다.


   감정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무림맹에서 쫓겨났을 때는 이렇게 서글프지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찾아들었다.


   혈육을 잃은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금화영의 떠남에 의한


상실감과 겹쳐 마음 속 깊이 냉소로 자리잡았다.


   얼마 후 그가 멍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밤이 늦


어 있었다.


   남지상이 그래도 생각나서 금화영의 방에 들렀다.


   마침 숙모가 그녀의 방을 늦게까지 정리하고 있었다.


   이미 낮에 남영이 숙모에게도 금화영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었다.


   숙모가 남장을 뒤돌아보더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길 떠나는 사람의 준비물이 온통 이불과 옷가지더구나.


너희들 무슨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했었더냐?"


   숙모가 처음 둘이 같이 길을 간다 하기에 분명 무슨 좋은일이


벌어질 것으로 얄궂게 생각한 모양이다.


   최근 남지상과 금화영의 부쩍 가까워진 관계를 눈치 빠른


숙모가 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랬기에 오늘 홀연


친딸과 같이 정들었던 그녀가 사라지니 마음이 쓸쓸해지며


한편으로 혼자 남겨진 남지상의 모습이 안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남지상 또한 숙모가 돌아가고 나중 홀로 있을 때 금화영이


준비한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얇은 하얀 여름 홋이불이 들어있었다.


'지금쯤이면 이 이불을 덮고 둘이서 같이 하늘의 별을 세


고 있었을 텐데...'


   아마 그녀는 자신의 팔을 베고 다소곳이 품에 안겨있을


것만 같았다.


   평소 강호의 모든 청년기협들이 하다못해 객점의 점소이


까지도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허름한 방구석에 누워


상상해보는 그림 같은 한 장면이었다.


   남지상이 다시 생각하니 이렇게 정성스레 산 속에서 둘이


서만 잘 경우를 대비해 이불까지 준비한 다감한 금화영이 불


연 듯 사라진 데 대하여 그녀에게도 나름대로 또 다른 이유


가 있는 것도 같았다.


   낮 동안의 서운함과 비교하여 지금은 어느 생각이 옳은지


몰랐다.


   여하튼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야속해 보였다.


   다음날 남지상이 아직 출발할 준비조차 하지 않은 채 멍하


니 아침을 지나 이미 정오로 치닫고 있는 여름 하늘의 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직 떠나지 않았는지 남영이라는 소녀가 다시 그의


앞에 굳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남소협, 당신은 금아가씨가 받는 고통을 상상할 수 있나


요? 지금처럼 하늘의 해만 바라보는 당신의 바보 같은 표정


을 보면 그 분의 마음이 더욱 찢어질 것을 당신은 짐작이나


할 수 있나요? 엊그제 혈육에 대한 복수감에 눈을 붉혀가며


연약한 여자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 부탁하던 그 각오는 과


연 무엇이었던가요?"


  그녀의 말투 또한 표정만큼이나 단호했다.


"정신차리고 하루라도 빨리 무공을 성취해서 억울하고 저승


에서 편히 잠들지 못한 당신의 불쌍한 혈육을 위한 원한을


갚으세요. 그리고 지금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는 금아가씨


를 언젠가 찾아 만나야죠. 금아가씨가 당신을 애초부터 잘못


보았나요?"


   진정 어린 말은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사람의 가슴에 와 닿


는 것이다.


   말하는 가운데 크고 맑은 두 눈에 물기가 맺힌 남영을 쳐다보


던 남지상은 문득 자신의 어리석음이 깨달아졌다.


   세상은 자기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아래 누가 하루를 아무 일 없이 마음 편히 보낼 수 있


을 것인가?


   언제부턴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이렇게 무책임하고 자기 연민속에서 게을러진 것


이...


   가만히 생각하니 무림맹의 비맹에 뽑힌 직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자신이 무언가 남달라 보였고 특히 무한지단의


부단주이며 청룡비주인 천기중이라는 든든한 후광도 있었다.


   나중 무검주인 구음마검 마양동, 총단의 군사인 장유평이라는 본맹


의 거목들을 알게 되었고 항상 자기 곁에 있어주던 금화영


또한 천외천인 신지의 사람이었다.


   사부 또한 이미 이세상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마찬가지로


누구나 동경하는 천부의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오만함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모


양이었다.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주위사람의 어진 품성이 그대로 자기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진 것일 뿐 죽어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이 한 공은 하나도 종


이에 적어낼 내용이 없었다.


   자기는 단지 그림자일 뿐이었다.


   훌륭한 주위사람의 빛에 의하여 생기는 자기 주제를 모르


는 못난 그림자였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일에 남의탓만 하고 원망하.는 못난이가 되었는가'


   남지상이 짧은 순간이나마 많은 생각을 했다.


부끄러웠다.




   금화영은 결코 이유 없이 자기를 떠날 여자가 아니었다.


   지금도 눈앞에 자기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남영이라는 소녀의 정광


어린 눈빛은 그에게 더 이상 유치해지지 말라고 강하게 나무라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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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눈쌓인 산야에 비치는 햇살같이 23.12.30 406 12 8쪽
51 인연이란 23.12.29 282 9 7쪽
50 꿈속의 눈물 23.12.28 323 11 4쪽
49 그네를 미는 손 23.12.28 335 10 17쪽
48 인비인 23.12.28 303 5 7쪽
47 하얀목련 피던날 23.12.28 296 6 5쪽
46 빈소라껍질은 파도소리를 기억하다 23.12.25 353 9 13쪽
45 가을은 빈가슴에 메마른 낙엽으로 들어서다 23.12.25 331 8 12쪽
44 천의 무공 23.12.25 360 10 7쪽
43 그리움이 쌓이는 해변 23.12.23 404 12 15쪽
42 노을진 날은 마음속 말을 나누고 싶다 23.12.21 427 12 29쪽
41 모래성 23.12.20 429 10 12쪽
40 삶의 언저리에서 23.12.20 368 9 12쪽
39 내 마음의 꽃밭 23.12.20 437 9 9쪽
38 돌아눕는 오후 23.12.20 403 7 20쪽
37 강을 따라서 23.12.19 416 8 16쪽
36 강물아 흘러라 나의 청춘도 흘러라 23.12.19 421 12 4쪽
» 그림자의 춤 23.12.17 504 13 11쪽
34 당신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건가요 23.12.17 458 11 13쪽
33 낙화유수 23.12.17 442 10 13쪽
32 바람이 불어오는 곳 23.12.17 431 11 5쪽
31 길이 끝나는 곳에서 23.12.17 423 10 3쪽
30 천뢰지기 23.12.16 489 10 11쪽
29 수라의 검 23.12.16 452 10 5쪽
28 기억의 너머 23.12.16 422 9 10쪽
27 7월의 노래 23.12.15 431 9 3쪽
26 잃어버린 이야기속으로 23.12.15 457 11 12쪽
25 흐르는 강물처럼 23.12.14 526 11 24쪽
24 예언의 동쪽 23.12.14 507 11 7쪽
23 내가 힘들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23.12.13 500 9 12쪽
22 행로난 행로난 23.12.13 495 8 14쪽
21 인간은 희망보다 절망에 속기 쉽다 23.12.07 623 13 12쪽
20 인간이 절망한 곳에는 어떠한 신도 살지 않는다 23.12.04 586 14 9쪽
19 푸른강 붉은 누각 23.12.04 590 13 15쪽
18 잃어버린 노래 23.12.03 568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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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격류 23.12.03 593 10 2쪽
15 앵무의 계절 23.12.02 635 11 11쪽
14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 23.12.01 669 12 14쪽
13 밤바람에 귀걸이흔적이 아프게 느껴지다 23.11.29 721 12 8쪽
12 비맹 23.11.27 731 13 5쪽
11 벚꽃이 떨어지고 화선도 볼 수 없으니 23.11.26 786 14 6쪽
10 은하수는 동쪽 먼 바다로 향하다 23.01.25 2,589 43 7쪽
9 새가 날아간 흔적을 찾아서 23.01.25 2,749 45 14쪽
8 달과 구름이 흐르는 길 23.01.24 2,718 47 4쪽
7 봄은 벌써 앞마당에 와있는데 사람들은 봄을 탓하다 23.01.23 2,821 49 7쪽
6 죽음보다 깊은 잠 23.01.23 2,909 47 11쪽
5 밤바람이 늦은 잠을 빼앗아 가다 23.01.23 2,993 46 6쪽
4 얼어붙은 길 23.01.22 3,052 47 9쪽
3 나만의 겨울 23.01.22 3,299 46 7쪽
2 눈이 내리는 길 23.01.22 3,849 47 8쪽
1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었다 23.01.22 6,278 5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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