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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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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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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헬중세 천룡인(2)

DUMMY

내가 문을 까고 들어가자, 루벤은 눈이 풀린 상태로 침대에 앉아 멍하니 술병만 빨았고, 제 2초소 대원들은 대장이 남긴 지저분한 흔적들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니들 뭐하냐?”


어지럽게 놓인 깨진 술병, 찢겨진 옷조각과 피냄새가 밤새 있었던 일을 증언해주었다.


“허, 헌병이다!”

“쓸모없는 깡패 새끼들, 정리될 때까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랬는데 그것도 못해?!”


제 2초소 대원들은 백인대장의 지휘봉을 보고 허겁지겁 작업을 멈췄지만, 내 얼굴을 보곤 김빠진 표정이 되었다.


“뭐야? 거지 왕자네?”

“괜히 쫄았잖네. 니가 왜 여기 있냐?”

“너?”


내가 잘못? 들었나? 아무리 헬중세 군대라지만, 장교가 되서 병사한테 ‘너’라고 불릴 줄은 몰랐네.


“방금 너라고 했나?”

“그래! 키마누 너 말이야. 어르신네들 바쁜 거 안 보이냐? 당장 꺼져!······아아아아아아악!”


놈의 안면에 지휘봉을 내리치자, 얼굴이 피떡이 되며 힘 없이 넘어갔다. 서비스로 놈의 오른다리를 짓밟고 분질러줬다.


“크아아아아악!”

“다시 너라고 불러보시지?”

“잘못, 잘못했습니다! 서전트!”

“잘못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다시 안면을 거세게 걷어차자, 놈의 왜소한 몸은 벽으로 날아가 굉음을 내며 쳐박혔다. 뼈가 뽀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놈은 의식을 잃었다.


순식간에 한 놈이 제압당하자, 제 2초소원들의 낯빛엔 경계심이 드러났다. 술만 마시던 루벤도 신경쓰이는 시선을 보내온다.


‘지금 기선 제압을 한다.’


나는 지휘봉을 오른손에 쥐고, 왼손을 향해 툭툭 내리치길 반복했다. 백인대장의 지휘권을 내가 대신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의미였다. 그러니 저쪽도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상식을 지킬 때의 이야기다.


‘대장. 저거 어쩌죠?’

‘이거 큰일 난 거 아닙니까?’


루벤의 졸개들이 대장에게 시선으로 묻고 있었다. 하지만 술에 찌든 망나니 귀족은 피식 웃어보일 뿐이었다.


“이보시오. 거지왕자.”

“나는 그 별명을 싫어한다만.”

“거지왕자님. 나는 귀족이고, 내 삼촌께선 근위대 사령관이시오. 내게 일개 백인대장의 권위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시오?”

“네 직속상관의 명이다. 제 2초소장 루벤.”


딱딱한 어투로 받아치자 루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놈은 이전부터 나와 마찰이 잦았다. 아니, 놈이 일방적으로 날 괴롭혔지.


‘내가 왕자 대접을 받는 게 싫었겠지.’


우슈르테툼 인들은 나를 왕자로 착각한다. 대부분은 그래서 존중해주는데, 오히려 왕족을 아니꼬워하는 이들은 나를 ‘거지왕자’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왕족인데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진짜 왕자라면 칼부터 뽑았겠지만, 우리 집안은 왕가는 커녕 족보도 없는 상놈 집안이다. 기분이 크게 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헌병으로 왔는데 모욕을 받는 건 다른 이야기다. 초병이란 놈들이 복귀를 거부하고 창관에 자빠져서 자?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탈영이다.’


게다가 정황상 탈영으로 끝날 각이 아니다.


“니들. 아까부터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순간 부하들은 물론이고 루벤조차 순간 극심한 불안을 내보였다. 그냥 탈영이라면 루벤의 빽이면 무마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지금 기세가 등등해야되는데, 내심 갈등을 피하려든다.


“전부 손에 쥔거 내려놓고 벽으로 물러서라.”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안 꺼져?!”


덩치 큰 병사가 허둥대며 소리쳤다. 다른 병사들도 한 마디씩 말을 얹으려할 때, 루벤이 냉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야. 다들 그냥 보여줘.”

“······하지만.”

“거지왕자도 왕자야. 남의 왕국에 더부살이하면서 쓸데없는 짓을 벌일 정도로 눈치 없는 녀석은 아니겠지.”


루벤은 손을 휘저어 부하들에게 비키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병사들이 물러나고, 둘둘 말린 붉은 카펫이 보였다. 안에 묵직한 뭔가가 있었다.


‘작은 체구의 사람이 들어가기 적당한 크기군.’


병사들은 어지럽게 풀어놓은 무기들을 제딴에는 몰래 쥐고 있었다. 보기 흉하니까 옷부터 제대로 입을 것이지.


“무장 그만하고 당장 까봐.”


부하 병사들이 우물쭈물대자 루벤이 무신경하게 카페트를 발로 찼다. 무언가 차는 소리가 들리면서 카페트가 펴졌다.


“대, 대장!”

“어차피 들켰는데 숨겨서 뭐하게?”


큼직한 고깃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쿵-하는 소리를 냈다. 고깃덩이는 온 몸에 피멍이 든 소녀였다. 화장이 짙었고, 괴로운 표정이었고, 숨을 쉬지 않았다.


“당신이 죽였나?”

“내가 죽인 건 아니고, 고장이 난 거지.”

“이거 상상 이상의 쓰레기였군.”

“가족 버리고 도망친 당신보단 낫지.”


내 가족들은 스마트폰 만지면서 잘 살고 있다. 헬중세에서 천룡인 싸이코패스 대면하고 있는 내 삶이 레전드지.


“뒷골목 사람들 입막아서 없던 사건으로 만들 생각이었군.”

“누가 창녀 한 명이 사라진 일을 신경 쓰겠소? 당신만 입다물면 아무 일도 없던 게 될 거요. 경고하건데, 나를 적으로 돌리지 마시오.”


루벤은 목소리에 힘껏 강조를 주었지만, 무섭다기보다는 같잖았다. 삼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놈이 까불기는.


“네가 먼저 나를 적으로 돌리지 않았나?”

“어허. 나이 먹을만큼 먹은 분이 사회 생활을 왜 이렇게 모르시나? 세상 어디에서나 텃세가 있는 법이고, 이방인보단 토박이가 우선이지.”


루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어설픈 연기 때문에 다급한 심정이 드러났다. 이번 일은 알려지지 않는 게 놈에게도 최선이다.


루벤의 삼촌, 라스칼 경은 이번 일을 덮어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그리고 아마 덮어줄거다. 대신 뒈지게 처맞을거다. 그게 무서운거다.


“하지만.”


역시나 놈도 급하다.


“내가 지금껏 서전트 승진건으로 당신을 섭섭하게 대한 건 인정하오. 하지만 입장 상 어쩔 수 없었소. 텃세부린 건 내 의사가 아니란 거요.”


루벤의 공식적인 지위는 어디까지나 서전트, 나와 같은 말단 장교에 불과하다. 하지만 놈은 근위대장의 조카다. 수족이 되서 혜택을 보려는 이들이 파벌을 형성하고 잇다.


“하지만 이제부터 당신이 내게 섭섭함을 느낄 일은 없을 거요. 우린 친구가 될 테니까!”

“흐음. 친구라?”

“원래 적에서 친구가 되면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거잖소. 우리도 한 팀이 되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줍시다.”


루벤은 유리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황홀한 와인 냄새가 피냄새를 덮으려 들었다.


“키마누. 당신은 실력은 있지만 우슈르테툼에 기반이 없소. 반면 나는 좋은 연줄과 영향력이 있지. 서로에게 유익한 동맹이 되지 않겠소?”


놈은 제딴에는 대단한 제안을 한다는 듯, 억지미소를 지으며 내게 와인잔을 내밀었다. 나름대로는 진심일수도 있다.


“우리가 손잡으면 근위대를 장악할 수 있소.”

“흠.”


나는 팔짱을 끼고 이치를 따져봤다. 이득이 되는 제안은 맞다. 루벤이 망나니여도 손익 계산엔 귀신 같은 놈이다. 배경? 삼촌이 개국공신이자 왕의 맹우인데 말할 필요가 있나.


‘이득은 맞아. 분명히 도움도 될 거고.’


내가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결국, 마지막에는 이방인이다. 왕자 대접을 받아도 좆같은 일을 덜 겪을 뿐이지, 근본적인 신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루벤의 밑으로 들어가면 신분 문제도 극복이 가능하지. 전생으로 치면 재벌그룹 후계자의 라인을 탈 수 있는 기회인데, 머리로만 따져보면 분명히 받는게 맞아.'


그러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헬중세에 적응을 해도 근본은 현대인이다. 인명은 귀한 것이고,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이 아이를 왜 죽였지?”

“왜 죽이면 안되나?”


내 시선은 소녀의 주검으로 향한다. 열여섯이나 열일곱정도 됐나 싶은 앳된 얼굴이다. 이곳 기준으론 성인이다. 하지만 내게는 보호가 필요한 아이다.


“하여간 헬중세 것들이란.”


중세는 궁핍한 세상이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일 외에는 먹고 살 길이 없는 이들이 정말로 많다. 불쌍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는 없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다른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특히 너 같은 천룡인이라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넘칠텐데.”


나는 망자의 눈가로 손을 내밀어 뜬 눈을 감겨준 뒤, 카페트로 정중히 발가벗은 시신을 덮어주었다.


화가 난다. 힘겹게 삶을 이어온 들꽃이, 순진한 악의에 꺾여나간 풍경에 화가 났다.


“제 2초소장 루벤 폰 데른부르크.”


나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제 1급 살인 및 탈영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두 혐의는 특수범죄에 해당하므로 귀족의 면책 특권이 즉각 박탈된다.”


츠릉!


루벤이 이를 악물며 장검을 뽑았지만, 나도 몸을 긴장시켜놨던 터라 곧장 발도했다! 두 자루의 장검이 X자로 교차한다!


채에엥!


“지금 뭐하는 짓이냐!”

“너야말로. 근위대에 항명하는 거냐?”


검을 맞댄채로 그대로 찍어누른다. 크게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놈이 그대로 쭉쭉 밀려났다. 놈은 이를 악물고 힘을 쥐어짜내고 있는데도 그랬다.


“화해를 하자고 했잖나!”

“화해는 사람이랑 하는 일이지.”

“고작 창년 하나 죽었다고 감정적이긴!”


놈은 안간힘을 써서 내 검을 걷어낸 후, 곧장 내 심장을 노리고 찔러들어왔다. 형편없이 느리고 무뎠다. 하지만 일부러 내버려둔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루벤의 검이 펜싱 선수처럼 깊게 찔러왔다. 하지만 나는 간단히 피한 후, 놈의 오른손을 향해 장검을 내리쳤다.


“?!!”


양손의 손가락에서, 묵직한 것을 베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뼈를 통째로 베는 감각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놈은 왼손으로, 잘려나간 손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놈의 피가 얼굴에 한가득 튀었다.


“다들 뭐하는거냐!! 대장을 구해!!!”

“하, 하지만 저 놈은 백인대장의 대리······”

“대장이 죽으면 너희라고 무사하겠냐!”

“!”


덩치 큰 병사의 외침에 눈치만 보던 근위병들이 우르르 날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게 눈알을 굴려 놈들을 살핀다. 숫자는 아홉,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하는 건 오직 다섯.


다섯의 체격은 왜소하고 훈련 상태도 엉망이다. 충분히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물론 맘 같아선 죽이고 싶다만.


‘살려두면 증인으로 쓸 수 있다.’


귀족을 날려려면 최대한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증인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니 일단은 살려두겠다.


‘뭐.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루벤의 조무래기들을 향해 칼날을 돌렸다. 주제도 모르는 얼간이 한 놈이 무모하게 달려왔다.


“이야야야야야야!”

“다음엔 손목보호대는 차고 싸우도록.”


샥!

써겅!

놈의 오른손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자. 다음 놈 와라.”

"끄아아아아아악!"


희생자의 비명에 나는 미소를 짓고, 루벤의 졸개들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들이 엉거주춤하는 사이, 나는 검을 들고 놈들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오지 않으면 내가 가마.”

“오, 오지마!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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