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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한 글입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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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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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2. 헬중세 천룡인(1)

DUMMY

내게 우슈르테툼 근위대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각별한 의미가 담긴 공동체······까지는 아니어도 소속감을 느끼는 조직 정도는 된다.


근위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부랑자로 살다 칼에 찔려죽거나, 노잡이 노예로 팔려가서 헬중세 삶을 마쳤으리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2년 전, QR코드를 찍고 강제로 이세계로 전송된 순간 나는 뭔가 좆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약속된 이민자의 드림랜드가 아니었다.


‘시발.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야?’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무슨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중세 왕국이었다. 기후는 중동 어딘가인데 사람들은 유럽계 백인에, 복식이나 건축 양식은 중세 그 자체였다.


‘이거 무슨 영화 세트장이야? 제작비 엄청나게 들었을텐데.'


사실 사람들의 언어가 매우 낯선 걸 고려하면 영화 촬영장 따위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헬중세 전이를 기필코 부정할 만한 요소를 찾았다. 머리 위에서 평생 맡아보지 못한 구린내가 몰려오기 전까지는.


‘킁킁.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고개를 들어보니, 교수대에 여러 구의 시체가 데롱데롱 매달려서 썩어가고 있었다. 몸의 구멍마다 구더기가 들끓고, 까마귀들이 날아들어 눈알을 파먹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구웨에에에에에엑!”


더 이상 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곳은 영화세트 촬영장도, 중동에 있는 테마파크 체험장도 아니다. 이곳은 이세계다. 그것도 헬중세.


“좆됐다.”


그것도 진짜로 개좆됐다. 현대인 회사원이 어떻게 진짜 중세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인가? 이건 이민 사기였다. 여신의 은총, 용사아카데미, 엘프 히로인, 정착지원금 다 어디 갔냐고!’


하다못해 ‘중세풍’ 판타지 세계였다면 맨 손으로 시작해볼만 했을 것이다. 문명 수준이 제법 되서 사고 방식이 현대인과 호환이 되며, 미소녀들도 많은 그런 세상이라면······


‘미소녀는 커녕 여자도 없네. 시발.’


지구인 여성들은 참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헬중세인들은 발육이 되다 말았다, 입은 옷도 꾀죄죄하고, 냄새는 지독하다. 위생 상태는 현대에 비하면 지옥이다.


‘귀족들이야 연예인 뺨치게 이쁘긴 하지.’


하지만 내가 처음 본 미소녀 귀족은, 거지가 드레스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손모가지를 날려버리는 여백작이셨다.


‘화난 건 이해하는데 저렇게까지 해야 되냐?’


천룡인을 눈 앞에서 보니, 이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던 환상은 모조리 사라졌다. 현대 사회가 너무 그리웠다.


‘시발. 이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지.’


이곳은 칼찌는 일상이고, 야생엔 몬스터가 창궐하며, 사소한 실수로도 처형 당할 수 있는 트루 헬중세였다.


‘무슨 20세기 명작 소설이냐?’


그런데 나는 특전은 커녕 번역 마법도 없다. 나는 멘탈이 나가서 울고 불며 기도를 올렸다.


‘조상님. 예수님. 부처님. 제우스님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신들이시여! 제발 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세요!’


나는 매일 같이 기도를 올렸지만, 어느 분에게서도 응답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신이어도 초코파이 한 개로 신앙을 바꾸는 괘씸한 놈의 기도는 안 들어준다. 논산훈련소 종교마스터의 업보가 돌아온 거다······


‘그냥 주요 종교 하나 골라서 믿을 걸.’


그러나 때늦은 후회는 늦었으니, 헬중세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나는 강제사민을 당한 실향민이 되고야 만 것이다.


‘문명 수준은 전근대 유럽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 사람 잡아먹는 괴물은 뒷산에 출현. 이거 도대체 사람 사는 세상이 맞기는 하냐?’


사회가 빈곤하니 민심은 팍팍하고, 교류가 적으니 이방인에겐 배타적이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내세의 구원이나 명예같은 정신적 가치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면 강해지는 기이한 세상이다.


‘헬창이라 살았다.’


다행히도 나는 현대에서, 동네에서 알아주던 헬창이자 스포츠맨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운동 선수를 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똥군기 좆같아서 안했지.’


아무튼, 내가 즐기던 스포츠 가운데는 격투기와 서양 검술도 있었다. 그게 헬중세에서 날 구해주었다.


저런 스포츠들은 현대에선 누구나 돈만 내면 일류 선수한테 배울 수 있지만, 헬중세에선 모두 ‘군사 기술’로 분류되서 관련자가 아니면 습득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말이다.


‘야. 너 누구 허락 받고 구걸하냐?’

‘내. 밥벌이. 여기. 내 구역.’

‘새끼가 덩치 크면 다인줄 아냐? 애들아! 밟아!’

‘헬중세. 거지. 민심. 거지다. 꺼져라. 죽는다.’

‘왕초! 저놈 주먹질이 훈련 받은 티가 납니다!’

‘검이다! 놈이 검을 다룰 줄 안다! 도망 쳐!’


그렇게 굴다리 밑에 사는 괴력의 이방인 거지로 자리를 잡으니, 물리적 생존은 가능했다. 천국 가고 싶어하는 부자들의 적선과 신전의 구호 덕분이었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현지에 아무런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때 와서 누가 찌르면 어떡하지?’

‘너무 배고프다. 적선 받은 걸론 택도 없어.’

‘겨울은 대체 어떻게 넘겨야되나······’


먹고 살려면 강도질이라도 해야되나 하는 나쁜 마음도 들었지만, 사람을 찌를 자신이 없어서 그 생각은 그만두었다. 거기에 외로움도 문제였다. 사람과 대화를 못하니 점점 미쳐가더라.


그러던 어느 날, 안대를 찬 신관이 굴다리를 방문했다. 머리 뒤에서 광채가 뿜어져나오는 성스러운 느낌의 여인이었다.


‘어머나. 못 보던 분이네요?’

‘새로 온 거지다. 한 푼만 줘라.’

‘이런 건방진! 이 분이 누구인지 아느냐!’


그녀는 안대를 풀고, 멀어버린 눈으로 날 찬찬히 훏어봤다, 그러곤 신전 기사들을 시켜 날 이상한 합숙 훈련소에 던져버렸다. 다들 아침마다 구보를 하고 이상한 얼차려를 받는 공간이었다.


‘무슨 노동교화소인가?’


그래도 따뜻한 곳에서 잠잘 수 있고, 밥도 먹여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양이 적기야 하지만 그건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고.


‘훈련 자체는 아주 쉽네.’


같이 훈련을 받은 헬중세인들은 체격도 왜소하고, 체력 단련을 해본 경험 자체가 한 번도 없어, 현대인에 비해 굉장한 약골들이었다. 그렇게 언어도 배우고, 체력 단련도 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던 어느 날.


‘자네 이름이 뭐였지? 발음이 어려웠는데.’

‘김.현.우라고 합니다. 백인대장님.’

‘그래! 키마누였지! 합격을 축하하네.’

‘합격이요?’


내가 갸우뚱한 표정을 짓자, 백인대장도 의문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국왕 폐하의 군대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기쁘지 않은가? 다들 간절하게 붙고 싶어하는데.”

“예? 군대요?!”


생각해본 적도 없던 재입대였다. 의도하던 바는 아니었으나 거지 신세보단 나았다. 나는 최고성적으로 훈련소를 졸업한 덕에 근위대에 배치되었다.


근위대는 국왕 직할의 정예 부대로, 평시에는 수도에서 경비병 업무를 보고, 전시에는 수도를 방어하거나 왕을 호위하는 역할에 맡았다. 대우도 좋고 입김도 센 요직이다. 현대로 치면, 권위주의 정부의 대통령 직속 헌병경찰정도 된다.


'힘 좀 깨나 쓰는 자리지. 뒷돈도 받기 좋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우슈르테툼에서 군인은 되기만 하면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다. 월급도 많이 주고, 사회적 명예도 있으며, 공을 세우면 출세까지 보장되니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드림잡이었다. 조금 위험해서 그렇지.


‘그런데 저는 신원불명의 이교도잖습니까?’

‘아. 자네에겐 대신관님의 보증이 있었다네.’

‘대신관님께서 왜 제 보증을 해주신거죠?’

‘그건 자네가 나한테 들려줘야지.’


아직도 대신관이 날 왕의 군대에 넣어준 이유는 모르겠다. 그녀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성녀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대신관님은 내게는 큰 은인이시지.’


재입대는 탁월한 결정이었다. 우슈르테툼인들은 군인을 대단히 존중했고, 노고에 맞는 합당한 보상도 제공했다.


길가를 걷다보면 ‘Thanks For your service’와 같은 의미의 인사를 쉼없이 받는 데다가, 군복을 입고 식당에 가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이게 옳게 된 나라지.’


게다가 왕국군은 인사 체계도 (시대를 감안하면) 공정한 편이었다. 권리가 크면 책임도 컸고, 공을 세우면 합당한 상이 뒤따랐다. 인사평가 기준도 나이나 기수, 연줄보다 실무 능력과 조직에 대한 헌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나 같은 외국인도 동일한 잣대로 평가 받았다.


‘이게 옳게 된 조직 문화지.’


나는 덕분에 임무에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임했고, 이곳의 문화와 언어를 익혔다. 근위대에 맞는 품격도 갖추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자 현지인들의 대우가 완전히 달라졌다.


‘키마누 상병은 책임감이 남다른 것 같아.’

‘자기 나라도 아닌데 진짜 열심히 일하더라.’

‘편하게만 지내려고 한 게 부끄럽군.’

‘원래 먼 극동의 왕족이란 소문이 있던데?’

‘체격이 귀족치고도 큰 걸 보면 맞을지도.’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에 언제나 문제 있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튀는 사람이 싫은 사람, 이방인이 그냥 싫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루벤 대장. 이번에 검은머리 이방인은 승진했던데 저는 승진 명단에서 누락되었는데요?’

‘저번 고블린 토벌때 선봉에서 대장을 쓰러뜨린 게 그놈이잖냐. 삼촌도 이걸 포상해주지 않고 넘어가실 수는 없지.’

‘그래도 제가 그동안 대장을 잘 모셨는데······’

‘게다가 그 놈은 이방인에 이교도 아닙니까?’

‘확실히 충성심이 의심스런 놈이군. 제 발로 나가게 하자.’


그때부터 제 2초소장인 루벤과 그의 일당이 날 집요하게 괴롭혀왔다. 한 번은 불러다가 신고식까지 했었다. 헬조선 노예 병영이 갓한민국 선진 병영으로 보이는 ‘헬중세’ 맛이었다.


본인도 귀족이고 근위대장직을 맡은 막강한 삼촌이 있으니 눈에 뵈는 게 없는 새끼였다.


‘일단은 참는다.’


간신히 근위대에서의 입지를 인정 받았는데, 이곳에서 귀족 출신의 상관을 때려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었다. 사람 사는 곳에 개새끼는 언제나 있는 법이니 일단 참았다.


‘하지만 두고봐라. 이 개새끼들아.’


나는 참고 기다렸다. 저 개새끼들이 언젠가 사고를 쳐주기를. 그래서 놈들을 일망타진해서 모조리 날려버릴 수 있는 명분을 주기를.


* * *


“얼씨구?”


내가 제 2초소 놈들을 찾아낸 곳은 빈민가에 있는 매음굴, ‘푸른장미궁전’이었다. 야간 순찰을 돈다는 놈들이 여기 자빠져서 여태 복귀하지 않은 거다.


“이거 완전히 미친 놈들이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번듯한 홍등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큼직한 덩치(헬중세 빈민가 출신치고는)의 폭력배들이 앞을 막아서지만, 오히려 체격에서 압도되어 기세가 짓눌렸다.


“죽고 싶─아니, 누, 누구십니까?”

“너 이거 안 보이냐?”


나는 친절하게 손가락을 사슬갑옷 위에 부착된 휘장을 가리켰다. 붉은색 바탕 위로 포효하는 황금그리폰. 왕실 군대의 문장이었다.


“그, 그게, 먼저 오신 분이 있어서요.”

“그래?”

“예. 루벤 대장께서 자기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말씀하셨습니다.”


놈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도, 어떻게든 우물쭈물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말 없이 청동 지휘봉을 들어올렸다.


팍!


“아아아아악!”

“깡패가 말대꾸?”


청동봉이 깡패의 정수리에 정확히 적중하고, 놈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나머지 인원들은 잽싸게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지나가십시오!”

“오냐. 진즉에 말 들으면 좋잖아.”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매음굴의 내부로 들어갔다. 진한 분냄새와 살냄새가 뒤섞인 야릇한 느낌이 코를 찔러오는 가운데, 책임자인 마담을 비롯한 관리인들이 화들짝 놀라 날 바라봤다.


“단속하러 온 거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그게.”


국왕 칙령에 의하면 매춘은 합법이지만 폭력조직 결성은 반역죄였다. 건달과 매춘부는 세트메뉴라서 실효는 없지만.


“제 2초소장 루벤은 어디 있나? 안내하도록.”

“······그, 그게 말입니다만.”


중년의 마담이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말을 잇기를 거부했고,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관록 있는 깡패와 매춘부들도 마찬가지였고, 어린 나이의 사람들은 창백한 낯빛이었다.


‘흠. 이건 이상한데.’


어차피 음지의 일을 하다보면 경비병과 마주치게 된다. 우리도 빈민가 사정을 아니까 좀 굽신대면 적당히 넘어가주는 게 상식이다.


‘평범한 반응을 내놓지 않는 건, 지금 애들이 평범한 상황에 놓인 게 아니라는 소리지. 내게 숨겨야할 무언가가 있겠군.’


나는 곧장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발을 돌렸다. 그러자 계단을 지키던 건달들이 다급히 몸으로 길을 막으려 들었다.


“서전트!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귀찮게 굴지 마라.”


나는 그대로 놈들에게 몸통을 부딪쳤다. 살집만 키운 녀석들이라 놈들은 일거에 바닥에 자빠지고, 나는 유유히 지나쳤다.


“크앗!”

“서전트님! 지금 가시면 안 됩니다!”

“저희 모두 곤란해진다고요!”


놈들의 애타는 만류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확신을 굳혀주었을 뿐이다. 나는 윗층으로 올라가, 가장 큰 방의 문짝을 걷어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우슈르테툼 왕국의 치부를.


“제 2초소장 루벤 폰 데른부르크. 네놈을 1급 살인 혐의 및 탈영 행위로 긴급체포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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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헬중세 천룡인(3) +4 22.02.22 3,664 116 12쪽
5 2. 헬중세 천룡인(2) +3 22.02.21 3,629 123 11쪽
» 2. 헬중세 천룡인(1) +5 22.02.20 3,836 124 14쪽
3 1. 헬중세 이민(3) +9 22.02.19 4,112 126 11쪽
2 1. 헬중세 이민(2) +12 22.02.18 4,914 140 18쪽
1 1. 헬중세 이민(1) +23 22.02.17 6,443 14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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