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떨어지고 화선도 볼 수 없으니
남지상이 무한에서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객점에 나가
일을 했다.
막상 이렇게 객점에서 다시 일하니 또 즐거웠다.
간혹 객점에 들른 무인들을 보게 될 때는 그것도 자기 또
래의 영기발랄한 청년 무인들을 바라볼 때면 간혹 알 수 없
는 부러움도 생겼다.
그러나 일상의 생활의 행복함을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도창이 이전과 같이 또 허겁지겁 객점 안에 쫓아 들어
오더니 남지상이 합격했다는 것이다.
"지상아.합격이다"
합격자 명단이 순창 분타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남지상은 해고되고 자기만이 남아 계속 근무하고 있던 것이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데 잘되었다고 진심으로 발을 동동 구
르며 좋아했다.
"정말 잘되었다.정말 마음의 짐을 벗은것 같다"
종형인 남지동을 비롯하여 객점의 식구들도 하던 일을 멈
추고 자기일 같이 기뻐해 주었다.
"정말 축하한다"
주인인 남지동보다도 몇 살이나 많은 주방장인 호천만이
큰 사발에 술을 따라주며 역대 무림의 이름난 대협중에서도
주방 보조 출신이 제법 되니 용기를 갖고 항상 남지상이 옳
다고 생각하는 바를 밀어 부치라고 했다.
"예 모두들 덕분입니다.감사합니다."
그 날 객점 일을 끝까지 마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밤늦
게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숙부, 숙모와 금화영이 소식을 듣
고는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나마 조촐한 음식으로 축하연을 벌였다.
"지상아 축하한다.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다"
숙모를 비롯 모두 축하의 말을 한마디씩 했고 남지상이 금화영을 위하여 가져온 완자와 금화영이 모처럼
없는 실력에 그런대로 만든 돼지고기를 덩어리째로 삶은
후 잘라내어 기름에 볶은 회과육(回鍋肉)
요리에 요즘 그녀 때문에 부쩍 늘은 옆집무관의 환자들이
의원에 놓고 간 화홍(花紅)주를 곁들여 어느 큰 부잣집의 연
회 못지 않은 풍성한 만찬을 가졌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하여 집안에 만들어 놓은 화단의 꽃
향기가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남지상의 숙모는 평소 꽃을 좋아했다.
숙부는 당장 약에 쓰려고 꽃을 꺾었고 숙모는 젊은 날을
추억하며 그 자리에 다시 꽃을 심었다.
남지상이 사는 이층집의 뒤편에는 화단이 담장을 따라 정
성스레 꾸며져 있었다.
초봄에 미리 피었다 지는 신이화와 늦봄의 피어나는 메꽃,
흰철쭉과 같은 꽃들이 각자 흐트러지게 피어 있었고 키 큰
계수나무 한 그루가 화단의 문지기인양 담장에 기대어 서서
남지상의 이층 방 창문 앞까지 가지를 드리우고 서 있었다.
밤바람에 불어오는 희고 작은 계수나무 꽃들도 연회속 사람들의 마
음을 취하게 하고 있었다.
취흥이 돌은 남의원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생은 짧지도 않고 그렇다고 길지도 않다.
모두가 칼끝 위의 인생 햇살이 나면 사라지는 이슬 같은
생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니..."
숙모가 중간에 청승맞다면서 노래를 중지시켰다.
"이양반,청승맞은 노래는 그만해요"
그리고는 금화영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용모만큼 음성도 고은 금소저가 한곡불러봐요"
두 취한 남정네도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벌써 박수칠 준
비부터 하고 있었다.
이윽고 떠밀려서 결국 부르게된 그녀였고 억지로 몇 모금 들이킨 술에 조금은 취한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고요한 밤중에 울려 퍼졌고 노래소리는 창가
를 벗어나 옆집 무관의 숙소에서 잠 못이루고 있던 젊은
관원들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괜히 노래를 시키는 바람에 그녀에 대한 남지상의 경쟁자
들만 결국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던 한 행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형주에 있는 나의 집 뜰 앞마당에는
한 그루의 벚나무가 서 있으니
마치 나의 사랑하는 여인과 같아
맑은 날에는 그녀의 해맑은 얼굴인양
가지의 푸른 어린잎까지 선명하고
안개가 짙게 낀 흐린 날은 마치 웅크린 모습으로 서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오늘 이렇게 제비가 낮게 날고
대낮부터 날이 어두워지니
길 떠나는 그대여 나의 집 앞을 지나게 되면
들러서 말을 전해주려무나
이 곳 새북(塞北)은 이미 벚꽃이 떨어지고
화선(花船)도 볼 수 없으니
돌아오는 봄날은 옛날과 같이
머리에 꽃을 꽂고
나의 집 창가에 기대어 앉아
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싶다고..."
이윽고 봄밤 늦은 시간이 흘러 하늘의 별들이 동쪽으로 몰려들 즈음
자리가 파하였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다.
술과 분위기에 취한 남지상 또한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직도 금화영이 불렀던 노래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나의 집 창가에 기대어 앉아
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싶다...'
"화영..."
남지상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금화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잠시 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젊은 청춘은 본인이 아무리 부정해도 속에 있는 감정은
무심결에 드러나는 법인 모양이다.
남지상이 자고 있는 방 창가의 화분에는 붉은 연산홍이
마침내 보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서 화사하게 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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