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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님의 서재입니다.

검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샛강
작품등록일 :
2023.01.22 01:55
최근연재일 :
2024.01.11 20:3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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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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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8,240

작성
23.12.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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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24쪽

흐르는 강물처럼

DUMMY

  



한편 바위동굴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남지상도


얼마후 정신을 차렸으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곁에 있던 목불은 부서져 있었으며 비수의 독에 본연의


색을 잃고 검 푸른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남지상이 옆에 떨어진 비수중 하나를 집어보니


손잡이에는 귀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검날에는


아직도 청색의 독 기운이 돌고 있었다.


  섬칫하여 버리려하다 혹시나 하여 천과 기름종이에 싸서


품속에 집어넣었다.


  만일 장유평 군사가 살아 있다면 비수에서 무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품속의 봉서는 기름종이로 방수가 되었는지 다행히 온전


히 있었다.


  그리고 주의 깊게 동굴 밖을 나섰다.


들어올 때와 같이 물 속을 걸어 수면 밖으로 나가니 때는 아


침 무렵이었다.


  실제 그는 바위동굴에서 하루와 반을 보낸 것이다.


  수초 사이에서 주위를 살피니 다행히 아무 인기척도 없어


조심스레 물 밖으로 나왔다.


  몸의 상태는 이상하게도 혼절하기 전에 비해 괴롭거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단지 옆구리의 검상 및 몸에 난 자상


이 쓰라리고 과도한 출혈에 어지러울 뿐이었다.


  생각하니 침향의 치유효과 같았다.


  그가 혼절한 사이에 몸에 들어왔던 의암의 자연지기의 기운은 알지


못했기에 단지 침향을 안배한 사부의 은혜가 고마웠을 뿐이


었다.


  남지상이 다시 가던 방향인 순창으로 향했다.



  빨리 치료를 받아야했고 무엇보다 장소평과 구음마검 마양동의 안위가 걱


정되었다.


  가까운 시현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 후 정오 무렵에는 순창으로 가는 관도에 있는 작은


현인 농사와 임업을 곁들며 원명교체기  전쟁의 흔적인 봉화대가 곳곳에 서있는 봉수현에 닿았다.



다행히 생각대로 무림맹의 파견지소가 있었다.


  남지상이 파견지소에 들러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그


간 경황을 물으니 지소의 무인들이 흥분해 하며 그에게 그


동안의 일어난 일을 말해 주었다.


  신비세력의 출현, 그리고 선릉재에 모였던 무림맹의 무사들이 모두 몰


살당한 일, 더구나 주변의 10리 안의 산촌마을들도 쫒고 쫓기는 추격선상에 있던 구역은 목격자를 두지 않으려는지 남김


없이 말살되었다.



  그나마 군사인 장소평은 다음날 발견되어 무사했고 무사히 맹의 총단으로 복귀하


는 중이었다.


  이제 그녀가 준 봉서는 급히 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총단에서 벌써 무한지단에 어떤 형태든 이틀 전 사


건으로 인해 지시가 내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음마검 마양동은 운명을 달리했으니


암자에서 남지상에게 업힌 이후부터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어쩜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진원을 부어넣지 않았다면 조


력자들이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 남았을는지도 몰랐다.



  남지상이 지소의 무림맹 무인들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


를 듣는 가운데서도 자기의 고향집이 참화를 겪은 사실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상처부위를 임시로 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휴


식을 취하며 걷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는 숙부와 금화영이 있는 순창에 가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다고 생각할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이었다.


"혹시 귀하의 이름이 남지상이오?"


  남지상이 뒤돌아 서며 보니 장검을 멘 웬 황의청년이 뒤에 서 있었


다.




  남지상이 한면 의아해 하면서도 맞다고 대답했다.


  


  황의청년의 얼굴에 미약하나마 찾던 사람을 바로 찾은  안도감이 떠오르며

급히 입을 열었다.


"금화영 소저가 귀하를 찾고 있소. 금소저와 귀하의 숙부님이


귀하의 고향집으로 급히 갔으니 순창으로 가지말고 바로 고향집


으로 가보기 바라오"


  남지상이 의아해 했다.


'그녀에게 수하가 있었던가? 그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숙부와 그녀가 왜 자신의 고향집으로 급히 갔는가?'


  그의 의아해 하는 표정을 살펴보던 황의 청년이 잠시 머


뭇거리는 것 같더니 마지 못한듯이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


다.


"아마 이 번 무림인들간의 싸움에서 그곳 마을주민들이


희생되었나보더군요"


  남지상이 얼굴색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할 것 같았다.


  방금 분소에서 무심코 흘러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위 산촌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남지상이 황의청년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으나 황의청년은


더 이상은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남지상이  인사를 하고는  급히 뒤돌아섰다.


  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황의청년이 안됐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그때 부근에 있던 객점에서 황금색 단창을 등뒤에 교차시


켜 멘 한 청삼청년이 황의청년 곁에 나타났다.


  청삼청년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앞서의 황의청년을 보며


물었다.


"저자가 본가의 금아가씨가 관심을 갖고 비상령을 내려 찾아 달라


이야기한 청년인가? 천외천 신지의 숨겨진 힘을 10년만에  노출시키며 쏟을 정도의 중요


한 인물인 남지상이라는 자가 맞는가?"


황의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그런데 보기에 특출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지


는 않더군....듣기로는 행방불명되었던 금아가씨가 순창비밀


분타에 느닷없이 찾아와 부탁할 당시의 기색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네"


나중에 나타난 청삼청년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아마 적어도 무림맹의 비영신분이니까 현 무림의 암류를 밝히는 것과 어떻든 중요한 관계가 있겠지. 그러니 신지의


10호 비상령 중 금아가씨 정도지위가 되어야 발동할수 있는 최고의 1호 비


상령을 내렸겠지. 순창부근의 홍엽장을 포함하여 모든 신지의


하부조직이 금아가씨의 명령에 신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며 백주에 나서서 부근의 선릉재 일대를 에워싸며


남지상이라는 자를 찾았으니...

"


  

  사실 남지상이 동굴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동안 혼절된채 살아 구조된


장유평은 의식을 회


복하자마자 바로 순창분타에 연락하여 남지상


의 안위부터 챙겼다.


"무엇보다 우선 무한지단 남지상 비영의 행방을 찾으세요!"


  그러나 그때까지도 남지상이 순창분타나 숙부집에 도착하


지 않았다.


  행방불명이었다.


  그 와중에 숙부인 남의원과 금화영이 남지상의 실종을 당


연히 알게되었고 그의 안위에 노심초사하는 중에 산촌의 참


화가 잇따라 전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남의원과 금화영은 어제 벌써 산촌으로 출발한


것이다.


  남지상이 봉화현에서 말을 빌려 타고는 순창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고향집이 있는 산


촌으로 바삐 돌아갔다.


  그리고 해가 지는 무렵에서야 비로소 도착


했다.


  마을 어귀의 집안에는 이틀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웃는 낯


으로 배웅했던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으며 집안에는 걸레로


닦다만 핏자국이 흥건했고 주위가 너무 조용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하애졌다.


  무언가를 알 것도 같았다.


  집을 나와 마을쪽을 바라보니 마을중심에 화광이 비치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보니 마을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가운데


는 붉은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관부의 사람들과 낯선 무림인들이 주변에 모여있었다.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남지상이 살펴보니 시체들이 타고 있었다.


  주위에 숙부와 금화영의 모습이 보였다.


"숙부님!"

"금소저!"


  두 사람을 부르니 그들이 돌아보았다.


  금화영의 표정이 급속히 변했다.


"아 !남소협!"


  금화영이 남지상에게 다가와서는 손을 부여잡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무사했군요!"


  그 한 마디에 이틀 동안의 그의 생사에 대한 걱정과 애태움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남지상이 미처 그녀를 본 반가움과 그녀의 자기에 대한


격정어린 감정을 다시 생각하기 전에 급히 물었다.


"어머님은?"


"동생들은 어찌되었는가요?어디 있는가요"


  그가 숙부인 남의원을 돌아보았다.


  남의원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 없이 불이 붙고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남지상이 크게 외쳤다


"어머니!"


   알 것 같았다.


   길을 재촉해 오면서 망연히 상상해보던 가능성이 실제 현


실로 나타났다.


   남지상이 불 가까이 다가서며 불렀다.


"어머니"


"지영아! 지성아! 막내야!"


  남지상이 가족 한 명씩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멀리서 달려온 다른 희생자들의 친지들도 같


이 통곡하고 있었다.


  별리의 아픔은 인간이 차마 견딜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


다.


  남겨진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


히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 옆자리의 정든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은 마치 자신의 생살을 찢어내는


것 같이 아팠다.


  그러기에 죽음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크나큰 형벌인


가?




  남지상이 격정에 북받쳐  바닥에 그대


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숙부에게 사연을 물었으나 숙부와 금화영은 시선을 외면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시체들이 빈 우물을 메우고 있었다 했다.


덧붙여 단지 한 마디만 했다.


"칼에 맞아 돌아가셨다"


  남지상의 마음이 다시 참담해졌다.


  주변에 관원들이 모여 있었다.


  관원들이 보는 시각은 무림인이나 평민들이 보는 시각과


또 틀렸다.


  그들은 사건만을 보고 사람을 보지 않았으며 정확한 보고


만이 그들이 관심을 가진 전부였다.


  남지상이 죽은가족의 관계를 말하고관원들에게 물으니 그들이 주검의 끔찍한 상태를 자세히 알려줬다



  주검들은 사지와 살점이 각각 떨어져 나갔고 얼굴이 훼손


되어져 있었으며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되었고 여인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어린 소녀까지도 능욕 당했다.


  결국 관부와 무림맹과 희생자의 친지들 사이의 의논 끝에


지금 공동으로 화장을 하게 된 것이다.


  관원들이 하는 말을 숙부와 금화영도 침묵 속에 듣고 있


었다.


  두 사람은 어제 일찍 와서 목불인견의 참극의 현장을 목격한 것


이다.


  그리고 남지상의 고향집을 정리하고 치우고 있었던 것이


다.


  화장이 끝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흩어질줄 모르고 마지막 꺼져 가는 불가에 


서있었다.


  얼마 후 남지상과 숙부, 금화영은 산촌의 빈집에 돌아왔다.


  아무 말도 서로 나누지 않았다.


  각자가 아린 가슴을 달래고 있었고


그 후에야 비로소 서로의 아픈 가슴을 다시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남지상이 멍하니 집 앞의 비어있는 미루나무 위의 까마


귀 집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금화영이 곁에 오더니 그의 손을 잡고서는 밖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잠시 같이 걷죠"


  남지상이 아무 생각 없이  금화영과 같이 강둑 길을 걸었다.


  여름의 군상들은 인간사회와는 관계없이 나중 다가올 가


을을 대비하여 생명을 불사르고 있었다.


  주변의 풀벌레들이 두 사람의 인기척에 울음을


  멈추었다가도 살아있는 한 순간이 아쉬운지 다시 소리를


내고 있었다.


ㅡ찌르르


  강둑에는 야생의 오래된 석류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석류나무 아래 앉았다.


  강물은 별과 달의 그림자를 안은 채 정지한 듯 흐르고 있


었고 석류나무의 붉은 꽃잎이 핏빛 등롱인양 수면에 비치고


있었다.


  강물이 상류에서 보고들은 신비한 세계의 이야기를 주위


의 풀벌레와 밤사이에 물을 마시러 오는 짐승들에게 들려주


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상태대로 한참 동안을 앉아있었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남지상이 금화영에게 목 메인 소리로


먼저 말했다.


  여동생을 태어나 단 한 번 때렸다.


  아래위 형제들에 치어 자라던 불쌍한 동생이었다.


  부친은 징집을 당해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쳐 무거운 짐을


지지는 못했고 모친이 무거운 짐을 대신 졌다.


  나중은 남지상이 모친을 도와 무거운 땔감과 추수한 나락


을 짊어지곤 했다.


  어릴 적 밭작물이 까맣게 타들어 가던 더운 여름 하루 여동생


이 부친에게 업어달라 떼를 썼다.


  자기 친구가 아버지에게 업히는 것이 어린 나이에 몹시도


부러워 보인 것이다.


  말라버린 들풀 같던 부친의 안색이 무안하고 곤혹스러워


했다.


  그때 남지상이 동생을 매섭게 때렸다.


  영문을 모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울던 동생이 지쳐 잠든


후 어린 그가 아무도 몰래 후덜거리던 다리로 동생을 업어


주던 여름은 유독 붉고 뜨거웠다.


  그 이후 그렇게 이뻐했던 여동생이었다.


  그 후 부친이 돌아가셨고 이후는 자기가 돌보았던 나머지


어린 세 동생이었다.


  그러한 모친과 동생들이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고 없었다.


  상실의 세월이여!


  남지상이 더욱 분노한 것은 살인자들이 모친과 동생들을


죽였다는 것보다도 공포 속에서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랬겠는가?


  그 어린 동생들이 도망칠 수도 없는 절대적 폭력 앞에 무


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왜 하늘은 이러한 것을 방치하고 있었나?


  그때 목불의 음성이 그의 무의식 속에서 까마득히 울리고


있었다.


'마음은 산산이 찢어지고 세상에 대한 원망은 서리와 같이


사무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슴속 깊이 비통한 그는 전혀 목불의 소리


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 어린애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차라리 자고있는


상태면 나았겠지요. 죽음이 급작스레 그 애를 데려 갈테니까


요. 하지만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그날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쳤습니다. 그럴 때면 동생들은 꼭 한 방에 같이 모


여 두려움에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죠. 잠을 자지 않았을


겁니다. 마을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천둥번개가 하늘을 뒤


덮는 그 순간 몰아닥치는 공포에 아마 죽어 눈도 감지 못하


고 있는 동생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듣고 있던 금화영이 차마 죽은 시신들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이목구비 마저 훼손되어 있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얼마나 사정을 했겠습니까? 잘려 나간 자기 손발을 보면


서 어찌 생각했겠습니까? 자기 부모형제가 살해당하고 붉은


피를 쏟는 것을 보는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나를 찾았겠


죠. 나를 불렀겠죠. 나는 거기 없었습니다.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요? 그때 나는 어디 있었나요?"


  남지상이 결국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커지며 결국 나중에는 통곡으로 변했다.


  장례식 내내 참고 있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이 터지고


있었다.


"화영, 정말 나는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뛰어 다녔습니


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게 태어나, 약하게 태어나 나의 사랑


하는 사람들을 지키기는커녕 모친과 동생들이 폭력 앞에 두


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순간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


습니다.그생각 때문에 정말 못견디겠어요"


  남지상과 금화영은 나이가 같은지라 남지상은 항상 금소


저라 불렀다.


  그러나 북받침 감정은 오직 유일하게 자기를 돌보아주고


곁에 있는 금화영을 지금은 화영이라고 가깝게 부르고 있었


다.


  그러나 남지상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격렬해지며 말을 이었다.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 잔인한 자들을 폭우속  절간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


니다. 그때 나는 살기위해 도망쳤지만 이제 나는 그 살인자들과


맞서서 싸울 것입니다. 도망치지 않고 맨주먹으로


라도 그자들과 맞서다 죽을 것입니다 "


  강물이 놀라 조용해지고


풀벌레 소리가 잦아들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남지상이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나지막이 그


러나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지킬 그릇은 못됩니다. 군자는 복수에 연연


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자들 자체가 사악하며 나 또한 복수


를 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넓지 못하니 필히 가족을 도살


한 자들과는 이 세상에서 숨을 같이 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끝맺은 남지상이 갑자기 그대로 혼절하며 쓰러지


는 것이다.


  금화영이 급히 그의 쓰러지는 몸을 안고는 눈물 젖은 얼


굴을 쓰다듬었다.




  남지상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었다.


'이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과 슬픔으로 찢어졌겠는가?'


  그녀의 두 눈에서도 맑은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의식이 없는 남지상의 몸을 품에꼭 안아주었다.


'지상, 괴로워하지 말아요. 내 가슴도 같이 찢어지네요'


  곁에 있던 비파나무의 잎새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인근 가시나무 숲 속의 새들이 잠 못 들고 뒤척이고 있었


다.


   그 후...


   일행은 장례를 치르고 순창의 남의원 집으로 돌아왔다.


   집 부근의 선하사 절에 들러 죽은 남지상 가족들의 넋을


위로했다.



   남지상은 가까운 순창분타에 찾아가서 가족에게 벌어졌던 참화를


이야기하고 십일 정도 휴가를 신청했다.


   순창분타는 남지상이 근무하는 무한지단에 오늘 중으로 휴가사실을


통보할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 순창분타를 다녀온 그는 이후 며칠 간 이


층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먹지도 않았다.


   집안에서조차 아래층에 내려오지도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면서도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몇 번 금화영이 남지상의 방문을 두드리고 식사하기를 권


했으나 그의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에 아래층으로 무거운 발


걸음을 돌려야만 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해하며 흘러가던 며칠


후 어느 날이었다.


   오후 무렵 남지상이 마침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쾡한 눈동자 창백한 안색이었다.


   그래도 그를 본 금화영의 얼굴표정이 안도감에 밝게 빛났다.


   남지상이 잠시 식사를 하고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고는 바깥바람을


쐬고 온다 했다.


   금화영이 같이 따라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직은 그 혼자만이 넘어야 할 마음의 산이 있었다.


   남지상의 무거운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게 근처의 작은 강변으로


향했다.


   언젠가 무림맹에서 해고되고는 홀로 슬픔을 삭히고 하던 그 강변이


었다.


   여름 해질 저녁 무렵이라 강변에는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


었고 풀벌레 소리는 가까운듯 먼듯 들려오고 있었다.


   남지상이 흘러가는 강물을 눈앞에 바라보며 물가에 앉았다.


강물은 정다운 죽은 가족들의 얼굴을 싣고 흐르고 있었다.


   남지상이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픔과 증오가 동시에 가슴속에 끌어 올랐다.


'복수를 하리라. 내 인생


의 나머지를 복수에 걸리라'



   자신의 장래가 끝없는 복수의 수레바퀴를 밀다가 언젠가는


차디찬 바닥에 쓰러져 생명을 잃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제 비겁하게 불의를 보고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죽을 때까지 불의에 대항해 싸우리라


   이제껏 부모와 형제의 안위를 위해 때로는 몸을 사렸으나


이제 죽으면 나 하나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차디찬 땅에 묻히면 끝나고

아무도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본래 죄의 사슬에서 완벽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고 따라서


인간 모두는 죄인일 수밖에 없기에 같은 죄인인 인간을 도덕


적으로 처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의 빚은 반드시 피로 받아내야 했다.


   그 살인마들도 모친과 동생들이 느낀 죽음의 공포와 고통


을 알게 해야 했다.


   그자들이 밝은 백주에 웃고 떠들며 편히 잠자리에 드는 것


은 남지상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살인행위에 대한 응징이 있다면 차라리 그들을 먼저 죽이


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그는 너무 약했고 복수를 위해서는 힘이 필


요했다.


   필요하다면 힘을 기를 것이다.


   이를 악무는 그의 마음 속 굳은 결심과 함께 돌아가신 사


부의 모습이 강물에 어리며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을 배우는 이유는 가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


기 위함이다. 잘못 정의라는 이름 하에 애꿎은 생명을 해함


을 경계함이라. 먼저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정신을


도야해라. 그리고 난 후 힘을 가져라.


그러고도 힘을 사용하기 전에 항상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


   천외천의 무력을 지닌 천부의 인연을 남긴 사부가 잘못


남지상이 복수의 명목아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심성에


물들까봐 경계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부친의 모습 또한 강물에 함께 흐르고 있었다.


부친이 아픈 한쪽 다리에도 불구하고 손에는 흙이 묻어


있는 무거운 감자자루를 들고서는 어린 지상에게 근심


스레 말하고 있었다.


"지상아, 원망과 복수의 감정은 가시가 되어 언젠가 네 심장을 찌


를 것이다. 원망과 복수의 감정은 네 자신의 마음을 황폐시


키고 결국 인성을 말살하며 네 스스로 파멸로 몰아 갈 것이


다"


   남지상은 이미 가시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피가 돋고 있었다.


   오히려 더 깊이 찌르고 싶었다.


"약한 사람들을 돕고 세상의 불의에 대한 의분만이네 자


신의 그러한 무너짐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모친과 죽은


동생들의 죽음에 대한 단순한 보복이 아닌 그 감정을 넘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불의에 맞서고 물러서지 않고 네 스스로를


불꽃과 같이 산화할 수 있는 감정을 지속하는 것만이 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강물은 여전히 황혼 속을 흘러 하류로 흐르고 있었다.


부친의 표정이 이제는 고통스러워했다.


감자가 자루에서 흘러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네 자신이 힘들고 상처받았다고 하여 주위 가까운 사람


들에게 일부러 표시는 말아라.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짐만으로


충분히 힘들단다"


   감자자루를 어린 지상이 같이 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 마음속의 말못할 고뇌가 있는 법이고 살아


가며 상처받은 사람은 그 자신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강을 건너야 했다.


   누구나 슬픔의 강물을 건너야 했다.


   모두는 강물 속에 발을 담그지만 항상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마치 바다로 향하는 강과 같이 저승에 있다는


삼도천이 흐르듯이 죽음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었다.


   강호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이별이 항상 혼재하고 있었다.


   삶은 죽음이 옆에 있어 고귀했고 사랑은 이별이 있음으로


소중했다.


   그렇게 여름 저녁나절의 고고한 강물은 흘러가며 많은 이


야기를 여러 사람의 음성으로 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제 해거름이 되어 서편하늘에는 저녁 황혼에 구름이 같


이 물들고 있었다.


   구름은 허허롭게 바람에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남지상 같이 애태


우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바람 가는 곳이 구름의 목적지였다.


   목적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구름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스름 무렵 남지상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 빈터에는 농부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이 마지막 남은 황혼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똑같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고 불꽃은 매


순간마다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낡은 불꽃이 가고 새로


운 불꽃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의 생명이 죽고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계속 남지상은 강변으로 갔다.


   그리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과 대화를 했다.


   십여 일이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하던 남지상이 식사


를 끝내고는 불현듯 금화영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다.


   "화영, 내게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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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천하제일가 24.01.11 293 10 5쪽
53 현황교주 24.01.04 312 11 5쪽
52 눈쌓인 산야에 비치는 햇살같이 23.12.30 407 12 8쪽
51 인연이란 23.12.29 282 9 7쪽
50 꿈속의 눈물 23.12.28 323 11 4쪽
49 그네를 미는 손 23.12.28 335 10 17쪽
48 인비인 23.12.28 303 5 7쪽
47 하얀목련 피던날 23.12.28 296 6 5쪽
46 빈소라껍질은 파도소리를 기억하다 23.12.25 353 9 13쪽
45 가을은 빈가슴에 메마른 낙엽으로 들어서다 23.12.25 331 8 12쪽
44 천의 무공 23.12.25 360 10 7쪽
43 그리움이 쌓이는 해변 23.12.23 404 12 15쪽
42 노을진 날은 마음속 말을 나누고 싶다 23.12.21 427 12 29쪽
41 모래성 23.12.20 429 10 12쪽
40 삶의 언저리에서 23.12.20 368 9 12쪽
39 내 마음의 꽃밭 23.12.20 437 9 9쪽
38 돌아눕는 오후 23.12.20 403 7 20쪽
37 강을 따라서 23.12.19 416 8 16쪽
36 강물아 흘러라 나의 청춘도 흘러라 23.12.19 421 12 4쪽
35 그림자의 춤 23.12.17 504 13 11쪽
34 당신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건가요 23.12.17 458 11 13쪽
33 낙화유수 23.12.17 442 10 13쪽
32 바람이 불어오는 곳 23.12.17 431 11 5쪽
31 길이 끝나는 곳에서 23.12.17 423 10 3쪽
30 천뢰지기 23.12.16 489 10 11쪽
29 수라의 검 23.12.16 452 10 5쪽
28 기억의 너머 23.12.16 422 9 10쪽
27 7월의 노래 23.12.15 431 9 3쪽
26 잃어버린 이야기속으로 23.12.15 457 11 12쪽
» 흐르는 강물처럼 23.12.14 527 11 24쪽
24 예언의 동쪽 23.12.14 507 11 7쪽
23 내가 힘들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23.12.13 500 9 12쪽
22 행로난 행로난 23.12.13 495 8 14쪽
21 인간은 희망보다 절망에 속기 쉽다 23.12.07 623 13 12쪽
20 인간이 절망한 곳에는 어떠한 신도 살지 않는다 23.12.04 586 14 9쪽
19 푸른강 붉은 누각 23.12.04 590 13 15쪽
18 잃어버린 노래 23.12.03 568 12 7쪽
17 왜 치마폭이 젖어 있느냐고 물으면 눈물이 아니고 밤이슬 때문이라 대답하리라 23.12.03 618 9 11쪽
16 격류 23.12.03 593 10 2쪽
15 앵무의 계절 23.12.02 635 11 11쪽
14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 23.12.01 669 12 14쪽
13 밤바람에 귀걸이흔적이 아프게 느껴지다 23.11.29 721 12 8쪽
12 비맹 23.11.27 731 13 5쪽
11 벚꽃이 떨어지고 화선도 볼 수 없으니 23.11.26 787 14 6쪽
10 은하수는 동쪽 먼 바다로 향하다 23.01.25 2,589 43 7쪽
9 새가 날아간 흔적을 찾아서 23.01.25 2,749 45 14쪽
8 달과 구름이 흐르는 길 23.01.24 2,718 47 4쪽
7 봄은 벌써 앞마당에 와있는데 사람들은 봄을 탓하다 23.01.23 2,821 49 7쪽
6 죽음보다 깊은 잠 23.01.23 2,909 47 11쪽
5 밤바람이 늦은 잠을 빼앗아 가다 23.01.23 2,993 46 6쪽
4 얼어붙은 길 23.01.22 3,052 47 9쪽
3 나만의 겨울 23.01.22 3,299 46 7쪽
2 눈이 내리는 길 23.01.22 3,849 47 8쪽
1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었다 23.01.22 6,278 5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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