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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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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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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헬중세 천룡인(3)

DUMMY

내가 졸개들 사이로 뛰어들어 검을 크게 휘두르자, 놈들은 허둥대며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그사이 검을 거꾸로 쥐고, 가장 숙련된 티가 나는 병사의 머리를 후드려깠다.


캉!


“커헉!”


한 놈이 쓰러지는 새, 나머지 녀석들이 둘러싸고 공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급히 공격한 터라서로 합이 맞지 않았다. 공격이 시간차로 들어와서 차례로 대응할 수 있단 뜻이다.


‘일단 벽을 등진다.’


나는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 창가를 등지며, 이곳을 지키던 놈의 안면을 팔꿈치로 찍어버렸다. 놈은 코피가 터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으아아아아아! 죽어라!”


두 번째로 돌격해오는 상대는 처음에 나를 막아섰던 덩치였다. 이 무리의 2인자 정도 되는 모양인데, 꿀 빨면서 살만 쪘지 단련한 몸은 아니었다.


한쪽 무릎을 숙이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놈이 어설프게 망치를 휘두르려는 순간, 내가 몸으로 부딪쳐 놈을 자빠뜨렸다. 녀석은 바닥에 철푸덩 엎어져서 무방비 상태가 됐다.


“커흑! 사, 살려줘!”

“그래. 살려는 주지.”


놈의 사타구니를 강철 군홧발로 내리찍었다. 놈은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이야아아아압!”


등 뒤에서 들려온 기합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통해 적의 위치를 추정하고, 방어구로 보호받지 못하는 목을 팔꿈치로 가렸다.


깡!


왜소한 병사의 단검이 강철 손목보호대에 부딪쳐며 튕겨나갔다. 입대 최저 기준은 어떻게 만족했나 싶은 체격이었다.


‘돈 받고 입대시켜줬나?’


군홧발로 놈의 명치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놈이 양손을 교차해 막아보지만, 워낙 체급 차이가 심해 놈의 몸이 붕뜨면서 유리창을 향해 날아가버렸다.


쨍그랑!


“으아아아아아아! 살려줘!”


유리창이 깨지고, 놈은 땅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퍽!

우지끈!


“커헉!”


들려오는 소리로 볼 때, 정말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으면 찜찜한데.’


나는 헬중세인들과 달리 살인에 대한 터부가 있다. 어디 한군데 부러뜨려면 족하지, 구태여 죽이고 싶진 않았다.


‘뭐. 나한테 칼 들이댄 놈인데 만약 죽었어도 별 수 없지.’


가급적 살인을 피하고 싶다는 거지, 반드시 피하려는 건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한 번 넘어야 할 일이고.


한편 다른 놈들이 개작살이 나자 남은 졸개들은 내게 맞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루벤에게 걸어갔는데.


“가, 가까이 오지마!”

“?”


앳된 청년 한 명이 내 앞을 막아섰다. 10대 중후반, 많아봐야 고3 정도다. 현대 기준으로는 아직 청소년일 나이다.


“애송아. 칼 내놔라.”

“대, 대장님을 잡아가지마.”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녀석은 다리를 떨고 있었다. 서 있기도 힘들어보이는 녀석이 내게 칼을 겨누더니, 갑자기 어설픈 공격 동작을 취했다.


‘그럼 교훈을 줘야지.’


샥!

먼저 장검을 휘둘러 놈의 귀를 잘라냈다.


“크아아아악!”

“칼을 들이밀때는 신중하도록.”


애송이는 피투성이가 된 오른쪽 귀를 붙잡으면서 오열했다. 보긴 흉하지만, 생계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소년법을 적용해준 조치다.


“남은 놈들 중에 덤빌 녀석?”

“·········”


남은 놈들은 무기를 뽑기는 했는데, 몸을 덜덜 떨기에 바쁜 어린 놈들이다.


“평소에 불만 있던 놈은 지금 나와. 계급장 때고 거지왕자랑 싸워볼 수 있는 기회다. 아니면 무기 버리고 구석에 처박혀있어.”


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검을 어깨에 얹자, 남은 2초소 병사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야. 생각보다 키마누가 훨씬 강한데?’

‘마음만 먹었으면 우리 전부 죽었을 거다.’

‘귀족도 못 이긴걸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

‘애초에 우리 적수가 아닌 거야. 항복해.’‘


그들은 바로 무기를 땅바닥에 던지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역시 백 마디 말보다는 칼질 몇 번이 설득에 효과적이었다.


‘헬중세인들이 육체 노동에 익숙하고 성정이 사납지만, 그게 칼싸움을 잘한다는 뜻은 아니지.’


헬중세인들은 대부분 꿀꿀이죽 같은 것만 먹고 자라서 체급에서 현대인에게 너무 밀렸다. 기초교육을 받지 못해, 제대로 신체를 단련해본 경험도 없다. 병사라서 나은 게 그나마 이거다.


‘몸싸움이든 칼싸움이든 내가 훨씬 유리하지.’


먹고 자란 영양은 비교도 안되고, 체계적인 식단 관리와 과학적인 운동법은 헬중세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강점이었다.


‘그나마 나와 싸울만한 건 귀족 출신인 루벤뿐이었는데, 녀석은 방금까지 약이나 하던 놈이고.’


나는 루벤의 앞에 서서 냉소를 머금었다. 녀석은 잘려나간 팔을 붙들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커흐흐으으윽······”

“루벤 공자. 평생 검은 못 잡으시겠어.”

“부, 붙이면 돼. 신전에 가서······”

“맞다. 여긴 그런 게 있었지.”


잘려나간 루벤의 오른손을 낚아채서,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도심을 배회하던 들개들이 공짜 점심에 기뻐하며 몰려들었다.


“아, 안 돼!”


루벤의 오른손은 들개들의 점심 식사로 전락해서 뜯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귀족이라는 자부심도 산산이 찢어진다. 헬중세의 귀족이란 검으로 싸우는 자다. 검을 들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자는 진정한 귀족으로 여겨질 수 없다.


“너, 너, 감히 외지인 따위가─”

“감히 너 따위가 감히란 말을 쓰다니!”

“아아아아아악!”


나는 부상당한 루벤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놈이 꿈틀거리자 이번엔 온 몸을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팼다. 놈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뒹군다.


“살려, 살려줘라······”

“설마 귀족을 재판도 없이 때려죽이겠어?”

“아아아아아악!”


나는 빙긋 웃고는 루벤을 때리고, 짓밟았다. 말한대로 나는 놈을 죽이지 않았다. 단지 죽기 직전까지만 두들겨댔을 뿐이다.


아. 명문가 귀족 자제는 다르더라.

몸이 꽤 튼튼해서 잘 버티더라고!


* * *

제 2초소 근위병들은 루벤이 무참히 폭행당하는 꼴을 보면서도 입을 틀어막았다.


키마누와 루벤 사이에 얽힌 악연을 아는 데다가, 자칫하면 카마누의 분노가 그들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뭔 소리야. 너도 저렇게 처맞고 싶냐?’

‘그동안 우리 대장이 키마누 왕자를 너무 괴롭히긴 했어.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지.’

‘저런 사람 좋은 인간이 원한 가지면 제일 위험해. 참고 참으면서 우리 언제 족칠지만 각 보고 있던 거라고.’'


병사들은 마음 속에 있던 키마누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 싸움을 피하길래 유약한 도련님인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꽤 배짱이 뛰어났다.


‘저러니까 진짜 왕자같은데?’

‘고귀한 출생일거라는건 모두 동의했잖아.‘

‘맨날 싸움을 피하길래 헛소문 인 줄 알았지.’


그 때, 키마누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돌아오자 모두 잡담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은 탈영병 신분으로 상관을 공격했었다. 귀족인 루벤은 몰라도, 자신들은 즉각 참수당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이걸 너희 손에 차라. 이놈한테도 채우고.”


키마누는 품에서 쇠사슬을 꺼내서 던졌다. 자신들을 소세지처럼 엮어서 끌고 갈 모양이었다. 그리 되면 명예가 중요한 사회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는 힘들어진다.


“그래도 저희가 근위병인데······”

“못하겠나?”

““아닙니다! 실시하겠습니다!””


결국 제 2초소원들은 앞다퉈서 각자 손목에 족쇄를 채웠다. 족쇄를 줏으려고 몸싸움이 벌어질 정도였다.


‘헬중세 새끼들은 꼭 폭력을 보여줘야 말을 들어요. 이게 문명 왕국인지, 동물의 왕국인지.’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항상 서열 싸움이 벌어진다지만, 헬중세의 서열 다툼은 야생을 방불케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왕족 남성도 싸움을 못하면 면전에서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루벤이 귀족들 모이는 데는 얼굴도 못 들이밀지. 기사 작위도 못 받은 놈이 잘난 척하면 얻어맞을 거 뻔하니까.’


이곳에서 귀족과 평민들은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갔고, 다른 신분의 세계를 침범하는 일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때문에 루벤은 귀족들 중에서도 편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루벤의 삼촌인 근위대장이다. 어지간한 사건은 그냥 묻어버릴 수 있을텐데, 일단 증인이 많으면 어떻게든 가능할 거다.’


그 때, 방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관의 모든 건달과 매춘부들이 모여 방 안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하고 있었다.


‘다들 두려워하고 있군.’


저들 입장에서는 근위대 장교는 범접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물며 근위대끼리 전투가 벌어졌으니 두려워할 법도 하다.


“너희들에게 물어볼 게 있다.”

“············”


질문을 던졌지만, 좌중의 누구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번 일에 엮어서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걸.


“루벤이 너희 식구를 죽인 게 처음인가?”

‘···············“

“아니겠지.”


명시적인 대답은 없지만, 애써 눈을 피하는 건달들과 울상이 된 매춘부들만 보아도 답을 알 수 있었다. 루벤의 엽기 행각은 발각된 게 처음일 뿐,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다.


“마담. 할 말 있나?”

“저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키마누 왕자님.”


마담은 공손한 태도로, 그러나 공포에 떨면서 말했다. 근위대 내부 권력 다툼에 얽히느니, 그냥 몇 명 죽고 없던 일로 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겠지.


“네가 증언해준다면 이제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될 거다. 힘든게 번 돈을 상납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내 제안에도 마담은 재차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응할 수 없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나를 도왔다가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 지 모르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증인이 없으니 나야 아쉽지만, 그들의 결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각자의 사정이란 늘 다른 법이니까.


“키마누······왕자님이시죠?”


홍등가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였다. 시선을 옮겨보니 10대 초반의 흑발 소녀였다.


“나는 왕자가 아니다. 서전트일 뿐이지.”

“서전트면 높은 계급이신가요?”

“그렇진 않다. 말단 장교지.”

“제겐 무척 높으신 분이네요. 인사 올릴게요.”


그녀는 양손으로 치마의 양쪽을 잡아올리면서 베시시 웃어서 어설프게 유혹을 했다. 유혹하려는 의도가 있다기보단, 여기서 살다보니 보고 배운 습관이었다. 그게 더 슬펐다.


“푸른장미궁전의 이비에요. 키마누 왕자님.”

“수도근위대 제 1백인대, 제 1번 초소의 지휘자 서전트 키마누다. 항구 보호를 담당하고 있지.”


나는 재빠르게 이비를 살펴서 사소한 몸가짐까지 파악을 끝냈다. 근위병으로 일하다보면 자연스레 단서만 보고 정체를 추측하는 눈이 생긴다. 늘 들어맞는 건 아닌데, 대체로 맞는다.


‘빈민가 출신은 확실하고, 부모는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못했을 것이다. 이 창관은 고아원이자 학교, 놀이터겠어.’


이비에게 빈민가 바깥의 세상은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어린아이조차 동심을 지니고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헬중세는 그런 곳이었다.


“좋다. 이비.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서전트 루벤은 근위대장님의 조카잖아요.”

“그렇지.”

“또 근위대장님은 국왕 폐하의 맹우죠?”

“사실이다.”

“왕자님께서는 근위대장 라스칼 군주님보다 힘이 강하신 분인가요? 아니면 적어도······제 가족들을 지켜주실 수 있는 거죠?”


이비의 시선에는 큰 동경과 기대감이 담겨있었다. 이국의 왕자가 나타나 저 괴물 같은 귀족을 작살내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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