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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님의 서재입니다.

검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샛강
작품등록일 :
2023.01.22 01:55
최근연재일 :
2024.01.11 20:3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32,367
추천수 :
2,453
글자수 :
238,240

작성
23.01.22 01:57
조회
6,279
추천
54
글자
10쪽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었다

DUMMY

#


  때는 명이 건국되고 백 여 년 후, 강남무림에는


정사간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무한에 가까운 순창현에도 싸움의 거센 피바람이


불어와서 정파의 강남무림맹의 무한 지단에 속하는


순창분타의 삼 개 기(旗)중 용호기 내에서도 한 개의


대(隊)인 무천대에 소속되어 있으며,


   또한 무천대 내에서도 오 개 조(組) 중 홍예조의 일원에 속하는


남지상(南志想)이 싸움 도중 동료들로부터 뒤 처져 버린


것은 방금 적인 파정련의 친위대인 금황비(金皇泌)와의


싸움 도중 왼쪽 다리에 큰 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인 무천대에 속하는 오 개조는 모두 도주하는


적을 쫓아 서쪽인 형주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므로


주위에 치료해주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 혼자서


상비약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감고 나니,


   날씨는 이제 저물기 시작하여 눈이 오려는지 저 멀리


동북쪽의 겨울 하늘의 한 귀퉁이가 흐려져 있었고 서쪽하늘


귀퉁이에만 조그마한 태양 빛이 남아 있었다.


   땅위에는 큰 잣나무와 떡갈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십 년 간에 걸친 오랜 싸움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사파인 파정련은 그들의 발원지인 사천까지


후퇴하고 있었다.


   오늘 그들의 친위조직인 금황비 까지 이렇게 일선에


노출됨은 곧 그들의 저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지상은 뼈와 근맥을 상하지 않아 걷기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그래도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야만 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적어도 이 적막한 골짜기는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순창에 다시 돌아갔다가 상처를 치료한 후


형주에 있는 본대에 합류해야 했다.


   남지상이 걸음을 절뚝거리면서도 서둘렀다.


   그때 순간 발을 헛디디며 그만 어두운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헉!"

ㅡ쿵!


   굴러 떨어지는 도중 덤불을 스쳐 지나고 온몸이 가시에


찔렸다.


   그러나 다행히 몸에 큰 상처는 없었으나 방금의 떨어지는


충격에 앞서 다친 다리의 통증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굴러 떨어진 장소가 그렇게 가파르거나 높지는


않았다.


   몸을 추스르고 한동안 위를 쳐다보던 남지상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언뜻 돌아보니 그의 바로 뒤쪽으로 큰


떡갈나무가 있었고 나무 그늘 아래 한 인영이 그를 향한


채 앉아 있었다.


"헉!"


   남지상이 섬칫 놀라 물러서며 등뒤의 검을 뽑았다.


ㅡ쓰릉!


   놀랜 마음을 달래고 앞을 주시하고 자세히 보니 인영은


상처를 심하게 입었는지 그 자리에 앉은 채 꼼짝을 않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적인 금황비의 금빛 무복이었다.


   서편으로 지기 전의 마지막 남은 햇살 아래 금색의


사자문양이 가슴 위에 크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여자와 같이 길게 자라 얼굴전체를 가리고


있었으나 속에 입고 있는 의복은 분명 남자의 경장이었다.


   그 자의 겉옷은 자기가 앉아 있는 바닥 위에 깔려 있었다.


가죽으로 된 겉옷이 눈과 겨울의 얼어붙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한기를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남지상이 그 자에게 다가가 검을 겨누고 찌르려는 순간


그의 감은 눈이 크게 뜨이고는 남지상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눈동자 속에서 별빛 같은 맑은 광채가


쏟아지다가 일순 그 기운이 사라지고 조용히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짧은 순간 남지상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직 그는 동료들과 달리 사람을 살해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홍예조에 가입한 지 여섯 달, 조원 중 가장


신참이었고 적과 조우하여 싸운 경험은 있었으나 아직


사람을 죽인 기억은 없었다.


   머뭇거리던 남지상은 주위 땅바닥에서 젊은 남자들이


머리카락을 묶는 흰색 영웅건과 동시에 두 조각이 난 채로


주위에 흩어 져 있는 금빛 탈을 발견했다.


   어떤 상승의 내가 기공이나 검기에 박살이 났는지 금빛


탈의 주위부분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순간 그 것이 이 사람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얼굴보다도 전체적으로 커 보이는 탈과 영웅건, 유심히 그


자를 다시 보니 목젖 부근이 다른 남자의 그 것과 달리


믿믿했다.


   아마 외투를 그대로 입고 있었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남아 있는 잔광에 자세히 비치는 얼굴


윤곽하며, 어깨 위로 흘러내린 긴머리, 겉옷을 벗은지라 그래도 무언가


남자와는 다름직한 가슴어림... 남지상은 그제야 그가 남자의


옷을 크게 걸쳐 입은 소녀인 것을 알아차렸다.


   소녀의 얼굴은 다쳐서 핏기가 없는 지 은옥같이 핼쓱했다.


   그린 듯 찌푸리고 있는 아미와 방금 잠깐 스쳐보았던


크고 서늘한 눈동자 때문인지 남지상은 그녀에게 차마 검을


들이 댈 수 없었다.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한동안 그냥 말없이 바라보던 남지상이 검을 내리고 조용히


뒤돌아 섰다.


   잠시 그가 뒤돌아 서는 사이에 그녀의 눈이 뜨였다가


그를 의외의 눈빛으로 쳐다보다가는 다시 감겼다.


   이제 태양은 완전히 서산으로 넘어가고 산에는 어둠이


순식간에 다가오는지라 숲 가운데서부터 어둠이 깔리고


멀리서는 까마귀 떼들이 자기 둥지로 돌아가며 내는 불길한


소리가 하늘 끝닿는 데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ㅡ까아악!

ㅡ휘이잉!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거세어 지고 있었다.


북동쪽 하늘 어귀에 몰려 있던 어두운 먹구름이 이쪽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 내리던 눈발이 다시 내릴 것 같았다.


   몇 발짝 앞으로 걷고 있던 남지상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까지 억지로 참고 있었던 지 그녀의 몸이 눈에


보이게 떨리기 시작했고 입가에는 선홍색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쳐다보던 남지상이 고개를 돌리고 덤불 사이로


사라졌다.


   이제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의 소녀는 이제 몸의 떨림 마저 그치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적이 다시 공터에 까마귀 날개 같이 깊게 내려앉았다.


   어둠의 정적 속에서 보이는 정경은 떡갈나무 저 너머로


조그마한 호수가 있는 것이 보였다.


   호수 곁에는 다 쓰러져 가는 정자가 을씨년스럽게


서있었다.


   예전에는 여기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것 같았다.


   그때였다.


   다시 덤불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간 줄만 알았던


남지상의 몸이 불쑥 나타났다.


   그의 품안에는 자기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겉옷과 모자


등이 안겨져 있었다.


   흙과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아서는 어디서 죽은


사람의 소지품을 가져온 것 같았다.


   그의 다리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소녀의 앞에 선 남지상이


말했다.


"나는 소저가 파정련에 소속된 것으로 알고 있소. 내가


알기로는 싸움은 곧 빠르면 십여 일 내로 끝나는 줄 알고


있소. 소저나 나나 수십 년 전 선대(先代)들이 만들어낸


싸움의 희생자일 것이오.


   소저는 어떤 연유에 이 싸움에 가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위하여 싸움에


참여한 것이오.


   이제 십 년 간의 긴긴 싸움이 곧 끝나고 그 명분이


사라질 것이니 지금 나는 결코 소저를 해칠 마음이 없으므로


나를 따라 가서 먼저 치료를 받고 그 이후는 언제 어디로


떠나는 것은 소저가 알아서 결정하기 바라오.


   부디 인간의 생명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 신중히


생각하기 바라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남지상의 맑은 눈빛에는 누구라도 부인


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져 있었다.


   잠깐 그의 음성에 눈을 뜨고 마주쳐다보던 소녀가 고개를


들어 서쪽의 먼 하늘가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다시 땅위의


부숴 진 황금색 탈로 향했다.


  여러 가지 감회가 그녀의 마음속에 오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조용히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어렵게 그 탈을 나무 밑에 묻으러 하기에


남지상이 의아해하면서도 같이 탈과 영웅건을 떡갈나무


아래에 묻었다.


   또한 남지상이 그녀에게 자기가 가져온 모자를 깊숙이 쓰게


하고는 무림맹의 표기가 새겨진 겉옷을 걸치게 한 후


그녀를 뒤로 업고서는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었다.


   그리고 힘들게 자신이 떨어진 비탈을 다시 느리게나마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잠시 후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세찬


눈보라로 바뀌고 흰색의 눈은 모든 과거를 희석시키며


그들이 머물던 장소에 소담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ㅡ휘이잉!


   이렇게 늦은 2월 겨울의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 한 이름


없는 산비탈의 언덕 밑 버려진 호숫가의 떡갈나무 아래에는


이제는 남자의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한 소녀가


버리고 간 흰색의 영웅건과 또한 무림맹의 상부층


인사들에게 공포로 자리잡았던 황금색의 탈은 그 전설을


묻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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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인비인 23.12.28 303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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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가을은 빈가슴에 메마른 낙엽으로 들어서다 23.12.25 331 8 12쪽
44 천의 무공 23.12.25 360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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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강을 따라서 23.12.19 416 8 16쪽
36 강물아 흘러라 나의 청춘도 흘러라 23.12.19 421 1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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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낙화유수 23.12.17 442 10 13쪽
32 바람이 불어오는 곳 23.12.17 431 11 5쪽
31 길이 끝나는 곳에서 23.12.17 423 10 3쪽
30 천뢰지기 23.12.16 489 10 11쪽
29 수라의 검 23.12.16 452 10 5쪽
28 기억의 너머 23.12.16 422 9 10쪽
27 7월의 노래 23.12.15 431 9 3쪽
26 잃어버린 이야기속으로 23.12.15 457 11 12쪽
25 흐르는 강물처럼 23.12.14 527 1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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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벚꽃이 떨어지고 화선도 볼 수 없으니 23.11.26 787 14 6쪽
10 은하수는 동쪽 먼 바다로 향하다 23.01.25 2,589 43 7쪽
9 새가 날아간 흔적을 찾아서 23.01.25 2,749 45 14쪽
8 달과 구름이 흐르는 길 23.01.24 2,718 47 4쪽
7 봄은 벌써 앞마당에 와있는데 사람들은 봄을 탓하다 23.01.23 2,821 49 7쪽
6 죽음보다 깊은 잠 23.01.23 2,909 47 11쪽
5 밤바람이 늦은 잠을 빼앗아 가다 23.01.23 2,993 46 6쪽
4 얼어붙은 길 23.01.22 3,052 47 9쪽
3 나만의 겨울 23.01.22 3,299 46 7쪽
2 눈이 내리는 길 23.01.22 3,849 47 8쪽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었다 23.01.22 6,280 5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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